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서울 강남의 알토란 같은 건물에 임대료도 내지 않고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이 로또 같은 기회를 잡은 이가 머리에 떠올린 건 ‘오디오’. 당장 내로라하는 국내 음향전문가와 업체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생각은 오직 하나 “평생 음향과 오디오만 생각한 한국의 장인들이 K-오디오를 완성하면 어떨까”였다. 이 영화 같은 계획을 실행에 옮긴 이는 김연경 AM&FM 대표. 오디오 수입과 제조를 병행하며 알게 된 전문 업체들과 자신의 꿈을 나눈 김 대표가 현재 협업하고 있는 업체는 총 15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나둘 건물의 빈 공간을 채우며 곧 첫 번째 결실을 내놓을 예정이다.
“AM&FM과 함께하는 하이파이 업체들은 단 분야가 하나도 겹치지 않습니다. 각자 자기 분야에서 최고라고 인정받는 분들이죠. 이분들이 융합해 결과물을 만든다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통할 거라고 믿었어요. 그래미상을 2번이나 수상한 황병준 레코딩 엔지니어, 가수 조동진 님의 동생인 조동희 최소우주 대표처럼 개인이 힘을 보태신 분도 있고, 올 CES 2025서 인공지능 디바이스를 공개한 ‘범진전자’와 세계 최초로 독자 개발한 정자기식 스피커 기술을 선보인 ‘지오드사운드’처럼 앞선 기술을 보유한 업체도 있습니다.”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AM&FM을 소개한 김연경 대표는 “곧 진공관 앰프와 이어폰이 출시될 예정”이라며 “음향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VR과 게임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과연 영화 같은 현실은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그 첫 번째 시즌이 곧 시작된다.
온오프 오디오 매거진에서 기자, 편집장으로 일했다. 이후 오디오·디자인 브랜드 수입사를 운영하며 컨설턴트와 오디오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오디오 제조사 ㈜헤르만 대표를 거쳐 현재 오디오·음반 제조 클러스터 ㈜AM&FM 대표로 재직 중이다.
Q AM&FM의 창업이 흥미로운데요. 국내 하이엔드 오디오 제조 연합체라고 보면 될까요.
A 지난해 여름에 일정 기간 이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어요. 제 머릿속에 우선 떠오른 게 오디오였습니다. 늘 오디오 시장과 업계 동향에 관심을 갖고 있었거든요. 새로운 제품에 대한 관심도 많고요. 그런데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은 대부분 외국산이에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왜 우리 오디오가 문화나 기술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국내 음향 전문가들이 뭉쳐서 공동의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공간이 생긴 거예요.
Q 그 동안 음향 전문가들과 특별한 교류가 있었던 겁니까.
A 제가 개발한 제품을 테스트하거나 유통하고 싶어서 일상적으로 음향 제조사 분들을 만나고 있었어요. 덕분에 그분들의 기술과 열정, 한계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각각 최고의 기술을 보유한 업체들인데, 자신의 분야 외엔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진공관 업체는 진공관으로 최고의 소리를 내는 것에만 집착했고, 디지털 업체는 최신 기술을 도입한 기기 개발에만 매진하는 식이랄까. 제품 디자인이나 마케팅, 감성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요즘은 스마트폰처럼 전화, 카메라, 컴퓨터가 하나로 융합하는 시대잖아요. 그분들(업체)을 모아서 최고의 K-오디오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Q 뜻이 아무리 좋아도 하이파이 업체들을 한곳에 모은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A 국내 오디오 시장이 오랫동안 침체되다 보니 많은 업체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었어요. 글로벌시장도 미국이나 영국, 중국의 자본이 유명 브랜드를 합종연횡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고 있었거든요. 아무리 유명한 브랜드라도 홀로 버티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인 거죠. 그런데 여러 업체가 뭉치면 부품이나 제품 가공에 드는 비용이 훨씬 저렴해져요. 지금까지 비용 문제로 신경 쓰지 못했던 제품 디자인이나 마케팅도 여러 업체가 함께하면 큰 부담 없이 해결할 수 있거든요. 자신의 분야에 힘을 집중하고 파이를 크게 만들어 나누자고 설득했더니 어렵지 않게 건물 전체가 채워졌습니다.
Q 도대체 오디오와는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겁니까.
A 오디오 전문지에서 기자 생활을 했어요. 2000년에 해금 연주자를 인터뷰했는데, 이게 소리의 세계구나 싶었지요. 이후에 하이파이 오디오도 수입하고 똘똘한 국내 제품도 홍보하면서 총판을 맡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오디오 제작도 하고 있고요.
Q 대자본이 투입된 글로벌 오디오 그룹들에 비해 AM&FM의 차별점이라면.
A 오디오 그룹들의 인프라는 오디오 기기에만 국한돼 있어요. 하지만 AM&FM은 음향 시장 전반이 타깃입니다. 훨씬 범위가 넓죠. 쉽게 말하면 단순히 음악만 감상하는 오디오 시장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에요. AM&FM에 참여한 전문가 중엔 오디오 제조는 물론 음반 기획, 영화 제작, 레코딩 엔지니어까지 가세했거든요. 저희는 이런 인프라를 바탕으로 K-POP에 버금가는 오디오 문화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VR과 게임 시장을 선도할 프로젝트도 이미 기획하고 있어요.
Q 국내 하이파이 오디오 제조 기술의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시장 규모가 궁금한데요.
A 한국은 대부분의 산업이 단기간에 급성장했는데, 하이파이 제조 영역은 더 일천합니다. 하지만 짧은 역사에 비해 기술 수준은 굉장히 높아요. 전체적인 시장 규모는 결코 작지 않은데, 아쉽게도 하이엔드 오디오 분야는 해외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죠. 우리 제품에 감성과 디테일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한데, 이게 해결된다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K-컬처의 흥행이 K-오디오의 약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진 모르지만 잘 만든 K-오디오를 글로벌 시장에 출시한다면 분명 플러스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Q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업체가 모여 하나의 제품을 완성한다? 기술이나 특허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것 같은데요.
A 현재 진공관, 빈티지, 트랜지스터, 아날로그, 첨단 네트워크, 디지털 분야는 물론 레코딩에 관련된 업체들이 AM&FM에서 힘을 합치고 있습니다. 이들이 협업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게 되면 그 기술에 기여한 당사자들에게 합당한 권리를 주는 게 당연하죠. AM&FM은 단지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제공하고 좀 더 나아가 디자인이나 디테일, 감성 품질을 더한 제품화로 시장 진입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뿐입니다.
Q AM&FM이 기획자 역할을 한다는 말인데, 첫 제품은 언제 출시되는 겁니까.
A 두 가지 제품을 준비하고 있어요. 첫 번째는 오래 전에 송신관(진공관)으로 쓰였던 ‘211 진공관 앰프’에요. 하이엔드 마니아를 위한 제품인데 진공 장인이 프로토타입을 제작했고, 올해 CES 2025에 참가해 찬사를 받았습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정통 진공관 앰프라는 게 뜬금없을 수도 있는데, 음악 감상의 본질은 감성이잖아요. 낭만이나 추억 같은 키워드를 극대화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했어요. AM&FM의 디자인과 감성 품질이 충분히 담긴 제품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USB C타입 이어폰’이에요. 기존 이어폰과는 다른 정자기형 유닛이라는 신기술을 도입했는데, 기존 제품과는 확연히 다른 음질을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곧 출시될 예정인데 가격도 10만원대 중반이라 접근하기 쉽고, 품질 면에서도 해외 명품들을 충분히 압도할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Q AM&FM이란 브랜드명처럼 크고 작은 제품들이 라인업을 채우는 셈이네요.
A AM, FM은 라디오 주파수 채널이에요. 다이얼을 돌리면 주파수에 따라 수많은 채널을 수신할 수 있는 것처럼 크고 작은 제품 라인업을 갖출 계획이에요.
Q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인지 궁금한데요.
A 우선 입체 서라운드를 구현한 소형 올인원 제품을 구상하고 있어요. 세계 최고의 국내 디지털 기술에 걸맞은 소프트웨어와 디지털 사운드 프로세서를 도입해 작고 간편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 제품을 통해 앞으로 폭 넓게 전개될 VR이나 게임 시장에서 활용될 기술 확보도 노리고 있어요. 충분히 가능할 거라 믿고 있습니다.
Q 목표가 분명해 보입니다.
A 글로벌 시장 진출이 목표에요. 더 이상 국내 하이엔드 시장을 해외제품에 내줄 순 없잖아요. 한국산 하이엔드로 국내 시장에서 깐깐한 우리 소비자들에게 평가받은 후 해외시장에서 다양한 아이템으로 승부할 계획입니다.
[안재형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