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이병철 회장의 어록을 봤더니 사업보국(事業報國·기업활동으로 국가와 사회, 나아가 인류에 공헌하고 봉사하겠다)이란 말이 있더군요. 막연하지만 그런 사업을 해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울산시 북구 신천동 서호홀딩스 사옥에서 만난 이정협 회장은 “코스타밸리가 곧 관광의 보고(寶庫)이자 사업보국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일대(약 165만㎡)에 조성되는 ‘코스타밸리(Costa Valley) 리조트’는 골프장, 프리미엄 호텔, 콘도미니엄, 웰니스 센터, 펫 파크, 기업연수원, 상설공연장, 스마트 레이싱, 딥다이브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서는 대규모 해양관광 복합단지다. 현재 서호홀딩스의 자회사 ‘중원’과 용평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는 ‘모나용평’이 특수목적법인(SPC) ‘코스타밸리모나용평’을 공동 설립해 사업을 주관하고 있다. 내년에 착공돼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완공될 예정인 이 리조트는 탁월한 입지 선정부터 주목받고 있다. 이 회장은 “세계적인 장수마을의 자연환경에 뒤떨어지지 않으면서 골프와 온천까지 즐길 수 있다”며 “2026년에 포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POEX)가 준공되면 영일대, 송도, 호미곶 등과 연계한 체류형 관광벨트 구축이 시급한데, 코스타밸리가 동해안 관광의 새로운 핵심 거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Q 코스타밸리의 어떤 점이 보고(寶庫)인 겁니까.
A 지구촌을 대표하는 장수마을을 ‘블루존(Blue Zone)’이라고 부릅니다. 가장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의 거주지를 의미하죠. 일본의 오키나와,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코스타리카의 니코야, 그리스의 이카리아, 미국의 캘리포니아, 로마의 린다가 대표적인 블루존이에요. 그런데 코스타밸리 리조트가 이들 지역의 환경과 비슷해요. 제가 직접 가서 보고 배운 내용들인데, 장수마을의 기본 요건은 우선 바닷가여야 하고 둘째, 기후가 따뜻해야 합니다. 셋째, 500고지 이상의 산이 있어야 해요. 코스타밸리는 온천수도 나옵니다. 딱 그 조건을 갖추고 있지요.
Q 직접 확인한 블루존은 어떻던가요.
A 앞서 나열한 여섯 곳의 장수마을을 블루존6라고 하더군요. 주민들이 보통 100살에서 120살까지 사는, 자연적으로 생성된 마을들이었어요. 코스타밸리는 블루존의 조건을 만들어 가는 장수마을이 될 겁니다. 나이 육십 넘어 은퇴한 후의 휴식 공간, 건강하고 즐겁게 오래도록 살고 싶은 곳을 만들어 보자는 거죠. 지구촌의 일곱 번째 블루존이 될 겁니다.
Q 코스타밸리만의 특징이 있을 것 같습니다.
A 우선 온천수가 나옵니다. 이것만으로도 세계 어느 곳과 붙어도 자신 있습니다. 자연적으로 생성된 블루존이 아니니 새로운 기능이 겸비돼야죠. 네덜란드의 치매 안심마을인 호그벡에 갔더니 길바닥에 센서가 깔려 있더군요. 치매 환자가 넘어지면 센서로 확인해 바로 케어에 들어갑니다. 매일 기상하던 시간에 누워 있으면 또 바로 사람을 보내죠. 24시간 보호해주는 거예요. 그런 첨단 기능이 적용된 장수마을이 될 겁니다. 평생 열심히 살아온 분들이 은퇴 후 머물며 신체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는 곳이죠.
Q 듣는 것만으로도 엔도르핀이 생기는데요.
A 맞아요. 얼마 전에 만난 의사가 그러더군요. 요즘 사람들은 별일 없으면 100살까지 충분히 산다고. 몸에 좋은 음식 먹으면서 운동하면 육체는 그 조건을 갖추게 됩니다. 그런데 정신은 그렇지 않아요. 내가 즐거울 때 생기는 게 바로 엔도르핀이에요. 몸에 면역성을 일으키는 물질이죠. 높은 산에서 바다를 보며 기분이 아주 좋을 땐 10배 정도 더 생길 겁니다.
Q 리조트 내에 공연장도 기획됐다고 들었습니다.
A 즐거우려면 음악이 있어야죠. 이제 시설만 관광하는 시대는 끝났어요. 좋은 콘텐츠가 있어야 합니다. 핵심은 뭐가 됐든 문화 예술이에요. 현재 포항에 컨벤션센터를 짓고 있긴 하지만 코스타밸리가 자리한 남쪽 지역은 전무합니다. 랜드마크 역할을 할 복합 시설을 마련해 상설 전시나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습니다.
Q 모나용평과의 인연도 궁금합니다.
A 사업을 하면서 늘 학교에 다녔어요. 연세대에서 미래부동산개발 최고위과정에서 임학운 모나용평 대표를 만났습니다. 1기생 동기죠. 우리가 어떤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지 설명해 줬더니 직접 와서 보겠다고 하더군요. 현장에서 장수마을 한번 만들어 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곤 서너 달 후에 두말없이 MOU 맺고 바로 본계약을 진행했어요. 임 대표가 SPC 법인의 대표이사가 돼 관광 시설 운영을 진행하고, 전 인허가와 개발, 골프장 등 제게 맞는 꿈을 엮어가고 있습니다.
Q 사업을 구상한 게 2004년이라고 들었습니다.
A 사실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는데, 그때부터 관광보국에 대한 꿈이 있었어요. 그래서 20여 년 전에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일대의 땅 50만 평을 샀지요. 규모가 크다 보니 혼자선 안 되는 일들이 많더군요. 천천히 때를 기다렸습니다. 좋은 파트너를 찾았고,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김현철 부사장처럼 실력 있는 인재도 영입했습니다. 부동산 개발사업은 최고로 잘하는 사람과 최고로 잘하는 업체를 접목시키는 일이거든요. 우리가 직접 운영하기보다 가장 잘하는 기업과 협업하는 거죠. 모나용평과의 인연이 그렇습니다.
Q 최근 대형 관광 개발 사업의 진척이 부진한데, 코스타밸리는 올 초 포항시에서 내년 하반기에 첫 삽을 뜬다고 공표했더군요.
A 포항은 공업 도시에요. 오가는 근로자가 많습니다. 특히 해외에서 오는 이들도 많은데, 쉴 곳이 없어요. 현재 관광단지 법으로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습니다. 포항시에서도 고민이 많았던 걸로 알고 있어요. 현재 공사 중인 포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POEX)가 2026년 하반기에 완공되고 2027년에 개장되면 꽤 많은 국제행사가 유치될 겁니다. 해외 바이어들도 많이 들어올 텐데, 묵어갈 곳이 없으면 안 되잖아요. 마이스(MICI) 관광사업이 제대로 빛을 보기 위해선 관광인프라를 위한 리조트나 호텔이 꼭 필요합니다.
Q 코스타밸리의 위치가 절묘하단 의견도 있습니다.
A 장기면은 포항의 최남단이에요. 경주와 거의 붙어 있습니다. 사실 이 지역의 관광 거점은 포항보단 경주나 해운대, 울산이죠. 장기면은 포항에서도 고령화가 가장 빠르고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코스타밸리가 들어서면 부울경의 수요를 해결할 수 있는 관문이 되기 때문에 포항의 균형 발전에도 기여하게 될 겁니다. 또 마이스 산업의 관건은 체류형 관광이라고 하잖아요. 코스타밸리가 바로 키포인트가 될 겁니다.
Q 20여 년 전에 땅을 구매했으니 미래를 내다본 셈인데.
A 40년간 부동산 개발을 했어요. 저희가 잘하는 것 중 하나가 최적의 위치를 찾아 분석하는 겁니다. 저희 사옥이 자리한 이곳(울산 북구 신천동)도 상업지구에요. 저희가 직접 이 일대 4만 평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위치가 좋으면 토지는 주인을 찾게 마련입니다. 반면 아무리 좋은 토지라도 건물 지어놓고 수익이 안 난다면 필요 없는 땅이 되고 말죠. 저희는 좋은 위치의 토지를 마련하고, 어떤 아이템이든 최대한의 수익을 낼 수 있는 사람과 연결합니다. 그리곤 그 분야에 대해선 무조건 그 사람에게 다 맡겨놓죠. 그게 제 역할입니다.
Q 좋은 토지를 고르는 노하우라면.
A 제가 총각 때 공단 안에서 살았어요. 그때 금성사 총판을 했습니다. 그런데 살던 곳이 개발되면서 철거민이 됐어요. 집도 집이지만 장사하던 업체도 보상을 받아야 했는데, 감정사들이 도로에 접해 있던 제 친구 집과 그보다 훨씬 안쪽에 있던 저희 집의 보상금이 비슷하다는 거예요. 저희는 집도 세 채나 있고 논밭에 토지가 훨씬 컸거든요. 도대체 왜 보상금이 같냐고 물었더니 도로변에 있는 집은 드나들기 쉽고 장사하기도 쉬운데, 골짜기 집은 그에 비해 열 배나 크지만 농사 외엔 가치가 없다는 겁니다. 그때 가치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당시에 울산 전역이 개발되는 시기여서 보상금으로 집을 사고 또 팔다 보니 필요한 사람은 많고 물건은 한정돼 있을 때 값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알게 됐습니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깨우친거죠.
Q 그 원리도 궁금한데요.
A 지금 울산에선 태화강 주변이 가장 비싼 동네인데, 1980년대에는 기피 지역이었어요. 그 물이 더러워서 냄새가 심했거든요. 폐수에 공장 매연에, 그래서 더 이상 그 주변에 공장을 못 짓게 했어요. 그런데 당시 자동차산업이나 중공업이 커지니 협력업체들이 경주 외동 쪽으로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움직임을 보고 경주 모아 쪽에 공장 부지를 조성했지요. 제 고향이 경주인데, 당시 공장들이 대부분 울산과 경주의 경계선에 자리했어요. 평당 3만원에 주변 임야를 사서 부지 공사하는 데 7만원이 들었고, 처음엔 13만원에 분양했는데 위치가 좋은 땅은 값이 더 오르더군요. 공장을 내려는 이들은 많고 땅은 없으니 무조건 사려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때 얻은 경험이 제 재산이죠.
Q 경주에서 태어나 울산에서 생활하고 포항에서 꿈을 일군다? 해오름 동맹이 떠오르는 대목인데요.
A 초등학교 2학년 때 울산에 와서 40년을 살았어요. 울산 사람들 참 인심이 좋습니다. 활기차고 기후도 너무 좋아요. 울산이 개발될 당시 철거민에 공장 부지를 다지며 지금까지 지내왔으니 이곳에 사는 게 숙명이죠.(웃음) 포항에 첫 삽을 떴으니 해오름동맹이 전혀 틀린 건 아니네요. 코스타밸리 리조트가 바로 그 메가시티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Q 또 다른 사업 구상이 있을 것 같습니다.
A 한국에만 머물지 않고 글로벌로 범위를 넓혀 제2, 제3의 코스타밸리를 만들고 싶어요. 예를 들어 호텔이라면 가장 운영을 잘하는 호텔기업을, 건강이라면 최고의 건강기업과 협업해 관련 리조트를 만드는 거죠. 그런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안재형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7호 (2025년 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