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출판가에선 “쇼펜하우어만 제목에 붙이면 기본은 팔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쇼펜하우어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가을 출간돼 철학 교양서로는 최초로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필두로 각종 쇼펜하우어 서적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덕분에 해가 바뀌어도 쇼펜하우어 열풍은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18~19세기를 살다간 쇼펜하우어(1788~1860년)가 왜 지금 한국 사회에 소환돼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걸까.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저자 강용수 씨는 인터뷰에서 “열심히 살았지만 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쇼펜하우어 철학은 가짜 위로 대신 삶의 지혜와 깨달음을 주고 자기 안에서 행복을 찾는 법을 알려준다”는 데서 이유를 찾았다. 여기에 더해, 지금 이 시점에서 그의 철학이 주목받는 이유에는 시대적인 필요도 크게 영향을 미쳤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체 가구수의 35%(2022년 기준)가 1인 가구인 시대, 사람들은 SNS가 일상인 삶을 산다. 소셜미디어 ‘좋아요’, 할인쿠폰, 확률형 아이템 등에 중독된 중독경제 비즈니스가 확산하면서, 자신이 관심 갖는 아이템을 자동으로 찾아주는 알고리즘과 끝없이 스크롤을 내려도 계속 새 콘텐츠가 나오는 ‘무한 스크롤링 기능’으로 점점 더 SNS에 중독돼 가고 있다. 김병규 교수가 주장한, 스마트폰에 중독된 신인류 ‘호모 아딕투스’의 탄생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디지털중독 실태를 보면, 하루 평균 스크린 타임(스마트폰, PC, TV 등 전자기기 화면 보는 시간)이 무려 6시간 37분(2023년)에 달한다. 미국 10대들은 한 가지 일에 65초 이상 집중하지 못한다는 연구조사도 있다.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는 이런 트렌드를 분석해 사람들이 집중력 저하라는 사회적 유행병 시대를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민해지고 불안해한다. 하루 3시간 이상 SNS를 즐기는 청소년은 우울증이나 불안 증상을 겪을 가능성이 SNS를 하지 않는 이들보다 두 배가량 높게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SNS에 중독된 세상은 주목받기 위해 튀려고 혈안인 ‘관종’과 따라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 같이 느끼는 ‘포모족’을 양산한다. 얼마 전 국내 유튜브에선 이쑤시개를 튀겨 먹는 영상까지 유행하기도 했다. 온갖 엽기적인 것들이 SNS에 업로드되면서 시체놀이하다 죽고, 촬영하다 죽고, 범죄에까지 노출되는 병폐를 낳고 있다.
쇼펜하우어 열풍은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남에게 보이는 모습만 중시하는 삶의 행태에 반기를 들고, 단단한 자기중심을 갖기 위한 지침으로써 쇼펜하우어를 찾는 것이다.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등 그의 조언은 인생이 장밋빛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체험한 40대는 물론이고 아직 부유(浮遊)의 삶을 사는 MZ세대들에게도 ‘팩트 폭격’의 울림을 준다.
그가 설파한 부와 고독, 행복론의 인생철학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김주영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2호 (2024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