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죽신(얼어죽어도 신축)’ 열풍에 그동안 서울 아파트 분양권 인기는 대단했다. 당분간 서울 내 공급 가뭄이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에 분양권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일반 분양가보다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수억원 이상 높은 가격에 사고 팔리는 경우도 심심찮았다.
한동안 파죽지세이던 분양권 시장 강세는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방안’ (6·27 부동산 대책)‘ 이후 주춤하고 있다. 고강도 대출 규제와 전세가율 하락 등이 맞물리며 분양받은 아파트 잔금을 마련하기 어려워진 일부 사람들이 분양권을 처분하는 모습이다. 청약 경쟁률이 수백 대 1에 달했던 서울 마포구 등 인기지역 아파트에서도 ‘무피(분양가와 같은 가격)’를 종종 볼 수 있을 정도다. 부동산 시장 관망세가 짙어지면서 분양권 거래 시장이 얼어붙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직접 거주할 집을 찾는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싼 값에 매물을 취득할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금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분양권 시장을 유의 깊게 봐야 할 때다. 마포·왕십리·광운대역세권 등 서울 인기지역에서도 나올 예정인 분양권 물량들을 노려볼 만하다.
분양권은 아파트 분양에 청약해 당첨으로 취득한 권리를 말한다. 초기 계약금 10~20%를 납부한 뒤 중도금과 잔금을 대출 등을 통해 납부하는 경우가 많다. 투기과열지구인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는 분양권 전매제한이 3년, 과밀억제권역(서울·인천·경기 일부)은 1년이 적용된다.
분양권과 비슷한 개념인 입주권은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기존 토지 소유자가 신축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권리다. 분양권은 분양가격이 공개된 만큼 비교적 단순하게 거래할 수 있지만 입주권은 거래 시 조합원 권리 등을 확인해야 하는 만큼 가격 비교가 까다로운 편이다. 아무래도 분양권이 입주권보다는 접근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얘기다.
서울 분양권 거래량은 대부분 물량의 규제지역이 지정돼 있던 2021년과 2022년에는 각각 22건, 17건에 불과했다. 투기과열지구는 5~10년, 조정대상지역은 6개월~3년가량 분양권 전매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이후 규제지역이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만으로 한정되면서 서울 분양권 거래량은 2023년 224건, 지난해 445건 등으로 늘었다.
한동안 분양권은 수억대 웃돈(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됐다. 올 3월 입주를 시작한 광진구 자양동 ‘롯데캐슬 이스트폴’은 지난달 11일 전용 84㎡ 분양권이 21억원(37층)에 전매됐다. 2023년 8월 최초 공급 당시 같은 면적이 14억 5000만원 선에 분양된 점을 고려하면 3년여 만에 6억 5000만원의 웃돈이 붙은 셈이다. KT가 보유했던 옛 전화국 부지와 서울동부지방법원, 동부지방검찰청 부지를 자양1구역으로 묶어 재개발한 이곳은 2호선 구의역 초역세권이 장점인 단지다.
지난해 4월 전매 제한이 풀린 서울 동대문구 ‘휘경자이 디센시아’(1806가구) 분양권은 한때 3억원까지 프리미엄(웃돈)이 붙었다.
그러나 요즘 분양권 시장은 과거와는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정부의 고강도 대출 규제 등으로 ‘무피’ 또는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 매물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북구 미아동 ‘엘리프 미아역 2단지’ 전용면적 59㎡ 분양권은 이달 분양가와 비슷한 7억 6000만원에 팔렸다. 구로구 오류동 ‘천왕역 모아엘가 트레뷰’ 전용 84㎡ 분양권은 기존 분양가(10억 9000만원)보다 낮은 10억 2000만원 수준에 매도됐다.
마포, 송파 등 인기 주거지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7월 10일부터 전매가 가능해진 마포구 공덕동 ‘마포자이 힐스테이트라첼스’에서는 그달에만 분양권이 11건 거래됐다. 이 중 전용 59㎡ 분양권이 각각 13억 7733만원(10층), 14억 5900만원(3층)에 주인이 바뀌었다.
이 면적 분양가가 13억 4000만원대였던 점을 고려하면 시장 기대만큼 높은 웃돈이 붙지 않았다. 같은 단지에서 전용 84㎡ 분양권 하나는 무피(웃돈 없음)인 17억 2900만원(4층)에 거래돼 화제를 모았다. 이 단지는 지난해 7월 청약 경쟁률(전용 84㎡ 기준)이 평균 276.3 대 1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끈 곳이다.
송파구 송파동의 ‘잠실더샵루벤’ 전용 106㎡도 분양가(19억 3000만원)와 비슷한 가격인 19억 6000만원에 손바뀜했다. 가락동 ‘더샵송파 루미스타’ 전용 99㎡ 분양권은 최근 22억원 수준에 거래돼 분양가보다 2000만원 높은 가격에 팔렸다.
그럼에도 분양권 시장에서 관심을 떼기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다. 올 연말까지 수도권 청약 인기 단지의 분양권이 대거 시장에 풀리기 때문이다. 1000가구를 웃도는 랜드마크 단지가 많다는 점도 특징이다. 공급 감소와 공사비 상승 속에 합리적인 가격에 분양권을 사는 것이 내 집 마련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특히 12월에 나올 물량이 많아 관심을 가질 만하다. 3일 영등포구 당산동 ‘e편한세상당산리버파크(550가구)’, 4일 노원구 월계동 ‘서울원아이파크(1856가구)’, 13일 강서구 등촌동 ‘힐스테이트등촌역(543가구)’, 17일 성북구 삼선동2가 ‘창경궁롯데캐슬시그니처(1223가구)’ 전매제한이 한꺼번에 풀린다. e편한세상당산리버파크는 2·5호선이 지나는 영등포구청역이 도보권로, 2·9호선 당산역과도 인접했다. 지난 6월 전용 84㎡ 입주권이 16억 5416만원에 손바뀜했다. 서울원아이파크는 HDC현대산업개발의 역점 사업인 광운대역세권 개발중 주거 공간으로, 주거 시설과 함께 호텔, 쇼핑몰, 오피스 등이 들어선다. 삼선 5구역을 재개발하는 창경궁롯데캐슬시그니처에서는 최근 전용 84㎡ 입주권이 12억 4340만원에 매물로 나와 있다. 일반적으로 조합원 입주권이 로열층·향이 많은 만큼, 분양권은 이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나올 가능성이 있다.
경기도에서는 성남 중원구 ‘해링턴스퀘어신흥역’(1972가구)이 10월 분양권이 풀린다.
과천에서도 10월부터 ‘프레스티어 자이’(1445가구) 분양권을 사고팔 수 있다. 전용 59㎡ 분양가가 16억원, 84㎡는 22억원으로 높았지만 1순위 청약 때 172가구 모집에 1만 93명(59대1)이 몰렸다. 지하철 4호선 정부과천청사역 근처에 있다.
인천 연수구 ‘래미안 송도역 센트리폴 3단지’(1024가구)와 미추홀구 ‘시티오씨엘 6단지’(1734가구)는 10월, 안양 동안구 ‘평촌자이 퍼스니티’(2737가구)는 12월에 전매 제한이 풀린다.
전매제한이 이미 풀렸지만 입주시점까지 한참 남은 단지의 분양권도 여전히 관심을 가질 만하다. 올 10월 입주를 시작하는 이문아이파크자이(4169가구)는 사업지 규모가 15만 7942㎡로 이문·휘경뉴타운 가운데 가장 크다. 1호선 외대앞역 역세권이고, 구역 북쪽에선 신이문역도 걸어서 5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어서 입지 측면으로도 근처 단지 중에선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입주를 앞두고 잔금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이 분양권을 급하게 처분할 수도 있어 시세를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마포자이힐스테이트라첼스도 인기 단지다. 청약 1순위 경쟁률이 164 대 1에 달했던 곳이다. 평지인 데다 지하철 5호선 애오개역과 가깝다. 성북구 장위동 ‘푸르지오 라디우스 파크’(1637가구)도 7월 23일 분양권 거래가 시작됐다. 지하철 1·6호선 석계역 역세권이다. 전용 59㎡ 분양가가 9억원대, 84㎡는 11억원대였다. 바로 옆 ‘장위자이 레디언트’(2840가구)가 올해 3월 입주했지만 2년 의무 거주에 묶여 입주권만 거래되고 있다. 9월 10일 전매가 가능해진 성동구 행당동 ‘라체르보푸르지오써밋(958가구)’ 도 기대주다. 행당7구역을 재개발한 이 단지는 지난 7월 입주를 시작했다. 지하철 2·5호선과 분당선·경의중앙선을 이용할 수 있는 왕십리역이 가깝다. 전용 59㎡ 입주권이 지난 6월 20억원(14층)에 실거래된 바 있다.
서울·수도권 아파트 분양권이 여전히 유효한 ‘내 집 마련 수단’이긴 하지만 자금 계획만큼은 철저히 따지는 것이 좋다. 6·27 대출 규제의 영향력이 상당한 만큼 무턱대고 접근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최초 분양가와 주변 기축 아파트 시세 등과 비교해 웃돈(프리미엄)의 적정성 여부도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주택 구입 목적 주담대 한도 6억원 제한 규제는 6월 27일까지 입주자모집공고가 난 단지 청약 당첨자의 경우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기공고된 사업장이어도 규제 시행 이후 전매된 경우엔 규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방침을 세웠다. 즉 6월 27일 이후 분양권을 전매하면 잔금 대출을 위한 주담대 한도가 6억원으로 제한되는 것이다. 여기에 추가로 이미 분양한 단지여도 6월 27일까지 전세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경우 세입자에게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이 금지된다. 즉 세입자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려던 분양 계약자나 조합원의 계획에 큰 차질이 빚어지는 셈이다.
만일 운 좋게 세입자를 구해도 실거주를 위해 집주인이 들어가려 할 때 문제가 또 생긴다. 6월 28일 이후 이뤄진 임대차 계약은 전세반환대출이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택담보대출’로 분류돼 대출 상한이 1억원으로 묶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분양권 전매를 고려하던 매수 희망자 입장에서는 잔금 대출 한도가 6억원으로 제한되고, 세입자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기도 어려운 데다, 전세를 주더라도 추후 본인이 실거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금 여력이 없다면 자금 조달계획을 짜기가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게다가 분양권 시장은 지난해 11월 기획재정부가 ‘손피거래’ 해석 방식을 변경하며 한 차례 타격을 입은 바 있다. 손피거래란 ‘매도인 손에 남는 프리미엄’의 약칭으로, 매도인이 내야 할 양도세를 매수인이 대신 부담하는 조건의 거래를 뜻한다.
현행 세법상 분양권은 1년 미만 보유 시 77%(지방세 포함), 1년 이상 보유 시 66%의 양도세가 부과된다. 만약 12억원에 취득한 분양권 가격이 17억원으로 올랐다면 차익 5억원에 대해 66% 세율이 붙어 기본 공제를 제외하더라도 3억 2800만원을 양도세로 내야 한다.
매도자의 큰 부담을 줄이기 위해 등장한 것이 매수인이 양도세까지 부담하는 손피거래다. 기재부는 지난해 11월 전까지 매수자가 부담하는 양도세를 최초 1회만 양도가액에 합산하는 것을 허용했다. 즉 앞선 사례에서 매도인의 차익에 매수자가 최초 1회 부담하는 양도세(3억 2800만원)를 더해 양도세액을 계산한 것이다. 이 경우 매수인이 부담해야 할 총 양도세액은 5억 4500만원이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이후 기재부는 해석을 바꿔 매수자가 부담하는 양도 소득세 전부를 양도가액에 합산하도록 했다. 즉 기존 양도 차익 5억원에 1차분 계산을 통해 나온 5억 4500만원을 더해 2차분 양도세액을 계산하고, 이런 과정을 반복해 최종 수렴되는 금액으로 양도세액을 계산한다. 이렇게 되면 최종 양도세액은 9억 6600만원이 된다. 기존 해석에 따른 매수자 부담액(5억 4500만원) 대비 2배 가까이 부담액이 늘어나게 된다. 즉 매수자 입장에서 분양권의 매력이 크게 떨어지는 셈이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분양권은 중도금 대출 등을 승계받아야 하는데 매도인과 매수인 모두 대출 제약이 많기 때문에 분양권 가격조정이 당분간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동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