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지 3년이 훌쩍 지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휴전 논의가 본격화됐지만, 현재는 지지부진하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차례 “내가 대통령이 되면 하루만에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약하고, 러-우 전쟁 종전을 자신의 최대 외교 업적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만큼 이른 시일 내에 전면적 휴전 가능성도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재건주’의 시간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은행(WB)은 우크라이나의 전쟁 재건과 복구에 향후 10년간 5240억달러(약 750조원)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지난해 우크라이나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추정치의 2.8배 규모다. 재건 예측 비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2월말부터 지난해 말까지를 기준으로 했다.
우크라이나의 직접 피해액은 1520억달러(약 217조원)로, 주택·에너지·운송·상업·산업·교육 분야에서 피해가 큰 것으로 전해진다. 주택 부문(840억달러, 120조원)에 재건 소요 비용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한편, 그 뒤를 운송(780억달러, 111조원), 에너지·채굴(680억달러, 97조원)·상업·산업(640억달러, 91조원), 농업(550억달러, 78조원) 등이다. 하나증권은 세계은행보다 더 큰 규모의 복구 비용을 추산했다.
하나증권은 “전쟁으로 파괴된 건설, 도로, 전력망 등을 복구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약 1200조원 규모로 추산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재건주는 전쟁 종식 이후 인프라 복구, 에너지·주택·교통 등 재건사업, 원자재·광물 협력, 경제 교류 정상화로 수혜가 기대되는 기업들이 주로 속한다.
유럽과 미국 기업 가운데서는 먼저 글로벌 2위 철강 기업이자 유럽 최대 철강 회사인 아르셀로미탈이 러-우 전쟁 종전 최대 수혜주로 꼽힌다. 이 회사는 올들어 휴전 논의가 본격화하던 3월 초순까지 주가가 40% 넘게 올랐지만, 지금은 3월 고점 대비 25% 가까이 주가가 하락한 상태다. 아르셀로미탈은 우크라이나에 철강 공장을 소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발발 직후 우크라이나 내 철강 공장의 90%가 가동이 중단됐다. 항만 파괴와 해상 봉쇄로 수출길도 막혀 철강 생산과 공급망이 위축됐다. 대표적으로 러-우 전쟁의 중요 격전지였던 마리우폴 지역은 우크라이나 철강 산업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이곳에는 다아조프스탈 제철소와 일리치 제철소와 같은 대형 철강 시설이 자리했고, 두 공장의 전쟁 이전 자산 가치는 약 100억달러에 달했다. 이들 시설의 철강 생산 능력은 전쟁 이전 우크라이나 철강 생산의 약 41%를 차지했지만, 전쟁 이후 사실상 가동 불능에 빠지면서 우크라이나 철강 산업 전반이 핵심 생산능력을 잃었다.
아르셀로미탈도 우크라이나 크리비리흐 지역에서 2021년 기준 연간 490만톤의 조강을 생산했지만, 전쟁 발발 이후인 2022~2023년 공장 가동률이 최대 40%까지 축소됐다. 키움증권은 아르셀로미탈 분석 보고서에서 “이 회사는 전쟁 종료 후 재건 작업 시 생산 증대를 위해 설비와 직원을 유지하고 있다. 전쟁 종식 후 첫해에만 우크라이나 내 철강재 수요가 평시 생산의 60% 수준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럽의 에너지 기업인 지멘스에너지도 에너지 분야서 우크라이나 재건 과정에서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회사는 지난해 6월 우크라이나의 지하 가스 저장 시설을 현대화하고, 가스 터빈 기술을 활용하는 전력 생산 프로젝트를 개발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나프토가즈 그룹과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또, 지멘스에너지는 가스터빈·복합화력(CCGT)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러시아의 공격으로 파괴된 도시의 전력·열 공급을 신속히 복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시스템이 유럽 전력망과 통합되는 과정에서 지멘스 에너지의 전력망·자동화·재생에너지 솔루션에 따른 수혜를 볼 수 있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보고서에서 “독일의 지멘스에너지와 덴마크의 베스타스가 우크라이나 에너지 부문에 대한 투자로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종합에너지 기업인 GE버노바도 우크라이나 재건주 중 하나다. GE버노바는 이미 재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 기업과 차별화된다. 이 때문에 향후 휴전 논의가 본격화할 때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전력·발전 시설을 공습한 이후 우크라이나에 전력 수급에 문제가 생기자, 미국 정부 주도로 GE버노바의 이동식 가스터빈이 우크라이나에 제공됐다. 지난해 6월에는 풍력 프로젝트를 위해 우크라이나 최대 민간 투자자인 디텍(DTEK) 그룹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미국의 도시 인프라 정비 등 종합건설 엔지니어링 업체 에이컴 역시 현재진행형인 재건 참여 기업이다. 2023년 11월 우크라이나 키이우 보리스필 국제공항의 재건 파트너로 선정돼 재건과 현대화 작업을 진행중이다. 이 공항은 전쟁 이전에는 연간 950만 명의 승객이 이용하던 우크라이나 최대 공항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재건은 미국, 유럽 인프라 기업들의 수혜로 이어질 수 있다”며 “미국 인프라는 ‘Global X US 인프라스트럭처(PAVE)’ ETF로의 접근을 권고한다. 해당 ETF는 글로벌 매출이 가장 큰 캐터필러를 비롯해 각종 건설 장비 및 자재 기업들을 담고 있고, 에너지 인프라 복구에 필요한 전력 기기 기업들도 보유하고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국내 기업 가운데서도 우크라이나 재건주로 눈에 띄는 회사들이 있다. 섹터로 보면 건설업과 건설장비가 먼저 거론된다. 재건사업이 본격화하면 당장 잔해를 치우고 교통망, 산업단지, 건물 등 건설에 나서야 한다는 점에서다. 국내 건설사들은 2023년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사업 참여를 모색하기 위해 파견한 재건협력단에 참여하면서 현지 진출을 타진한 바 있다.
당시 삼성물산은 우크라이나 리비우시와 스마트시티 개발 협력 MOU를 체결했고, 현대건설도 우크라이나 보리스필 국제공항공사와 공항 재건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쌍용건설도 재건 특수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회사다. 회사는 이미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비탈리 코발 국유재산기금(SPFU) 대표 등과 재건 사업 관련 실무 회의를 진행한 바 있다. 인접국인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한 피난처 조성 공사를 맡으며 재건과 관련한 물밑 작업을 진행해왔다.
건설장비 회사 중에는 올해 1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대표 사무소를 개설한 HD현대그룹 계열사(HD현대건설기계·HD현대인프라코어)가 우선적으로 투자를 고려해볼 만하다.
HD현대건설기계는 굴착기, 휠로더, 백호로더, 스키드로더 등 건설 장비를 생산하는 종합건설기계 회사다. 미국, 유럽, 인도, 중국, 브라질 등 현지 법인을 통해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면서 현재 140개국 500여 개 딜러망을 보유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 두 회사가 현재 우크라이나 건설기계 시장 점유율을 30%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 재건주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종목으로 꼽을 만하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에 변압기, 발전기, 전선 케이블 등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국내 전력업계도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이 분야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지 않는 데다 국내 업체들이 유럽 등 경쟁사 대비 가격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역시 전력 공급을 위한 송배전선 복원과 발전설비 탈중앙화, 전력망 보호조치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중전기(변압기·발전기·전동기) 사업에서 국내 기업들이 경쟁력을 선보일 수 있다. 중전기 사업과 관련해서는 LS일렉트릭, 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 일진전기 등이 참여할 수 있다. LS는 지난 4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현지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송배전망 등 전력 인프라 지원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우크라이나와의 협력 의사를 공식화하기도 했다.
LS그룹은 LS전선, LS에코에너지를 비롯해 LS일렉트릭 등 계열사를 중심으로 전력·에너지 인프라 구축 능력을 갖추고 있다. 산업기계 제조 기업인 LS엠트론은 앞서 2023년에 우크라이나에 트랙터와 로더 등 농기계를 5대씩 지원하기도 했다.
석유화학 업계도 종전 이후 재건 사업에 따른 수요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PVC(폴리염화비닐), 폴리스티렌, 폴리우레탄 등 석유화학 제품은 건설 자재 생산에 필수로 들어가는 재료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인프라를 복구하면서 석유화학 제품이 사용되는 건설 기자재 등에 대한 수요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석유화학업계는 원유 가격 하향 조정과 함께 글로벌 물류망 정상화에 따른 수혜도 관측된다. 러-우 전쟁 발발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했다. 한국도 2022년 12월부터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중국 석유화학 업계는 러시아산 원유를 국제 유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수입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을 내놨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직격탄을 맞게 된 이유다. 통상 석유화학 업종은 생산 원가 중 원료비가 60~70%에 달해 유가에 따른 원가 경쟁력 변동이 큰 산업이다.
종전 협상이 진행된 이후 러시아의 원유 수출이 정상화되면 국제 유가가 하향 조정될 수 있다. 여기에 전쟁으로 막혀 있던 러시아 등 글로벌 물류망이 복구되면 원유와 나프타 등 원자재 가격이 안정화된다. 이에 석유화학 업계의 생산 원가 감소로 수익성이 개선될 수 있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러시아산 원유를 가지고 제품을 생산해 원가 경쟁력을 높였다. 러시아산 원유 제재가 풀리면 국제 유가하락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끝나면 경기 부양으로 인한 수요 확대도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다만 러-우 종전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은 경계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양형모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도시 중 피해가 큰 곳은 도네츠크, 하르키우, 루한스크, 자포리자, 헤르손, 키이우인데 이들 도시의 피해 규모는 1200억달러(약 175조원)를 상회해 총 피해 금액 대비 70~80%를 차지한다”며 “러-우 전쟁 최대 손실 지역은 현재 러시아 점령지인데, 만약 러시아 점령지를 러시아가 가져가게 된다면 재건 규모는 기존 추정치 대비 절반 이하로 감소할 것이다”라고 관측했다.
[홍성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