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밸류업 프로그램의 힘으로 만년 저평가주에서 우량주로 변신한 은행주들이 다시 한번 지지부진한 박스권에 접어들었다. 배당 매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코스피보다 더 하락하면서 외국인들도 떠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 틈을 타서 증권주가 금융주 중에 또다른 대안 밸류업주로 떠오르고 있다.
은행주는 은행법 개정안 패스트트랙 논의 등 규제 우려가 이어지고,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지속되는 가운데 건설사들과 홈플러스 등 기업들의 연이은 기업회생 신청에 따라 건전성 우려 또한 부각되면서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은행주에 최근 떠오르고 있는 이슈는 기업부실 발생이다. 대출기업의 워크아웃 때문에 충당금 적립 규모가 커지면 순이익이 감소하고 결국 주주환원 규모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양호한 2024년 실적으로 주주환원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BNK금융의 경우 삼정기업 워크아웃 이슈가 불거지면서 2월 마지막주 주가가 한주간 5.9% 하락하기도 했다. 통상 워크아웃 시 담보 처분에 따른 회수에는 상당기간이 소요될 수 있어 건전성 지표 악화 및 소폭의 충당금 적립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다 달러당 1400원대에서 떨어지지 않는 달러화 가치 역시 주주환원 여력을 줄이고 있다. 강달러가 계속되면 위험가중자산(RWA)이 늘어난다. RWA가 높아지면 CET1 비율이 낮아져 주주환원 여력이 축소되는 효과가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은행주는 이익 수준보다 주주환원의 여력이라고 할 수 있는 CET1비율이 주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왔다. 계속 시장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실적을 내더라도 CET1 비율이 다소 하락하면 주가가 조정받으면서 은행주의 주가 변동성도 커진 상황이다.
특히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 당시엔 지배주주순이익보다 위험가중자산(RWA) 관리 능력이 금융주 주가에 더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왔다. CET1 비율은 자본 측면에서 얼마만큼 위험 흡수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의미한다.
RWA에 비해 CET1(보통주·자본잉여금·이익잉여금·기타포괄손익누계액 등이 포함)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는 의미다. RWA는 은행 자산을 유형별로 위험 정도를 감안해 다시 계산한 것인데, 원화값 하락에 따라 외화표시대출이 늘어나면 RWA가 높아진다. 업계 최대 수준의 CET1 비율을 유지하던 KB금융은 이익 방어를 위해 자산 성장을 지속하면서 지난해 4분기 RWA가 전 분기 대비 2.9% 늘어났다. 이로 인해 CET1 비율이 대폭 하락하면서 올 상반기 자사주 매입·소각 규모는 시장 기대치였던 1조원의 절반 수준인 5200억원에 그쳤다. 정태준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주주환원개선은 RWA 증가율을 목표 수준 이내로 통제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KB금융은 실적발표 전날인 2월 5일엔 주가가 9만 1000원이었으나 CET1비율과 주주환원 수준을 발표하면서 주가가 하루만에 67% 하락했다. 3월 14일 수준 주가는 7만 8300원으로 한번 꺾인 주주환원에 대한 기대감이 쉽게 회복되지 못하고 주가에 부담을 주고 있다.
이 때문에 CET1비율, 은행법 패스트트랙, 대손충당금 적립 우려가 있는 은행주 대신 안정적인 주가 흐름을 보면 증권주가 낫다는 의견도 나온다.
은행업종에 비해 증권업종은 환율이나 경기침체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과 같은 국면에선 증권주의 매력도가 더 올라간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대부분 분기배당을 택하고 있는 은행주에 비해 증권주는 연배당이 대부분이다. 또한 대부분 배당 및 자사주 소각 측면에서 주주환원의 수준이 상향평준화되어 있는 은행주에 비해 증권주는 주주환원 수준이 회사마다 큰 차이가 난다. 주주환원율 및 주주환원 수익률을 보고 선택할 수 있는 회사는 그리 많지 않다. 다만 과거 금리인상기 증권업종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대해 대거 대손충당금을 쌓으면서 손실을 털었기 때문에 경기침체 강도가 더 악화되어도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것이 증권주의 장점이다. 특히 실물경제 침체와 달리 증권 거래대금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 보다 안정적인 실적을 기반으로 하는 주주환원도가능할 수 있다.
지난해 국내증시의 거래대금 감소를 해외증시 거래대금 증가가 일부 상쇄했는데 올해는 국내 증시 거래대금까지 증가하고 있다.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2024 년 7월부터 거래대금이 6개월간 하락세를 지속해왔으나, 2025 년 1월과 2월에는 각각 코스피가 5%, 1% 늘었다. 급반등에 성공한 코스닥은 각각 7%, 2%로 더 큰 폭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국내 증시 거래대금은 올해 1월·2월은 각각 16조 6000억원, 21조 2000억원을 기록하며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는 평균 17조 1000억원이었다. 안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 거래대금 현황에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외국인과 기관의 코스닥 거래 비중이 높아졌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코스닥 시장은 개인들의 전유물로 인식되어왔으나, 외국인과 기관의 진입이 꾸준히 활발해지고 있다”며 “코스닥 상장 기업 중 시가총액이 외국인·기관이 매매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커진 기업들의 등장이 많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증시의 변동성은 커진 상황이지만 그래도 증권사 브로커리지 수수료가 견조할 것으로 예상되는 근거는 안정적인 수준으로 유지되는 투자자예탁금이다. 코로나 19 발생 이전 투자자예탁금은 30조원 정도에 불과했으나, 이후 개인투자자의 증시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면서 75조원까지 증가하는 모습이었다. 2022 년 및 2024 년 하반기 증시 조정 장세에도 투자자예탁금은 45조원 이상으로, 과거 대비 50% 이상 증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분기 평균 거래대금과 신용공여 잔고는 동반 상승 중이다. 특히 나스닥이 연초부터 부진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 와중에도 해외 거래대금은 전년 동기 대비 1.2% 늘어났다. 해외 브로커리지 수수료율이 국내에 비해 3배 가량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 1분기에도 증권회사 전반의 브로커리지 이익 상승이 전망된다. 국내주식의 거래대금도 회복 추세라 신용공여를 통한 증권사 이자수익 증가도 가능하다. 신용공여 잔고는 연초 이후 9% 증가했다.
특히 증권사들은 이미 2023년에 비해 2024년 늘어난 순이익을 통해 배당금을 크게 늘렸다.NH투자증권은 배당성향이 48%, 삼성증권은 배당성향이 35%까지 올라왔다. 배당수익률을 볼 때도 증권주들은 4~7%대 배당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으며 우선주에 투자했을 때는 배당수익률이 더 높아진다.
현재 주주환원 수익률을 감안했을 때 증권사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회사는 NH투자증권이다. 2024년 4분기 약 400억원의 충당금을 적립했음도 불구하고 배당수익률은 6.8%, 주주환원수익률은 8.2%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19일 기업가치제고계획을 발표하였으며, 지속가능한 ROE 12% 확보 및 예측가능한 주주환원 정책으로 PBR 1배를 목표로 설정했다. 지난해 3월 7일 작년에 이어 올해도 추가적으로 500억원의 자기주식 매입 및 소각을 진행할 것을 공시함에 따라 주주환원의 예측가능성이 높아졌다. 배당수익률만 감안할 때는 우선주가 더 매력적이다.
삼성증권은 안정적인 실적이 장점이다. 시장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 IB의 비중이 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대형증권사에 비해서 낮고 리테일, 자산관리(WM)의 비중이 높아 안정적인 이익과 배당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선택지다.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현재 35% 수준의주주환원성향을 중장기 50%까지 확대할 계획임을 밝혔다. 배당수익률로 따지면 7% 후반대로 대형 증권사 중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미래에셋증권은 2021년 이후 금리 상승기에 보유 중인 부동산 관련 손실이 반영되며 실적과 주가가 부진했지만 금리 하락 구간에 본격적으로 진입함에 따라 향후 실적 개선이 예상된다. 추가적으로 2024~2026년 주주환원성향 35% 이상 및 보통주 최소 1500만주 이상 소각 계획을 밝힌 바 주주환원수익률이 높아졌다. 특히 미래에셋우선주는 높은 배당수익률을 자랑한다. 3월 14일 미래에셋증권 주가가 9550원인 가운데 미래에셋증권우는 4690원, 미래에셋증권2우B는 4250원으로 주가가 낮아 배당수익률은 높다. 다만 3월 27일 배당기준일 이후 연간 배당이라 다음 배당을 받기까지 오래 기다려야하는 단점이 있다.
공매도 재개 역시 외국인 거래대금의 증가 기대를 키우고 있다. 공매도 금지 조치 해제 시 이에 기인한 즉각적인 거래대금 증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우나, 증시 효율성 향상에 따라 외국인투자자의 자금 유입은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사례를 보았을 때 공매도 금지 조치 해제 이후에는 국내 주식시장의 외국인 보유 비중은 빠르게 상승했는데 공매도를 활용한 헤지수단 확보로 롱포지션을 잡는 부담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가 출범하며 거래대금이 늘자 증권회사 실적이 수혜를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4거래일간 대체거래소에서도 거래된 9개 종목의 합산 거래대금이 같은 종목의 한국거래소 합산 거래대금의 30%에 달했기 때문이다. 10일 정태준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점진적인 종목 확대를 거쳐 2분기부터 800개 종목으로 대체거래소 종목이 늘어나면 증권사 입장에선 전체 거래대금이 30%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증권사 모두 대체거래소에 참여하고 대체거래소 가능종목 800개는 전체 거래대금의 95%에 달한다. 이 때문에 대체거래소를 통해 증권사 브로커리지 수수료 수입 전체가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넥스트레이드 효과를 감안해 올해 증권사의 지배주주순이익 추정치를 상향했다. 상향된 폭은 키움증권이 6.5%, NH투자증권은 5.3%다. 정 연구원은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견조한 상승세를 기록 중이라 증권사 입장에서는 트레이딩 수익, 브로커리지 회복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제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