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회장이 제너시스 BBQ를 창업한 건 1995년 9월 1일. 10주년이 되는 2005년에 뭔가 기념비적 이벤트를 기획할 심산이었다. 당초 생각했던 건 해외 점포 개설. 그런데 중국에 1호점을 2003년 개설했다. 스페인 점포도 열었다. 해외 점포 이상의 이벤트를 준비해야겠다고 고민하던 윤 회장에게 확실한 비전과 목표로 자리 잡은 게 바로 올리브치킨이었다. 이건 해외 점포 개설이란 외형 확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중에 윤 회장이 스스로 규정한 것처럼 ‘K푸드 혁명’이었다.
이미 밑그림은 다 그려놨다. 제품개발을 완료했으며 나름 한국적 입맛에 맞는 레시피도 준비했다. 기존의 닭튀김과는 비견할 수 없는 맛과 품질이었다. 다만 초기에 고객의 입맛에 적응하기 위한 기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올리브유로 튀긴 맛이 한국인에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중요한 변수가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가맹점의 호응이었다. 품질이 아무리 좋다 한들 가맹점주들이 적극 나서서 팔아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는 일. 가맹점주들이 1차 고객이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당초 올리브치킨의 론칭 시기를 10주년 되는 9월 1일로 잡았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트랜스지방 이슈가 불거지자 아예 판매 시기를 앞당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10주년 날짜 맞추겠다고 미적댈 일이 아니었다. 그는 언론보다 먼저 가맹점주를 소집했다. 언론에 나온 걸 보고 가맹점주들이 뒤늦게 알게 되면 그건 도리가 아니었다.
디데이는 5월 16일이었다. 가맹점주들을 이천 치킨대학으로 불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늦게까지 핀다는 이곳의 벚꽃도 이미 꽃봉오리를 다 떨구고 짙푸른 잎사귀가 무성해진 시기였다. 화창한 날씨지만 더운 기운이 올라오는 월요일 오전이었다.
윤 회장은 이날 올리브치킨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사자후를 뿜어낸다. 심혈을 기울여 고치고 또 고쳐서 준비한 스피치였다.
“사랑하는 BBQ 가족 여러분”이라고 운을 뗀 뒤 “우리는 바로 오늘 BBQ의 향후 10년의 운명을 결정지을 치킨 역사의 혁명을 시도한다”라고 선언한다.
“저는 지난 3년간 수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소심한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추진력 면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지만 이 올리브치킨 시판에 관해서는 솔직히 두려웠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경쟁업체와 비교해 월등히 앞서있고, 안정적인 1위 기업인데, 하필 최악의 불경기를 택해 왜 새로운 시도로 리스크를 감수하느냐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재고할 것을 조언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몇십 번 의사결정을 연기한 것도 사실입니다.
여러분, 저는 1750여 명의 BBQ 가족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책임이 그만큼 막중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에는 ‘하늘이 점지해 주는 때’가 있는 법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모든 경쟁업체들이 우리 BBQ를 벤치마킹하며 따라오고 있습니다. 우리 BBQ는 10년 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 ‘맛도 기술이다’라는 슬로건 아래, ‘블루오션’ 시장을 창출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지난 10년 사이 부동의 국내 1위 치킨업체로 성장하였고, 시장을 주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업을 하는 이상 우리는 언제든 경쟁에 직면해야 합니다. 노력하지 않고, 변화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1위 자리를 영원히 지키기는 불가능합니다. ‘영원한 1위’를 지키려면 남들보다 한발 앞서 준비하고 멀리 달아나는 길밖에 없습니다. 남들이 다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은 이미 늦은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 BBQ는 경쟁이 없는, 남들이 따라오지 못할, 따라오더라도 준비에 시간이 걸릴 ‘블루오션 전략’을 세웠습니다. 이게 ‘BBQ 올리브치킨’입니다.”
당시 이름은 BBQ 올리브럭셔리치킨이었다. 그게 말이 좀 어려워 나중에 올리브치킨으로, 치킨을 튀기면 황금색이 돼서 황금올리브치킨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 것이다.
윤 회장은 가맹점주들에게 ‘황금올리브치킨의 전도사’로서, 아니 치킨혁명의 전사(戰士)로 나서줄 것을 주문한다.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는 긍정적인 결과를 만듭니다. 우리부터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갖고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신념에 찬 말 한마디, 글 한 줄이 모여 ‘BBQ 올리브 럭셔리치킨’의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입소문을 통해 ‘BBQ 올리브 럭셔리치킨’의 맛과 건강에 대한 효과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면, 돈 들이지 않고 엄청난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BBQ는 이제 세계 마케팅 역사상 ‘최대의 성공’을 쓰려고 합니다. 개인적인 판단은 잠시 접고 회사를 믿고 따라 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바로 ‘BBQ 올리브 럭셔리치킨’의 신화창조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1등의 싸움은 늘 외롭습니다. 그건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며,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등의 변신은 바로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1등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세상을 바꾸는 과업을 실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가 가맹점주들의 설득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데는 이유가 있다.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는데 전략이나 아이디어만 좋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윤 회장이었다. 그는 “훌륭한 전략과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실행력이 뒤따라야 한다”라며 “그 실행력의 주체가 바로 가맹점주”라고 말한다. 올리브치킨을 팔려면 가맹점주들이 먼저 동의해야 하고, 그 다음은 가맹점주들이 투자를 해서 설비를 바꿔야 한다. 그리고 본사의 방침을 믿고 전력투구로 마케팅을 해야 한다. 처음에는 물론 반신반의하는 가맹점주들이 적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입증이 안 된 새로운 제품을 파는 것이고 가격도 다른 경쟁업체에 비해 비싸게 받을 수밖에 없어 고객을 뺏길 위험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더더욱 치킨업이라는 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골목 하나 돌면 눈에 띌 정도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그야말로 박 터지는 레드오션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격 정책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내부적으로 가격을 한 마리당 2000원 올리는 것으로 정했다. 2000원이란 가격 인상은 어떻게 정해졌을까? 윤 회장은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소비자 가격을 2000원 올리면 그만큼 치킨이 덜 팔릴 수 있겠죠. 일반적인 마케팅 이론에 따르면 치킨은 제품 특성상 가격 저항력이 커 약 2000원 정도 가격이 인상되면 약 30~40%의 매출 감소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변수로 잡지 않았습니다. 우리 예상이 맞아 떨어졌습니다. 기존의 마케팅 이론을 뒤엎고 약 5~10%의 매출 상승을 가져왔으니 말이죠. 가격 저항을 감안하면 매출을 40~50% 올린 셈입니다. 초기 적응 기간을 빼면 물량 면에서는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확신했습니다만 그래도 불안해하는 가맹점주들이 많으니 그들에게 500원의 이익이 돌아가도록 했습니다. 1500원은 본사의 몫인데 비용이 1500원이 아니라 4000원 가까이 오르는 거였습니다. 가맹점주에게는 오히려 500원 이익이 되게 설계했으니 고객들이 2000원 더 지불하는 걸 감안하면 2500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계산이 나오지요. 이걸 BBQ 본사와 스페인의 올리브유 판매사, 그리고 스페인에서 오일을 수입해 튀김유로 만드는 롯데삼강, 이렇게 3자가 부담한 것입니다. 스페인 오일 판매회사는 폰즈라는 1945년부터 4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가족기업이고 카탈루냐 지역에서 아르베키나 품종을 생산하는 전문기업이었는데 ‘우리가 올리브유로 튀긴 닭을 팔면 다른 곳에서도 따라오지 않겠느냐, 그러면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설득했습니다. 롯데삼강도 ‘퍼스트무버로서의 이점이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로 비용 분담을 요청했습니다.”
윤홍근의 공식 직함은 제너시스 그룹 회장이지만 제너시스라는 지주사 이름보다는 BBQ라는 계열사, 치킨 브랜드가 훨씬 더 대중에게 친숙하고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제너시스그룹은 계열사만 해도 BBQ를 포함해 총 6개다.
제너시스란 회사명은 평소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 지어준 이름이다.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세계 속의 기업이 되고 싶다”라는 꿈을 얘기하니 성경의 창세기를 뜻하는 제너시스란 이름을 줬다. 윤 회장은 이 이름 앞에 ‘천년 기업’이란 수식어를 얹었다. 훗날 현대차그룹이 새로운 차종을 내놓으면서 그 이름을 제네시스라 했다. 영어로는 같은 철자이지만 현대차는 제네시스, BBQ는 제너시스고, BBQ가 먼저다.
BBQ란 브랜드는 미국에서 숯불구이를 말하는 바비큐(barbecue)에서 따왔는데 이 이전에 아이들에게 익숙한 비비인형에서 착안한 것이다. 치킨과 어린아이들을 연관시킨 것은 윤 회장의 창업이념과도 맞닿아 있다. “닭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계층은 주부와 어린이 들입니다. 그런데 창업 당시인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치킨집 하면 술집으로 통했습니다. 오늘도 치맥, 치맥 하잖습니까? 직장동료들이나 친구들끼리 어울려 치맥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만 나는 주부와 어린이 들도 이용하는 치킨 전문점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게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려면 깨끗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다양한 메뉴를 준비하는 식당이어야 합니다. 치킨 이름도 그래서 비비가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온건데 당시 연구소장을 맡았던 유병현 박사가 BB는 좀 약하니 Q를 넣어 BBQ로 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낸 거죠. 미국 사람들은 물론 한국에서도 바비큐를 좋아하니 호감 가는 이름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 BBQ를 Best Believable Quality(최고의 믿을 만한 품질)의 약자로도 하자고 했지요. 우리는 어차피 세계 최고의 맛과 품질을 지향하니 BBQ는 딱 맞는 브랜드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후일담이지만 BBQ를 Best Believable Quality라고 한 건 약간의 콩글리시였다. 그걸 미국 진출하면서 알게 됐다. 미국 사람들에게 BBQ가 Best Believable Quality의 약자라고 했더니 그럴 때는 Believable이란 단어를 쓰는 게 아니라 Unbelievable이라고 하는게 맞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지금은 BBQ를 Best of the Best Quality의 약자로 사용한다.
윤 회장이 치킨과 인연을 맺은 건 BBQ를 창업한 1995년 9월 1일에서 1년 8개월 정도를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윤 회장은 미원(현 대상그룹) 직원이었다. 미원은 그때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기업집단 기준으로 서열 30위였는데 무엇보다도 삼성이 유일하게 패배한 조미료 시장의 압도적 선두주자로서의 명성을 지니고 있었다. 미원은 미원을, 삼성은 미풍이란 조미료를 생산 판매했는데 이 부문에서만큼은 삼성이 미원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가 맨 처음 맡게 된 부서는 사료 사업본부 구매과. 곡물 수입이 주 업무였다. 여기서 능력을 인정받아 고속승진을 했고 사내 막강 권력을 행사하는 총무과장이란 요직을 맡게 된다. 이천 사료공장이었다. 사택까지 마련해 줬다.
“총무과장 하면 어깨에 힘주는 자리였습니다. 군림하자면 밑도 끝도 없습니다. 일을 별로 하지 않아도 되지요. 반대로 몸을 낮춰 지원을 하면 할 일이 태산이었습니다. 저는 서비스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 결과 당시 4개 사료공장 중 1등을 했고 생산량도 부임 때보다 3배나 늘어났습니다. 3년 임기를 마칠 무렵 상사가 귀띔해 주더군요. 중국 공장 사장으로 발령될 거라고요. 제가 대학(조선대)을 무역학과를 나왔는데 세계 시장을 누비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바뀌자마자 모든 게 없던 일로 됐습니다.”
1994년 1월 그는 마니커 영업부장으로 발령 난다. 마니커는 원래 닭고기 가공과 유통업을 하던 미원의 거래 업체였다. “닭이 많이 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회사명이 마니커였고 한국 품종의 육계를 개발한 자존심 강한 회사였다. 이 회사의 창업자가 전설의 이계조 씨. 한자이름이 계조(鷄祖)로 이름 그대로 닭의 할아버지였다. 그런데 이 회사가 1993년 10월 부도를 맞는다. 그래서 미원이 500억원을 들여 인수해 회사를 책임지고 경영할 경영진을 짜고 있던 때였다. 중국으로 발령 내려던 윤홍근을 새로 인수한 회사의 영업부장으로 임명했는데 윤 회장 입장에서는 섭섭하기 그지없는 인사였고 회사 차원에서는 발탁이었다. 그렇게 윤 회장은 닭과의 인연을 맺게 된다.
(다음 회차에서 이어집니다.)
[손현덕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