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경기 침체 속에서 모듈러 주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모듈러 주택이란 주택 골조 등 건축 구조물을 공장에서 미리 만들어 현장으로 운반한 후 조립 및 설치를 하는 건축 공법을 말한다. ‘집을 만든다’는 점에서 건설회사의 영역이었지만 최근에는 이 관념이 파괴되고 있다. 테크 기업 등 다양한 영역의 회사들이 모듈러 주택 시장을 넘보고 있다. 관련 스타트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모듈러 주택 시장의 시장 성장성이 크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한국철강협회와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모듈러 건축 시장 규모는 2030년께 2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모듈러 주택 시장의 파이는 더 크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인 마켓앤마켓은 2030년까지 373조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 예상한다.
서구 등에서 일반화된 모듈러 주택이 ‘테크 시대’를 맞아 기술적 진보와 함께 새로운 시장 성장 동력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모듈러 주택 시장에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는 이들은 가전 업체들이다. 집에 필수 가전을 만드는 회사가 주택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먼저 LG전자는 스마트코티지란 개념을 내세우며 AI 가전을 장착한 모듈러주택을 선보였다. 기존 모듈러 주택에 자사의 강점인 전자제품을 빌트인으로 넣은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정작 회사가 강조하는 것은 에너지 효율성이다. 에너지 절약 시스템을 통해 글로벌 화두인 친환경에 근접한 주택을 선보였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LG전자가 모듈러 주택 시장에 이 같은 전략으로 진출한 것은 회사가 냉난방공조 시스템에서 비교우위가 있기 때문이다. LG전자의 에어컨, 히프펌퍼 등의 관련 기술은 현재 글로벌 차원에서 인정받고 있다. 가전 회사답게 손안에서 모듈러주택에 설치된 가전뿐만 아니라, 스마트 도어락, 홈캠, 온도·습도센서, 스마트플러그 등 다양한 IoT 기기들을 제어할 수 있다.
삼성전자도 뒤질세라 최근 모듈러 주택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LG전자처럼 모듈러주택에 자사 AI가전을 탑재하는 방식의 주택 공급인데, 회사는 최근 집중하고 있는 스마트싱스 프로(SmartThings Pro)를 통한 연결성을 강조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주택 내 가전, 조명 및 각종 동작 센서 그리고, 공조 시스템을 차별화된 기술로 연결해 도심 아파트 못지않은 거주의 편리함을 제공한다는 전략을 짜고 있다.
사실 전자회사의 모듈러 주택 진출은 우리가 처음이 아니다. 일본의 파나소닉이 이미 모듈러 주택 시장에 진출해 활발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파나소닉은 글로벌 시장에 집중을 하고 있는데, 2022년 첫 해외 사업지로 태국을 선택한 후 북미, 인도 등 글로벌 사업지를 확대하고 있다. 파나소닉 역시 기술 회사의 강점을 살려 에너지 효율성을 높인 친환경 주택 공급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가전 회사들이 모듈러 시장에 적극 진출하고 있는 것은 자사 제품과의 시너지를 내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기저에는 모듈러 주택을 주문형으로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 글로벌 차원에서 형성돼 가고 있다는 것이 한몫하고 있다. 관련 스타트업들이 최근 늘어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한데, 2019년 애플과 테슬라 출신이 창업한 주노 레지덴셜이란 스타트업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당시 설계만 하고 제조는 아웃소싱을 통해 진행한다는 구상을 내보여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애플과 테슬라가 각각 부품을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조달해 만드는 방식과 유사하다는 평가 속에 모듈러 주택에 적용이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은 만만찮았다.
한동안 조용하던 이 업체는 지난해 자사의 첫 번째 결과물을 선보이며 자신들의 구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회사는 텍사스에 5층 높이의 목조로 지어진 아파트를 완공했고, 자체적으로 만든 ‘독특한 제품화 플랫폼’을 활용했다고 전했다.
조나단 쉐어 대표는 “새로운 건축 방식을 지원하려면 단일 소싱이 아닌 재료와 부품을 지정해야 했다”면서 “미국 및 전 세계 공급업체로부터 직접 (필요한 자재들을) 조달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먼저 프로젝트에 맞는 자재들을 대량으로 확보해 현지 업체나 프로젝트에 가장 적합한 업체를 통해 제작했다”면서 “이 같은 방식이 모듈 주택 제작업체들의 확장성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LG전자와 삼성전자도 가전과 내부 시스템만 공급할 뿐 제작은 외부 업체를 활용한다. 다만 아직은 글로벌 분업화된 시스템을 활용하기보다는 전문업체와 손을 잡는 수준이다. LG전자는 모듈러 전문 스타트업인 스페이스웨이비와 손을 잡았고, 삼성전자는 국내 최대 건축물 제작 전문회사인 유창이앤씨와 함께 한다.
스페이스웨이비는 최근 국내 스타트업 중 활발하게 할동하는 곳 중 하나다. 인터넷 주문, 팝업스토어 등 기존과는 다른 주택 구매 방식을 도입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AI기반 건축모델 자동화 솔루션을 개발하기도 했다.
주택 모듈러 자재의 핵심인 ‘목재’의 경우 에스토니아가 수출 강국이다.
모듈러 주택 시장에 새로운 ‘메기’들이 등장하자 기존 업체들의 발걸음도 함께 바빠지고 있다. 차별화된 제품과 기술 개발 등에 주력하고 있는데, 선점 효과를 놓치지 않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국내 모듈러 업체의 대표주자 격인 GS건설의 자회사 자이가이스트는 고품질의 차별화된 모듈러 주택 공급에 주력하고 있다. 연간 300채의 모듈러 주택을 자체 생산할 수 있는 당진 공장을 통해 고객 니즈에 맞는 다양한 디자인의 주택을 빠르게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게다가 지난해 연말 국토교통부로부터 ‘자이가이스트 ADU(단독주택)’에 대한 공업화주택 인정을 받은 점은 눈여겨 볼 만하다. 목조 단독주택이 공업화주택으로 인정받은 사례로, 품질을 국가로부터 인증받았다는 점은 회사 제품의 신뢰성을 더 높이는 대목이다. 구조안전성·기밀성능·단열 및 결로 방지·내구성 등 네 가지 평가 기준을 모두 충족해 가능했다. 여기에 더해 고객 맞춤형 모듈러 주택 설계 관련 특허 등록도 맞췄다. IoT를 앞세운 가전업체의 모듈러 주택 시장 진입에 자이가이스트도 스마트 홈 시스템을 강화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국내 최고층(13층) 모듈러 공동주택인 경기행복주택을 성공적으로 준공하면서 기술력을 뽐낸 바 있다. 목재를 쓰는 자이가이스트와 달리 철골 구조 모듈러 방식으로 지었다. 회사는 고층 모듈러 건축 구조 및 접합 기술에 대한 특허를 가지고 있는데, 중대형 평수의 고층 모듈러 공동주택 건설을 위한 원천 기술로 평가된다. 아울러 회사는 현대제철과 함께 은 모듈러 건축 시험장인 H-모듈러 랩을 만들어 기술 개발에도 나선 상태다. 실물 크기의 모듈러 구조를 구현해 다양한 기술 검증을 사전에 진행하고 있다. 시험장 자체도 모듈 방식으로 지어졌다. 현대제철의 H형강을 활용한 ‘H형강 모듈러 구조시스템’과 각 구조물 부품을 표준화한 모듈러 건축 방식이 적용됐다.
한국주택공사(LH)와 경기주택공사(GH)도 자체 모듈러 주택 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LH는 올해부터는 모듈러 주택 표준평면 개발 등 공법 고도화에 나섰고, GH는 모듈러 주택의 충수를 높이는 데 힘을 모을 예정이다. 목표는 25층 규모다.
이처럼 신규 진입자와 기존 건설업체들 간 보이지 않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시장 자체가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가전업체 등 테크 기업들이 주로 만드는 모듈러 주택의 경우 소형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LG전자가 선보인 모듈러 주택은 8평형대의 소형이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의 세컨하우스로 타깃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서 장려하고 있는 일종의 농촌체류형쉼터에 더 적합한 콘셉트인 것이다. 5도 2촌이라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하면 세컨하우스의 경우 그리 큰 평형은 필수 사항이 아니다. 차라리 시골이지만 최신 아파트처럼 사용에 편리함을 원하는 수요자층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대형 생산시설을 갖춘 자이가이스트의 경우 소형부터 대형까지 소비자의 입맛에 따라 평형대를 고를 수 있다. 주택 타입도 다양하다. 18개의 프로토 타입을 개발했고, 하이브리드 방식을 더해 디자인 유연성을 강화했다.
하지만 모듈러 주택이 건설업계의 새로운 ‘성장 시장’임에는 분명하지만 아직은 짧은 공사기간을 제외하고는 장점이 딱히 없다. 목조 모듈러 주택의 경우 전문업체를 통해 짓든, 목수 등 인부를 동원한 전통적 방식으로 짓든 총 공사비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관련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는 아직 시장이 작아 대량 생산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발주 물량이 늘고 대량 생산이 이뤄져야 지만 단가가 낮아지는데, 아직은 다소 먼 이야기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재값 상승, 건설 현장의 구인난, 친환경 건축 등 현재 건설업계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로서는 높은 점수를 받는다. 특히 인력 부족 문제 해결에 숨통을 틔어 줄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공장에서 자동화 기술이 발전하면 주택 제작 인력은 크게 더 줄어들 수 있다.
이 모듈러 주택에서 한국은 아직 후발 주자다. 세계 시장이 더 크고 관련 기술도 더 높다.
모듈러 주택은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이미 일반화 됐고,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모듈 주택 공급의 선두주자다. 땅이 좁은 대신 인구밀도가 높은 국가의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 건설청은 올해 말까지 주택 건설시장의 70% 정도를 모듈러 방식으로 건설키로 했다. 중국에서도 최근 모듈러 주택 제작이 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공사에 들어가는 빌딩 중 30% 이상이 모듈러 방식으로 건축된다. 스웨덴은 신축 빌딩의 45%를 모듈러 방식으로 짓고 있다.
모듈러 주택의 기술 수준은 얼마나 높이 지을 수 있느냐에 따라 평가된다. 우리의 경우 완성된 건물 기준으로 13층이 최고층이지만 해외에서는 목재를 활용해서도 초고층의 주거용 건물을 짓는 수준에 와 있다. 호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의 주도 퍼스에 아파트 50층 높이의 모듈러 건축물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다만 안전을 고려해 건축 구조상 100% 순수 목재로만 짓는 것은 아니다. 기둥 등 건물 뼈대에 해당되는 부분은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다. 국내에서는 유창이앤씨와 엔알비 등이 철골 콘크리트 모듈러로 30층 이상 짓는 공법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5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