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4년 세법 개정 후속 시행령 개정안’이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연일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고 있는 사안은 해외주식을 기초자산으로 운용하는 토털 리턴(Total Return, 이하 TR)형 상장지수펀드(ETF)를 사실상 금지하는 조항이다.
7월 1일부터 새롭게 출시되는 해외 주식형 TR ETF는 운용이 원천 차단되고, 기존 상품 역시 자동재투자 구조를 바꿔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됐다.
이른바 ‘배당금 자동 재투자 ETF’라 불리는 TR형은 그동안 배당소득세를 매도 시점까지 유보하는 독특한 구조로 특히 연금계좌 투자자들로부터 폭넓은 호응을 받아왔다. 그러나 정부가 과세 형평성 문제를 근거로 ‘해외주식형 TR ETF 금지령’을 내리면서 관련 시장은 적잖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국내에 상장된 TR ETF 중 상당수가 미국, 유럽 등 해외 지수를 추종해 왔던 만큼 이들 상품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앞으로 어떤 방안을 모색해야 할지 고민에 휩싸였다. 또한 운용사들은 분배금 지급 방식을 바꾸거나, 아예 상품을 폐지·전환하는 고육지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TR(Total Return) ETF는 말 그대로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고 재투자함으로써 복리효과를 추구하는 상장지수펀드’다. 일반적인 주식형 ETF는 기초자산에서 배당이 발생하면 이를 분배금 형태로 주주에게 지급한다. 그런데 TR형은 분배금을 다시 펀드 내에 자동 편입해 추가 매수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배당소득세가 실현되지 않으므로, 투자자는 매도 시점 전까지 세금을 유보하는 이점이 생긴다.
이와 반대로 PR(Price Return)형 ETF는 기초지수의 ‘가격 변동’만 추종하며, 배당이 발생할 때마다 분배금을 지급한다. 이 경우 당장 현금이 들어오는 장점이 있지만, 지급 시마다 세금(배당소득세 15.4%)이 발생한다. 그래서 장기투자자 입장에서는 배당금을 ‘새로 주식에 재투자’해야 복리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수동으로 재투자를 반복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TR형은 이런 과정이 자동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특히 ‘세금이연 + 복리’라는 강력한 효과를 노린 개인연금·퇴직연금(IRP) 투자자에게 인기가 높았다. 별도의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재투자와 세금유예 효과를 한꺼번에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 측의 주된 논리는 “해외주식형 TR ETF가 배당소득세를 무기한 유보하는 구조여서 과세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해외주식에서 발생하는 배당금은 해당 연도에 소득세를 내야 한다. 그런데 TR 구조는 이 배당금을 모두 펀드 내부에서 ‘과세 없이’ 재투자하므로, 매매차익과 마찬가지로 최종 매도 시점에만 세금이 부과되게 된다.
게다가 현재 국내주식형 ETF의 경우 매매차익이 전면 비과세이지만(배당소득은 과세), 해외주식형·채권형·원자재형 등에 대해서는 매매차익에도 15.4% 세금이 붙는다. 그런데도 해외주식형 TR ETF는 배당소득까지 이연해 ‘실질적인 절세’를 누린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기획재정부는 해외주식형 TR ETF의 구조를 더는 인정하지 않고, “이자·배당 소득은 매년 한 번 이상 의무적으로 분배하라”는 취지의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국내주식형 TR ETF는 이번 제도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것이다. 정부는 “국내시장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고 있으나, 오히려 조세 형평성을 더 해친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채권·금 등 안전자산이나 해외주식에 투자하면서 이미 매매차익 과세로 손해를 보고 있는데, 굳이 해외 TR ETF만 규제하는 건 이중규제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규제에 따라 새롭게 출시되는 해외주식형 TR ETF는 완전히 금지되고, 기존에 있던 TR 상품도 운용 방식을 바꾸거나 상품 구조를 변경해야 한다. 정부는 시행 시점을 7월로 설정하면서, 이미 투자 중인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적응 기간을 부여했다는 입장이다. 기존 TR ETF 운용사들은 배당금을 펀드 내에 유보하지 못하도록 제도가 바뀐다.
그 결과 보유 종목에서 발생한 배당을 매년 최소 1회 이상 분배해야 하므로, 사실상 PR형과 다를 바 없는 ETF로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이름만 TR형인 상태로 계속 갈 수 없으니, 운용사들은 상품명 변경 및 투자설명서 개정 등을 거쳐야 할 가능성이 크다.
‘해외주식형 TR’ 구조 자체가 신규허가되지 않는다. 이로써 그간 복리 효과를 노렸던 투자자들은 해외주식형 TR 상품에 새로 편입할 수 없다. 이런 변화로 인해 TR만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인 ‘배당소득세 이연’이 사라지게 됐다.
매년 분배금이 지급되면 그에 대한 배당소득세는 즉시 납부해야 하므로, 배당소득이 일정 기준(이자·배당소득 연 2000만 원)을 넘을 경우 금융소득종합과세에 포함될 수 있다. 또한 건강보험료 산정 시에도 불리해질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TR ETF → PR ETF’로 구조가 바뀌면 수익률과 세금 전략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간 자동 재투자로 복리와 세금 유예를 노렸던 장기투자자, 특히 연금계좌를 활용해 소득공제를 받고 있던 투자자들은 갑작스러운 운용 방침 전환으로 고민에 빠지게 됐다.
우선 상품이 바뀐다고 해서 무조건 다 매도하고 새 상품으로 옮겨가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TR에서 PR로 전환되면 분배금을 주기적으로 받게 되는데, 그 배당금을 다시 ETF에 재투자할 수 있는 ‘자동 매매 서비스’를 일부 증권사들이 마련해두고 있다. 번거롭긴 하지만 수동으로라도 재투자할 수 있다면, 완전한 복리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지속적인 투자효과를 노릴 수 있다.
한편, TR 구조에서는 매도할 때 세금이 한꺼번에 부과되므로, 투자 기간을 길게 잡고 세금 납부를 뒤로 미루는 전략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매년 분배금 지급 시점마다 세금이 부과된다.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 여부를 따져봐야 하고, 특히 배당소득이 많아지면 건강보험료 인상 가능성도 커진다. 미리 분배금이 발생할 시점을 예측해 금융소득이 연 2000만 원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거나, 연금저축·IRP 등 절세 상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이 더욱 필요해 졌다.
자산운용사들은 TR ETF 폐지 대신 분기배당·반기배당 등 다른 방식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테면 ‘매 분기마다 소액의 분배금을 지급하고, 나머지는 일부 재투자’ 같은 새로운 구조를 시도할 수도 있다. 따라서 운용사의 공지와 향후 운용전략을 꼼꼼히 살펴본 뒤 갈아타거나 유지 여부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
정부가 해외주식형 TR ETF를 규제하면서, 일부 투자자들은 비슷한 복리효과와 세금이연 혜택을 그대로 누릴 수 있는 대안상품에 주목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ETN(상장지수증권)이다. ETN은 증권사가 기초지수를 따라가도록 수익을 보장하는 파생결합증권의 일종으로, 배당금을 펀드에 담는 구조가 아니라 “기초지수 변동분을 증권사가 약정대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실물 주식을 편입하는 ETF와 달리, 발행 증권사에 대한 신용위험이 존재한다. 즉, 증권사가 파산하면 ETN 가치는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다만 국내에서 ETN을 발행할 수 있는 증권사는 재무 안정성이 높은 대형사에 한정돼 있어 실제 위험도는 크지 않다는 평가다.
세금 측면에서는 해외 TR ETF와 유사하게, 매도 이전에 배당소득세가 발생하지 않는다. 복리효과를 그대로 구현할 수 있고, 과세이연 효과도 동일하게 누릴 수 있으며 만기가 존재한다(최대 20년). ETF가 이론상 영구 운용되는 것과 달리, ETN은 설정 시 정해진 만기가 도래하면 상환 절차를 밟는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ETN은 아직까지 국내에서 ETF만큼 대중화되지 않았지만, 이번 규제를 계기로 ‘해외주식형 TR 수익률’을 계속 추구하고 싶은 투자자들이 눈길을 줄 가능성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ISA나 퇴직연금 계좌에서 ETN 투자 가능 여부는 제한적이므로, 개인 별로 가입 중인 절세계좌에서 투자할 수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또 다른 대안은 최근 주목받고 있는 커버드콜(Covered Call) ETF다. 이 상품은 주식 현물을 보유하면서 동시에 해당 종목의 콜옵션을 매도해 프리미엄 수익을 챙기는 구조다. 수익 일부를 배당처럼 분배할 수 있어, 일정한 현금 흐름을 원하는 투자자에게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주가가 크게 오를 때 상승 이익이 제한되는 단점이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해외주식형 TR 구조가 막히면서, 상대적으로 국내주식형 TR ETF가 주목받을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국내시장 육성’을 이유로 국내주식형 TR ETF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 결과 국내주식형 TR ETF에서는 배당이 재투자돼 매도 시점 전까지 세금이 이연된다.
문제는 최근 글로벌 증시에서 미국 S&P500이나 나스닥 지수의 상승률이 한국 증시를 압도해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단순히 ‘TR이 허용된다’는 이유만으로 해외주식형에서 국내주식형으로 갈아타는 투자자가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배당소득에 대한 이중과세 문제와 과세체계가 복잡해지면서, 눈을 잠시 국내로 돌리는 투자자들도 나타나고 있다. 국내 대형주 중에는 글로벌 사업을 벌이면서도 꾸준한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기업이 적지 않고, 원화 자산으로 배당을 수령하면 과세 및 환전 리스크가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주식보다 낮은 성장률을 보이더라도 국내 주식형 TR ETF는 여전히 매매차익 비과세와 배당소득세 이연 효과를 함께 누리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상품”이라며 “향후 한국 증시가 부진에서 벗어나 반등한다면, 세제 상의 이점을 감안해볼 만하다”라고 조언했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