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밤은 너무 어둡다. 해가 지면 사람 발길이 뚝 끊기고, 상점 불빛은 일찌감치 꺼진다. 적막한 거리, 텅 빈 광장은 지방경제의 민낯이다. 외신에서조차 “빠르게 늙어가는 사회, 소멸해 가는 경제”라고 진단할 정도다. 전남 고흥, 경북 의성 같은 군 단위 지역에서는 청년이 떠나고 빈집이 늘면서 문닫은 가게도 적잖다. 세수는 줄고, 남는 건 고령자뿐이다. 낮에도 생기를 잃은 곳은 밤이 되면 더 깊은 침묵에 빠진다. 이런 곳에서 젊은 세대가 꿈을 키우긴 불가능에 가깝다. 유럽과 중국의 지방 도시들은 반대다. 밤을 경제의 새 무대로 삼았다. 이른바 야간경제(Night-time Economy)다. 공연·문화·관광·외식을 밤에 집중시켜 소비를 늘리고 일자리를 창출한다. 낮 중심 경제의 한계를 넘어선 전략이다. 생활패턴이 바뀐 시대에 야간경제가 지방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고 있다.
영국 브리스톨만 봐도 확연하다. 한때 쇠락한 항구도시였지만 야간경제로 도시가 완전히 바뀌었다. 구도심의 오래된 창고를 라이브클럽·갤러리로 개조하고, 심야 푸드마켓과 야간 축제를 열면서다. 음악·예술·미식을 하나로 묶은 ‘브리스톨 나이트타임 플랜’은 젊은 창작자와 관광객을 함께 끌어들였다.
맨체스터도 마찬가지다. 야간경제를 통해 산업도시 이미지를 벗고 문화도시로 변신했다. 노던쿼터(Northern Quarter) 지역을 독립음악 클럽, 수제 맥주, 심야 예술 공간으로 채우자 ‘살고 싶은 도시’ 순위에서 런던을 제쳤다. 밤이 도시 경쟁력의 핵심이 된 것.
중국은 지방정부 주도로 더 과감히 나섰다. 칭다오는 ‘맥주의 도시’라는 브랜드를 살려 야간경제를 키웠다. 옛 건축물과 현대적 해변 리조트를 연결하는 ‘비어스트리트’를 조성해 밤마다 맥주 축제를 연다. 거기에다 야간 크루즈를 운영해 관광객을 붙잡는다. 텐진은 유럽풍 건축물이 남아 있는 우다다오(五大道)에 야간 카페·재즈바·갤러리를 집중시켰다. 역사 투어와 엔터테인먼트를 엮은 ‘텐진 나이트워크’로 야간 관광객을 200% 이상 늘렸다.
충칭은 화려한 조명, 강변 야시장, 케이블카 관광을 결합해 ‘불야성 도시’로 자리잡았다. 그 결과 야간 소비가 하루 소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일자리와 관광을 동시에 살려냈다.
우리의 지방은 어떤가. 여전히 낮에 머물러 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거리는 황량하다. 축제 조차 낮에 몰려 방문객을 오래 잡아두지 못한다. 젊은 층은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남은 상권마저 저녁이면 불이 꺼진다. ‘밤이 없는 도시’가 ‘내일이 없는 도시’가 되는 현실이다. 지방을 살리려면 이젠 야간경제를 전략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지역 특산물과 연계한 심야 푸드페스티벌, 전통과 현대를 결합한 야간 공연·전시, 청년 창업과 연결한 야시장도 해볼 만하다. 교통과 치안이 뒷받침된다면 밤은 지방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을 게다.
[장종회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