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일본 자동차 업계가 위기 상황에 처했다. 일본의 최대 산업은 자동차이고, 일본 자동차 업계의 최대 시장은 미국이다. 미국의 관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일본 차 업계가 당분간 치러야 할 손실은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미국으로 수입되는 외국산 자동차와 핵심 자동차 부품에 대해 25% 관세 부과 조치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현지시간으로 4월 2일부터 자동차에 대해, 5월 2일부터는 자동차 부품에 대해 각각 25%의 관세 부과가 시작됐다. 현재 미국의 수입차 관세는 2.5% 수준인데 이것이 10배로 오른 것이다.
일본 기업이 미국으로 수출한 자동차 수출액은 지난해 6조 261억엔(약 59조원)에 달한다. 일본이 미국에 수출하는 총액의 28.3%로 규모 면에서 가장 크다. 자동차 부품을 합치면 34.1%에 육박한다. 일본으로서는 관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경우 미국 최대 수출품이 사라지게 될 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서는 자동차의 94%가 일본산”이라며 “도요타는 미국에서 100만 대를 판매하는데 제너럴모터스(GM)나 포드는 일본에서 거의 판매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표했다. 실제로 자동차의 경우 일본은 2023년 미국에서 약 1만 9000대를 수입했지만, 미국에는 148만대를 수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노무라종합연구소가 재무성 통계를 근거로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은 미국과 교역에서 8조 6417억엔(약 86조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로 삼는 것은 이러한 무역 불균형이다.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공개한 ‘2025년 무역장벽 보고서’는 미국 자동차 업계가 일본 시장에 접근하지 못하는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일본의 안전 기준, 차량 유통·서비스 공급망 개발 방해 등도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 업계는 미국 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2025 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의 연간 영업이익이 2조엔(약 19조 2000억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인 일본의 도요타자동차는 올해 4~5월에만 미국 관세 조치로 1800억엔(약 1조 7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관측됐다. 2025년도의 연간 영업이익 감소분은 환율 영향 등도 포함해 전기 대비 21% 감소한 3조 8000억엔으로 예상됐다. 이는 시장 전망치인 4조 8824억원에서 1조엔이나 줄어든 숫자다.
혼다도 이륜차를 포함할 경우 2025년도 영업이익이 미국 관세 정책 영향으로 6500억엔(약 6조3000억원) 감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닛산자동차는 최대 4500억엔(약 4조3000억원)을 예상한다. 사토 고지 도요타 사장은 “미국 행정부의 관세 부과 등 자동차 산업을 둘러싼 환경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며 “관세는 유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서 예측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마쓰다는 관세 영향으로 올해 4월에만 90억∼100억엔(약 860억∼960억원) 규모의 이익이 줄었다고 밝혔다. 미쓰비시자동차는 2025년도 이익이 400억엔(약 3850억원) 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에서 자동차를 판매하지 않는 스즈키도 미국 관세 영향으로 400억엔의 이익 감소를 전망했다.
관세뿐 아니라 환율 문제도 일본 차 업계에는 부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 강세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변국에 윽박지르고 있다. 일본도 여기에 해당된다. 과거 ‘플라자 합의’ 때만큼이나 극적인 변화는 아니겠지만, 시장에서는 장기적으로 엔 강세, 달러 약세 현상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엔 약세를 통해 수출에서 톡톡한 재미를 봤던 일본차 업계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도요타와 혼다, 닛산 등 일본 주요 5개 자동차 업체는 엔 강세로 인해 1조4000억엔(약 13조 5000억원)가량의 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도요타의 경우 2024년 회계연도에 달러당 엔화 값을 152엔으로 전망했다. 올해는 이보다 오른 145엔을 제시했다. 도요타의 경우 달러당 엔화값이 1엔 오를 경우 연간 영업이익이 500억엔 감소하는 구조다. 올해 엔화강세로 예상되는 이익 감소분은 7500억엔으로 예상됐다.
혼다는 1달러를 135엔으로 보고 있다. 달러뿐 아니라 유로 등에서도 엔화가 강세로 돌아갈 것을 가정해 4520억엔의 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스즈키의 경우 1달러당 140엔을 올해 환율로 보고 800억엔가량의 이익 감소를 예상했다. 스즈키를 이끄는 스즈키 도시히로 사장은 미국 관세에 대해 “세계적인 문제로 경기 후퇴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장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공급망 재편과 협력 등을 모색하고 나섰다.
도요타는 일본 생산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미국 수출용 자동차 해외 거점을 일부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4월에는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의 버펄로 엔진·트랜스액슬 공장에 8800만달러(약 1230억원)의 추가 투자를 발표했다. 이곳에서는 하이브리드 차량에 사용되는 부품인 트랜스액슬을 생산하는데 이를 확대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번 투자로 연간 생산능력은 48만대에서 60만 9000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 1분기 도요타의 미국 내 하이브리드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늘었다. 전체 도요타 차량 판매량의 절반을 넘을 정도로 하이브리드 차량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혼다는 캐나다와 일본에서 만들었던 대미 수출 제품 일부를 미국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또 인기 차종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CR-V의 생산을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혼다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앨리슨 공장에서 CR-V와 소형세단 시빅, 엔진 등을 생산하고 있다.
미베 도시히로 혼다 사장은 “관세의 영향을 줄이기 위한 생산 최적화 계획 중 하나”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실적 부진으로 2024회계연도에 6709억엔(약 6조 46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닛산은 공장을 17곳에서 10곳으로 줄이고, 전 세계 직원의 15%에 해당하는 2만명의 감원 계획을 밝혔다. 또 미국 관세에 대한 대응으로 SUV인 로그의 일본 생산 일부를 미국으로 이전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로그는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닛산의 주력차다. 현재 후쿠오카현 공장과 미국 내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닛산의 지난해 미국 판매량은 약 92만대인데, 이 가운데 16%인 15만대가량이 일본에서 수출됐다.
최근의 일본 자동차업계의 어려움에 대해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지나친 미국 의존이 이러한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고 분석했다.
닛케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 수요가 급감하면서 일본 차 업계 상당수가 큰 폭의 적자를 기록했다”며 “미국 시장에 이상이 감지되면 일본 차 업계는 감기에 걸리는 순서”라고 지적했다.
[이승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