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정치적으로 민주당 텃밭으로 불리는 곳이다. 민주당 간판을 걸고 나온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다. 최근 뉴욕시장에 누가 나갈 것인지를 놓고 펼쳐진 민주당 시장 경선에서 엄청난 이변이 일어났다. 인도계 무슬림인 조란 맘다니(33)가 정치 거물인 전 뉴욕주지사 앤드루 쿠오모를 꺾고 1위를 기록한 것이다. 맘다니는 1991년 우간다에서 태어났다. 7살 때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했다. 어머니 미라 나이르는 인도 출신 영화감독이다.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바 있다. 아버지는 컬럼비아대 교수다. 맘다니는 뉴욕 맨해튼 사립학교와 브롱스 과학고를 거쳐 보든 칼리지를 졸업했다. 이후 2018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고, 2020년 뉴욕주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맘다니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정치 입문 초기부터 스스로를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규정했다. 공공주택 확대, 택시기사 부채 탕감, 버스 요금 무료화, 부자증세 등이 그를 설명하는 공약들이다. 뉴욕은 한때 기회의 땅이라 불렸지만 팬데믹 이후 양극화가 심화됐다. 이로 인해 ‘뉴욕 정치판을 한번 갈아엎어야 한다’는 열망이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 빠르게 퍼졌다. 맘다니는 이 점을 예리하게 파고 들었다. 기성 정치인을 기득권으로 규정하며 민주당 경선 승리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예상치 못한 맘다니의 부상에 월가의 긴장도는 높아지고 있다. 맘다니의 당선이 뉴욕 경제를 위협하고, 최악의 경우 재정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헤지펀드 퍼싱스퀘어캐피탈매니지먼트를 이끄는 빌 애크먼 CEO는 빠르게 행동에 나섰다. 그는 “맘다니의 부자 증세가 뉴욕시의 세수 기반을 붕괴시키고 자산가들은 뉴욕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경우 뉴욕은 급속히 슬럼화될 가능성이 높아 맘다니를 막아야 도시를 살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급기야 그는 중도 성향의 대항마를 찾기 위해 수백만 달러의 개인 자산을 선거자금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 월가 트레이더는 “맘다니의 렌트비 동결 정책은 서민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집주인들이 수리를 포기하고 결국 도심 인프라가 낙후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반대의 시선도 있다. 맘다니의 부상은 기득권 위주의 뉴욕 정치에 ‘한 방’을 날리고 싶어하는 중산층 이하 표심이 집결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한 뉴욕 시민은 “양극화가 극대화된 뉴욕에서는 ‘개천에서 용 나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며 “맘다니가 뉴욕을 다시 ‘기회의 땅’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이 그를 통해 기득권을 심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맘다니가 시장에 오를 가능성이 가장 높다. 7월 16일(현지시간) 기준 베팅업체 폴리마켓은 그의 당선 가능성을 71%로 전망 중이다. 뉴욕 맨해튼 돈줄을 틀어쥔 월가의 반대에도 그에 대한 지지세가 상당히 견고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전히 변수는 존재한다. ‘맘다니만은 막아야 한다’는 중도 표심이 제 3후보에게 결집하는 시나리오다. 최근 현직 뉴욕시장 에릭 애덤스의 선거자금 모금 액수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는 민주당 시장 예비선거 이후 17일 동안 선거자금 150만달러 이상을 모금했다. 이는 맘다니가 같은 기간 거둬들인 금액의 두 배에 달한다. 선거가 진행될수록 ‘반(反) 맘다니’ 표심이 애덤스로 집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애덤스는 민주당 소속으로 지난 선거에서 뉴욕시장에 당선됐지만 부패 스캔들에 연루되며 이번 시장 경선을 포기했다. 지난 4월 그에 대한 연방 기소가 최종 기각됐지만 경선 등판 대신 무소속 출마를 선택했다. 경선에서 맘다니에게 패배한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 역시 선거 출마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쿠오모의 뉴욕시장 출마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맘다니를 “100% 공산주의자 미치광이”라며 “공산주의 광인이 뉴욕을 파괴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비난해왔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공화당이 자체 후보를 포기하고 애덤스 혹은 쿠오모를 우회 지원하는 식으로 맘다니의 당선을 저지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실제 미국 매체 액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쿠오모 지지 발언을 놓고 공화당과 일부 민주당 주류 세력을 하나로 묶는 ‘반 맘다니’ 연대의 확대를 알리는 신호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맘다니 대항 후보 간 단일화가 현실화될지도 관심사다. 쿠오모는 9월 초까지 반 맘다니 후보군 중 자신이 여론조사 지지율 선두를 달리지 않을 경우 후보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뜻을 밝혀놓은 상황이다. 보수 성향의 민주당 지지층이 맘다니를 최종 선택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하킴 제프리스는 “맘다니 후보가 유대인을 향한 적대적 의식을 갖고 있는지 해명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한 바 있다. 이는 과거 맘다니가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에 여러 차례 참석한 것과 맥이 닿아 있다. 그는 반유대적 발언을 내건 시위에도 얼굴을 내밀며 논란의 한가운데 섰다. 캐시 호컬 뉴욕 주지사를 비롯한 민주당 주류 인사들이 맘다니에 대한 공식 지지를 유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당 내 유대계 지지 세력을 자극해 역효과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깔린 것이다. 특히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그가 종종 사용해온 ‘인티파다를 전 세계로(Globalize the Intifada)’라는 문구다. 이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표현이지만 유대인에 대한 폭력을 부추기는 구호로 간주될 수 있다. 그는 오랫동안 이 표현에 문제가 없다는 뜻을 고수해왔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척 슈머 역시 이 구호는 마땅히 규탄받아야 한다고 날을 세운다. 그 역시 맘다니에 대한 공식 지지를 선언하지 않은 상황이다. 논란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맘다니는 7월 15일(현지시간) 은행과 로펌 기업이 모인 뉴욕시 파트너십이 주최한 비공개 회의에서 문구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 구호가 가자 지구를 점령한 이스라엘에 대한 항의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이 표현을 자제하도록 노력하겠지만 사상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는 “나는 반유대주의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민주당 유권자 사이에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은 모양새다. 이 행사에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슈워츠먼 블랙스톤 CEO, 래리 핑크 블랙록 CEO,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 등 대부분 금융계 인사는 참석하지 않은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맘다니는 “내 목표는 기업을 뉴욕에서 몰아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뉴욕 금융 거물들은 여전히 그를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다이먼 CEO는 최근 맘다니를 두고 “그는 사회주의자라기보다 마르크스 주의자에 가깝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맘다니가 현실과 동떨어진 이념적 허상을 밀어붙이며 민주당원들을 호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맘다니가 선거에서 최종 당선될 경우 그는 최초의 무슬림 뉴욕 시장이 된다. 한 뉴욕 시민은 “무슬림에 거부감이 있는 민주당 기독교인의 반대도 맘다니 입장에서는 넘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홍장원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