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8일, 방콕의 뜨거운 공기를 가르며 크리스티 프리뷰 행사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설렜다. 5월 14일 제네바 ‘매그니피슨트 주얼스’ 경매의 하이라이트 ‘A Bouquet Of Gems: A Superb Collection Of Jewels By JAR’의 프리뷰였다. 글로벌 주얼리 컬렉터들 사이에서 전설로 통하는 ‘조엘 아서 로젠탈(이하 JAR)’의 작품 21점이 한자리에 모이는 순간은 주얼리 세계의 슈퍼볼이나 다름 없었다.
JAR의 작품을 처음 마주한 건 십수 년 전 뉴욕의 한 프라이빗 갤러리였다. 당시 본 눈부신 다이아몬드 튤립 브로치가 여전히 내 기억에 선명하다. JAR 작품이 경매에 나온다는 소식만 들리면 제네바, 뉴욕, 런던, 파리까지 어디든 달려갔다. 연간 70~80점만 제작하는 그의 작품은 진귀한 보물 그 자체다. 프리뷰장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다이아몬드 ‘살구꽃(Apricot Blossom)’ 팔찌였다.
검게 산화된 실버 위에 오렌지와 노란 에나멜, 다이아몬드가 어우러진 팔찌를 착용해 보니 살아있는 조각품을 만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봄날에 만개한 살구꽃이 손목 위에서 생생하게 숨 쉬는 듯했다. 이번 컬렉션 21점은 2000년대 초반과 2010년대에 한 개인 컬렉터가 구매한 작품들로, 모두 경매시장에 처음 등장했다. 빛의 각도에 따라 변화하는 보석의 색감과 섬세한 세팅을 루페로 들여다보며 JAR의 완벽한 장인정신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파리 방돔 광장 7번지, 간판도 쇼윈도도 없는 입구에 오직 세 글자 ‘JAR’만이 조용히 새겨져 있다. 화려한 광고와 마케팅 없이도 세계의 컬렉터들이 이곳을 순례지처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1943년 뉴욕에서 태어난 로젠탈은 하버드에서 미술사와 철학을 수학한 후 1977년 파트너 피에르 자네와 함께 이 공간을 열었다. 그의 아틀리에는 철저한 예약제로만 운영하고, 고객을 엄격히 ‘선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기자 명단이 존재할 정도로 배타적이고 수백만달러의 구매 의향을 밝힌 고객조차 거절한 일화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JAR의 작품은 모두 세상 하나뿐인 창작물로, 그의 독보적인 예술적 비전을 담고 있다. 자신의 미학과 창의적 직관에 충실한 독단적 접근 방식이 주얼리 시장에서 유례없는 존경과 위상을 구축했다. 전통적 세공 기법에 현대적 감각을 더해 주얼리의 경계를 확장했고, 티타늄과 알루미늄 같은 비전통적 소재와 고급 보석의 과감한 조합을 JAR만의 시그니처로 만들었다. 특히 그의 파베 세팅 기법은 독창적인 색상 배합과 함께 JAR을 상징하는 정수가 되었다. 이번 프리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작품은 화려한 색감의 멀티젬 체인 목걸이였다. 마치 보석으로 그린 추상화 같았는데, 손끝으로 느껴지는 질감마저 특별했다. 크기와 컷이 제각각인 보석들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모습에서 JAR의 천재적 감각이 빛났다.
JAR는 현대 주얼리 역사에 혁신을 가져온 인물이다. 그는 주얼리를 예술의 영역으로 승화시켰고, 다양한 소재의 실험적 결합과 대담한 색상 사용으로 디자인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자연을 모티프로 한 작품들의 정교한 세공 기술은 현대 주얼리 제작의 기준을 높였고, 한정 생산과 엄격한 고객 선별로 럭셔리의 본질이 희소성과 장인정신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희소한 JAR의 전시를 놓치지 않으려 2013년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JAR 회고전을 찾았다. 4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된 이 행사는 세계가 그를 ‘주얼리 예술가’로 공식 인정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번 프리뷰에서 만난 목걸이로 연결 가능한 7개의 팔찌 세트 또한 당시 전시회에서 처음 만났던 작품이었다. “JAR의 작품은 현시대의 마티스와 같다”고 표현한 배우 엘렌 바킨, 70세 생일 선물로 JAR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18점의 JAR 주얼리를 소장했던 릴리 사프라 등 세계적 셀러브리티들이 그의 작품 세계에 매료되었다. 이들은 브랜드 이름을 넘어 독창적 예술성과 희소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의 소유자들이다.
크리스티에서 경매된 JAR 작품 중 최고가는 2012년 제네바 자선 경매 ‘희망의 보석: 릴리 사프라 컬렉션’의 루비와 다이아몬드 ‘카멜리아’ 브로치로, 432만달러(약 58억원)에 낙찰되었다. 최저 추정가의 4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1984년 뉴욕에서 처음 경매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JAR 작품의 약 3분의 2를 크리스티가 성사시켰는데, 이는 JAR 작품이 주요 옥션 하우스의 핵심 품목으로 수집가들에게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제네바 경매 역시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열기로 가득했다. 5월 14일, 전 세계 컬렉터들로 북적이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JAR 컬렉션 21점이 총 710만달러라는 압도적인 금액에 낙찰되었다. 사전 추정가의 3배를 웃도는 기록이었다. 방콕 프리뷰에서 첫눈에 반했던 살구꽃 팔찌는 더욱 치열한 경합 속에서 추정가의 4배 가격으로 주인을 찾았다. JAR 작품이 주얼리 영역에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독보적 위치를 확고히 한 날이었다. 이번 크리스티 제네바 경매는 115점 전량이 낙찰되는 ‘화이트 글로브 세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글로벌 경제와 정치적 불확실성 속에서도 럭셔리 주얼리는 흔들림 없는 견고한 입지를 증명했다. 변동성 높은 시장에서도 고품질 주얼리가 안정적 투자처로서 확고한 가치를 유지한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세계 미술 시장에서 한국 컬렉터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지금, 주얼리 아티스트 분야에 관심과 투자도 높아질 때다. 주얼리 투자는 오랫동안 다이아몬드나 3대 유색석 위주였지만, JAR 작품은 보석의 내재 가치, 예술적 프리미엄, 희소성을 함께 지닌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품목이다. 아시아 컬렉터들도 JAR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고, 독창적 디자인과 장인정신이 깃든 작품 가치는 꾸준히 상승 중이다.
파리의 작은 아틀리에에서 시작된 JAR의 여정은 이제 전 세계 미술관과 경매장에서 빛난다. 시대를 담아내는 예술로서의 주얼리, 그 아름다운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적 정보,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젬스톤 매혹의 컬러>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