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무렵 시처럼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센강의 물결을 담은 황금 실루엣, 상하(上下)의 완벽한 대칭은 ‘형태는 표면으로 떠오르는 실체’라는 빅토르 위고의 말을 오마주(hommage)하고, 평등이라는 선명한 메시지를 세계에 던진다. “성화는 올림픽 미학의 상징입니다.” 토니 에스탕게 파리올림픽 조직위원장의 말처럼, 개회식을 지켜보는 세계인들에게 화려한 성화봉이 올림픽의 시작을 알린다. MoMA의 큐레이터 파올라 안토넬리가 ‘동시대 디자인 영역에서 지적 영민함을 성취한 인물’이라고 평가한 프랑스 디자이너 마티유 르아뇌르가 디자인한, 상징적이고 미학적인 성화봉을 들고 등장한 인물, 예사롭지 않다. 복면을 쓴 머리를 모자가 달린 후드티로 가린 채, 마치 파쿠르(신체 능력만으로 지형지물을 활용하여 운동하는 신체 단련 방법)를 하듯 파리의 루프탑을 달리기 시작한다. 프랑스 혁명이 한창이던 18세기 파리를 배경으로 한 프랑스 게임 ‘어쌔신 크리드’의 주인공 캐릭터가 모티브다.
화려한 세계인들의 축제의 문을 연 참혹했던 혁명 현장의 스토리텔러. 미학적 대칭의 황금 성화봉을 들고 달리는 남루한 옷을 걸친 의문의 암살자. 생경하고 이질적인 조합을 통해, 충격과 공포를 주는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하고 신비롭고 해학적인 느낌을 주는 복합적 효과. 바로 프랑스에서 널리 사용되는 예술의 표현 방식, 그로테스크(Grotesque). 그로테스크는 ‘기준에서 벗어난, 불편한, 괴상한’이라는 뜻의 단어다. 동굴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그로테(grotte)’가 어원인데, 15세기 동굴 속에 묻혀 있던 로마 황제 타투스의 지하 통로와 네로 황제의 황금궁전 유적에서 인간과 동식물이 뒤섞인 낯선 신화적 상상을 담은 그림이 발굴되며, 세상에 알려진 결과다. 중세 유럽이 화려했던 로마 시대의 부활을 꿈꾸었다는 점에서, 르네상스가 이른바 집권층의 향수를 구현했다면, 그로테스크는 그 괴상함만큼이나 민중으로 파고들며 해학적인 서민 문화의 한 축을 이룬다.
프랑스대혁명의 데자뷔(de‘ ja’ -vu)일까? 그로테스크를 예술적 방법론의 하나로 전면에 등장시킨 인물이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고, 그 미적가치가 표면으로 떠오른 실체가 바로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빅토르 위고는 자신의 희곡 ‘크롬웰’의 서문에서 ‘세계는 모순되는 것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는데,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결합하고, 우스꽝스러운 것과 고귀한 것을 결합하는 그로테스크야말로 진정한 예술의 방법론’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위고의 인식이 배경이 되어 탄생한 소설이 바로 그 유명한 ‘노트르담 드 파리(Notre-Dame de Paris)’다. 괴물 같은 외모를 가진 귀머거리 성당 종지기와 아름다운 집시 여인의 사랑. 1831년에 발간된 이 그로테스크한 소설은 15세기 말 파리 노트르담 성당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 소설로 인해 노트르담 대성당은 새로운 운명을 맞이한다.
12세기 건립되어 프랑스 왕정의 성장과 함께 유럽 최고의 성당으로 자리매김해 온 노트르담 성당이지만, 1789년 혁명과 함께 몰락의 길로 들어선다. 성당 전면을 장식한 28개 유대왕들의 조각이 그들을 프랑스 왕으로 오해한 폭도들에 의해 목이 베어 파괴되고, 루이 14세에 의해 화려하게 정비되었던 성당은 약탈 속에 마침내 와인 저장소로 사용되는 처지에 이르고 만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자신의 대관식을 가질 때까지도 아직 왕정과 권위의 그림자가 남아 있던 대성당을 파리시민들 스스로 자신들의 자산이라고 여기도록 인식을 바꾼 소설이 바로 ‘노트르담 드 파리’다.
비로소, 시민들은 고귀한 성당의 외관 속에 감춰져 왔던 종지기 콰지모도와 같은 민중의 내면을 발견한 것이다. 시민들은 새로운 성당을 원했고, 19세기 건축가 외젠 비올레 르 뒤크는 이를 반영해 그로테스크의 가치를 구체적 형상으로 구현한다. 96m 높이의 새로운 첨탑을 설치해 종교적 위상을 높이면서도, 성당 곳곳에 악마의 형상을 한 조각들을 마치 우리나라 사찰의 사천왕상처럼 배치한 것이다. 그중 압권은 북쪽 타워 아담과 이브 동상 사이에 세워진 수수께끼 같은 표정으로 파리를 내려다보며 사색에 잠긴 스트리주(Le Stryge)다.
사색적인 시선을 통해 지혜를 느낄 수 있지만 괴물 같은 특징은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상반된 가치를 하나의 몸에 지닌 이 올빼미를 닮은 악마 조각은 1853년 샤를 네그레의 사진 한 장으로 전 세계 예술가들에게 상징주의라는 새로운 장르를 여는 영감을 주기에 이른다. 하나의 상상이 영감이 되어 빅뱅처럼 폭발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예술의 힘을 충분히 보여준다.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성당. 그로테스크한 가치는 프랑스를 넘어 세계인의 마음속에 자신만의 이야기로 간직하는 수억 개의 성당을 만들어 냈다고 본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상징적이다.
그리고, 2019년 4월 15일. 성당은 대화재에 휩싸이고 만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인류 최고의 문화유산이 타버린 탓도 있지만, 뮤지컬 속의 노래 ‘대성당 시대(Le Temps des Cathe’ drales)’를 읊조리며 키워왔던 자신만의 상상이 함께 무너져 내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프랑스인 만큼이나 성당의 복원을 기다려 왔다. 두 달여 뒤인 2024년 12월 8일. 마침내 복원된 성당이 대중에게 다시 돌아오게 된다. 새로운 성당은 어떤 그로테스크한 가치로 새로운 상상을 불어넣을까? 마크롱 대통령은 두 가지를 제안했다. 96m 참나무 첨탑 대신 스테인리스 첨탑을 제시했지만, 강렬한 반대로 무산됐다. 다른 하나는 동시대 미술 양식(Contemporary Art)을 반영한 스테인드 글라스다. 시간의 영속성을 기반으로 하는 성당과 감각의 일시성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예술의 조합은 느낌 만큼이나 충분히 가치 상충적이다. 이 아이디어는 일부 반대에 직면했지만, 프랑스 문화부 주관으로 현재 진행중이다. 과연 표면에 떠오르는 형태는 어떤 결과일까? 성화봉을 들고 파리의 루프탑을 달리는 암살자를 뛰어넘는 상상을 불러일으키길 기대해 본다. 그래야 프랑스답고 노트르담 대성당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