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암호화폐 시장이 글로벌 기업들의 진출에 맞서 가속 페달을 강하게 밟고 있다. 국내 대표 포털인 네이버와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두나무) 결합설이 나오며 스테이블코인을 비롯해 커머스·결제·투자를 한 앱 안으로 끌어당길지 주목받고 있다. 같은 무대에서 토스–빗썸 연합과 네이버–두나무 축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주도권을 다투는 그림도 빠르게 그려진다.
다른 쪽에선 바이낸스가 고팍스 인수를 발판으로 글로벌 1위 거래소가 메기로 재등장할 채비를 마쳤다.
규제 쪽 시계는 더 바쁘다. 금융당국이 스테이블코인 규율을 포함한 ‘2단계’ 법안을 예고한 가운데, 은행 중심 모델·준비자산·상환권·이자 지급 제한 같은 쟁점이 실무 과제로 내려오고 있다. 미국은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에 연방 규율을 부여했고, 영국은 보유 한도 논의를, 홍콩은 발행자 라이선스를 손보며 글로벌 규제환경도 변하고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플랫폼의 결합·유동성의 귀환·규정의 명확화가 동시에 시장을 재배치하는 국면이다.
 
          10월 국내 암호화폐 시장을 달군 소식은 국내 포털·커머스·페이 생태계를 보유한 네이버가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와의 주식교환·합병 소식이다. 슈퍼앱과 거래소의 결합은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적인 분석도 쏟아지고 있다. 네이버파이낸셜을 축으로 한 지배구조 재편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수직결합이 현실화할 때 ▲페이먼트–커머스–투자 경험의 연결 ▲리테일 유동성의 ‘인앱 내재화’의 큰 무기를 가질 수 있지만 리스크·이해상충을 줄이는 ‘중립적 장치’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최승호 DS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국은 금산분리 원칙을 시행하고 있지만, 네이버와 두나무는 기존 규제에 따라 금융회사로 분류되지 않고 있다”라며 “법적 모호성이 명확해진다면 합병은 여전히 매우 실현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거래소의 상장·마케팅과 포털의 트래픽이 결합하면 파급력이 크다”라며 “급격한 유동성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현재 국내 거래소에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들이 물 위로 올라올 가능성도 커진다”라고 지적했다. 상장·광고·추천 등 영역에서 이해상충 차단벽(Chinese wall)과 정보접근 통제, 제3자 감시체계가 선행되지 않으면 규제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원회는 이에 대해 “네이버의 두나무 편입이 금산 분리 원칙을 위반하는지를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며 정부의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요즘 국내 블록체인 업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다. 말 그대로 1코인이 1원에 고정되도록 설계된 디지털 화폐다. 쉽게 말해 ‘가격이 오르내리지 않는 암호화폐’다. 예를 들어 내가 1000원을 KRW 스테이블코인으로 바꾸면, 언제든 다시 1000원으로 환전할 수 있는 구조다.
이러한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많은 기업이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결제·송금·온·오프커머스 연계에서 네트워크 효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빅테크–거래소 연합이 현실화될 시 주도권은 ‘페이먼트 루프(충전–결제–정산)’를 누구에게 더 편리하게 열어주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최근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별도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업 타당성을 검토했고, 빗썸과 결제 시스템 협력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같은 시기 빗썸은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지원 공모전을 열고 최대 300억원 규모의 생태계 육성을 선언했다. 그런데도 이번 네이버–두나무의 합병이 현실화하면 포털·쇼핑·페이에 더해 업비트의 거래 유동성까지 보유해 잠재 시너지가 더 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결국 변수는 제도다. 이 두 연합에 더해 한국은행은 통화정책 유효성 저하, 자본유출, 지급결제 안정성 훼손을 경고해 왔고, 금융위는 ‘은행 중심 컨소시엄’ 모델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지난 10월 20일 국정감사 당시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스테이블코인의 신뢰성과 안정적인 제도운용을 위해선 은행이 참여하는 컨소시엄 형태를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어느 쪽이든 ‘인가–준비자산–상환권–공시’ 등 최소요건을 일찌감치 충족시키는 쪽이 먼저 출발선에 설 가능성이 크다.
10월 15일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바이낸스의 고팍스 인수와 관련한 임원변경 신고를 수리하며, 2년 만에 사실상 ‘규제 내 복귀’가 열렸다. 그러나 핵심 경쟁력인 글로벌 유동성의 국내 유입—즉 바이낸스–고팍스 간 오더북(호가창) 공유—은 별도 승인 대상이다.
금융당국은 국내 거래소와 해외 거래소와의 오더북 연동은 AML·개인정보보호·감독 공백 우려로 매우 엄격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실제로 빗썸의 ‘해외 거래소와의 오더북 공유’ 사안에 대해 FIU가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박광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은 최근 국정감사를 통해 “해외 거래소의 자금세탁방지 체계가 미흡할 때는 관리감독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거나 자금 추적이 어렵다”라고 설명하며 바이낸스와 고팍스의 오더북 공유에는 “현재까지 논의되는 사항은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또한 그는 “해외 거래소와 거래 내역을 기록하는 게 가능하냐”라는 질의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라며 “(빗썸은) 아직 검사가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규제환경이 변하지 않으면 바이낸스는 오더북 공유 없는 원화마켓 확장, 고객확인(KYC)·트래블룰 정합성 확보, 국내 송금·환전 루프 설계 등 ‘규제 내 성장’ 모델을 찾는 과제가 남았다. 한 업계 전문가는 “바이낸스의 오더북 공유가 불허되면 유의미한 점유율 확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름 이후 국내 대형 금융그룹 CEO들이 순차적으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과 만났다. “한국은 스테이블코인 채택의 전략 시장”이라는 써클(Circle) 경영진의 발언과 행보에, 국내 한 은행과 원화 스테이블코인 공동 발행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다만 써클 측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계획은 없고, 은행이 USDC를 레일로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내놨다.
테더(Tether) 역시 국내 은행권과 접촉한 정황이 전해졌다. 흐름의 핵심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합법 유통과, 장차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시 은행·카드·페이와의 교차 네트워크 연결이다. 규제 명확성이 담보된다면 달러–원화 스테이블코인 간 ‘브리지’가 결제·해외 송금·B2B 정산에 실사용 레일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은 7월 ‘지니어스 법(GENIUS Act)’ 통과로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의 연방 규율을 처음 명문화했다. 100% 유동준비금, 월별 준비자산 공시, 동시 파산 시 홀더 우선변제, BSA(자금세탁방지) 적용 등을 큰 줄기로 담아 정책적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이를 통해 은행·비은행 모두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가능해졌다. 이 법은 금융기관 외에도 달러 결제의 온체인 이전을 제도권이 수용했다는 상징성을 가진다. 영국은 충격 완화를 위해 개인 1만~2만 파운드, 기업 1000만달러 수준의 한시적 보유 한도를 시사했고, 유럽은 미카(MiCA) 발효로 전자화폐형(EMT)·자산참조형(ART) 스테이블코인의 공시·준비 자산·거버넌스를 규정했다. 제도화가 빨라질수록 기관투자자와 핀테크의 참여 폭이 커지고, 스테이블코인의 용도는 ‘거래 마진 담보’에서 ‘일반 지급결제’로 이동한다.
 
          최근 이런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시험해보려는 시도가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KRW1과 KRWIN이다. KRW1은 국내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 비댁스(BDACS)가 우리은행과 손잡고 아발란체(Avalanche) 네트워크에서 발행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다.
먼저 비댁스는 KRW1의 상표 등록을 이미 지난 2023년 12월 마쳤다. 증거금은 100% 원화를 담보로 하고, 전략적 파트너인 우리은행 계좌에 예치된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말 비댁스에 투자를 단행했고,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비댁스는 KRW1을 금융 전반에서 활용할 수 있는 범용적 스테이블 코인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류홍열 비댁스 대표는 “비댁스는 단순히 자산을 보관하는 커스터디 기업이 아니다. 디지털자산 시장의 인프라를 제공하고 기관투자자를 포함해 다양한 고객의 자산을 관리하는 파트너다”라며 “KRW1은 이러한 비댁스의 역할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두고 금융권과 핀테크 업계, 블록체인 업계 간에 미묘한 주도권 다툼이 있었는데, 첫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반면 KRWIN은 소규모 결제나 송금 시나리오에 초점을 맞춘 실험적 모델이다. 두 프로젝트 모두 아직 공식 인가받지 않았지만, 한국이 스테이블코인을 실제 결제나 상점 거래에 활용할 수 있을지를 검증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또 하나 눈여겨볼 부분은 어떤 네트워크에서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다. 예를 들어 솔라나(Solana) 재단은 국내 파트너사들과 손잡고 ‘컴플라이언스(규제 준수)에 맞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누가 은행·카드사·PG사 같은 결제 인프라와 가장 잘 연결되는지의 싸움이다.
앞으로 금융당국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를 공식화하면, 이 파일럿 프로젝트들은 바로 ‘결제용 토큰’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소비자는 카카오페이처럼 쉽게 코인을 충전하고, 온라인 쇼핑이나 해외송금에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실험은 단순한 테스트가 아니라, ‘한국판 디지털 결제 생태계’를 누가 주도할지 미리 가늠하는 경쟁이기도 하다.
이처럼 최근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필두로 국내외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토스·빗썸·네이버·두나무 같은 대형 사업자들이 본격적으로 원화 기반 디지털 머니 생태계 구축에 뛰어들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기업인 써클과 테더까지 한국 시장을 타진하면서, 국내외 자본이 동시에 움직이는 드문 국면이 열렸다.
이처럼 산업의 관심과 투자가 한데 몰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스테이블코인은 암호화폐 중에서도 가장 ‘현실 경제’와 맞닿아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송금·결제·커머스·투자 등 실생활의 모든 흐름 속에서 사용될 수 있는 만큼, 규제가 명확하지 않으면 시장 전체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
결국 핵심은 ‘누가 먼저 제도에 맞는 표준을 만들어내느냐’다. 정부는 2단계 가상자산법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인가제와 상환구조를 명문화할 계획이며, 이는 한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명확한 규제체계를 갖춘 국가로 나아가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2호 (2025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