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제도 전쟁은 ‘속도’가 아니라 ‘신뢰’에서 결론이 난다. 한국의 2단계 입법으로 논의되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은 그 신뢰를 시장에 강제하는 설계도다. 이유진 젝토(ZEKTO) 대표는 이번 백서(기본법 논의) 흐름을 두고 “투기판을 제도권 디지털 금융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사전 예방 규율”이라고 규정했다. 핵심은 ‘공시’와 ‘전산 사고’다. 거래소·수탁 인가제, 부수업무 등록제의 이원화가 현실이 되면 업권 경계에서 생길 사각지대까지, 시장은 이제 기술과 규제의 교차점에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이 대표는 2024년 7월 시행된 1단계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을 “최소한의 방어막”으로 표현했다. “고객 예치금을 은행에 분리 보관하고 시세조종을 처벌하는, 일종의 사후 처방”이었다는 설명이다. 반면 2단계로 논의 중인 디지털자산기본법은 “문제가 터지기 전에 부실 요인을 원천적으로 걸러내는 사전 예방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봤다.
그가 꼽은 ‘가장 묵직한 쐐기’는 두 가지다. 첫째는 발행인의 백서 공시 의무화, 둘째는 사업자의 전산 사고 무과실 배상 책임이다. 그는 “그동안 코인 백서는 프로젝트의 장밋빛 청사진을 적어둔 마케팅 브로슈어처럼 여겨졌던 게 사실”이라며 “이번 입법을 통해 자본 시장의 증권신고서 수준으로 위상이 격상된다”고 말했다. 특히 백서에 적힌 유통량 계획이나 기술적 약속이 온체인 데이터와 어긋날 경우, 발행인뿐 아니라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거래소까지 연대 책임을 지게 되는 무거운 규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업계의 대형 오지급 사고를 두고도 그는 “단순한 시스템 한계가 아니라 내부통제와 더블체크 체계의 붕괴가 부른 참사”라고 선을 그었다. “이제는 사고가 나면 고객이 피해를 입증하는 시대가 끝나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백서의 약속을 코드로 정확히 구현하고, 애초에 시스템 에러가 발생하지 않도록 기술적 무결성을 증명해 내는 기업만 살아남는다”는 말은, 법제화가 결국 ‘기술 경쟁의 기준선’을 바꾼다는 의미로 읽힌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이 거래소·수탁은 인가, 부수업무는 등록으로 이원화될 경우 가장 큰 혼선은 어디서 생길까. 이 대표는 망설임 없이 “업권 경계선상에서의 자산 이동”을 지목했다. 인가를 받은 대형 거래소나 수탁사는 자본금·보안·내부통제 까지 “은행 수준의 관리”를 받게 되지만, 등록제로 운영되는 지갑 서비스나 디파이 플랫폼은 규제 허들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용자의 자산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제도권 인프라와 상대적으로 규제가 유연한 외부 플랫폼 사이를 매일같이 오간다”는 데 있다. 그는 “이 이동 과정에서 자금 세탁 이슈가 불거지거나 전산 사고라도 나면 책임을 누구에게 어디까지 물어야 할지가 모호해진다”고 했다. 규제 차익이 생기는 순간, 사각지대는 자연스럽게 ‘위험의 통로’가 된다.
이 대표는 해법으로 “온체인 데이터 기준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방식”을 언급했다. 대규모 출금 구간에서 자체 보관 증명이나 추적 가능한 데이터 요건을 강화해, 사고나 불법자금 문제가 터졌을 때 책임 경로가 끊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다. 결국 이원화는 ‘규제를 줄이는 제도’가 아니라, 경계선을 설계하지 못하면 ‘분쟁을 키우는 제도’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내부통제·전산 안정성·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강화되면 시장은 어떻게 바뀔까. 이 대표는 업계의 긴장감을 인정하면서도, 결론을 “무더기 퇴출”로 단정하지 않았다. 그는 “100% 무과실 책임을 감당하기 위한 물리적 IT 통제망은 엄청난 고정 비용을 수반한다”라며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향후 구조 변화를 “역할 분업화와 인프라 표준화 과정”으로 봤다. 전통 금융이 인터넷뱅킹을 도입하던 시기, 대형 금융사가 보안·코어 시스템을 모두 자체 개발하지 않고 전문 IT 기업과 협력하며 표준을 만든 것처럼, 가상자산 시장도 “규제 기준에 맞춰 모듈화된 인프라 제공 기업”을 찾는 흐름이 강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거대 플랫폼이나 전통 금융사는 온체인·오프체인 데이터를 실시간 대조하는 시스템을 직접 구축하는 데 막대한 기회비용을 쓰기 어렵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백서 공시 의무가 도입될 때 ‘공시의 표준’이 어디까지 구체화돼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그의 답은 일관됐다. “모호한 계획을 구체적인 데이터와 코드로 정량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트너십을 추진하겠다’ 같은 문구는 책임 회피로 남고, 유통량 계획도 선언이 아니라 “실제 블록체인 작동 코드와 백서 기재 내용이 100% 일치”해야 분쟁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고 했다. 불공정거래 처벌 강화 역시 “잡아낼 시스템 능력이 없으면 시장은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고빈도·24시간·파편화된 유동성을 감시할 데이터·자동화 인프라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후반부에서 이 대표는 젝토의 전략을 ‘규제 강화의 역설’로 설명했다. 규제가 촘촘해질수록 레거시 결제 플랫폼은 B2C 경쟁에 집중하고, 온체인 대사나 세무·정산 컴플라이언스 같은 복잡한 백엔드는 “아웃소싱 수요가 커진다”는 주장이다.
그는 “제도권 세무·회계 기준에 부합하도록 설계된 시스템 개발을 이미 마쳤고, 실증사업(PoC)으로 현장 검증까지 완료했다”며 “지금이 오히려 그간의 고민이 궤도에 오르는 성장의 최적기”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증명해야 할 UX’는 결제 버튼이 아니다. “프론트엔드는 이제 놀라운 기술이 아니다”라며, “핵심은 결제 이후의 백엔드—환불, 환율 정산, 가맹점 세무·회계 처리—가 카드망처럼 매끄럽게 돌아가는지”라고 했다. 그는 베트남 실증사업을 사례로 들며 “다중 자산의 부분 취소”나 “즉각 환불” 같은 난제를 풀었다고 주장했다.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는 스테이블코인 인가제와 100% 준비자산이 도입될 경우 “절대적인 안전성 확보가 일상 결제 편의성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둘러싼 논쟁에서는 한국은행의 ‘은행 51% 컨소시엄’ 구상에 “테라·루나 재발 방지라는 책임감은 존중한다”면서도, 발행 주체보다 중요한 건 “실물자산 담보 없는 알고리즘 구조의 결함”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글로벌 스탠더드에서는 100% 안전자산 신탁과 외부 회계감사를 철저히 지킨다면 비금융 핀테크에도 혁신의 문을 열어둔다”고 말하며, 한국도 은행이 준비금 신뢰를 받쳐주고 웹3 기업이 유통·UI/UX 혁신을 맡는 개방형 합작 모델을 제안했다.
향후 12개월 로드맵에서 그는 ‘측정 가능한 KPI 3개’를 약속했다. 첫째, 상용 환경에서도 장부상 오차를 최소화한 수치를 “지속적으로 투명하게 리포팅”하겠다는 것. 둘째, 국내 PG·VAN과의 인프라 연동을 12개월 내 마무리해 “일상 결제망에서 작동함을 증명”하겠다는 것. 셋째, 법 전면 시행을 기다리지 않고 “외부 회계 법인 감사와 공시 체계를 선제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유진 대표는 “데이터의 축적과 투명한 공개만이 유저와 가맹점이 인프라를 신뢰하고 자산을 맡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보호 장치”라고 강조했다.
[박지훈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6호 (2026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