은행에 예금을 했는데 이자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수수료 부담 때문에 원금이 줄어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본과 EU의 마이너스 금리정책이 장기화하면서 국내에도 마이너스 금리정책이 도입될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행도 이와 관련 마이너스 금리정책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국내외 경제침체가 장기화하면서 한국에도 마이너스 금리시대가 한발 앞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마이너스 금리란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의 지급준비급 등 당좌예금에 대해 이자를 주지 않고 오히려 수수료를 받는 것을 말한다. 일반 국민들의 예금이 은행 금고에서 이자만큼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금융거래뿐 아니라 재테크와 생활 전반에 대한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민간경제연구소들은 올 4분기에 한국경제가 지난 금융위기(2008년 4분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시대에 대비한 재테크 전략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의 경제여건으로 볼 때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당장 도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더라도, 실질금리로는 마이너스 금리와 큰 차이 없는 초저금리상태가 장기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마이너스 금리정책 영향권
도입여부는 논란·기준금리 추가인하 가능성 높아
한국은행은 최근 마이너스 금리정책의 효과와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다.
금융당국이 마이너스 금리정책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파장이 커지자 한국은행은 “마이너스 금리정책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적극 부인했다. 한국은행은 “외국 사례에 대한 이론 연구이며 한국은행의 향후 통화정책 방향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통화금융정책을 맡고 있는 한국은행이 마이너스 금리에 대한 연구를 했다는 것 자체가 세계경제침체와 금융시장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라고 볼 수 있는 만큼 한국도 더 이상 마이너스금리의 무풍지대가 아닌 셈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10월 13일 기준금리를 연 1.25%로 동결했다. 지난 6월 기준금리를 0.25%p 인하한 이후 4개월째 금리를 동결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늦춰지고 있는 데다 일본, EU 등의 마이너스금리와 양적완화가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어서 우리나라도 마이너스 금리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기준금리 동결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하 압력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채권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채권전문가는 “한은이 올해 성장률을 2.7%로 유지하고 내년 성장률을 2.9%에서 2.8%로 소폭 낮췄다”며 “경기 둔화 위험이 커지고 가계부채 증가세가 안정되면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 노무라증권은 한국은행이 내년에 0.25%p씩 두 차례 인하해 기준금리를 연 0.75%까지 내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미국이 연내 금리인상을 추진하고 있어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이 추가 금리 인하를 단행하는 데는 부담이 크다. 더구나 현재 기준금리가 연 1.25%여서 0.25~0.5%p 수준인 기존 인하 폭을 감안한다면 아직 시간적 여유는 있다. 또 최근 정부가 가계대출 총량규제에 나서면서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에 이어 신용대출 금리도 줄줄이 인상하고 있다는 점도 마이너스 금리 가능성을 다소 낮추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지난 9월부터 신용대출 금리를 올리고 있다. 지난 6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이후 하락 추세이던 시중금리가 오름세로 반전된 것이다. 신용대출의 경우 16개 시중은행 가운데 11개 은행의 평균 대출금리가 상승했다.
시중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가계대출을 억제하라는 금융당국의 압박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을 과도하게 늘린 은행을 대상으로 특별점검까지 나선 만큼 향후 금리를 더 인상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사실 한국도 실질금리로는 이미 수차례 마이너스 금리시대를 경험했다. 실질금리는 명목이자율에서 물가상승률을 제해서 구하는데 과거 물가상승률이 높은 수준일 때 명목이자율을 넘어선 경우가 수차례 있었다. 정책금리기준으로는 지난 2012년 3분기 이후 약 4년 만에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실질정책금리는 2004년과 2008년 금리인하와 2011년 원자재 가격 폭등에 따른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인해 실질정책금리가 마이너스로 진입했었다. 현재 기준금리는 연 1.25%. 연 1.2% 안팎인 물가상승률을 감안한다면 실질금리로는 사실상 제로 금리 수준이다. 금리 인하가 더 진행되거나 물가가 더 오른다면 실질금리는 마이너스 금리가 된다. 최근의 낮은 물가상승률이 경기침체와 더불어 원자재가격 하락 때문인 것을 감안한다면 국제유가나 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경우 실질정책금리가 마이너스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
▶단기금융상품 구도 변화 포트폴리오 다시 짜야
공모·배당주와 수익형부동산 인기 더 커질 듯
은행에 맡긴 예금이나 노후대비를 위해 가입한 보험금이 갑자기 줄어들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100세대를 대비한 노후준비가 물거품이 되는 셈이다. 현재 EU나 일본이 시행하고 있는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시중은행과 중앙은행 간에 적용되기 때문에 실제 개인들이 체감하지는 못한다. 개인들은 갈수록 낮아지는 예금금리 때문에 초저금리시대만 느낄 뿐이다. 예를 들어 도이치뱅크가 유럽중앙은행(ECB)에 돈을 맡길 때 연 0.4%의 마이너스 예치금 금리가 적용돼 시간이 지날수록 원금은 줄어든다. 하지만 독일인이 도이치뱅크에 돈을 맡기면 연 0.01~0.1% 수준의 이자를 받는다. 하지만 마이너스 금리가 장기화된다면 언제까지 마이너스 금리가 은행 간에만 적용된다는 보장은 없다. 개인들에게도 마이너스 금리를 물릴 가능성이 생긴다는 얘기다. 또 초저금리가 장기화하고 은행 등 금융회사의 수익성이 악화될 경우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개인들의 금융거래 비용 부담이 커져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와 같아질 수도 있다. 미국 등 일부국가는 이미 금융회사의 비용 부담을 현실화해 소액 일반예금구좌에는 관리비용을 부과하고 있다. 투자상품이 아닐 경우 일정금액 이하 소액 예금일 경우 매월 관리비용을 예금에서 떼어간다. 금융상품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실제 일본의 경우 금융회사들이 잇따라 인기 단기금융상품인 MMF(머니마켓펀드)의 운용과 판매를 중단했다. MMF는 단기간 맡기더라도 어느 정도의 수익을 낼 수 있어 국내에서도 투자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상품인 만큼 판매 중단될 경우 투자전략과 포트폴리오 구성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일본 노무라자산운용은 지난 8월 31일 MMF(머니마켓펀드)운용을 종료했다. 마이너스 금리시행 이후 펀드운용이 어려워진 게 운용종료의 배경이다. 종료 당시 MMF금리는 제로가 됐고 3400억엔의 자금이 투자자들에게 반환됐다. 다른 금융회사들도 MMF에서 유출된 자금은 투자위험이 더 낮은 MRF(머니리저브펀드)로 대체되거나 은행 예금으로 이동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마이너스금리 도입 이후 대출자의 저금리상품 갈아타기가 확산됐고 이자율이 높은 인터넷은행과 신용금고의 저금리 정기예금 가입이 증가했다. 투자자들은 배당이 높은 주식에 장기투자를 하는가 하면 부동산펀드 가입자들도 늘었다. 백화점의 고배당 적립포인트도 히트상품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국내에 마이너스 금리시대가 개막될 경우 현재 초저금리 시대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좀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경기상황이 악화될 경우 일본이나 EU의 선례에서 보듯 불안감 때문에 투자와 소비가 늘지 않고 저축이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마이너스 금리시대 최대 인기재테크 상품은 수익형부동산이 될 전망이다. 은행 예금으로는 더 이상 재테크가 불가능한 만큼 월세 수입이 나오는 수익형부동산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 중소형빌딩, 상가, 오피스텔 등에 자금이 몰리면서 투자금액대비 수익률은 다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자율이 낮은 은행의 정기예금 선호도가 크게 떨어지고 예금금리+α의 수익을 낼 수 있는 중위험 금융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펀드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고 저금리시대 히트상품인 공모주펀드와 배당주의 인기가 한층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행
▶마이너스 금리정책 실효성 논란 확산
일본은 지난 1월 29일 마이너스 금리를 선언했다. 지난 1995년 제로금리를 시행한 지 20년 만이다. EU와 일본에 이어 최근 대만까지 마이너스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마이너스 금리정책에 나선 것은 자국의 경기부양을 위한 고육지책이다. 화폐 공급을 확대하는 양적완화로도 경기회복 기미가 없자 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추는 조치까지 취하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는 지난 10월 12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일본은행은 단기금리를 낮추는 방안을 포함한 추가완화책을 시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키안 어보우호세인 JP모간 유럽은행 주식리서치 부문장은 지난 9월 미국 CNBC에 출연해 “마이너스 금리는 2021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EU와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도 불구하고 기대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금리가 하락하면 소비가 촉진되는 게 경제 원리인데 마이너스 금리까지 내렸는데도 소비가 늘기는커녕 오히려 저축이 늘어나는 역설적인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의 가계 가처분소득대비 저축금액은 9.7%로 201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올해는 1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본도 지난 1분기 가계의 현금 및 저축이 전년동기보다 1.3% 늘었다. 비유로존의 마이너스 금리국가인 덴마크·스위스·스웨덴의 가계저축률도 OECD 통계작성이 시작된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기업들은 투자를 하지 않고 위기에 대비해 현금을 늘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일본은행 집계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비금융계 일본기업의 현금저축이 전년동기 대비 8.4% 증가했다.
가계와 기업들이 마이너스 금리인데도 지갑을 닫고 현금에 집착하는 이유는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저금리에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등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자 뭔가 잘못됐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개인과 기업들이 소비와 투자를 늘리지 못하고 오히려 저축을 하거나 현금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더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도 불구하고 목표로 삼았던 디플레이션 탈출은 오히려 멀어지고 있으며 엔화값만 올려놓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기회복 효과는 가시화되지 않은 채 은행 보험 등 금융회사들은 마이너스 금리에 직격탄을 맞아 휘청대고 있다.
일본 5개 대형은행은 지난 2분기 순이익이 전년동기보다 26.7% 감소했다.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시행한지 반년 만에 수익성이 급속히 악화된 것이다. 은행들은 생존전략 수립에 나섰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대한 비용을 줄이고 조직을 슬림화해서 살아남겠다는 전략으로 인건비 절감을 위해 핀테크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일본 보험사들도 수익성 악화에 허덕이고 있다. 메트라이프생명 일본법인이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등 구조조정을 검토하는 보험사들도 적지 않다. 일본 생명보험업에서 희망퇴직은 드문 일이다. 보험사들은 보험 판매를 중단하거나 보험료를 올려서 대응하고 있다. 스미토모생명은 지난 3월 일시불 종신보험료를 인상했고, 일본보험은 4월부터 은행창구를 통한 일시불 종신보험 판매를 중단했다.
네기시 아키오 일본 생명보험협회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장기금리가 하락하면 저축성 보험 판매를 중단할 수 밖에 없다”며 마이너스 금리 등 추가금융완화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주문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마이너스 금리정책 도입은 금리하락과 통화약세를 가져오지만 실물경제 개선효과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 등 정책효과가 불분명하다”고 평가했다. 또 “주요국의 마이너스 금리정책이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통해 수출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국한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달러강세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어 정책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소는 또 “우리나라는 독자적으로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펼치기 어렵지만 무역의존도가 높아 다른 나라의 마이너스 금리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대응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