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드라마 플랫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정보기술(IT) 기업들의 경쟁이 불붙고 있다. 크리에이터(창작자) 업계에서도 ‘숏폼 드라마’ 시장의 성장세에 주목하고 있는 모양새다. 편당 영상 길이가 1~2분에 불과한 숏폼 드라마는 빠른 스토리 전개와 짧은 영상 포맷을 선호하는 1020세대 시청 습관과 맞물려 중국, 북미, 한국, 일본 등지에서 이용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기존 숏폼 플랫폼인 틱톡,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과 별개로 숏폼 드라마만을 전문적으로 서비스하는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면서 관련 산업이 본격적인 성장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카카오벤처스는 글로벌 숏폼 드라마 시장 규모를 13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 시장 규모는 6500억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아이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만 숏폼 드라마 시장 규모가 373억 9000만위안(약 7조 125억원)에 달했다. 이는 전년 대비 규모가 250% 이상 성장한 것이다. 2027년에는 중국 숏폼 드라마 시장 규모가 1000억위안(약 18조 755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됐다. 숏폼 드라마는 통상적으로 작품당 50~150화로 구성된다. 숏폼 드라마는 자극적이고 빠른 플롯이 특징이다. 1분 안에 상황이 반전되고, 50화(50분)안에 극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 현재는 치정 멜로, 복수 등 자극적인 주제로 한 드라마가 대체적이다. 자극적인 콘텐츠를 빠르게 소비하려는 젊은 세대들의 ‘인스턴트’ ‘도파민’ 트렌드를 파고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플랫폼 기업 입장에서 숏폼 드라마는 수익성이 좋다.
초반 10~20회를 무료로 시청할 수 있도록 하고 이후부터 과금하는 형태로 편당 500~1000원을 받는다. 드라마 시리즈 한편을 시청하면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월 구독료를 내는 셈이 된다.
반면 제작비는 기존 드라마보다 훨씬 저렴한 저비용 고효율의 구조다. 카카오벤처스는 “비싼 가격임에도 소비자는 거리낌 없이 지갑을 열기 때문에 기업에게 숏폼 드라마는 매력적인 아이템”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글로벌 숏폼 드라마 시장은 중국 회사들이 사실상 선점한 상태이지만, 이제 막 태동기라 절대적인 강자는 없는 상태다. 한국의 스푼 등이 출사표를 내고 있지만 중국 기업들의 기세가 무섭다.
현재 주목할 만한 중국 플랫폼은 중국 COL그룹의 ‘릴숏’과 뎬중테크의 ‘드라마박스’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북미 시장을 집중 공략하고 있는 릴숏은 올해 1분기 누적 다운로드 3000만회를 돌파했다. 매출은 700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최근 1000만달러 이상의 월매출을 만들어내며 숏폼 드라마의 수익성을 증명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릴숏은 회사가 보유한 500만개 이상의 웹소설 IP를 기반으로 숏폼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시작부터 북미 등 해외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릴숏은 실리콘밸리에 자회사를 세운 후 북미에서 선호하는 IP를 탐색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미국 LA에는 직접 스튜디오를 세워 IP발굴·촬영·편집·유통 전 과정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드라마박스는 중화권과 동남아시아에 주력하는 숏폼 드라마 플랫폼이다. 올 1분기에만 다운로드 수 700만회를 돌파했다.
특히 중국 회사들은 AI를 활용해 싸고 빠르게 영상을 제작하는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AI를 활용해 편집자나 현지 배우를 대체하며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다.
빠르게 많은 작품을 찍어내야 하는 숏폼 시장에서 AI는 큰 무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AI를 활용해 빠르게 영상을 편집하고, 대본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카카오벤처스는 숏폼 시장에서 AI는 다방면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카카오벤처스는 “해외에 콘텐츠를 수출할 경우 딥페이크를 이용해 배우들의 생김새를 현지에 맞게 바꿀 수도 있다”면서 “현재 숏폼 드라마 시장이 가장 발전한 중국에서는 이런 AI기술을 내년 안에 상용화할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기술을 잘 공급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숏폼 드라마 시장에서 큰 기회를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게임, 웹툰 등 지식재산권(IP) 사업에 노하우가 있는 국내 테크 기업들도 중국 회사들이 초기에 진입한 글로벌 숏폼 플랫폼 시장에 출사표를 내고 있어 주목된다. 국내 메이저 게임사인 크래프톤은 글로벌 숏폼 드라마 플랫폼 회사인 스푼랩스에 120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단행하며 관련 사업 진출을 본격화했다.
크래프톤이 진행한 비(非)게임 기업 투자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회사의 미래 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전략적 행보로 풀이된다. 특히 회사 내부적으로 숏폼 드라마 플랫폼의 사업성에 대한 판단이 섰고, 원천 IP 확보를 통한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노리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관련 크래프톤은 “향후 IP 확장 가능성과 흥행 가능성이 높은 숏폼 드라마를 게임화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스푼랩스는 한 회차당 2분 안팎의 숏품 드라마 전용 플랫폼 ‘비글루’를 출시했다. 한국어·영어·일본어·중국어·스페인어·태국어·인도네시아어 등 7개 언어를 지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달부터 일본 오리지널 콘텐츠 공개와 함께 일본과 미국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활동을 본격화한다. 크래프톤 자회사인 띵스플로우는 회사가 보유한 오리지널IP를 활용해 숏폼 드라마와 게임 제작에 나섰다. 이밖에 국내 콘텐츠 플랫폼 리디는 최근 숏폼 드라마 사업 검토에 착수했다. 또 폭스미디어는 지난 4월 숏폼 드라마 플랫폼인 ‘탑릴스’를 론칭했다.
업계에서는 웹툰IP를 다수 보유하고 플랫폼 운영 역량이 네이버와 카카오의 시장 진입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젊은 사용자 신규 유입에 사활을 걸고 있는 국내 플랫폼 입장에서는 숏폼이 새로운 유인책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숏폼 드라마’ 시장이 커지는 가운데 기존 대형 영상 플랫폼 기업들도 어떤 형태로든 견제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숏폼 드라마를 전문으로 한 플랫폼이 인기를 끌수록, 유튜브·틱톡·인스타그램 등 기존 숏폼 강자들의 보유한 사용자를 잠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콘텐츠 시장 경쟁은 ‘시간점유’ 싸움이기 때문이다.
우선 유튜브는 회사의 숏폼 동영상 서비스 ‘쇼츠’의 최대 길이가 3분으로 늘릴 방침이다. 구글코리아가 운영하는 유튜브 한국 블로그에 따르면 10월 15일부터 유튜브에 올릴 수 있는 쇼츠의 최대 길이가 기존 1분에서 3분으로 바뀐다. 숏폼 콘텐츠 이용이 증가하는 추세인 만큼 유튜브가 바이트댄스의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는 물론 숏폼 드라마 플랫폼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유튜브로선 쇼츠의 시간을 늘리게 되면 제작할 수 있는 숏폼 콘텐츠가 다양해지면서 더 많은 시청자를 유인할 수 있고, 이와 함께 콘텐츠 크리에이터 확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틱톡의 숏폼 최대 길이는 3분이며 릴스의 경우 90초다. 국내 네이버의 숏폼 플랫폼 ‘클립’ 콘텐츠도 최대 90초를 지원한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 숏폼 시장 규모는 올해 400억달러(약 5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향후 5년간 연평균 60%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콘텐츠 길이 증가나 크리에이터 보상 이외에도 숏폼 플랫폼들은 제작을 용이하게 해주는 도구를 추가하는 등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노력도 이어가고 있다.
콘텐츠·플랫폼 기업들이 숏폼 드라마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숏폼이 동영상 시청 시장의 대세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숏폼(짧은 영상)은 스토리의 빠른 전개 덕분에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영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용자 선호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가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 5120만명을 대상으로 ‘숏폼 앱’과 ‘OTT 앱’의 사용시간을 비교 분석한 결과, 숏폼 앱(유튜브·틱톡·인스타그램)의 1인당 월평균 사용시간(8월 기준)은 52시간 2분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OTT 앱(넷플릭스·쿠팡플레이·티빙·웨이브·디즈니+)의 1인당 월 평균 사용시간 7시간 17분과 비교해 7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특히 숏폼과 OTT 앱 중 1인당 월평균 사용시간이 가장 높은 앱은 유튜브로 평균 41시간 56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뒤를 이어 틱톡 17시간 16분, 인스타그램 15시간 56분, 넷플릭스 6시간 17분 등의 순이었다.
CJ ENM의 통합 디지털 마케팅 기업 메조미디어가 지난 8월 15~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숏폼 콘텐츠를 보는 주된 채널은 유튜브 쇼츠(76%)였다. 다만 숏폼 드라마 등 숏폼을 통한 콘텐츠 시청량이 늘어나는 만큼 자극적인 영상에 중독되는 이른바 ‘팝콘브레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날로 커지고 있다. 특히 ‘인스턴트식 동영상 노출’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영주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연구위원(언론학 박사)은 지난 2월 ‘월간 방송과기술’에 게시한 ‘숏폼의 이용과 부작용’이라는 기고를 통해 “숏폼 콘텐츠는 영상이 짧고 깊은 사고가 필요하지 않아서 무심결에 스크롤하며 여러 개 콘텐츠를 순식간에 시청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청한 콘텐츠 양은 많지만, 휘발성이 강한 스낵화 특성 때문에 앞서 시청한 콘텐츠보다 더 즐겁고 재밌는 콘텐츠를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데, 이용자 스스로의 의지로 시청을 조절하지 못하면 중독에 빠지게 된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선정성, 폭력성, 유해성 등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를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거나 차단하는 등 엄격한 관리와 제재가 필요해 보인다”고 주문했다.
[황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