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85, 둘째 날 84, 셋째 날 90, 나흘째 95.”
언젠가 지인이 보여준 연속 나흘간 골프 스코어다. 잘 나가더니 사흘째부터 죽을 쑤었다며 한숨을 토했다.
“아니 갈수록 스윙 감각이 올라 점수가 좋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지 못한 스코어가 나오니 마지막 날엔 백을 들고 나오고 싶더라고.”
당시 강릉과 서울을 오가는 골프 일정에 설 는데 정작 나온 스코어에 속이 많이 상했다고 말했다. 골프장 난이도에 차이가 있고 날씨도 변수여서 크게 실망할 필요까진 없다면서 친구를 달랬다.
“사실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프로선수에게도 연속 나흘 경기는 매우 벅찬 일정이죠. 아마추어는 중간중간 샷을 가다듬고 쉬면서 철저하게 몸을 관리해야죠.”
박영민 한국체대 골프부 지도교수는 프로선수도 4일간 경기를 위해선 철저하게 몸과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며칠 전부터 연습은 물론 일상을 완전 경기 모드로 세팅한다는 것. 프로선수는 당일 경기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가까운 연습장에서 원인을 찾아 해결한다. 그리고 당일 우드가 불만족스러웠다고 해서 우드만 연습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대신 경기 도중 흡족했던 클럽 위주로 번갈아 연습하면 저절로 우드 스윙이 돌아온다는 것. 전체를 조화시키면서 우회적으로 스윙을 바로잡는 방식이다.
경기 전에는 대회 코스에서 연습 라운드를 통해 코스를 파악해 매니지먼트 전략을 짜고 음식도 조절하며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린다. 들뜬 마음에 소풍 가듯 클럽과 가방을 싸서 들고 나가는 아마추어와는 확연히 다르다.
친구는 먼저 강릉 소재 골프장에서 1박2일 골프투어를 진행했다. 첫날 오후 라운드를 마치고 바닷가 횟집에서 음주를 곁들여 저녁 식사를 했다고 한다.
골프텔로 돌아와 함께 놀다가 자정께 잠을 청했다. 이튿날 아침 7시 30분에 둘째 날 라운드를 돌았다. 첫날 코스를 익힌 덕분인지 스코어를 1타 줄였다.
이틀 일정을 마치고 바로 차를 몰고 밤 8시께 귀경해 다음날 아침 8시 중반 여주 소재 골프장에서 다른 동반자와 사흘째 골프를 했다. 노곤한 몸을 싣고 이른 아침부터 운전대를 잡고 골프장으로 향했다.
날씨마저 쌀쌀해져 두껍게 옷을 입고 클럽을 휘두르자 스윙 감각이 확 떨어졌다. 백 스윙과 피니시 과정에서 몸통을 제대로 회전시키지 못해 타구 방향이 불규칙하고 임팩트도 약했다. 평소 티샷을 하면 줄자처럼 선을 그리며 나가던 공이 연속 슬라이스를 내기 시작했다. 의식적으로 슬라이스를 잡으려다 이번엔 팔로만 스윙을 하면서 악성 훅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평소 단단한 80대 초반 고수가 보기 플레이어로 급전직하해 우울해졌다. 결국 나흘째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이날 골프장은 포천이었다. 전신이 쑤시고 감기 기운마저 돌았다. 다행히 동반자 차에 카풀을 했지만 아침 9시 티오프 시간이 너무 버거웠다.
그날 스코어 카드를 필자에게 보여줬다. OB(Out of bounds)와 페널티 구역(해저드)으로 각각 3개의 공을 날려보냈다. 그린에서도 3퍼트 투성이었다.
그해 최악의 스코어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체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몸살로 드러눕고 말았다.
“주위에서 보면 동계훈련을 갔다 온 아마추어들은 대부분 무너져 옵니다. 얘기를 들어보면 어쩌면 망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박 교수는 비행기를 타거나 장거리 운전으로 누적된 피로에다 매일 27~45홀을 강행하면 체력이 못 버틴다고 지적한다. 프로선수도 동계훈련 때는 하루 18홀이 아닌 대개 9홀만 소화한다고 한다.
흔히 아마추어들이 동계훈련이라며 며칠간 동남아나 남부지역 골프투어를 다녀온 후 골프가 망가지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는 것. 보통 밤 늦게 인천공항을 출발해 새벽에 도착한 후 아침 먹고 바로 골프장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3박5일이나 4박6일 골프 투어 등이 바로 이런 케이스다. 비용을 줄이려고 비행기에서 잠을 자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샷을 점검하지 않고 연일 골프만 하다 보니 미스 샷이 누적되고 체력도 급격히 저하된다.
동남아 골프 투어의 경우 하루 27홀이나 36홀, 심지어 당일 무제한 라운드도 있다. 골프 욕심이 앞서 무리하게 라운드를 추가한다. 골프를 끝내고 저녁 음주에다 마사지까지 더하면 다잡아야 할 멘털에 탈이 생긴다. 매일 체력을 소모하니 갈수록 스코어가 망가질 수밖에 없다.
“골프 투어를 해도 하루 18홀을 소화하는 게 적당합니다. 무리하게 욕심내지 말고 주위 명소도 구경하고 맛있는 식사로 심신을 안정시키는 게 좋죠.”
박 교수에 따르면 골프에다 음주, 게임(포커 등)까지 하는 극한 일정을 하다 보면 스코어가 망가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골프투어가 아니라 철인 경기나 다름없다.
아마추어가 동계훈련을 체계적으로 하려면 교습가나 프로선수가 낀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절제된 분위기에서 레슨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얼마전 사흘 연속 골프를 한 적이 있었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은 비슷했고 마지막 날은 6타를 더 쳤다. 체력에 한계를 느꼈다. “여건이 허락하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골프가 가장 좋은 것 같아. 기다리면서 설렘이 있고 진지하게 골프에 임하기 때문이지.”
일주일에 3번 정도 골프장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지인이 한 말이다. 젊은 날엔 골프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 강행군을 했는데 세월엔 장사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더구나 성수기엔 골프 한 번 하는 비용이 30만~40만원에 달한다. 비용, 체력, 골프의 소중함을 감안하면 골프를 많이 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적은 횟수라도 애정과 정성을 들이는 골프가 소중하다. 설렘과 간절함, 진지함은 골프가 주는 행복이다.
“신이 인간을 부러워하는 단 하나는 죽는다는 것이다. 영원불멸은 너무나 권태롭고 소중함을 망각하게 한다.”
어느 철학자가 말했다. 중독된 무한 골프보다 애정 어린 한 번의 골프가 더 소중하고 값지다.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
매일경제신문에서 스포츠레저부장으로 근무하며 골프와 연을 맺었다. <주말골퍼 10타 줄이기>를 펴내 많은 호응을 얻었다. 매경LUXMEN과 매일경제 프리미엄 뉴스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