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반 여성 이가연 씨는 최근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몇 년 전만 해도 풍성했던 앞머리가 눈에 띄게 듬성듬성해지면서 친구들보다 이마가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탈모가 시작된 건 아닌지 걱정된 이씨는 유전자 분석 업체에 검사를 의뢰했다. 검체를 보내고 열흘 후 업체로부터 ‘전체 한국인이 100명이라면 그중 87등이다. 1등에 가까울수록 원형 탈모가 생길 가능성이 낮다’는 내용의 결과지를 받았다. 이씨는 곧장 집에 있는 샴푸를 약산성으로 바꾸고 피부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탈모 인구가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 2021년 ‘병적 탈모증’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25만명에 육박했다. ‘병적 탈모’는 피부염이나 흉터로 인한 탈모로,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다. 탈모 치료 인구 중 30대 비중은 22.6%로 가장 높았고, 이어 40대(21.7%), 50대(16.5%) 순이었다. 특히 20대 탈모 치료 인구도 전체의 20%를 차지해 2030 탈모 치료 인구는 전체의 40% 이상에 육박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원인 없이 머리카락이 빠지는 경우다. 보통 노화나 유전이 원인인데, 보험 적용도 안 되고 병원을 찾지도 않기 때문에 숫자 파악이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증상이 심하지 않거나 잠재 가능성이 큰 모든 탈모인의 숫자를 전부 합치면 1000만 명에 달한다는 추정이 나온다. 국민 5명 중 1명꼴이다. 이같은 상황은 엠브레인이 올 초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 헤어 관리 및 탈모 관련 인식 조사’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조사결과, 탈모 증상 경험자 303명 중 20대가 14.1%, 30대 23.4%, 40대 29.0%, 50대 33.3%로 집계됐다. 또한 20대 응답자의 17.2%, 30대의 28.4%, 40대의 35.2%, 50대의 40.4%가 탈모를 경험한 것으로 답변했다. 특히 탈모 비경험자인 697명(69.7%) 중 307명(44%)은 ‘탈모를 겪어본 적 없지만, 예방에 대한 관심은 높다’고 답했다. 탈모 예방 의지는 20대 41.4%, 30대 33.1%, 40대 31.7%, 50대 28.4%로, 저연령층일수록 높았다. 이처럼 중·장년층에 집중됐던 탈모 치료가 2030으로 확대되며 탈모 관련 산업이 주목을 받고 있다. 탈모 고민과 두피 관리를 시작하는 평균 연령이 점점 낮아지면서 탈모 및 두피 관리 시장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KB증권은 현재 국내 탈모 시장을 4조원 규모로 추산하고, 내년 전세계 탈모 관련 시장 규모는 약 4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국내 헬스케어·제약바이오 업계에서도 탈모 치료는 물론 예방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탈모 치료제의 주축 성분은 ‘피나스테리드’와 ‘두타스테리드’다. 글로벌 제약사와 몇몇 국내 제약사는 두 성분을 중심으로 한 탈모 치료제를 개발하거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시중엔 오리지널 탈모약인 프로페시아, 아보다트뿐 아니라 특허 만료로 인한 제네릭(복제약)도 많다. 물론 이들 제네릭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가격대도 다양하다. 하지만 오리지널 약가의 ‘절반’ 수준이라는 점이 장점이다.
최근에는 두 성분의 기존 제형과 다른 새로운 제형의 탈모 치료제가 환자들 눈길을 끌고 있는 추세다. 제약 업계 관계자는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탈모 환자들 역시 치료제 효과나 복용 시 편의성을 중심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 제약사들이 이를 감안하고 있다”면서 “먹는 약 대신 뿌리는 스프레이나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맞으면 되는 주사제 등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승인받은 약으로는 바르는 미녹시딜이 있다. 미녹시딜은 원래 궤양 치료제로 개발됐다. 연구 과정 중 혈관 확장 효과가 나타나서 고혈압 치료제로 FDA(미국식품의약국) 승인을 받게 됐다.
탈모는 병원 방문 전 자가 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아 주로 헤어제품을 중심으로 수요가 형성되고 있었다. 특히 탈모 케어 샴푸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샴푸를 중심으로 한 탈모 화장품 제품은 제형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경로로 판매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샴푸 시장에서는 탈모 케어 샴푸의 비중이 2015년 31.2%에서 2020년 42.7%로 증가했다. 소비자의 경우 최근 젊은 탈모증 환자 수가 증가하면서 20~30대와 여성의 비율이 높아졌다. 낮아진 연령층과 여성비율 증가는 탈모를 예방하고자 하는 잠재적 고객층의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기능성 샴푸 시장이 확대되고 있지만 위해성, 허위·과장광고 논란도 가열될 전망이다. 지난해 시민단체인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유통되는 53개 탈모증상 완화 기능성 샴푸의 광고 내용을 조사한 결과 모든 제품이 기능성 화장품 범위를 벗어나 허위·과대광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식약처는 지난 2017년부터 ‘탈모 샴푸(탈모증상 완화 기능성 샴푸)’를 의약외품·의약품이 아닌 기능성 화장품으로 분류한다. 탈모 샴푸는 식약처에 고시된 탈모 방지 기능성 성분(▲나이아신아마이드 ▲덱스판테놀 ▲비오틴 ▲엘-멘톨 ▲살리실릭애씨드 등)이 일정 함량 이상 들어가고, 제품 규격 및 제조 과정이 규정에 적합할 경우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최근 MZ세대가 탈모 관리 시장에 대거 진입하면서, 유전자 분석 등 세분화된 탈모 솔루션 시장도 커지는 추세다. 업계에 따르면 마크로젠이나 뱅크샐러드를 비롯한 관련 기업들의 유전자 검사 서비스에 대한 젊은 층 수요가 급증했다.
국내에서 DTC(Direct To Consumer) 사업에 힘쓰고 있는 곳은 마크로젠이다. 유전체 분석 1위 업체인 마크로젠은 ‘젠톡’을 출시했다. 젠톡은 탈모부터 피부 노화, 불면증, 카페인 대사까지 69종의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제공한다. 마크로젠 관계자는 “기본 패키지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검사 항목은 탈모”라며 “특히 MZ세대 참여도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중년 남성에게 흔한 특징으로 여겨졌던 탈모가 MZ세대의 고민거리로 떠오르면서 많은 청년 고객이 탈모 유전자 검사를 받아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탈모를 일으키는 유전인자 10종 중 몇 개가 내 몸 안에 있는지, 모발 굵기가 얇아지거나 새치가 생길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도 미리 파악하고 선제 대응할 수 있다. 또 다른 업체로 금융핀테크 회사인 뱅크샐러드의 유전자검사 서비스에서도 이 같은 추세가 잘 드러난다. 뱅크샐러드 관계자는 “최근 들어 탈모 검사에 대한 후기가 부쩍 많아졌는데 전체 검사자 중 20대가 55.9%, 30대가 35.9%로 90% 이상”이라고 말했다.
2021년 론칭한 뱅크샐러드는 남성형·원형 탈모, 모발 굵기, 새치 등 4종의 유전형질 정보를 분석해준다. 25만명 이상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메디젠의 ‘라이프진’도 DTC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김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