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차를 즐기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티백 속 미세플라스틱’ 문제가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녹차, 홍차, 허브차 등 다양한 티백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일부 연구 결과에서 티백으로 차를 우릴 때 수십억 개 이상의 미세플라스틱이 방출된다는 사실이 잇따라 발표돼 많은 이들의 이목이 쏠렸다.
전문가들은 티백의 제조 소재를 꼼꼼히 확인하고, 미세플라스틱 섭취를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티백 사용 시 미세플라스틱이 대거 배출된다는 문제 제기는 이미 지난해부터 제기됐다. 지난해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폴리프로필렌(Polypropylene) 소재로 만든 티백은 차를 한 잔(약 100mL) 우리는 과정에서 ㎖당 약 12억 개의 미세플라스틱이 방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단순 계산하면, 차 한 잔당 최대 1200억 개 이상의 미세플라스틱 입자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미세플라스틱(Microplastic)’은 크기가 5㎜ 이하인 플라스틱 조각을 통칭하며, 그중에서도 1000분의 1㎜ 이하인 ‘나노플라스틱(Nanoplastic)’은 세포핵까지 침투할 수 있을 정도로 작아 인체 유해성 논란이 크다. 문제는 이런 미세·나노플라스틱이 식품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호흡기·피부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체내로 유입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티백에서 이러한 위험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종이, 혹은 식물성 소재로 만들어진 티백은 미세플라스틱 방출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셀룰로스(Cellulose) 티백의 경우, 평균 입자 크기가 244㎚ 수준으로, ㎖당 1억 개 안팎의 미세플라스틱만이 검출됐다. 이는 폴리프로필렌 티백과 비교하면 크게 낮은 수치지만, ‘아주 안전하다’ 라고 단언하기에는 여전히 경계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나일론(폴리아미드) 소재의 티백에서도 ㎖당 약 818만 개에 달하는 미세플라스틱이 방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대부분의 플라스틱 계열 소재가 뜨거운 물에 잠기며 어느 정도의 미세플라스틱을 배출하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소비자가 티백을 구매할 때, 제품 포장지에 재료가 명확히 표기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얼마나 안전한 티백을 사용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미세플라스틱 섭취를 줄이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먼저, 찻잎을 그대로 우려 마시는 ‘잎차(루스티)’ 형태를 활용하면 티백 사용으로 인한 미세플라스틱 노출을 아예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티백의 간편성과 휴대성을 포기하기 어렵다면, 티백을 미리 흐르는 물에 한 번 헹구는 방법도 있다.
다만, 이 경우 차 특유의 풍미가 희석돼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는 단점이 뒤따른다. 또한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흔히 하는 행동인 ‘찻잔에 티백을 넣은 채로 전자레인지나 뜨거운 물로 데우기’ 혹은 ‘티백을 계속 넣어둔 상태에서 끓는 물을 반복해서 부어 우려내기’는 미세플라스틱 방출량을 더욱 늘릴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의 암 발병률 증가와 미세플라스틱의 상관관계를 시사하는 연구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UCSF)연구진이 미세플라스틱이 불임, 대장암, 폐암 등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연구 결과를 미국화학회 학술지인 ‘환경과학과 기술(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에 게재했다.
이들은 3000건 이상의 선행 연구를 검토한 끝에, 미세플라스틱이 남성 정자 품질이나 고환 건강뿐 아니라 여성 난소·태반 발달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러한 결과가 사실일 경우, 인체의 면역 체계를 약화하고 생식 능력마저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파급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나노플라스틱 수준으로 크기가 작아진 입자는 장(腸)세포뿐 아니라 혈류를 타고 전신으로 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도 이어지면서, 장기적·만성적 노출에 따른 위험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국제기관들의 전망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매년 4억 6000만 톤 이상의 플라스틱이 생산되고 있으며, 2050년까지 이 수치는 11억 톤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인의 경우 연간 평균 3만 9000개에서 최대 5만 2000개의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한다는 추산이 있다. 이는 식품에 함유된 미세플라스틱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플라스틱 분진’을 호흡으로 들이마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의류, 장난감, 담배 필터, 타이어, 각종 포장재 등 일상생활에 흔히 쓰이는 플라스틱 소비재는 사용·마모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플라스틱 입자를 대기 중에 퍼뜨린다. 이에 따라 식생활뿐 아니라 우리의 호흡기와 생활환경 전반에 걸쳐 미세플라스틱이 만연하게 존재한다는 것이 여러 연구진이 공통으로 내놓은 결론이다.
소비자가 직접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실천 방법은 차를 고를 때 티백의 소재 정보를 꼼꼼히 살펴보고, 가능하면 안전성이 상대적으로 입증된 종이·식물성 티백 혹은 잎차를 선택하는 것이다.
또한 티백을 사용하면 단시간에 우려내고, 반복해서 과도하게 뜨거운 물을 붓거나 높은 온도에서 티백을 장시간 두는 등의 습관을 줄이는 것이 좋다. 티백을 물에 가볍게 헹구거나, 차를 마신 후 티백을 빠르게 제거하는 등의 작은 행동만으로도 잠재적인 미세플라스틱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세계 각국의 환경 규제와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를 계기로, 식음료 산업에서 티백부터 각종 포장재 전반에 걸친 대체 소재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앞으로의 산업 전망 역시 ‘안전’과 ‘친환경’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