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 주식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종목은 미국의 ‘스페이스X’다. 현지 시간으로 6월 12일에 미국 나스닥(NASDAQ)에 상장했다. 거래 첫날 시가총액이 2조 달러를 돌파한 스페이스X는 상장 3거래일 만에 아마존을 제치고 미국 증시 시총 순위 5위권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시장은 스페이스X를 단순한 로켓 발사 기업이 아니라, 위성인터넷(스타링크)과 재사용 로켓, 달·화성 탐사, 우주 데이터센터, 지구초고속운송 등 미래 우주 인프라 전체를 구축하는 플랫폼 기업으로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스페이스X의 성공적인 기업공개(IPO)를 보며 각국 정부도 우주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여기에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1990년대 일본은 순수 국산 기술로 개발한 H2 로켓을 운용했지만 연속 실패를 겪으면서 사업을 중단했다. 이후 등장한 H2A는 철저히 신뢰성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2001년 첫 발사에 성공한 H2A 로켓은 25년간 총 50회 발사 중에서 단 한 차례만 실패해 성공률 98%를 기록했다. 국제 상업 발사 시장에서 신뢰성 기준으로 여겨지는 95%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일본 정부가 정보수집위성, 달 탐사선, 우주정거장 보급선 등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던 것도 H2A 덕분이었다. 성능이 탁월한 H2A지만 치명적인 단점은 비용이었다.
H2A 한 기 발사 비용은 약 100억 엔(약 9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됐다. 성능과 신뢰성은 뛰어났지만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것이다. 미국 스페이스X가 재사용 로켓을 기반으로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면서 일본은 세계 상업 발사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보하지 못했다.
‘안전하지만 비싼 로켓’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것이 2014년부터 개발이 시작된 H3다. H2A의 후속 기종으로 시작된 H3의 핵심 목표는 ‘돈’이다. 발사 비용을 H2A의 절반 수준인 50억 엔 안팎으로 낮추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가격을 낮추기 위해 자동차산업 등에서 사용하는 범용 부품을 로켓에 적극 활용하고 자동 점검 시스템도 도입했다”며 “고객 수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로켓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지난 6월 12일 일본 가고시마현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발사된 H3 6호기는 이러한 비용 절감의 정수다. 보조 고체 로켓 없이 액체연료 엔진만 사용해 비용을 극도로 낮춘 것이다.
H3는 단순한 국가 프로젝트가 아니다. 일본이 처음으로 본격적인 글로벌 상업 발사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무기다. 현재 일본은 미국 통신기업인 비아샛과 프랑스 유텔샛, 아랍에미리트(UAE) 우주청 등으로부터 위성 발사 수주를 이미 확보한 상황이다. 향후 H3 운영이 JAXA에서 민간 회사인 미쓰비시중공업으로 완전히 이관되면 민간 기업이 고객 요구에 맞춰 발사 일정을 조정할 수 있게 돼 해외 수주 경쟁력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아직은 H3의 신뢰성 확보가 더 큰 과제다. 총 8회 발사 가운데 6회 성공해 성공률이 75%에 그치기 때문이다. JAXA는 향후 발사 경험이 축적되면 비용 절감과 함께 발사 빈도와 신뢰성도 더욱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본이 H3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로켓 자체 때문만이 아니다. 우주산업의 핵심은 위성, 통신, 데이터, 안보, 물류 등 다양한 산업의 출발점인 ‘수송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은 독자 GPS 체계인 ‘미치비키(준천정위성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준천정궤도는 지구의 자전에 동기화되어 있어, 특정 구역, 예를 들면 일본에 지속적으로 위성을 위치시킬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미치비키 구축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위성 발사가 필요하다. 8월에 발사되는 H3 로켓에 ‘미치비키 7호기’가 탑재돼 우주로 향한다. 일본은 미국 GPS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 위치정보 체계를 구축해 자율주행차, 드론, 스마트농업, 재난 대응, 군사작전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우주산업은 유관 분야로의 파급 효과도 크다.
로켓 개발 과정에서 축적되는 초정밀 가공기술, 경량소재, 배터리, 반도체, 인공지능(AI) 제어기술, 통신기술 등은 자동차와 항공, 방위산업 등으로 확산된다. 실제로 H3 개발 과정에서는 자동차 부품 활용과 제조 공정 혁신이 적극 도입됐다. 일본 정부가 우주산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보는 이유다.
일본이 그리는 최종 목표는 단순한 위성 발사 서비스 사업자가 아니다.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 단계에서 벗어나 민간 중심의 우주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국제우주정거장(ISS) 보급선인 HTV-X는 기존 ‘고노토리(HTV)’보다 수송 능력을 1.5배 높였고, 향후 미국의 달 탐사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 계획 참여도 추진하고 있다. 일본어로 황새를 뜻하는 고노토리는 일본이 개발한 국제우주정거장(ISS) 보급선이다. 2009~2020년 9차례 발사를 모두 성공시키며 일본 우주기술의 신뢰성을 상징하는 대표 사업으로 평가받는다. 일본 정부는 이제 H3와 HTV-X를 앞세워 우주 수송과 위성 제조, 데이터 활용, 달 탐사까지 연결되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각오다.
다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국의 스페이스X는 이미 재사용 로켓 ‘팰컨9’을 통해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차세대 초대형 로켓인 ‘스타십’ 개발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스타십은 H3보다 수십 배 많은 화물을 실을 수 있으며, 완전 재사용 체계를 통해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 유럽의 아리안 6도 관련 시장을 빠르게 추격 중이다. 아리안 6는 유럽 독자 우주 접근권 확보를 위한 핵심 로켓으로, 일본 H3와 마찬가지로 기존 주력기인 아리안 5의 높은 비용 구조를 개선해 상업 발사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다만 재사용 기술을 확보한 스페이스X와 달리 H3와 아리안 6 모두 일회용 로켓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비용 경쟁력 확보가 여전히 과제로 꼽힌다.
아리안 6뿐 아니라 미국에서는 블루오리진, 로켓랩, 파이어플라이 에어로스페이스, 릴래티비티 스페이스 등 수십 개의 우주 스타트업이 민간 자본을 바탕으로 로켓과 위성, 달 탐사, 우주정거장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과거 국가 주도의 우주개발 경쟁이 미국과 소련 간 패권 다툼이었다면, 현재는 민간기업들이 주도하는 ‘우주산업 생태계 경쟁’으로 전장이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닛케이는 “결국 일본의 승부처는 스페이스X와의 정면 승부가 아니라 ‘믿고 맡길 수 있는 대안’이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성공률 98%인 H2A가 보여준 압도적인 신뢰성과 H3가 추구하는 저비용 구조를 결합해 안정성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승훈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