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찾는 찾는 해외 VIP의 여행 패턴이 달라지고 있다. K-뷰티 콘텐츠 촬영을 위해, 글로벌 비즈니스 미팅을 위해, 강남 클리닉에서 시술 후 회복하기 위해 방문하는 이들이 늘면서 럭셔리 호텔의 프레지덴셜 스위트도 함께 진화하고 있다. 1박에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이 공간은 이제 단순한 숙소가 아니다. 인플루언서의 촬영장이 되고, 수행원들과 업무를 처리하는 프라이빗 오피스가 되며, 시술 후 케어를 받는 웰니스 공간으로 변모 중이다.
특히 의료관광 분야의 성장이 눈에 띈다. 야놀자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외국인 환자 117만명을 유치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23년 외국인 환자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9.7%가 “한국 문화가 의료여행 결정에 영향을 주었다”고 답했다. K-컬처에 대한 호감이 K-뷰티, K-헬스로 확장되며 복합적인 여행 패턴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닌 구조적 변화다. 과거 한국을 찾는 해외 부유층은 대부분 비즈니스 출장이나 관광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목적 자체가 다층화됐다. 성형외과나 피부과 시술을 받으면서 동시에 K-콘텐츠 성지를 순례하고, 미쉐린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며 SNS 콘텐츠를 제작한다. 럭셔리 호텔들은 이 복합적인 니즈에 대응해 객실의 기능과 서비스를 재정의하고 있다.
파크하얏트 호텔 최고층에 내리면 푹신한 카펫, 아늑한 조명이 비추는 복도 곳곳에 한국 전통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복도를 따라 도착한 프레지덴셜 스위트에는 한옥 문틀 문양과 백자 도자기 등 전통적 요소로 장식되어 있다. VIP가 방문했을 때, 한국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한 세심한 배려다.
김유리 과장은 VIP가 체크인하기 일주일 전부터 방문 목적(여행, 비즈니스 등)과 필요 사항을 파악한다. 기념일 여부나 한국 첫 방문 시 궁금한 점 등을 체크인 전부터 체크아웃까지 밀착 관리한다. 일반 고객은 부서별로 응대 채널이 나뉘지만, VIP 고객은 김 과장을 통해 모든 서비스가 맞춤으로 제공된다. 그는 파크하얏트의 “Luxury is personal(럭셔리는 개인 맞춤형 경험)”이라는 슬로건을 강조하며, 고객들을 가족처럼 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뷰티 브랜드 CEO의 요청에 ‘글램 테이블(메이크업 전용 테이블)’을 준비한 적 있다”라며, “촬영을 위해 거실 창 햇빛이 잘드는 곳에 반사광을 고려해 흰색 테이블보를 세팅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비즈니스나 브랜드 행사를 위해 투숙하는 경우, 객실은 단순한 숙소가 아니라 완벽한 업무 및 촬영 공간으로 변모한다. 특히 최근 ‘왕홍(网红)’으로 불리는 중국 인플루언서들이 K-뷰티와 문화 체험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경우 촬영 구도를 위해 가구 세팅을 바꿔놓는 등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강남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성형외과, 피부과 진료나 종합 건강검진을 위해 오시는 분들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그중 중동에서 방문한 VIP 고객을 위해 ‘쌀 미음’을 준비한 사례를 전했다. 건강검진 내시경 후 소화가 어려운 고객에게 ‘속이 편안한 한국식 회복식’이라고 설명하며 미음을 권했더니, 섬세한 서비스에 감동해 3월 재방문할 의사를 밝혔다. 이와 같은 따뜻함, 휴먼터치와 같은 보이지 않는 ‘호스피탈리티’가 파크하얏트가 내세우는 럭셔리인 셈이다.
김 과장은 16년간 VIP를 응대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으로 진정성을 꼽았다. “고객이 요청하기 전에 필요를 파악하는 것이 진정한 럭셔리 서비스”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거리 비행 후 도착하는 고객에게는 미리 가습기를 세팅하고, 시차 적응에 도움이 되는 허브티를 준비한다. 의료 시술 일정이 있는 고객에게는 부드러운 식사 메뉴를 사전에 조율해 둔다. 이러한 섬세함이 쌓여 파크하얏트를 재방문하는 VIP 비율이 높다고 그는 덧붙였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29층 펜트하우스 최고층에 있는 프레지덴셜 스위트는 한국 청자의 푸른색과 흙빛이 어우러진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413㎡(125평 규모)에 넓은 리빙룸과 다이닝룸, 메인 침실, 데스크 공간, 개별 옷장, 스팀 샤워와 사우나, 트리트먼트 룸까지 구비되어 있다. 킹 베드 2개, 더블 베드 2개, 유아용 침대 1개가 설치돼 있어 성인 6명에 어린이 2명까지 함께 숙박할 수 있다. 10인용 다이닝 테이블을 갖췄으며, 주방 기구및 필요한 용품이 모두 갖춰진 부엌이 있다. 리빙룸에는 체코 최고급 유리 공예 및 조명 브랜드 ‘라스빗(Lasvit)’의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시선을 압도한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현대 사진작가 킴 보스케(Kim Boske)의 작품부터 이우환 화백의 작품 등 국내외 작가들의 예술작품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다. 객실 자체가 하나의 갤러리인 셈이다. 포시즌스 서울은 개관 당시부터 ‘아트 호텔’을 표방하며 700점 이상의 예술작품을 호텔 곳곳에 배치했다. 프레지덴셜 스위트는 그 정점에 있는 공간으로, 미적 감각이 뛰어난 글로벌 셀럽들이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4년 한국을 방문한 래퍼 예(Ye, 구 카니에 웨스트)도 포시즌스 프레지덴셜 스위트에서 5박 6일간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래퍼이면서 탁월한 미적 감각으로 다수의 패션 브랜드와 협업하고, 거주하는 집 건축과 인테리어 전반에 참여해온 인물이다. 당시 예가 입국하기 전 리츠칼튼·포시즌스·아만 중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을 내한 조건으로 내세웠다고 알려져 화제가 된 바 있다. 공간에 대한 안목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그가 포시즌스를 선택한 것은 이 호텔의 디자인 철학을 방증한다.
철저한 사생활 관리로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을 예약한 VIP는 룸에서 체크인을 진행하며, 전담 버틀러(집사)가 배정되어 24시간 모든 서비스를 버틀러를 통해 받을 수 있다. 버틀러 서비스는 단순한 룸서비스 이상의 개념이다. 레스토랑 예약, 차량 수배, 쇼핑 동행, 통역 연결까지 체류 기간 동안의 모든 요청을 한 사람이 일관되게 처리한다. 고객 입장에서는 매번 새로운 담당자에게 상황을 설명할 필요 없이 자신의 취향과 일정을 이해하는 전담 인력과 소통할 수 있다.
더불어 이그제큐티브 클럽 라운지 이용 혜택을 제공하며, 이곳에서 전용 조식, 애프터눈 티, 저녁 음료 및 다과 등 하루 종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라운지는 일반 투숙객과 분리된 공간으로, 비즈니스 미팅이나 조용한 업무 처리에도 활용된다.
조선 팰리스 서울은 ‘현대 한국의 황금기’를 테마로 한 아르데코 스타일의 최상급 럭셔리 호텔이다. 메리어트 럭셔리 컬렉션과 제휴를 맺고 있으며, 강남구 역삼동 센터필드에 위치해 비즈니스와 의료관광 목적으로 온 VIP 모두에게 접근성이 좋다. 삼성동 코엑스, 테헤란로 오피스 밀집 지역과 가깝고, 압구정·청담의 프리미엄 클리닉까지 차로 10분 내외 거리다. 호텔 곳곳에는 국내외 현대 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투숙 자체가 하나의 아트 컬렉션 경험이 된다.
최상위 객실인 마스터스 스위트는 다이닝과 서재형 업무공간을 겸비한 구조로, 장기 체류하며 업무를 병행하는 VIP에게 적합하다. 메인 거실과 별도의 소파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수행원과의 미팅이나 프라이빗한 비즈니스 논의가 가능하다. 대형 업무용 데스크와 화상회의에 적합한 조명 환경을 갖추고 있어, 해외 본사와 실시간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글로벌 기업 임원들이 선호한다.
마스터스 스위트 투숙객은 전용 그랜드 리셉션에서 체크인하며, 일반 로비를 거치지 않아 프라이버시가 철저히 보장된다. 파노라마 시티뷰의 웰니스 클럽에서 피트니스, 수영장, 사우나를 이용할 수 있고, 9미터 층고의 1914 라운지 앤 바에서는 라이브 공연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다. ‘1914’라는 이름은 조선호텔이 처음 문을 연 해를 기념한 것으로, 브랜드의 역사성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공간이다.
웨스틴 조선 서울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호텔이다. 서울 중구 소공동, 시청과 명동 사이에 위치해 각국 대사관, 정부부처, 고궁이 인접해 있다. 오랜 세월 국빈과 외교 사절을 맞아온 만큼, 안정적이고 품격 있는 서비스가 이 호텔의 정체성이다. 화려한 트렌드를 좇기보다 묵직한 신뢰감으로 승부하는 곳이다.
총 462개 객실 중 40개가 스위트 객실이며, 그 정점에 프레지덴셜 스위트가 있다. 90평이 넘는 공간에 집무실, 거실, 다이닝 공간이 분리되어 있고, 일반 객실의 두 배에 달하는 층고가 공간감을 극대화한다. 화려함보다는 절제된 클래식 무드로, 조용히 업무를 보거나 격식 있는 미팅을 진행하려는 VIP에게 적합하다. 강남의 현대적 럭셔리와는 결이 다른, 서울 도심 헤리티지의 품격을 원하는 이들이 찾는 공간이다.
웨스틴 조선의 강점은 입지뿐 아니라 축적된 노하우에 있다. 100년간 국빈급 고객을 응대해온 경험은 매뉴얼로 정리되지 않는 암묵적 역량이다. 의전 동선 관리, 보안 협조, 특수 식이 요청 대응 등 민감한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이 검증되어 있다. 새롭고 화려한 것을 원하는 VIP에게는 강남의 호텔들이, 검증된 안정감을 원하는 VIP에게는 웨스틴 조선이 선택지가 된다.
[박수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5호 (2026년 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