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미국과 중국에 뒤처진 기술 혁신 격차를 해소하고 스타트업 생태계의 성장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야심찬 전략을 내놓았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8일(현지시간) ‘Choose Europe to start and scale(유럽을 창업과 성장의 중심으로)’ 전략의 일환으로, 최소 100억 유로(약 11조 3천억 원) 규모의 공공-민간 기술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펀드는 ‘Scaleup Europe Fund(스케일업 유럽 펀드)’라는 이름으로 2026년부터 본격 가동될 예정이다.
EU는 공공 자금에 민간 자금을 약 4배 이상 매칭하는 구조로 펀드를 설계하고 있으며, 민간 전문 운용사가 이 펀드를 관리하게 된다.
펀드의 최종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EU 고위 관계자는 “수치상으로도, 상징적으로도 분명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라며 “이 펀드는 그저 ‘물 한 방울’이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유럽은 세계적인 인재와 연구 인프라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는 유니콘 스타트업 수에서는 미국과 중국에 뒤처져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유럽연합 집행위는 스타트업 성장의 걸림돌로 △분절된 규제 체계 △제한된 금융 접근성 △시장·인재 부족 △기초 인프라 미비 등을 꼽았다.
이에 따라 ‘Choose Europe’ 전략은 창업 단계부터 스케일업 단계까지 스타트업의 전 주기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구성되며, 이 중 핵심 축이 바로 ‘Scaleup Europe Fund’다.
해당 펀드는 특히 빠른 성장을 눈앞에 둔 유망 기업을 대상으로 자금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글로벌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계획이다.
한 EU 관계자는 “우리는 창업 아이디어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 내고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는 데까지 지원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이번 전략은 단순한 스타트업 육성을 넘어 유럽의 기술 주권(technological sovereignty) 확보와 경제 전략의 일환으로도 해석된다.
최근 반도체, 인공지능, 바이오 등 핵심 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이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유럽은 ‘뒤처진 제3지대’라는 인식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실제로 EU는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EU 칩법(EU Chips Act)’과 인공지능 규범 정비, 그리고 디지털 싱글마켓 강화를 잇따라 추진하고 있으며, 이번 펀드는 이러한 전략적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펀드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경우 유럽 내 스타트업들의 ‘스케일업 고비’를 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한다.
프랑스 파리의 테크 투자기관 관계자는 “펀드 자체의 규모도 중요하지만, 유럽의 생태계 전반에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핵심”이라며 “투자뿐만 아니라 규제 간소화, 인재 유입 등 종합적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투자 흐름 속 ‘유럽 선택’ 가능할까‘Choose Europe’이라는 전략 명칭은 글로벌 창업가와 투자자에게 “유럽을 선택하라”는 직접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기술 인재와 자본이 실리콘밸리나 중국 주요 도시로 유출되는 흐름에 대한 유럽의 대응이기도 하다.
유럽연합은 이번 펀드를 통해 유럽을 기술 창업과 성장의 주요 무대로 재정의하고, 글로벌 투자 유치 경쟁에서도 주도권을 회복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실제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자금 집행의 효율성과 함께 각국 간 조율, 스타트업 생태계와의 유기적 협업 등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