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인구 1000만 시대.’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901.8만 명에 이르러 전체 인구의 17.5%를 차지하고 있다. 증가세로 보면 2024년에는 고령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2025년에는 노인인구 비율이 20.3%로 증가할 전망이며, 한국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독거노인과 고령 부부 가구의 증가는 가족 구조변화와 노인복지, 건강관리 시스템에 새로운 도전을 제시한다. 노인이 노인을 부양하는 가구 증가는 경제적, 심리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편, 국내 시니어케어 시장은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루고 있다. 2018년 8조원이었던 시장 규모는 2022년에 14.5조원으로 증가했다. 이용자 수도 같은 기간 동안 103.6만 명에서 167.3만 명으로 증가, 연평균 12.7%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흔히 시니어케어는 경제적 여력을 갖춘 노년층이 입주하는 고급형 실버타운을 연상하기 쉽다. 이전까지 다양한 업체들이 고급화 실버타운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입주자들을 유치하며 인지도를 높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한국의 시니어케어 산업은 큰 변화를 겪었다.
한국의 시니어케어 시장은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도입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이후 시니어케어 시장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하는 급여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2022년 기준, 전체 시니어케어 시장에서 공단이 부담하는 급여비는 약 78.6%를 차지한다. 시니어케어 서비스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재가요양 서비스는 가정 방문 및 출퇴근 센터 서비스를 제공하며, 시설요양은 일상생활이 어려운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시설 입소 및 생활 보조 서비스를 의미한다.
최근에는 기존 실버타운이 노인주거와 시니어케어를 동시에 제공하는 복합타운으로 확대되며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있다. 이러한 복합타운은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의 급여 적용 대상이 아니지만, 광의의 범주에서 시니어케어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유료 양로시설로 분류되는 실버타운 시장은 2015년 분양제 폐지 이후 다소 위축된 상황이다. 국내 실버타운 시장은 2000년부터 유료 시설이 허용되며 확대되기 시작해 분양형 실버타운의 설립이 증가했다. 그러나 2015년 분양형 제도의 폐지로 신규 진입이 위축되었으며, 2022년 기준 대형 유료 양로시설 및 노인복지주택은 43개 남짓이다. 실버타운은 분양형과 임대형이 가능하며, 분양형은 일반적인 매매처럼 소유권 취득이 가능하다. 주요 노인복지주택 기준으로 국내 실버타운의 시장 규모는 약 2.3조원으로 추정된다. 노인주거복지시설은 전반적으로 경기지역에 밀집해 있으며, 특히 실버타운은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서울과 경기 수도권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7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시니어케어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28년까지 1차 베이비부머 세대가 모두 고령인구에 포함됨에 따라, 이들이 시니어케어 시장에 본격적으로 유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승희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2023년 기준으로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 수는 399만 명이며, 이는 2030년까지 550만 명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베이비부머 세대는 높은 교육 수준과 경제력을 갖추고 있어, 기존 고령층과 다른 유형의 시니어케어 서비스를 필요로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요양 서비스 종류에 따라서는 재가요양과 시설요양 모두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가요양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2019년 말에 재가요양시설 설립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며 여러 사업자들이 규제 적용을 피하기 위해 재가요양 사업에 진입하기도 했다. 실제로 재가요양 사업자의 수는 2018년 1만 5970개에서 2019년에 1만 9410개로 크게 증가했다. 2022년 기준으로, 재가요양 시장의 규모는 약 8.2조원에 달하며, 이는 2018년 이후 연평균 21%의 높은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용자 수도 크게 증가했다. 2018년에 82.2만 명이었던 재가요양 서비스이용자는 2022년에는 141.8만 명으로 급증했다. 재가요양 서비스 유형별로는 방문요양 서비스가 약 5.3조원, 주야간보호 서비스가 약 2조원으로 집계되었다.
시설요양 시장 역시 최근 5년간 연평균 11.6%의 양호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서울 등 주요 도심지의 수요가 높은 편이고 요양시설의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2022년 기준으로 시설요양 시장의 규모는 약 6.2조원으로, 2018년 4조원에서 크게 증가했다. 또한 시설요양 시장의 이용자 수는 25.5만 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이 중 40% 이상이 서울과 경기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장기요양등급별로는 3~5등급 구간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2022년 기준으로 한국 내 노인 요양시설 수는 6.2만 개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자본부담이 높아 대형 시설보다는 30인 이하의 소형 시설 위주로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30인 미만의 요양시설은 토지 임차가 가능한 반면, 30인 이상의 요양시설은 토지 및 건물 소유권 확보가 필요하다.수요층은 수도권 지역에서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2022년 기준 서울 지역 요양시설의 입소율은 2022년 기준 91.7%로, 전체 평균인 80.8%보다 높은 편이다. 고령층 자산의 확대와 도심지 요양 및 주거시설에 대한 수요 증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정 연구원은 이에 대해 “경제적 여력을 갖춘 시니어들이 도심 외곽 지역보다 높은 의료시설을 갖춘 익숙한 도심지에서의 거주를 선호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한편 시설요양 시장의 확산과 함께 서비스와 시설 수준의 향상도 기대된다. 10년 전과 비교해 현재의 시니어타운은 식사 서비스, 피트니스클럽, 사우나, 수영장 등을 제공하고 있다. 향후 자율주행 로봇과 같은 신기술이 요양시설에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최근 시니어주택 관련 리츠(REITs) 상품도 처음으로 등장하며 시장 확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경기도 화성동탄2에 위치한 의료복지시설 용지 내 헬스케어 리츠 사업에 참여할 민간사업자를 공모 중이다. 이는 다수의 투자자금을 모아 부동산 자산에 투자한 후, 임대료 수익을 배당으로 돌려주는 중위험·중수익 상품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이러한 상품 출시는 시니어 주택시장의 관심을 반영하며 지속적으로 공급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국내 시니어케어 산업은 요양 및 주거 관련 분야가 가장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다양한 기업들은 물론 금융사들도 경쟁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롯데와 같은 건설업체들은 시니어 복합단지 조성에, 대교는 재가요양 시장에, 종근당은 요양시설 운영과 제약 사업 연계를 계획하고 있다. 이외에 메이필드호텔과 신세계 같은 대기업들도 시니어주거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보험사들을 중심으로 금융사들도 시니어케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먼저 2016년, KB손해보험은 보험업계 최초로 요양전문 자회사인 KB골든라이프케어를 설립했다. 이후 지난 2023년 10월, KB라이프는 신사업 진출을 위해 KB손보로부터 KB골든라이프케어를 인수했다. 현재 KB골든라이프케어는 서울의 송파구와 서초구에서 각각 도심형 요양시설인 ‘위례빌리지’와 ‘서초빌리지’를 운영 중이다. 또한, 최근에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첫 실버타운 ‘평창 카운티’의 입주자 모집을 시작했다.
신한라이프 역시 시니어케어 시장에 진출했다. 최근 신한라이프의 자회사인 신한큐브온은 또 다른 자회사인 신한금융플러스로부터 요양 사업을 양수받았다. 신한라이프는 현재 서울 은평구 내 부지 매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노인복지시설 및 은퇴빌리지 조성을 검토 중이다. 이와 별개로 NH농협생명도 최근 요양 사업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보험업계 1위’ 삼성생명이 요양 사업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 밝히며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나섰다. 삼성생명은 2024년 임원 인사 및 조직 개편을 단행하면서 기획실 내에 시니어리빙 사업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새롭게 구성했다. 이번 TF 신설은 삼성생명이 요양 사업 진출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삼성생명은 앞서 지난 3분기 기업발표회(IR)에서 2024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점을 언급하며, 시니어케어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삼성생명 관계자는 “그룹 내 요양시설인 노블카운티를 운영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노인돌봄 서비스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명보험업계 1위 기업인 삼성생명의 요양 사업 진출은 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기존에 요양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다른 생보사들과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