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수준은 이미 상향 평준화됐다. 어떤 모델이든 가격 대비 뛰어난 성능을 발휘한다. 여기서 잠깐, 그럼 그중에서 최고는 어떤 모델일까. 단 한 가지 분야에서 비교를 거부하는 차를 모았다. <매경LUXMEN>이 선정한 각 분야의 톱이랄까.
7시리즈는 BMW의 플래그십 세단이다. 새롭게 변신한 신형 7시리즈는 분할형 헤드램프와 거대해진 키드니그릴의 첫 인상이 강렬하다. 덕분에 일각에선 호불호가 분명하단 평가도 이어진다. 하지만 판매량을 살펴보면 호가 불호를 저만치 앞섰다. 2025년 상반기 판매량(i7 포함)은 2885대, 전년 동기 대비 약 23.7%(2332대)나 늘어난 수치다. 업계에선 연간 5000대 판매 돌파를 예상하고 있다. 판매량 급증의 이유는 역시 상품성이다. 공간에 대한 만족감이 구매로 이어졌다. 실제로 프리미엄 브랜드일수록 안락하면서 고급스러운 공간을 만들어왔다. 공간의 크기는 물론 시트의 소재와 각종 편의장치를 더해 최고를 지향한다. BMW 시어터 스크린은 그 흐름의 최신 결과물이다. ‘신형 7시리즈’에 장착해 기존 모델과 확연히 다른 공간을 제공한다.
특히 다양한 편의사양 중 엔터테인먼트에 집중했다. 지붕에서 내려오는 32:9 비율 31.3인치 파노라믹 디스플레이는 보는 것만으로 입이 떡 벌어진다. 시트에 머리를 기대고 앉으면 시선이 머무는 위치에 디스플레이가 자리한다. 최대 8K 해상도를 지원하고 유튜브 등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현한다. 화면만 큰 게 아니다. 바워스&윌킨스 다이아몬드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도 적용했다. 몰입도를 높이는 건 결국 소리다. 도어에 장착된 터치 커맨드의 ‘시어터 모드’ 기능을 누르면, 자동으로 뒷좌석 블라인드가 올라오고 실내조명의 조도가 낮아져 영상 감상에 최적의 환경을 조성한다. 그러니까 움직이는 개인 영화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7시리즈가 강조하는 럭셔리다. 가격 1억 5070만~1억 8640만원.
렉서스가 선보인 ‘LM 500h’는 국내 쇼퍼드리븐 시장에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이름하여 ‘플래그십 MPV(Multi Purpose Vehicle)’다. 단순한 미니밴이 아니라 럭셔리 무버라 명명된 이 차량은 현재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다. 기아의 ‘카니발’이나 토요타의 ‘알파드’가 비슷한 차량으로 분류되지만 급이 다르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평가의 중심에 2열 프라이빗 라운지가 자리한다.
안락함은 시트가 좌우한다. 어쩔 수 없다. 몸에 직접 닿으니 타는 내내 끊임없이 느끼고 확인하게 된다. 자동차 회사도 시트의 중요성을 알기에 인체공학을 접목해 시트를 빚어낸다. 의사나 대학과 협업해 시트를 만드는 회사도 있다. ‘렉서스 LM 500h’는 시트에 관해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모델이다. 미니밴이라는 넉넉한 공간을 토대로 풍성한 안락함을 구현한다. 그 말은 공간을 채운 시트에 사활을 걸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 자신감이 이름에 묻어난다. VIP 시트 아니던가. 이름처럼 기존 자동차 시트 이상의 편안함을 제공한다. 등받이는 거의 눕듯이 젖혀지고, 고급스러운 가죽으로 시트를 감싸 몸에 닿는 촉감을 부드럽게 했다. 무엇보다 모션 캡처 기술을 기반으로 시트를 완 성했다. 탑승객의 신체 움직임을 분석해 충격 흡수재와 부드러운 소재를 사용해 내부를 채웠고, 흔들림이나 진동을 막는 구조도 고심했다. 세계 최초로 신체 부위별 공조 기능을 탑재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시트 발전사에 분명히 기록될 시트다. 가격 이그제큐티브 1억 4800만원, 로열 1억 9600만원.
‘G 580 위드 EQ 테크놀로지’는 내연기관 G-클래스의 헤리티지를 전기차로 재해석한 모델이다. 일명 ‘전기 G-바겐’이라 불리는 이유다. 핵심은 G-클래스의 외관과 오프로드 DNA에 있다. 개발 단계부터 이 두 가지 장점을 유지하면서 EV기술을 접목시키는 특명이 주어졌다. 물론 결과는 대성공. 특히 제자리에서 움직이는 G-턴이 이 모든 걸 설명한다. 자동차는 가고 서고 선회한다. 자동차가 발명된 이후 기본적인 움직임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안에서 얼마나 빨리, 부드럽게, 혹은 안정적으로 움직이느냐로 평가받아왔다. 때로 획기적으로 개선한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고급 자동차에 적용하는 뒷바퀴 조향 장치가 그랬다.
대형 자동차는 차체가 크기 때문에 회전 반경도 넓다.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뒷바퀴 각도를 틀어 회전 반경을 줄였다. 그럼에도 기본적인 움직임에서 벗어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거의 제자리에서 회전한다면?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긴 상식을 깨버린 움직임 아닐까. G 580 위드 EQ 테크놀로지는 그 움직임을 구현했다. 특별한 움직임이기에 따로 G-턴이라고 불렀다. 이런 비현실적 움직임은 각 바퀴에 전기모터를 단 전기차이기에 가능했다. 각각의 전기모터를 따로 구동해 거의 제자리에서 차체를 돌린다. 험로에서 차를 돌리기 힘든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유용한 기능이다. 이렇게 움직이는 자동차는 G 580 위드 EQ 테크놀로지가 유일하다. 가격 에디션 원 2억 3900만원.
GMC의 ‘시에라’는 단순한 픽업트럭이 아니다. 이른바 ‘프리미엄 픽업트럭’이다. 트럭에 프리미엄 SUV의 감성을 입혔으니 꽤 고급스럽다. 게다가 국내에선 최고 트림인 ‘드날리’만 단일모델로 출시됐다. 이차, 일단 크다. 그냥 큰 게 아니라 국내 출시한 승용 모델 중 가장 크다. 누구나 그 앞에 서면 일단 크기에 놀란다. 전장은 5890㎜로 6m에서 단 11㎝ 짧다. 전폭은 2065㎜, 전고도 1950㎜로 2m에 육박한다. 풀사이즈 픽업트럭다운 크기다. 픽업트럭의 고향인 미국에서도 크기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덩치다.
외형이 큰 만큼 공간도 넓다. 2열 레그룸이 1102㎜로 1열에 버금간다. 크기도 거대하지만 픽업트럭이기에 적재 용량도 1781ℓ나 된다. 대형 SUV의 짐칸이 소박해 보이는 수치다. 시에라의 특징은 명확하다. 가장 크고, 가장 많이 짐을 실을 수 있다. 6.2ℓ V8 직분사 가솔린 엔진이 탑재돼 최고 출력 426마력, 최대 토크 63.6㎏f·m의 성능을 발휘한다. 여기서 잠깐, 크기가 특징이 될 수 있을까? 그럭저럭 크면 돋보이지 않는다. 시에라처럼 크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내에서 가장 큰 승용 자동차. 다른 차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면 그 크기 자체가 더없이 매력적인 특징이 된다. 시에라를 바라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가격 9420만~9590만원.
[안재형 기자 · 김종훈 모빌리티 칼럼니스트 · 사진 각 브랜드]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2호 (2025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