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이재명 정부도 1기 신도시 ‘재건축 속도전’을 지원하고 나설 방침이다. 1기 신도시는 1980년대 후반 개발된 경기 성남시 분당, 안양시 평촌, 군포시 산본, 고양시 일산, 부천시 중동 총 5곳을 일컫는다.
정부는 지난해 1기 신도시별로 재건축을 가장 먼저 추진할 선도지구를 뽑았다. 하지만 1년 여가 지난 현재 재건축 추진 속도는 제각각인 상황이다. 분당과 평촌은 재건축 계획을 빠르게 수립하며 속도를 올리고 있다. 반면 일산과 중동은 상대적으로 추진이 더뎌 지역별 뚜렷한 온도차를 보인다.
우선 재건축 속도가 가장 빠른 1기 신도시는 단연 분당이다. 분당 선도 지구 중에선 시범단지 우성·현대와 장안타운건영3차 아파트의 재건축 속도가 1위다. 주민들은 흔히 3개 단지를 합해 ‘더 시범 통합구역’으로 부른다. 한국자산신탁은 지난 7월 더 시범 통합구역에 대한 특별정비계획 초안을 마련해 성남시에 자문 신청을 넣었다. 앞서 한국자산신탁은 지난 6월 이 단지들의 통합 재건축을 이끄는 예비사업시행자로 선정된 바 있다. 신탁방식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는 셈이다.
계획안 초안에는 더 시범 통합구역을 최고 49층, 6000가구 안팎으로 재건축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 3개 단지 가구 수(3713가구)보다 약 60% 늘어나는 셈이다. 더 시범 통합구역은 재건축 사업성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 중 하나인 용적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용적률은 대지면적 대비 건축물 면적의 비율로 공간의 밀도를 나타낸다. 현황 용적률이 시범우성 191%, 시범현대 194%, 장안타운건영3차 97% 수준이다. 한국자산신탁은 재건축 이후 용적률을 350% 안팎으로 적용했다.
물론 아직은 초안이 나온 것일 뿐이라 향후 성남시 자문 과정에서 용적률이나 가구 수는 조정될 수 있다. 현재 1기 신도시 관할 지방자치단체들은 자문위원회를 속속 만든 상태다.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재심의 결정이 내려지면 다시 심의를 받기까지 수개월이 소요된다. 이를 막기 위해 사전에 자문위가 나서 조언하고 최대한 한 번에 심의가 통과되도록 조율한다.
아울러 학교 이전 문제가 발목을 잡지 않게 분당초와 서현중도 그대로 존치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짰다. 대상지 재건축 큰 그림은 서울 서초구 반포 대장 단지인 래미안 원베일리와 아크로리버파크 설계를 맡은 ANU건축이 그렸다. 연내 정비계획수립과 정비구역 지정이 목표다.
인근 공인중개소 대표는 “시범단지는 다른 구역에 비해 소형 평형이 적고 대지 지분이 17~20평으로 높은 편”이라며 “단지별 입지도 비슷해 빠르게 가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빠른 재건축 기대감에 6·27 대출 규제 직전까진 시범우성·현대 아파트에선 평형별로 신고가가 속출하기도 했다. 지난 6월 시범현대 전용면적 84㎡는 18억원, 전용 129㎡는 21억 7000만원에 각각 최고가를 경신했다. 같은 달 시범우성 전용면적 84㎡도 19억원에 팔리며 신고가를 찍었다.
다른 분당 1차 선도지구들도 재건축 사업을 이끌 예비사업시행자 지정은 모두 마친 상태다. 이재명 대통령이 소유한 단지로 유명한 양지마을은 한국토지신탁과 손을 잡았다. 양지마을에선 1단지 금호, 2단지 청구, 3·5단지 금호한양, 5단지 한양, 6단지 금호청구·한양 아파트가 통합재건축을 추진한다. 현재 가구 수만 4392가구에 달한다.
2843가구 규모인 분당 샛별마을(동성·라이프·우방·삼부·현대)도 하나자산신탁을 예비사업시행자로 지정 완료했다. 연립주택 단지가 모인 목련마을은 공공방식 재건축을 추진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예비사업시행자로 지정하면서다. LH가 마련한 정비계획 입안 예정안에는 목련마을을 기존 1107가구에서 2226가구로 탈바꿈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다만 변수는 높은 공공기여다. 분당 1차 선도지구 지정 단지들은 지난해 선도지구로 뽑히기 위해 성남시의 여러 공공기여 요구에 응한 바 있다. 대지면적의 5%가량을 금전으로 납부하는 등이다. 주민들은 장수명 주택 최우수 등급 시공, 전체 가구 수의 12%를 이주주택으로 제공 등의 항목에도 동의했다.
그러나 공사비가 연일 오르는 상황이다. 이대로 재건축이 추진되면 가구 당 분담금 부담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많다. 1차 선도지구 주민들은 이에 성남시에 공공기여금 축소 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을 고심하고 있고 내년에 지방선거도 있어 관련 요구가 어느 정도 반영될지 주목된다.
분당 못지않게 재건축 속도가 빠른 1기 신도시는 평촌이다. 지난해 평촌에선 통합 재건축을 추진하는 총 3개 구역이 재건축 1차 선도지구로 지정된 바 있다. ▲꿈마을 금호·한신·라이프·현대(이하 꿈마을 금호) ▲꿈마을 우성·건영5·동아·건영3(이하 꿈마을 우성) ▲샘마을 임광·우방·쌍용·대우·한양(이하 샘마을) 단지들이 그 주인공이다.
평촌에선 꿈마을 금호가 가장 먼저 재건축 정비계획 초안을 마련했다. 이곳은 하나자산신탁이 예비사업시행자로 지정된 상황이다. 하나자산신탁은 1750가구 규모인 꿈마을 금호를 최고 49층, 약 3000가구 규모로 재건축하는 방안을 안양시와 논의 중이다. 논의 과정에서 가구 수와 용적률 계획은 변동될 수도 있다.
꿈마을 우성은 한국자산신탁과 함께 재건축을 추진한다. 한국자산신탁은 꿈마을 우성을 최고 45층, 18개 동, 2375가구 규모로 재건축하는 정비계획 초안을 만들었다. 현재 1376가구인 대상지가 재건축을 통해 거의 1000가구가량 늘어나는 셈이다. 평촌 샘마을은 14일 기준 아직 재건축 사업을 이끌 예비사업시행자 지정 절차를 밟는 중이다.
평촌도 경기권 최대 규모의 학원가가 자리잡고 있어 주거 선호도가 높은 곳이다. 분당과 비슷하게 평촌 역시 재건축 기대감에 6·27 대출규제 직전까진 집값이 상승세를 보였다. 평촌 꿈마을 금호 전용면적 133㎡(13층)가 지난 6월 16억 9000만원에 중개 거래되며 신고가를 찍은게 대표적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R114는 1기 신도시 선도지구 발표 이후인 작년 11월부터 올해 6월 중순까지 6개월 동안 경기 평촌(2.7%)과 분당(2.6%)의 매매가격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난달 발표하기도 했다. 반면 해당 조사에 따르면 같은 기간 일산과 산본 집값은 1.4%, 중동은 0.2% 각각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부동산R114는 “분당과 평촌은 뛰어난 입지 경쟁력과 사업 기대감으로 꾸준히 오름세를 보인다”면서도 “일산·중동·산본은 상대적으로 재건축 기대감이 낮고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약세를 나타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일산·중동·산본은 분당·평촌 대비해선 재건축 속도가 느린 편이다. 그나마 군포 산본신도시는 아예 공공방식 재건축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LH는 지난 8일 산본 선도지구 2곳 주민대표단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선도지구 2곳은 ▲자이백합·삼성장미·산본주공11단지(이하 자이백합)와 ▲한양백두·동성백두·극동백두(이하 한양백두)다.
LH는 자이백합 구역은 기존 2758가구에서 3800가구로, 한양백두 구역은 기존 1862가구에서 2940가구로 각각 재건축하는 정비계획 입안 예정안을 마련했다. LH는 향후 사업 추진 과정에서 특별정비계획 수립 및 각종 인허가와 같은 행정 지원에 나선다. 초기 사업비 지원 등 정비사업 전반에 걸쳐 조력자 역할을 수행하겠단 입장이다.
강오순 LH 지역균형본부장은 “정비사업에 대한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 등을 기반으로 주민들의 목소리를 최우선으로 해 안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갈 것”이라며 “통합 정비사업의 성공적인 선도 모델을 마련해 수도권 내양질의 주택 공급 확대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산과 중동에선 아직 사업
방식을 확정 짓지 못한 선도지구도 있다. 일산 정발마을과 중동 반달마을 등이다. 나머지 선도지구들도 예비사업시행자 지정을 이제 막 마치고 재건축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다. 일산 후곡마을(3·4·10·15단지)과 강촌마을(3·5·7·8단지), 중동 은하마을은 한국토지신탁과 협업하기로 했다.
일산 백송마을(1·2·3·5단지)은 조합 방식 재건축을 추진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이들 단지 가운데 지자체 자문위원회에 정비계획을 입안 제안하거나 자문 신청한 곳은 없는 실정이다. 분당과 평촌 선도지구가 속도를 내는 것과는 대조된다. 속도가 느린 만큼 시세도 주춤하다. 일산 강촌마을 7단지 전용 84㎡는 지난 6월 4억 6000만원에 거래됐다. 이는 2021년 9월 전고점 거래(6억 3200만원)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중동 선도지구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중동 선도지구는 현황 용적률이 최대 222%로 높아 재건축 사업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란 평가도 나온다. 이처럼 분당을 제외한 지역의 사업이 지지부진함에 따라 일각에선 해당 지역에 정부가 추가로 용적률 완화나 공공기여금 축소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조만간 1기 신도시 2차 선도지구 선정 방식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계획이다. 1기 신도시에서 두 번째로 재건축에 돌입할 2차 지구의 정비 예정 물량은 약 2만 6400가구다. 앞서 정부는 1기 신도시 1차 선도지구는 공모 방식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2차 선도지구는 일반 재건축·재개발과 마찬가지로 각 단지가 정비계획 수립안을 지자체에 제출하면 순서대로 지정하는 ‘입안 제안’ 방식이 유력하다.
2차 선도지구 선정이 임박하며 분당에선 노후 단지의 집값이 들썩이는 상황이다. 일례로 분당 상록마을 우성1차 전용면적 84㎡(9층)는 7월 22일 20억 7500만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기록했다. 분당 느티마을 3단지 전용면적 67㎡(4층)도 같은달 19억 2000만원에 최고가 거래됐다.
다만 장기적인 변수는 이주 대책이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가 이주 수요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재건축 선도지구를 무리하게 지정할 경우 전월세 시장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정비사업 대출보증제도 등을 활용해 이주 수요를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허용 정비물량 제도를 활용해 이주 수요 분산 방안도 고민한다.
[이희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