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웹툰 산업의 총 매출이 2023년 기준 2조원을 넘어서면서 K-컬처를 이끄는 이끄는 주요 콘텐츠 산업으로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다.
‘무빙’ ‘나 혼자만 레벨업’ ‘중증외상센터’ 등 인기 웹툰 IP(지식재산권)을 드라마나 영화, 애니메이션으로 재창작해 글로벌에서 인기를 얻는 경우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웹툰 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웹툰 산업의 총 매출액은 2조 1890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매출액 2조원을 돌파했다. 다만 성장의 속도는 느려지고 있다. 매년 50% 내외로 고공 상승했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대비 성장폭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나 숏폼 플랫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간 경쟁도 격화되는 추세다.
웹툰 산업이 현재 엔데믹 이후 고성장 시기를 지나 성숙기로 진입한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웹툰 역사가 긴 한국 시장에서는 더 이상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에서, 네이버와 카카오 등 주요 플랫폼들은 글로벌 시장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한국의 웹툰 산업을 이끄는 것은 네이버와 카카오 두 플랫폼이다. 두 기업의 지난해 실적을 보면 이러한 성장 둔화를 확인할 수 있다.
네이버웹툰의 미국 본사인 웹툰 엔터테인먼트의 2024년 실적을 보면 연간 매출 13억 5000만달러(약 1조 8402억원·연 평균환율 1363.09원 기준), 영업손실 1억 69만 9000달러(약 1373억원)를 기록했다.
매출은 2023년 대비 5.1% 성장했으나 영업손실폭은 확대됐다. 또한 시장별로 보면 일본 시장이 2023년 대비 16.3% 성장하며 6억 4820만달러(약 8836억원)의 매출을 거두며 선방했지만 한국 시장은 연간 매출이 8% 감소했다. 국내에서 월 이용자 지표와 유료 사용자 지표가 모두 하락한 탓이다.
카카오의 경우 일본 웹툰 서비스 ‘픽코마’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를 합친 콘텐츠 사업 연간 매출이 6% 하락한 8640억원을 기록했다. ‘지금거신 전화는’ ‘조명가게’와 같이 웹툰 IP를 영상화한 작품들이 등장했지만 트래픽 반등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웹툰 서비스는 웹툰 플랫폼뿐만 아니라 유튜브 등의 서비스와 여가 시간을 놓고 경쟁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유튜브의 ‘쇼츠’나 인스타그램의 ‘릴스’ 등 전 세계적으로 숏폼 영상의 인기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해당 플랫폼들의 이용 시간은 증가하는 추세다.
이용자들의 한정된 여가 시간 중에 다른 플랫폼 이용이 늘 경우 웹툰 서비스 이용률은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웹툰 플랫폼들의 매출이 정체된 영향인지, 지난해 국내 플랫폼에서 유통된 웹툰 등록 작품 수도 전년 대비 감소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발간한 ‘2024년 만화·웹툰 유통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등록된 전체 웹툰 작품 수는 총 1만 8792개로 집계됐다. 2만 141개였던 2023년 대비 6.7% 줄어든 것이다.
또한 플랫폼에 새롭게 등록된 웹툰 신작도 2023년 1만 7245개에서 2024년 1만 4923개로 14.6% 급감했다. 지난해에는 우아한형제들이 운영하며 56개의 작품을 유통했던 중소 플랫폼 만화경이 문을 닫기도 했다.
다만 네이버웹툰 유통작은 353개에서 424개로 20.1% 늘었으며 네이버시리즈의 경우 2304개에서 2775개로 20.4% 증가하는 등 플랫폼마다 지난해 유통 작품 수 증감의 차이는 존재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통수만을 기준으로 시장 전체의 성장성이 꺾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라며 “작품의 유통수는 시장 상황뿐만 아니라 플랫폼의 IP 운영 정책 등 다양한 요소를 기반으로 매해 유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웹툰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은 장르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서 콘텐츠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판타지 장르의 경우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는 ‘회귀물’ 형식이 수년간 인기를 끌었고, 보이즈 러브(BL) 장르 등 충성 독자층이 확고한 장르를 타깃하는 경우가 늘면서다. 실제로 지난해 등록된 웹툰 가운데 ‘18세 이상 이용가’로 분류되는 작품의 비중은 57.7%에 달했다. 2025년에도 침체된 분위기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위 보고서에서 “2024년에 449개의 작품을 유통했던 ‘피너툰’ 서비스가 2025년도 상반기에 종료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와 위축된 분위기는 2025년도 상반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웹툰 플랫폼들은 정체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IP를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콘텐츠로 활용하는 2차 창작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신규 IP를 확보하기 위해 한국은 물론 일본, 미국 등에서 작가 공모전을 여는 등 현지 작가 발굴에도 힘을 쏟는 추세다.
다른 콘텐츠 포맷으로 IP를 재창작할 경우, 부가적인 IP 수익이 발생하는 것과 함께 원작 팬덤 강화와 신규 독자 유입 등을 노릴 수 있다. 카카오웹툰의 ‘비밀 사이’ IP를 드라마로 제작해 2월에 공개된 동명의 드라마는 한국, 일본 등에서 흥행하며 원작 웹툰의 매출 역주행도 가져온 사례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웹툰 ‘비밀 사이’는 드라마 공개일인 2월 27일 기준으로 일주일 동안 국내 카카오페이지, 카카오웹툰에서 조회수가 5배, 매출이 3배 가량 증가했으며, 북미 플랫폼인 타파스에서도 조회수가 12배, 매출이 8배 가량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네이버의 경우 자체 영상 스튜디오인 왓패드 웹툰 스튜디오(북미), 스튜디오N(한국과 일본 등)을 두고 적극적으로 IP의 영상화를 진행하고 있다. 네이버웹툰의 북미 인기작이자 현지 작가의 작품인 ‘스태그타운’은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와 손잡고 실사 영화 제작에 나섰으며, 네이버는 이외에도 북미에서 100개 이상 IP의 영상화를 추진하고 있다.
네이버웹툰의 일본 서비스인 라인망가는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높은 일본 시장에 맞춰 애니메이션 제작을 늘리고 있다. 라인망가의 영상화 사례는 2022년만 해도 1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12건으로 늘었다. 올해는 약 20개의 영상화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카카오의 IP 또한 애니메이션부터 게임, 실사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전 세계를 강타했던 카카오의 대표 웹소설·웹툰 IP인 ‘나 혼자만 레벨업’은 지난해 넷마블이 게임으로 제작해 글로벌 흥행에 성공한 데 이어 1월 애니메이션 2기(시즌2)가 방영되면서 일본 아마존 프라임에서 TV쇼 부문 시청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나아가 ‘나 혼자만 레벨업’의 실사 드라마화 작업도 시작했다.
한국 웹툰의 인기가 차츰 증가하고는 있지만, ‘원피스’처럼 글로벌 팬덤을 갖춘 일본 만화나 미국의 ‘마블 코믹스’같은 인기와 팬덤에 견주기는 아직 역부족이다.
IP 2차 창작을 늘리기 위해서는 그 기반이 되는 인기 프랜차이즈 IP 확보가 필수다. 일본, 미국 등의 시장에 집중하고 있는 네이버와 카카오는 단순히 한국 IP를 현지 번역해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아마추어 작가 발굴부터 시작해 될성부른 IP 찾기에 나서고 있다.
한국에서 ‘도전만화’ ‘베스트도전’을 통해 IP를 육성하는 네이버는 서구권에선 ‘캔버스’, 일본에서는 ‘인디즈’ 플랫폼을 통해 현지 작가를 발굴하고 있다. 북미의 인기 웹툰인 ‘스태그타운’이나 ‘로어 올림푸스’는 모두 캔버스를 통해 발굴한 현지 작품이다. 일본 시장에서는 창작 생태계 강화를 위해 현지 웹툰 스튜디오인 넘버나인에 지난해 지분 투자도 단행했다. 또한 네이버는 태국 등 동남아 지역에도 한국 인기 작가가 찾아가 창작 노하우를 전수해주며 글로벌 웹툰 창작자 생태계에 공들이고 있다.
한국 웹툰을 그대로 번역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고, 문화적인 코드를 건드릴 수 있는 현지 작가의 작품들이 있어야 현지 시장 안착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북미 플랫폼 타파스를 통해 다양한 웹소설, 웹툰 공모전을 열고 있으며, 일본 픽코마에서는 2023년 시작한 ‘픽코마 노벨즈 대상’을 통해 우수한 웹소설을 발굴해 웹툰으로 제작하는 방식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지속적인 성장과 확장이 시급한 웹툰 산업이지만, 여전히 웹툰 불법 복제와 유통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 유료 결제해야 읽을 수 있는 웹툰 콘텐츠를 무단 복제해 이를 웹사이트에 무단으로 올리고, 트래픽을 기반으로 광고 수익을 취하는 불법 사이트들이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한국저작보호원의 불법복제 이용률을 활용해 웹툰 산업 피해 규모를 추산한 결과, 2023년 불법복제로 인한 웹툰산업 피해 규모는 약 446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2022년 대비 무려 533억원 증가한 규모다.
불법복제 사이트는 웹툰 기업 3분의 일 이상이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요인으로 꼽는 만연한 문제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글로벌불법유통대응팀 ‘피콕(P.Cok)’을 운영하는 등 개별 기업들도 불법 웹툰 유통 차단에 나섰지만 원천 차단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네이버웹툰 또한 ‘툰레이더’ 기술을 활용해 웹툰 작품에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사용자 식별 정보를 삽입해 유출자를 식별하는 솔루션을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불법복제 사이트들은 신원 특정이 어렵도록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하며, 단속으로 접속이 차단될 경우 URL만 다시 바꾸어 운영을 재개하는 등의 방식으로 단속망을 피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사 웹사이트 홍보에는 텔레그램 채널 등을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피해 규모 대비 낮은 형량도 꾸준히 지적된다. 현행법상 저작권법 위반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대표적으로 매월 3000만명이 넘는 이용자가 방문했던 국내 최대 불법 웹툰 사이트 ‘밤토끼’ 운영자는 2018년 2징역 2년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300만여 건이 넘는 콘텐츠를 불법 유통한 웹툰·웹소설 불법복제 사이트 ‘아지툰’ 운영자는 지난해 징역 2년형과 7000만원 상당의 추징금을 받는 데 그쳤다.
업계에서는 불법 콘텐츠 차단 노력과 함께 처벌 수위도 피해 규모에 맞게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상당한 수익 대비 감수할 수 있는 처벌이라는 판단을 하기 때문에 제2의 불법 사이트가 끝없이 생겨날 수 있다”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