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2030년까지 착공 기준으로 총 135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앞으로 5년간 수도권에 매년 27만 가구씩을 공급할 계획이다. 이는 최근 3년 평균(연 15만 8000가구)보다 연 11만 2000가구 많은 물량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9월 7일 이 같은 내용의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현 정부가 내놓은 첫 번째 부동산 공급 대책이다. 줄여서 9·7대책으로 불린다. 향후 5년간 총 135만 가구를 공급하기 위해 크게 5가지 정책 과제를 내세웠다. ▲공공택지 공급확대(37만 2000가구) ▲유휴용지·노후시설 재정비(3만 8000가구) ▲도심지 주택공급(36만 5000가구) ▲민간 공급여건 개선(21만 9000가구) ▲기타 주택사업(35만 5000가구) 등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공공택지 공급확대 부문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사업 구조를 전면 개편해 ‘공공 주도’로 수도권에 주택을 공급할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민간에 땅을 파는 택지 매각을 전면 중단한다. 아예 LH가 조성한 주택용지는 민간에 매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법제화 할 계획이다. 공공이 개발이익을 환수하는 체계로의 전환이다.
앞으로 LH는 수도권 공공택지를 직접 개발한다. LH 직접 시행으로 2030년까지 수도권에 총 6만 가구를 공급하는 게 목표다. LH가 직접 시행하되 건설 공사는 민간에 맡긴다. 민간이 설계와 시공을 전담하는 이른바 ‘도급형 민간참여사업’ 방식이다. 선호도가 높은 민간 건설사의 주택 브랜드가 쓰이도록 하겠단 것이다.
아울러 LH가 갖고 있는 상가 땅 같은 ‘비주택 용지’를 전환한다. 이를 주택용지로 바꿔 2030년까지 1만 5000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공공택지 재구조화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10년 이상 장기 미사용 토지 등을 살펴본다. 용도 전환에 따른 절차도 간소화하고 지역 주민의 협조를 유도하기 위해 개발이익의 일부를 재투자할 방침이다.
정부는 LH가 직접 시행을 맡기 때문에 공급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기존 계획대로면 2030년까지 수도권 공공택지에서 25만 1000가구가 착공 예정이었다. 하지만 LH 직접 개발로 속도를 높여 착공 규모를 37만 2000가구로 늘린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다만 LH는 그간 공공택지를 민간에 매각해 얻는 수익으로 임대주택을 운영하며 얻는 손실을 메꾸는 교차보전 회계방식을 택해왔다. 택지 매각이 중단되면 LH의 재무 상황이 악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상경 국토부 1차관은 이에 대해 “필요한 경우에 정부 자금이나 채권 발행을 통해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은 LH 개혁위원회에서 추가 논의할 방침이다.
공공택지 전체 사업 기간을 2년 이상 단축시킬 계획이기도 하다. 서울 서리풀지구와 같이 지구계획 수립을 준비 중인 곳은 인허가 절차를 줄인다. 3기 신도시에선 토지 보상 속도를 높이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꺼내들었다. 가령 보상에 협조하는 토지주에게 ‘협조 장려금’이란 가산금을 지급하는 당근 정책을 마련했다.
동시에 보상 합의 후 퇴거를 거부하는 땅 주인에게는 과태료 등 불이익을 법제화하는 채찍을 꺼내 들었다. 과거 토지 보상에 합의한 후 금액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퇴거에 응하지 않는 주민이 있었단 설명이다. 또한 보상 착수 시기를 지구 지정 이후가 아닌 이전으로 조기화한다.
두 번째 정책 과제로는 유휴용지·노후시설 재정비를 꼽았다. 복합 개발을 추진할 서울의 신규 유휴용지를 총 4곳 발표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서초구 한국교육개발원 용지다. 2017년 충북 이전으로 비어있는 이곳 용지를 활용해 700가구를 공급한다.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사용되지 않은 송파구 위례업무용지를 개발해 1000가구를 짓는다. 강남권에 1700가구가 신규 공급되는 셈이다.
도봉구 성대야구장 용지도 복합 개발해 1800가구를 공급한다. 내년에 이전을 앞둔 강서구청·구의회·보건소 용지도 활용해 558가구를 조성한다. 2030년까지 서울 유휴용지에서 4000가구가 첫 삽을 뜨도록 하는 게 목표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C노선이 계획된 지하철 1·4호선 창동역과 대장홍대선이 예정된 원종역 등 철도 역사도 개발해 1인 가구와 청년 특화 주택을 건설한다. 대학이 가진 빈 땅에 여러 대학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연합 기숙사를 공급하는 방안도 마련한다.
수도권 노후 공공임대주택 재건축을 통해 2030년까지 2만 3000가구를 착공한다. 영구임대 아파트의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완화해 고밀 재건축을 추진한다. 서울 노원구 상계마들·하계5단지에서 이미 시범 사업이 진행 중이다. 2027년부터 강남구 수서(3899가구), 강서구 가양(3255가구) 일대에 있는 노후 공공임대도 재건축을 본격 추진한다.
기존 입주자의 주거 안정 확보를 위해 주변 공공임대를 임시 이주 주택으로 활용한다. 특정 시기에 이주 물량이 집중되지 않도록 임대주택 단지 규모와 특성에 맞게 다양한 재건축 방식을 도입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대형 단지의 경우 구역을 나눠 분할 순환 재건축을 추진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가진 노후 공공청사와 국공유지도 재정비한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수도권에 2만 8000가구가 착공될 전망이다. 공공청사 용지의 용적률을 상향하고 LH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을 통해 주도적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국토부가 직접 건설사업 승인에 나선다.
변수는 노후 공공청사와 국공유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의 반발이 나오는 것이다. 이를 줄이기 위한 대책도 내놨다. 무주택 청년과 신혼부부, 신생아 가구의 우선 입주를 지원하되, 지역 주민의 우선 입주도 일부 허용하는 방안이다. 지역 주민의 생활 편의를 높이기 위해 육아·보육·의료·편의시설 등 다양한 생활 SOC도 함께 공급한다.
아울러 학교용지 활용도를 높인다. 학교용지 복합개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는 게 대표적이다. LH와 교육청, 지자체가 소유한 장기 미사용 학교 용지 가운데 수도권을 대상으로 향후 5년간 3000가구 이상을 개발한다. 사용되지 않는 학교용지 현황도 매년 검토한다. 장기간 쓰이지 않는 용지는 원칙적으로 학교 용도를 배제할 방침이다.
세 번째 정책 과제는 도심지 주택 공급을 위해 정비사업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공공 도심복합사업 제도를 개선해 2030년까지 수도권에 5만 가구를 공급할 예정이다. 2021년 도입된 공공 도심복합사업은 역세권, 준공업지역, 저층 주거지 등 도심의 빈 땅을 대상으로 LH 등 공공이 시행자로 나서는 사업이다.
이재명 정부가 문재인 정부 시절 도입했던 이 사업의 시즌2를 추진하는 셈이다. 핵심은 현재 역세권만 가능한 용적률 1.4배 완화 규정을 저층주거지에도 적용하는 내용이다. 건축물 높이제한 완화, 상가와 같은 비주거시설 의무비율 완화 등도 추진한다.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을 통해서도 향후 5년간 6만 3000가구를 공급한다. 1기 신도시 2차 선도지구는 주민 제안 방식으로 선정하도록 한다. 주민대표단이 정비계획 초안을 짜고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직접 제안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주 여력이 부족한 지역은 정비 예정물량, 관리처분계획 물량 등을 통제하고 금융 제한 조치도 병행할 계획이다.
이번 대책에는 사업성이 낮은 노후 도시 정비사업지를 지원하는 내용도 담겼다. 국토부는 2028년까지 공공신탁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본격 검토하기로 했다. 1기 신도시 1차 선도지구 재건축 추진 과정을 분석해보니 상대적으로 사업성이 떨어지는 노후 단지는 민간신탁사의 외면을 받았기 때문이란 게 정부 입장이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단계별 절차 간소화에도 나선다. 초기 단계에선 기본계획과 정비계획 수립을 동시 진행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정비계획안에 대한 주민 공람과 지방의회 의견청취 절차도 병행을 허용한다. 조합 설립을 위한 행정절차를 개선하기 위해 조합 설립 동의로 간주할 수 있는 특례 범위를 확대한다.
중·후반 단계에서도 사업시행계획과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동시에 신청할 수 있게 허용한다. 공사비 갈등으로 인한 사업 지연을 막기 위해 통합분쟁위원회를 신설하는 것도 주목된다. 통합분쟁위에 공사비 분쟁을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계획이다. 시공사에 대한 자료 요청권도 부여한다.
민간 주택 공급 여건을 개선하는 건 네 번째 정책 과제다. 주택건설사업 인허가 제도 개선, 학교용지 관련 기부채납 부담 완화, 주택사업자 공적보증 지원 강화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됐다. 특히 단기 공급 효과가 있는 오피스텔이나 도시형 생활주택 등을 신축 매입해 2030년까지 수도권에 14만 가구를 공급할 예정이다. 이 중 절반인 7만 가구는 향후 2년간 집중 공급한다.
마지막으로 9·7대책에선 일부 수요 억제책도 함께 다뤄졌다. 가계 대출 규제 수위를 한 단계 더 높인 셈이다. 핵심은 종전까지 서울과 수도권에서 보증기관을 통해 2억~3억원의 전세 대출을 받았던 1주택자의 대출 한도를 2억원으로 일괄 줄이겠다는 것이다. 다만 무주택자는 이번 전세대출 한도 하향 대상이 아니다. 2주택자 이상 다주택자는 애초에 보증기관을 통해 전세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정부는 또 규제지역 LTV 상한을 50%에서 40%로 강화하기로 했다. 규제지역 내 12억원 이상 고가 주택 대출 한도가 종전 6억원보다 더 낮아져 4억 8000만원까지 줄어드는 셈이다. 비규제지역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LTV 70% 상한이 적용된다.
주택매매·임대사업자의 주담대는 원천 봉쇄한다. 종전까지 주택매매·임대사업자 주담대는 규제지역 30%, 비규제지역 60%로 LTV를 적용했지만 8일부터는 수도권·규제지역에 LTV 0%를 적용해 사실상 대출을 금지한다.
수도권·규제지역 내 주택을 취득하기 위한 지방 소재 주택 담보 주택매매·임대사업자도 대출을 받을 수 없다. 다만 정부는 임대주택 공급이 위축되는 부작용을 감안해 주택 신규 건설 시 최초 대출 등에 대해선 종전 규정을 적용하기로 했다.
아울러 정부는 부동산 시장 감독 기능을 강화한다. 민생을 저해하는 부동산 범죄에 정부가 적극 대응하기 위해 국토부와 금융위원회, 국세청, 경찰청, 금융감독원 등이 함께하는 별도 조사·수사 조직을 신설하기로 했다. 이들은 경찰이나 지방자치단체 특별사법경찰관과 함께 단속을 벌여 기획부동산과 허위 매물 등을 집중 단속한 뒤 처벌할 방침이다.
[이희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