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서 3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여전히 많은 통계를 본다. 유독 바늘로 심장을 찌르는 것처럼 통증을 유발하는 통계가 있다. 바로 자살률이다. 스톡(stock)과 플로우(flow) 나란히 최악이다. 국내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은 지난해 총 1만 4872명. 하루 평균 무려 40명이 넘는 숫자다. 동시에 13년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운 기록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3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1위에 오른 뒤 무려 22년째 부동의 1위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쓰고 있다. OECD 밖으로 범위를 넓혀도 우리보다 자살률이 더 높은 나라는 레소토, 가이아나, 에스와티니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솔직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들이다. 연령대 별로 60세 이상 고령자, 10~20대 젊은층에 이어 우리 사회의 허리인 40대도 극단적 선택이 암을 제치고 사망 원인 1위로 올라섰다. 특히 40대 자살률은 1년만에 무려 15%나 늘어났다.
진지하게 묻고 싶다. 극단적 선택은 개인의 문제인가. 사회의 문제인가. 1980~1990년대 원조 ‘자살 왕국’인 일본은 2003년 정점을 찍은 후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금은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이 15.3명으로 한국(27.3명)의 절반 수준이다. 그 노력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이즈미 총리 시절이던 2006년 자살대책기본법을 제정한데 이어 내각부에 고독-고립대책 담당장관을 신설하고 관련법을 수시로 개정, 보완하고 있다. 자살 징후를 사전에 파악하는 핫라인 상담센터와 정신질환에 대한 응급의료시설을 확대했고 지자체별로 자살 시도와 예방에 대한 비교 평가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해 평택시가 경기도에서 자살률이 37.8명으로 가장 높았는데 그 이유는 뭔가. 인접한 이천시의 경우는 반대로 자살률이 18.8명으로 평택시의 절반밖에 안됐는데 그 차이는 어디서 나왔나. 지난해 한해만 그런 건가. 추세적인 차이인가. 이런 분석이 결여된 땜질식 대책은 빛좋은 개살구에 그치게 된다.
지난해 자살이나 자해 시도자는 3만 명을 넘었지만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후속 치료와 관리, 치유 상담 등 사회 안전망에 포함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전국 89곳 인구감소지역의 경우 무려 24곳에서 정신과 의사가 한 명도 상주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잠재적 위험군인 우울증 환자는 이미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연예인을 비롯한 공인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넣는 악성 댓글이나 가짜 뉴스도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말로만 IT강국이라고 떠들지 말고 포털이나 동영상 사이트의 알고리즘 기술을 제도적으로 활용해 보자. 극단적 선택의 위험성에 노출돼 있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치유 정보를 얼마든지 전달할 수도 있다. 먹고 살기 어려워질수록, 1인 가구가 급증할수록 자의로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은 더 늘어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 첫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 자살률이 왜 이렇게 높나요?” 라고 화두를 던졌다. 이제는 관료들이 답할 차례다. 주가 5000시대도 좋고, AI 3대 강국도 좋지만, 자살률을 낮춘 첫번째 정부라는 평가는 그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앞으로 4년 6개월은 그 물꼬를 돌리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닐 수 있다. 그렇다고 결코 부족한 시간도 아니다.
[채수환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