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김태희, 류현진·배지현, 아이유·이종석, 블랙핑크 제니, 브래드 피트, 마크 저커버그….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여행과 레저에 관심이 높은 이들이라면 가장 먼저 아만이란 단어를 떠올렸을 것이다. 산스크리트어로 평화를 뜻하는 ‘아만(Aman)’은 세계적인 프리미엄 리조트 브랜드다. 앞서 언급한 유명 인사들은 아만정키(Aman Junkie·아만 리조트의 충성고객)로 알려진 이들. 여타 광고나 그 흔한 인플루언서 마케팅도 하지 않는 이곳의 단골들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인사다. 고 다이애나비부터 빌 게이츠, 데이비드 베컴, 킴 카다시안까지 정·재계, 연예계, 스포츠 스타를 아우르는 목록을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다. 과연 아만의 무엇이 이들을 아만정키로 이끄는 것일까.
아만은 1988년 호스피털리티 사업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인도네시아의 아드리안 제차가 태국 푸껫에 ‘아만푸리(Amanpuri)’를 개장하며 이름을 알렸다. 2014년 아만정키 중 한 명인 러시아의 사업가 블라디슬라프 도로닌이 아만 전체를 인수하며 사업영역을 확장, 현재 20개국에 35개의 호텔과 리조트를 운영 중이다. 블라디슬라프 도로닌 회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만은 친구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평화롭다”며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안식처가 돼주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위치, 건축 디자인, 진심 어린 환대가 바로 아만의 가장 큰 무기”라고 말한다. 그중 아만 리조트의 입지는 가장 큰 경쟁력이다.
아만은 압도적인 자연 풍광과 역사적인 가치가 높은 곳을 중심으로 리조트의 입지를 선택한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라오스 루앙프라방의 ‘아만타카(Amantaka)’,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불교 사원 중 하나이자 유네스코 7대 불가사의인 보로부드르 사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인도네시아의 ‘아만지워(Amanjiwo)’, 유네스코 자연유산인 누이추아국립공원 안에 자리한 베트남의 ‘아만노이(Amanoi)’, 부탄의 해발 2000m가 넘는 고산 지역 5곳에 12년 동안 지어진 ‘아만코라(Amankora)’ 등 총 35개의 시설 중 15개가 유네스코 보호 지역이나 그 근방에 자리해 있다. 탁월한 입지에 지어진 건물의 디자인도 업계의 화두가 됐다. 미니멀리즘이 중심이 된 아만의 리조트는 해당 지역의 특색을 100% 반영한다. 건물 자체의 장식 대신 주변의 풍광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해 각 리조트마다 차별화된 매력을 담아냈다. 일례로 객실마다 창을 크게 키워 굳이 힘들이지 않아도 창밖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에 세계적인 건축가 장 미셸 게티, 켈리 힐, 에드 터틀 등이 이름을 올렸다.
탁월한 시설의 화룡점정은 특별한 서비스. 아만정키들이 가장 찬사를 보내는 분야다. 아만은 럭셔리 호텔 업계에 버틀러(개인집사) 서비스를 소개한 브랜드로 알려졌다. 실제로 일부 시설에선 객실당 3~4명의 집사와 셰프, 운전기사가 24시간 상주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기에 투숙객을 위한 맞춤 서비스도 진행된다. 리조트에 도착하면 전 직원이 투숙객의 이름을 알고 있고 리셉션에 들르지 않아도 객실에서 체크인·아웃이 가능하다. VVIP의 까다로운 요구 조건도 별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신선한 회를 먹고 싶다는 고객 요청에 헬리콥터로 공수해 온다거나 거동이 불편한 손님을 위해 별도의 요청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이 밤새워 해변에 경사로를 만든 건 이미 유명한 일화. 리조트 인근 산 정상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싶다면 미리 헬리콥터를 대기해두고, 머무는 도시에서 구하기 힘든 음식을 먹고 싶다면 직원이 직접 비행기를 타고 가서라도 원산지에서 식재료를 구해온다. 중국 항저우의 ‘아만파윤’에선 리조트 내부에 자리한 사찰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는 고객의 요구에 지배인이 열 번 이상 수도승을 찾아가 4개월을 기다린 끝에 겨우 승낙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굳이 아만에 머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행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부자로 살고싶다는 소망을 말했는데 적어도 아만에선 뭇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지낼 수 있다”며 “도처에 카메라가 있는 SNS 시대를 사는 셀럽들에겐 아마도 가장 큰 호사일 것”이라고 말했다. 아만 측의 설명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아만 측은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중 절대적인 것이 프라이빗한 스테이를 즐길 수 있다는 부분과 서비스”라고 전했다. 아만의 리조트는 여타 글로벌 리조트나 호텔에 비해 객실 수가 현저히 적다. 덕분에 사적인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높다. 필리핀의 ‘아만풀로’의 경우 섬 전체가 리조트다. 개인 전용기로 이동해야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다. 1988년 1월에 완공된 아만의 첫 리조트 ‘아만푸리’는 모든 객실이 독채로 지어졌다. 30여 년이 지난 현재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는 풀빌라의 원조쯤 되는 시설이다. 개장 당시의 객실 규모는 40개. 500개의 객실이 리조트의 성공 방정식이던 시대에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시도였다. 실제로 아만 리조트와 호텔에서 객실당 투숙객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은 타 브랜드 시설보다 월등히 큰 편이다. 특히 리조트는 공용 시설을 방문하지 않으면 다른 일행과 마주칠 일이 없다.
2014년 아만을 인수한 블라디슬라프 도로닌 회장은 이후 접근성이 높은 호텔 타입으로 도심에서의 수직적 확장을 진행 중이다. 그 결과물이 2020년 론칭한 자매 브랜드 ‘자누(Janu)’다. 아만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투숙할 수 있는 호텔로 올 3월 ‘자누 도쿄’의 개장을 앞두고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영혼’을 의미하는 자누는 사회적 웰빙, 그러니까 ‘회복하는 여행’을 화두로 내세우고 있다. 첫 번째 호텔 자누 도쿄는 일본의 새로운 랜드마크인 아자부다이힐스에 자리했다. 약 4000㎡의 웰니스 공간을 갖추고 있다. 아만은 올해 태국의 ‘아만 나이 렛 방콕’과 멕시코 로스카보스의 ‘아만바리’, 2025년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자누 알룰라’와 미국의 ‘아만 마이애미 비치’, 2026년에 ‘아만 비버리 힐스’와 호화 요트인 ‘아만 앳 씨’ 등 여러 시설의 개장을 앞두고 있다. 2027년에는 자누 호텔의 한국 개장도 예정돼 있다. “아직 입지는 미정”이란 게 아만 측의 공식적인 입장이지만 업계에선 서울 개장 이후 상황에 따라 부산에도 진출하는 방안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월 초 국내에 홍보대행사를 선정하고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한 아만은 10월엔 한국인이 많이 찾는 리조트 4곳(아만풀로, 아만푸리, 아만노이, 아만킬라)의 총 지배인이 방한해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팀 빌핑거아만풀로 총지배인은 “프라이빗한 경험과 자연환경 속에서 즐기는 다채로운 체험이 아만의 강점”이라며 “같은 나라 투숙객 여러 명이 묵어도 게스트의 특성에 따라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다르기 때문에 맞춤형 경험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아만 측은 “한국 고객 대부분이 아만이 제공하는 독보적인 현지 액티비티와 미식, 웰니스 프로그램 등을 재방문 이유로 꼽았다”며 “특히 디지털 디톡스, 마인드풀 명상 등을 즐기는 프로그램의 예약률이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아만은 최근 리조트와 호텔 등 호스피털리티 사업 외에도 라이프스타일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2018년 ‘아만 스킨케어’를 시작으로 2020년 건강보조제 ‘스바(Sva)’와 ‘아만 파인 프래그런스’, 2021년엔 기성복 컬렉션 ‘더 에센셜 바이 아만’, 지난해 ‘아만 에센셜 스킨’ 등을 출시했다. 올해엔 첫 가죽 컬렉션 출시도 예고돼 있다.
그런가 하면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초고가의 숙박료가 접근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례로 블랙핑크의 제니가 묵었다고 알려진 미국 ‘아만기리’의 비수기 숙박료는 약 500만원. 성수기에는 1000만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백 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는 여타 리조트와 달리 50개 안팎인 아만 리조트의 기본 숙박료는 200만원부터 규모에 따라 3000만원 이상인 곳도 여러 곳이다. 글로벌 호텔 브랜드의 한 임원은 “VIP를 겨낭한 고가 전략과 그에 걸맞은 입지와 서비스는 여전히 주목할 만한 전략”이라며 “지속적인 서비스를 위한 필수조건인 매출과 수익 또한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고 전했다.
[안재형 기자 · 사진 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