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Card] VISA 버린 BC글로벌카드 성과는?…BC카드와 VISA의 ‘불편한 동거’
입력 : 2011.11.28 15:53:19
수정 : 2012.02.10 10:09:30
지난 9월22일 국정감사에 비씨카드와 VISA의 수수료 분쟁이 이슈로 떠올랐다. 국회 정무위 소속 유원일 의원은 VISA카드에 쓴 소리를 쏟아냈다. “VISA가 비씨카드에 비자넷(VisaNet)을 이용하지 않고 타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것에 패널티를 부과하는 것은 공정거래법상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및 불공정거래 행위”라며 “처벌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비씨카드는 VISA의 이름을 단 카드로 미국 현금자동입출금기(ATM)거래를 하면 VISA카드에 1%의 수수료를 부담해오던 중 2009년 10월 미국 스타(STAR)사와 전용선을 통해 직접 ATM서비스를 시작하면서 BC-VISA카드 고객이 ATM을 이용할 경우 1%의 수수료를 부담하지 않도록 했다. VISA 내부규정에 따르면 해외에서 VISA카드로 결제할 경우 의무적으로 비자네트워크를 사용하도록 하고 이를 어겼을 경우 위약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적시됐다. VISA는 이 규정을 들어 비씨카드에 항의하는 한편 합의를 시도했으나 결국 결렬됐다. 이에 따라 VISA는 지난 6월 10만 달러의 위약금을 부과한 것을 비롯해, 7월부터는 매달 5만 달러를 카드정산 계좌에서 인출해가고 있다. 비씨카드 관계자는 “VISA카드 내부규정에 보면 시정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벌금을 올리거나 더욱 무거운 제재 조치를 내릴 수 있게 돼 있다”며 인출금액이 더 커질 수 있음을 우려했다.
해묵은 갈등, 진흙탕 싸움으로
비씨카드와 VISA의 갈등은 2009년 2월에 촉발됐다. 1라운드는 비씨카드의 승리로 끝났다. VISA카드는 당시 국내 회원사들에 국제카드 수수료를 1%에서 1.2%로 인상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비씨카드는 앞장서서 BC-VISA카드 발급을 보류하기로 하며 전면전에 나섰다.당시 VISA카드 고위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있던 장형덕 전 비씨카드 사장은 위원직을 사퇴하며 반발했다. 이러한 강력한 대응에 VISA는 국내 여론 악화를 우려해 백기를 들었다. VISA는 해외 카드결제 수수료율 인상 계획을 백지화한다고 선언하며 일단락 됐다. 갈등의 불씨는 같은 해 9월 수수료 분쟁으로 다시 타올랐다. 2년간의 줄다리기 끝에 협상이 무산됨에 따라 VISA는 비씨카드에 위약금을 부과했다. 이에 비씨카드측은 다시 강경하게 대응했다. 비자의 반시장적 독점행위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공정위에 제소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양측에 소명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조사에 착수했다.
입장차는 극명하다. VISA측은 소명자료를 통해 “비씨카드는 15년간 잘 지켜왔던 비자국제운영규정(Visa International Operating Regulations; VIOR)을 위반했다”며 “문제점을 인식하고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으려 했으나 비씨카드에서 이를 거부하는 바람에 규정대로 위약금을 부과한 것일 뿐이며 위반행위가 지속된다면 벌금 조치를 취하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비씨카드 관계자는 “VISA의 국제운영규정은 저렴한 비용으로도 가능한 타 네트워크 이용을 제한해 신용카드 회사, 신용카드 소지자 및 가맹점 모두에 더 높은 수수료를 지급하도록 강요한다. 이는 망을 사용한 것이 아닌 사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패널티를 주는 불합리한 규정”이라며 “이는 분명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제한하는 불공정 조항”이라고 주장했다.
국내 고객 무시해온 VISA적반하장 맞대응
VISA가 아닌 BC로고가 새겨진 BC글로벌카드
비씨카드는 2005년 1월 중국 최대 카드사인 인롄(銀聯)카드와 제휴를 맺었다. 뿐만 아니라 비씨카드는 올 4월 ‘비씨글로벌카드’를 출시했다. VISA망이 아닌 미국의 디스커버, 일본의 JCB, 중국의 인롄 그리고 전 세계 다니어스 클럽 가맹점 및 ATM 네트워크를 통해 사용 가능하도록 만든 비씨의 독자적 글로벌카드다. 카드업계에서는 최근 비씨카드의 행보가 VISA에 위협이 됐다고 보고 있다. 비씨카드에서 VISA가 아닌 독자망을 구축했다는 점과 국외수수료가 적다는 점을 적극 홍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씨글로벌카드는 11월2일을 기준으로 60만 8천 4백장이 발급됐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출시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저렴한 수수료가 고객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 것이라 입을 모은다. 한편 이러한 비씨카드의 적극적인 글로벌 진출이 VISA측에는 위협이 됐으리라 분석했다. 카드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수수료 부담이 적은 글로벌카드의 등장은 국내 여론상 기존에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던 VISA나 MASTER의 국외수수료 인하 압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VISA측은 “비씨글로벌카드의 출시와 이 문제는 전혀 다른 부분이다. VISA 내부규정 이외에 비씨카드의 다른 상품 때문에 우리 쪽에서 문제를 삼고 있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 반박했다.
VISA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내 이용자 입장에서는 VISA의 비씨카드에 대한 위약금 부과가 곱게 보일 리 없다. 비씨카드와 제휴한 스타망을 사용할 경우 VISA네트워크와는 달리 회원들에게 1%의 글로벌카드 수수료가 부과되지 않아 소비자 입장에선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VISA네트워크 이용료가 더 비싼데도 자사 네트워크 사용을 강제하는 것은 부당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에 더해 최근 국제 신용카드사로 빠져나가는 국부유출이 지적되며 VISA에 가해지는 비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7년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우리나라 신용카드사가 국제 브랜드 카드사에 지급한 발급 및 유지 수수료는 420억7900만원에 달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며 국내 글로벌 신용카드 1~2위를 다투는 VISA와 MASTER가 비난의 표적이 된 것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발급된 글로벌카드 역시 VISA와 MATER가 양분해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유출된 국부는 모두 그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워도 떠날 수 없는 ‘VISA의 품’
지난 7월 비씨는 VISA를 공정위에 제소한 상태이지만 위약금은 지속적으로 부과되고 있다. 규정이 무효화되기 전까지는 VISA규정의 효력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례나 사안의 규모를 감안했을 때 전문가들은 공정위의 조사가 최소 1년 반에서 2년은 족히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위약금의 액수는 최소 100만 달러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비씨카드와 VISA의 감정의 골은 깊어졌지만 이들의 ‘불편한 동거’는 지속될 전망이다. 비씨카드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가 확고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VISA의 품을 떠나기는 쉽지 않다. 내부적으로 VISA와의 거래를 중단할 계획은 전혀 없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비씨카드가 출시한 글로벌카드는 부족한 가맹점으로 소비자들의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씨글로벌카드 사용자라 밝힌 대학생 김모 씨는 “유럽여행을 위해 비씨글로벌카드를 발급받았다. 광고에서 103개국에서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실상 유럽에서 가맹점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며 “별 수 없이 부모님이 비상시 사용하라고 주신 VISA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또한 한 블로거는 “유럽은 물론 미국 내에서도 사용하기 힘든 비씨글로벌카드는 CF에서처럼 뱀춤 출 때만 사용가능한 것이냐?”며 “아무리 QI(Quality Insurance)가 부족하다지만 과대광고에 사용자 입장에서의 고려가 부족한 카드”라며 비씨글로벌카드의 불편함을 지적했다. 카드업계 정통한 한 전문가는 “아직 부족한 인프라를 지닌 비씨글로벌카드를 믿고 VISA와의 거래를 끊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또한 국내에서 워낙 인지도가 높은 VISA와 MASTER를 등지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VISA 관계자는 “비씨카드는 우리의 오랜 고객사다. 이번 사태에 우리 쪽에서 나서 적극적으로 해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사태가 잘 해결되리라 믿는다”며 비씨카드와 제휴를 중단할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좌불안석인 양측 다시 손잡을까?
비씨카드는 현재 최근 2년여에 걸쳐 500억원 가량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차세대 시스템 도입 백지화에 따른 후속 조치에 나서야 할 형편이다. 비씨카드는 올 5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차세대 시스템 오픈을 연기한 끝에 결국 백지화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우리은행 등 관계사들이 비씨카드의 차세대 시스템 도입에 발맞춰 자사의 시스템 개선 작업을 해왔으며 비씨카드로 인해 시스템 개선이 지체된 상황이어서 이에 따른 은행들의 손해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시급한 현안이다.
VISA카드 역시 불편한 입장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국내 여론 악화에 대한 우려와 함께 이번 공정위 제소에는 이례적으로 비씨카드 브랜드협의회 산하의 우리은행, 농협 등 총 11개 회원사도 동참해 자칫하면 국내 카드사와 ‘전면전’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양측의 불편한 상황이 화해의 상황까지 갈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며 “다만 어느 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전했다.
■ 인롄카드란?
인롄(银联)카드는 2002년 중국 인민은행 등 88개 은행 공동 출자로 설립한 국영 독점 카드사로 중국내 점유율이 99%를 웃돈다. 현재 중국 내에서 30만3000여 대의 ATM을 운영하고 262만개의 가맹점을 소유하고 있으며 2010년 말 기준 발행 건수 22억장에 달한다. 또한 승인실적은 1분기 기준 541조3680억원을 기록, 전년대비 44%가 늘어나 엄청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성장세를 의식한 미국은 2010년 9월 중국 정부가 인롄에 독자적 지위를 주고 있다며 WTO에 제소하기도 했다. 현재 인롄가드는 110개국에서 이용 가능하며 한국에는 비씨카드(2008년), 롯데카드(2011년 12월 첫 발급 예정)와 제휴하고 있다. 특히 비씨카드는 인롄카드와의 제휴를 통해 VISA 등의 글로벌 브랜드 카드가 아닌 국내 전용카드로 중국에서 이용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중국의 인롄카드 회원은 한국 인롄 가맹점 및 ATM에서 인롄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박지훈 기자 parkjh@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