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남권의 강남’으로 불리는 여의도에서 아파트 재건축이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5월 19일 대교아파트가 처음으로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은 데 이어 시범·목화아파트는 시공사 선정 절차에 돌입했다. 현재 15개 단지가 재건축을 추진 중인데, 완료 시 1만3000여 가구에 달하는 ‘미니 신도시’가 탄생할 전망이다.
여의도는 초기 도시개발계획 단계부터 원조 ‘한강변’ 도심지였다. 1960년대 서울도시계획이 한창일 당시부터 여의도는 영동지구의 강남과 더불어 한강을 낀 신도심으로 설계됐다. 1971년 시범아파트가 지어진 후 1979년엔 증권거래소 건물이 준공되며 금융 중심지로 성장했다. 이후 63빌딩과 LG트윈타워 등 고층 빌딩이 들어서며 차별적인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게 된다.
준공 후 30년이 지나면서부터 재건축이 추진될 수 있기에 1990년대 말 부터 여의도 단지 내에서 재건축 이야기가 하나둘 피어났다. 하지만 당시엔 금융중심지와 주거 기능 간 충돌과 한강변 고도 규제 등으로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 2018년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용산·여의도 통합 개발 구상을 발표했지만, 바로 집값이 급등해 이를 취소하며 또다시 사업 동력이 약화됐다.
그러다 2021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취임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초기 정비사업 단계를 단축하는 신속통합기획 사업이 시행됐는데, 첫 대상지가 여의도 시범아파트였다. 여의도 재건축 단지 중 규모가 가장 큰 시범아파트는 1584가구로 구성됐는데 재건축이 마무리되면 2493가구 규모 매머드급 단지로 다시 태어난다. 한강변 고도 규제도 완화됐다. 한강과 가장 가까운 아파트 동은 15층까지밖에 짓지 못했는데 이 규제가 사라졌다. 또 국회의사당 주변 고도지구의 건축물 높이도 기존 41~51m에서 최대 120~170m까지 올릴 수 있도록 조정됐다.
최근 여의도 재건축 단지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은 대교아파트다. 정비사업의 9부 능선이라 불리는 관리처분계획인가를 15개 재건축 단지 중 가장 먼저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대교아파트는 신통기획 자문과 정비계획을 동시에 진행하는 자문사업(패스트트랙) 1호 사업장이기도 하다. 2024년 1월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는데 2년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았다. 한때 여의도 재건축 단지 중 사업 속도가 가장 느리다는 평가도 있었으나, 이례적으로 빠르게 절차를 밟아 나갔다.
1975년 준공된 대교아파트는 최고 12층, 4개동, 576가구 규모로 이뤄졌다. 재건축 이후에는 지하 5층~지상 최고 49층, 4개동, 912가구 규모의 고층 단지로 탈바꿈한다. 세계적 건축설계사인 토머스 헤더윅의 헤더윅 스튜디오가 설계에 참여했고, 삼성물산이 시공을 맡아 ‘래미안 와이츠’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올해 하반기 이주를 시작해 내년 4월 철거를 마치고, 당해 말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교아파트 다음으로 사업 속도가 빠른 곳은 한양아파트다. 지난해 10월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준비 중이다. 시공사인 현대건설과 공사비 규모를 두고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의도 내 소규모 재건축 사업도 활발하다. 지난해 12월엔 160가구 규모 화랑 아파트가 여의도 재건축 단지 중 처음으로 소규모 재건축사업으로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다.
최근에는 시범아파트와 목화아파트가 동시에 입찰공고를 내며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물산을 비롯해 여러 대형 건설사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외에도 공작아파트는 사업시행인가를 추진중이고 삼익·은하아파트는 통합심의를 준비하고 있다. 삼부아파트도 조합 설립과 정비계획 지정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여의도 재건축이 마무리되면 입지의 위상이 강남권과 맞먹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 서남권지역에서 강남처럼 업무 중심지, 학군, 한강변 등 다양한 인프라를 갖춘 곳이 여의도뿐이라는 이유에서다. 인근 목동이 학원가가 더 발달했지만, 셔틀버스 등을 통해 여의도 거주 학생들도 목동을 쉽게 오갈 수 있다.
넓은 면적이 평지인 점도 강점이다. 서울엔 핵심 입지임에도 강남구 청담동, 용산구 한남동 등 언덕이 많은 점이 단점으로 꼽히는 지역도 많다. 이에 따라 여의도 재건축 추진 아파트들은 준공된 지 50년가량 된 곳들이 많음에도 3.3㎡당 시세가 1억원에 달한다. 지난 4월엔 여의도 삼부 아파트 전용 106㎡가 38억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썼다. 평당 1억원으로 가격이 책정됐다. 이에 따라 여의도 재건축이 마무리되면 강남권의 한강변 동네인 잠실과 비슷한 수준으로 아파트 가격이 형성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 1월 입주를 시작한 송파구의 ‘잠실르엘’의 경우 전용 84㎡ 입주권이 지난해 12월 48억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말부터 입주한 인근 ‘잠실래미안아이파크’ 역시 전용 84㎡ 입주권이 지난 1월 46억원에 손바뀜이 일어나며 신고가를 썼다. 여의도 아파트들도 재건축 후엔 최소 잠실르엘과 잠실래미안아이파크 수준으로 가격이 형성될 것이란 분석이 많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여의도는 상업지역으로 분류된 단지의 대지 지분 평당가를 보면 아직도 저평가받는 지역”이라면서 “인근에 개발 압력이 꾸준히 있을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가격이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여의도는 교통환경도 뛰어나다. 지하철 5호선·9호선이 다니는 여의도역을 통해 3대 업무지구인 광화문과 강남을 30분 내로 갈 수 있다. 여의도에 거주하면 서울 3대 업무지구를 30분 이내로 이동할 수 있는 셈이다. 또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 마포대교 등 간선도로를 통해 서울 도심으로 접근하기도 쉽다.
인근 동작구의 흑석동과 노량진동이 재개발을 통해 천지개벽하며 여의도의 가치고 덩달아 오른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흑석11 재정비 촉진구역주택 재개발 정비사업을 통해 지난달 분양한 동작구의 ‘써밋 더힐’의 전용 84㎡ 기준 최고 분양가가 29억7820만원으로, ‘비강남 국민평형 30억원’ 시대를 열었다. 연내 흑석9 재정비 촉진구역을 재개발한 ‘디에이치 켄트로나인’ 분양도 예정돼 있다.
이곳의 구축 아파트 가격도 상승 중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동작구 아크로리버하임 전용 113㎡는 지난달 48억7000만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기록했다. 지난 4월에는 32억원에 거래됐으나, 한강 조망이 가능하다는 강점에 힘입어 3.3㎡당 1억원이 넘는 가격에 계약이 체결됐다.
일반분양을 시작한 노량진 역시 청약시장에서 선방하고 있다. 노량진 8곳에 달하는 노량진재정비촉진지구 중 가장 먼저 6구역이 ‘라클라체자이 드파인’으로 지난 4월 분양에 나섰다. 당시에도 전용 84㎡의 최고 분양가가 25억원을 넘어 고분양가 논란이 있었지만, 첫 정당계약에서 두 가구를 제외하고 모두 완판에 성공해 분양가가 거품이 아님을 증명했다.
김효선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여의도는 금융·방송·정치 클러스터가 압축돼 있어 고소득 수요가 구조적으로 유지될 수밖에 없는 곳인데, 한강과 여의도공원 등 자연 인프라부터 더현대와 IFC몰 등 생활 인프라까지 도보권인 특별한 입지”라며 “재건축만으로 추가 공급이 가능해 희소성이 있는 데다가, 재건축 이후엔 한강변 초고층 스카이라인이 새롭게 형성되면서 서울 도심과 한강 사이 대표 주거지의 위상을 바꿀 동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다만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도가 남아 있고, 초고층 아파트의 건설비가 리스크가 될 수 있기에 실수요 및 투자자는 중장기 관점에서 매매를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용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