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모든 산업을 멈춰 세우던 시기. 경기도 남양주 평내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전경훈 대표는 바쁜 일상 속 문득 한 가지 생각에 머물렀다고 한다.
“약국이라는 공간은 늘 아픈 사람들이 오는 곳이잖아요. 점심시간조차 없이 일하다 보니 한 끼 식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느껴졌습니다.”
그가 가장 그리워한 음식은 국밥이었다. 쉽게 구할 수 없지만, 한 번 제대로 먹으면 힘이 나는 음식. 전 대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국밥, 누가 따뜻하게 배달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계기로 국밥 프랜차이즈라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국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정성과 시간이 담긴 위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걸 배달로, 브랜드로,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해보고 싶었어요.”
그는 약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내려놓고 외식업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도전했다. 단순한 창업이 아닌, 전통 음식 국밥을 현대적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이를 통해 브랜드화하는 여정이었다. 그 결과 탄생한 브랜드가 바로 열정국밥이다.
열정국밥의 성장 속도는 주목할 만하다. 2020년 8월 첫 가게를 연 후 불과 4년 만에 전국 300여 개 매장을 확보했다. 월 100만 그릇 이상의 국밥이 판매되며, 매장당 월 평균 매출은 4000만 원을 상회한다.
이처럼 짧은 시간 내 폭발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한 핵심은 ‘표준화’다. 전 대표는 “가맹점의 맛이 들쭉날쭉한 이유는 본사의 책임”이라며, “복잡한 레시피북을 피하고 최대한 간결하고 정확하게 만드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열정국밥은 모든 조리 과정을 ‘한 장짜리 매뉴얼’로 정리했다. 복잡한 메뉴북 없이, 조리 경험이 없는 초보자도 교육 몇 시간 만에 음식을 내놓을 수 있도록 설계된 이 매뉴얼은 업계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다.
“요리 경험이 없는 분들도 쉽게 조리할 수 있어야 브랜드가 확장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보고 그 자리에서 국밥을 만들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국밥 조리에 필요한 모든 재료는 본사에서 통제된 공정을 거쳐 공급된다. 고기 슬라이스 두께, 육수 농도, 고명 배치 순서 등은 현장에서의 변수를 최대한 제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를 통해 전국 어디서든 동일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열정국밥은 전통 음식에 현대적 감성을 입힌 브랜드다. 매장 인테리어는 젊고 세련된 분위기로 구성되었고, 메뉴는 국밥이라는 본질을 유지하되 고객의 선택 폭을 넓혔다. 대표 메뉴로는 돼지국밥, 순대국밥, 열정해장국 외에 완자 고기전, 함박스테이크, 두부튀김 등 다양한 곁들임 음식이 있다.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대에 맞게 진화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젊은 소비자들이 국밥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도록 ‘재구성’한 거죠.”
이 같은 메뉴 구성은 단순히 ‘맛의 다양성’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전 대표는 “주 7일을 먹어도 질리지 않을 국밥집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열정국밥의 전략은 국밥을 단순히 해장 음식이나 어르신의 음식으로 제한하지 않고, 일상적 식사로 포지셔닝하는 데 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고객층의 변화다. 이용 고객 중 절반 이상이 10~29세이며, 여성 고객 비율은 55%에 달한다. 이는 전통 국밥집과는 확연히 다른 구조로, 젊은 세대를 공략한 브랜딩 전략이 유효했음을 의미한다.
소비자 피드백 또한 브랜드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매장별 고객의 반응은 본사로 전달되고, 이를 분석해 메뉴 개선과 서비스 보완에 반영한다. 이처럼 열정국밥은 감성적 슬로건보다는 구체적인 데이터 기반의 반영을 통해 브랜드를 발전시키고 있다.
열정국밥은 이제 국내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전 대표는 열정국밥의 목표를 ‘국밥계의 스타벅스’로 정의하며, 동일한 맛과 시스템으로 해외 고객에게도 ‘국밥의 정서’를 전달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첫 진출지는 미국과 일본이다. 미국 서부 지역은 배달 중심의 외식 구조가 확립돼 있어, 열정국밥은 소형 키친을 중심으로 한 배달 모델로 접근 중이다. 일본은 ‘규탄(牛湯)’이라는 현지화 브랜드를 준비해, 규동과 라멘 사이의 소비 수요를 공략할 계획이다.
전 대표는 “국밥은 국물이 있는 고기 요리입니다. 미국 소비자에게는 바비큐 스튜와 유사한 감각으로 다가갈 수 있고, 일본 소비자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감각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한 기술적 준비도 진행 중이다. 육수의 안정성 확보, 고기 품질 유지, 포장 시 열손실 방지 등을 위한 연구가 병행되며, 기존 배달 한계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다.
열정국밥은 단순한 외식 브랜드를 넘어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플랫폼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지난 5월 3일 송파구에서 열린 ‘송파 어린이 페스타’다. 열정국밥은 메인 후원사로 참여해 2만인분의 식사를 무료로 제공했다. 전 대표는 이에 대해 “아이들을 위한 축제는 많지만, 정작 아이들을 위한 진심 어린 프로그램은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저희가 준비한 한 끼가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이 되었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도 깊다. 본사 내 ‘열정갤러리’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매달 전시가 진행되며, 판매 수익은 전액 작가에게 돌아간다. 이는 브랜드의 성장과 함께 청년 예술인의 성장도 함께 도모하겠다는 대표의 뜻이 반영된 결과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사회공헌 활동은 이어지고 있다. 열정국밥은 펜싱 유망주 장비 후원, 스케이트보드 파크 기부 등을 통해 지역 청소년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향후에는 여자 풋살 리그 창단도 구상 중이다.
전경훈 대표는 약사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러나 그는 외식 산업에서도 약사의 사고방식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믿는다.
“국밥도 약처럼 정확해야 합니다. 정확한 조리법, 위생, 온도, 맛의 일관성. 이것이 유지돼야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조리 매뉴얼을 약국의 처방전처럼 다룬다. 수십 번의 실험을 통해 레시피를 간결하게 만들고, 누구나 실수 없이 조리할 수 있는 구조로 최적화했다. 또한 고객의 피드백은 환자의 증상처럼 분석된다. 이 같은 접근이 열정국밥의 차별성과 신뢰성을 동시에 확보하게 했다.
‘열정국밥’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전경훈 대표는 ‘열정’이라는 단어에 각별한 애착을 갖고 있다. 실제로 그는 ‘열정’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다수의 상표권을 확보하고 있다. 열정돈가스, 열정갤러리, 열정감자탕, 열정버거, 열정상회, 열정김밥, 열정카페 등 수십 개가 등록 혹은 출원 중이다.
이 상표권은 향후 브랜드 확장을 위한 중요한 기반이다. 동일한 가치 체계를 가진 외식 브랜드로 수직 계열화를 하거나, 문화·유통 분야로 확장할 때도 ‘열정’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브랜드 신뢰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전 대표는 말한다. “열정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뜨겁다는 뜻이 아닙니다. 정성, 책임, 노력, 그리고 성장의 가능성을 담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철학은 어떤 브랜드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특히 해외 진출 시에도 ‘YEOLJEONG’이라는 이름을 통일 브랜드로 활용할 계획이다. 스타벅스가 커피의 대명사가 되었듯, 열정이라는 단어가 한국 음식의 상징으로 자리잡기를 바라고 있다.
전경훈 대표의 다음 목표 중 하나는 2025년 가을 경주에서 열릴 APEC 정상회의 만찬에 국밥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국밥이 세계인을 위한 음식이 될 수 있다는 상징적인 기회”로 보고 있다.
현재 관련 기관과의 소통이 진행 중이며, 다양한 국밥 조리 시연과 품평회를 거쳐 공식 메뉴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하나의 신규 브랜드는 ‘독립문 감자탕’이다. 감자탕에 프렌치프라이를 곁들인 독창적인 구성은 열정국밥의 정체성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독립문은 회복과 도전의 상징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꼭 필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 상징을 감자탕이라는 대중 음식에 담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전경훈 대표의 국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철학이고, 도전이며, 하나의 문화다. 그는 브랜드를 통해 국밥의 정체성을 되살리고, 이를 기반으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며, 세계로 뻗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국밥은 정성입니다. 그리고 그 정성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박지훈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7호 (2025년 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