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비어스가 10여 년 만에 움직였다. 새 캠페인 ‘데저트 다이아몬드’에는 따뜻한 화이트에서 샴페인, 앰버 톤까지, 사막 모래가 햇살에 물들 때 보이는 컬러 스펙트럼이 펼쳐진다. D 컬러의 완벽한 투명함 대신 자연이 빚은 미묘한 색감들이다.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생산업체(생산 가치 기준)가 왜 지금 사막을 꺼내 들었을까. 그 배경엔 뼈아픈 실패가 있다.
지난 5월, 드비어스는 자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브랜드 ‘라이트박스’를 접었다. 2018년 캐럿당 800달러로 시작해 2024년 500달러로 내렸지만 7년 만에 결국 문을 닫았다. 드비어스는 랩그로운을 ‘패션 주얼리’로 포지셔닝하며 천연과 분리하려 했다. 하지만 시장은 그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그사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도매가는 최대 90% 폭락했다. 시장 점유율은 2025년 20%대로, 2018년 3.5%에서 불과 7년 만에 여섯 배로 뛰었다. 중국과 인도발 물량 공세 앞에서 가격은 바닥을 쳤고, 드비어스는 백기를 들었다. 산업이 수십 년간 추구해 온 완벽함의 미학을 실험실이 더 싸게 구현한 것이다.
드비어스는 소비자 조사부터 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자신만큼 유일한 보석이었다. 평범해 보이는 이 한 문장에 절박함이 배어 있다. 지난 수십년간 다이아몬드 산업은 완벽함의 서열로 작동했다. 투명할수록, 흠이 없을수록, 무색에 가까울수록 좋은 다이아몬드였다. 그 공식이 랩그로운 앞에서 무너진 것이다. 천연만이 가진 건 뭘까? 드비어스는 불완전함 속의 유일성에서 답을 찾았지만 업계에선 우려가 나왔다. 결국 팔리지 않던 브라운 계열 다이아몬드를 떠넘기려는 거 아니냐고. 이에 드비어스는 브라운 다이아몬드 캠페인이 아니라 컬러 팔레트를 천연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도구로 쓴 거라고 선을 그었다. 데저트 다이아몬드 컬렉션에는 화이트 다이아몬드도 들어간다. D 컬러의 완벽한 무색이 아니라 ‘소프트 화이트’라 부르는 부드러운 톤이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약혼할 때 받은 올드 마인 컷처럼 미묘하게 따뜻한 색감을 품은 스톤들 말이다.
이 캠페인에 대한 소비자 리서치 결과를 보면 흥미롭다. 연령대와 성별 가리지 않고 반응이 좋았는데, 대부분은 ‘다이아몬드에 이렇게 다양한 색이 있다는 걸 몰랐다’ ‘획일적 완벽함이 아니라 각자의 피부톤처럼 저마다 다른 개성을 다이아몬드에 입히겠다’는 것이었다.
왜 하필 사막일까? 드비어스의 주요 광산은 보츠와나, 나미비아 등 아프리카 사막 지대에 있다. 그동안 채굴 현장은 럭셔리 브랜드에겐 불편한 진실이었다. 분쟁 다이아몬드, 열악한 노동 환경, 환경 파괴 같은 이슈들 때문이다. 드비어스는 이제 그 풍경을 정면으로 끌어안았다. 사막이라는 이미지로 원산지, 그곳 사람들, 지속가능성까지 함께 얘기하겠다는 거다. 랩그로운에는 없는 ‘땅의 이야기’를 무기로 삼는 전략이다. 드비어스는 이를 ‘비콘(Beacon)’이라 부른다. 테니스 브레이슬릿, 이터니티 링처럼 하나의 주얼리 콘셉트로 업계 전체를 결집시켜 카테고리 수요를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는 한 줄로 산업 전체를 이끌었던 드비어스가 다시 업계 마케팅 허브로 돌아오는 모양새다.
국내 주얼리 업계가 놓치면 안 될 대목이다. 한국 시장도 비슷한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백화점 매장까지 들어오면서 천연의 입지가 좁아졌다. 가격은 천연의 절반 이하인데 육안으로는 구별도 안 된다. 젊은 세대는 가성비를 따지고, 기성세대는 전통적 가치를 고수한다. 업계는 양쪽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드비어스가 라이트박스를 접고 데저트 다이아몬드로 간 이유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완벽함의 경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랩그로운과 똑같은 잣대로 싸우면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드비어스는 2024년 ‘오리진 전략’에서 트레이서 블록체인을 통해 1.25캐럿 이상 원석의 원산지 추적 시스템을 구축했다. 국내 업체들도 다이아몬드의 원산지와 유통 경로를 명확히 밝히고 이를 차별화 요소로 쓸 수 있다. 둘째, 색의 다양성을 새롭게 해석할 때다. 국내에서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는 양극단으로 갈렸다. 핑크, 블루, 그린 같은 희소 컬러는 일부 부유층 컬렉터들 사이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됐고, 흐린 옐로나 브라운은 등급 낮은 스톤 취급을 받으며 잘 팔리지 않았다. 그런데 MZ세대는 획일적 기준보다 개성을 중시한다. 바로 이 ‘안 팔리던’ 옅은 옐로나 브라운 톤을 ‘나만의 색’으로 재포지셔닝할 수 있다면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셋째, 지속가능성 스토리텔링과 업계 협력이다. 보츠와나 광산 지역의 교육 프로그램이나 나미비아 채굴 공동체의 이익 배분 사례를 진솔하게 담아내고, 개별 브랜드가 아닌 업계가 힘을 모아 천연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재정의해야 한다.
사막은 메말랐지만 생명이 있고 척박하지만 색이 있다. 드비어스의 데저트 다이아몬드는 이런 얘기다. 완벽한 D 컬러 한 알보다 은은한 옐로 톤과 소프트 화이트가 어우러진 그라데이션 반지가 더 나를 닮을 수 있다는 것. 실험실이 아니라 아프리카 땅속 깊은 곳에서 수억 년을 견뎌온 스톤이기에 각자 다른 표정을 갖는다는 것. 솔직히 말하면 이건 천연 다이아몬드의 리브랜딩이자 패배가 낳은 전략이다. 라이트박스라는 랩그로운 실험이 실패한 후 드비어스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완벽함의 서열에서 빠져나와 진짜가 가진 불완전한 아름다움으로 승부하는 것. 드비어스는 분명 애쓰고 있다. 10여 년 만의 대형 캠페인, 블록체인 추적 시스템, 사막이라는 감성 코드까지. 하지만 20%대까지 치고 올라온 랩그로운 시장 앞에서 ‘불완전한 아름다움’이라는 서사가 얼마나 먹힐지는 미지수다. 젊은 소비자들은 이미 합리적 선택에 익숙해졌다.
똑같이 반짝이는데 가격은 절반 이하라면? 스토리보다 가성비를 택하는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천연 다이아몬드가 살아남는 길은 더 완벽해지는게 아니라 더 진짜가 되는 수밖에 없다. 국내 주얼리 업계도 같은 기로에서 있다. 드비어스는 이제 완벽함을 팔지 않는다. 사막의 색과 땅의 기억, 그리고 저마다 다른 유일함을 판다. 한국 시장에 다른 선택지가 있는가? 랩그로운과의 가격 경쟁을 피하고, 천연만이 가진 스토리를 찾아내야 한다. 그 답을 찾지 못하면 드비어스의 라이트박스처럼 조용히 사라질 뿐이다. 데저트 다이아몬드가 천연 다이아몬드의 마지막 반격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실험의 시작일지. 그건 결국 소비자의 선택이 말해줄 것이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적 정보,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젬스톤 매혹의 컬러>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