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0일 기준 가상자산 시장은 눈에 띄는 조정을 겪고 있다. 비트코인은 같은 달 중순 12만달러를 넘긴 뒤 11만달러대 중반으로 주저앉았고, 이더리움 역시 고점을 찍은 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단기 하락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가 약화하며 달러가 강세로 전환된 데다, 약 10억달러 규모의 파생상품 포지션 청산이 대거 발생하면서 투자 심리가 크게 흔들렸다. 여기에 일부 거래일 기준으로 현물 ETF에서 순 유출이 관측되면서 단기 수급 불안이 가중됐다.
하지만 이 같은 흐름을 ‘상승장의 종료’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구조적으로 보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모두 여전히 ETF라는 제도권 자금 유입 창구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 규제 환경 또한 ‘억제’ 보다는 ‘관리된 수용’ 쪽으로 선회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경제 전문 매체 바론스는 “금리 인하 기대 약화와 함께 정부가 비트코인 보유를 확대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시장이 단기적으로 식은 것”이라며, 기술적 조정 이상은 아니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현물 비트코인 ETF는 2024년 초 상장이 승인된 이후, 올해 들어서만 수십억달러의 자금을 끌어모으며 시장을 견인해왔다. 이 ETF의 가장 큰 특징은 ‘가격과 무관한 기계적 수급’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펀드 구조상 창·환매가 상시 가능하기 때문에, 기관 자금이 시장 가격의 단기 등락과 무관하게 일정한 흐름으로 유입된다. 실제로 8월 초에는 일부 일자에 수억달러대의 순 유출이 관측되었지만, 곧바로 며칠 뒤 다시 순 유입이 재개되는 등, ETF 수급은 일종의 ‘호흡’을 하며 움직이고 있다.
가장 큰 수혜자는 블랙록의 IBIT다. 이 ETF는 8월 19일 기준 약 847억달러의 순자산을 기록하며 업계 최상위를 지키고 있다. ETF 운용 메커니즘도 더욱 정교해졌다. 7월 말 SEC는 인카인드(in-kind) 방식의 창·환매를 허용하면서, 펀드 운용사들이 현물 비트코인을 직접 주고받는 구조를 쓸 수 있게 했다. 이는 운용 효율을 높이고, 펀드 내 가격 괴리율을 줄이는 효과를 낳는다. ETF라는 수로가 단기 조정에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구조적 수급의 중심이 된 셈이다.
이더리움 역시 ETF 상장을 통해 기관 수요의 문을 열었다. 상장 직후 하루 만에 10억달러가 넘는 거래대금과 1억달러 이상의 순 유입이 발생했고, 8월 중순까지는 여러 차례 3억~7억달러 수준의 추가 유입이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비트코인보다 다소 민감한 흐름을 보인다. 예컨대 8월 18일과 19일 양일간 각각 약 2억달러 수준의 순 유출이 기록되며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더리움 ETF가 지닌 고유의 과제가 여기에 있다. 단순 보유 상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네트워크 검증에 참여할 수 있는 ‘스테이킹 허용 여부’가 다음 단계로 부상하고 있다. 만약 ETF가 보유한 ETH 물량을 네트워크에 위임해 추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장기 투자자 입장에서는 ETF의 투자 매력이 한 층 높아질 수 있다. 실제로 비트와이즈와 피델리티 등 일부 발행사는 관련 제도 정비를 SEC에 요청한 상태다. 다만 여전히 남아 있는 커스터디·과세 이슈 등은 조심스러운 접근을 요구한다. 블룸버그는 “현물 이더 ETF들이 하루 새 10억달러가 넘는 자금을 끌어들이며, 이더리움에 대한 기관 수요가 실체화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이더리움은 이제 가격보다 제도 설계가 투자 흐름을 좌우하는 자산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시장의 시선은 솔라나로 향하고 있다. 솔라나 현물 ETF는 현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심사 중이며, 최종 심사 기한은 오는 10월 중순으로 알려져 있다. SEC는 지난 8월 초, 마지막 연장 권한을 행사하며 ‘결정 시점’을 예고했고, 이에 따라 10월 16일 전후가 사실상 승인 여부를 판가름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 ETF의 핵심 쟁점은 ‘승인 여부’ 자체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조건으로 승인되느냐’다. 예를 들어, 펀드가 인카인드 방식의 창·환매를 허용받는지, 기초 시장의 거래 투명성이 어떻게 평가되는지, SEC가 요구하는 시장감시 협정은 어느 수준까지 미치는지 등이 모두 초기 유동성과 ETF 프리미엄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초기 상장 사례에서도 반복된 구조적 쟁점이다.
8월의 흔들림은 ETF 자금이 호흡을 고르고 재배치되는 과정에 가깝다는 것이 중론이다. 비트코인에서는 인카인드 도입과 규제의 방향성 덕분에 ‘기계적 수요’의 바닥 물길이 유지되고, 이더리움은 네트워크 변수에 민감하지만 제도화된 파이프라인이 빠르게 두꺼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최근 시장 조정을 두고 “솔라나는 10월의 ‘조건 싸움’을 통과하면 다변화된 ETF 바스켓을 통해 자금 유입 루트를 넓힐 수 있다”라며 “시장이 금리환경과 제도 변화 등 뉴스와 데이터에 단기적으로 흔들리겠지만 ETF 체제와 정책 환경이라는 구조적 축은 지난 한 달 사이 오히려 더 견고해졌다”라고 평가했다.
가상자산 시장의 최근 조정은 ETF 기반 자금 흐름의 재조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암호화폐 업계 한 전문가는 “단기 변동성은 불가피하지만, ETF라는 제도권 통로는 여전히 뚜렷한 방향성을 유지하고 있다”라며 “정책 환경과 제도 설계가 교차하는 지금, 가상자산은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궤도 위에 올라섰다”라고 평가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0호 (2025년 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