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파트 엘리베이터, 버스, 지하철, 포털에도 신규 ETF 광고판이 새로운 이름으로 채워진다. AI와 반도체, 배당과 채권, 원자력과 우주 항공까지 시장에서 화제가 된 단어는 얼마 지나지 않아 투자상품이 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몇 개의 대표지수를 고르는 시장이었던 국내 ETF 시장은 이제 1000개가 넘는 상품이 진열된 거대한 금융 슈퍼마켓으로 변했다. 순자산 규모는 빠르게 불어났고, 투자자들은 주식처럼 간편하게 사고팔 수 있는 ETF를 연금과 장기 자산관리의 도구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열대가 길어질수록 눈에 띄지 않는 상품도 늘어났다. 이름은 다르지만 비슷한 종목을 담은 ETF가 한꺼번에 출시됐고, 투자자의 돈은 먼저 규모를 키운 일부 상품으로 몰렸다. 하루 거래가 거의 없는 ETF, 순자산이 수십억원에 머무른 ETF, 운용보수만으로는 지수 사용료와 유동성 공급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ETF도 생겨났다. 화려했던 상장 안내문 뒤에서 어떤 상품은 조용히 수명을 다하고 있었다.
2026년 7월 16일 ‘HANARO 글로벌워터MSCI(합성)’가 증권시장에서 사라진 것도 그런 장면 중 하나였다. 전날부터 거래가 정지됐고, 펀드가 보유한 자산을 정리한 뒤 투자자에게 해지상환금을 돌려주는 절차가 시작됐다. 기업의 파산처럼 투자금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보유할 생각으로 상품을 골랐던 투자자에게는 예정에 없던 매도와 재투자의 시간이 찾아온다.
ETF 시장의 성장세는 여전히 가파르다. 그러나 상품 수가 늘어나는 속도만큼 모든 ETF의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아니다. 신규 상장을 놓고 벌어지던 운용사들의 경쟁은 이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정리할지를 결정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ETF 시장에도 성장의 다음 장면, ‘구조조정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코스콤 ETF CHECK에 따르면 국내 ETF 순자산총액은 2025년 말 297조1401억원에 달했다. 2026년 1월 말에는 348조4574억원으로 늘었고, 4월 15일에는 400조원을 넘어섰다. 5월 18일에는 약 464조원, 5월 말 업계 집계로는 500조원을 웃돌았다. 증시 상승으로 편입 자산의 평가액이 커진 영향이 상당했지만, ETF가 개인 투자자와 연금계좌의 핵심 투자수단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문제는 시장이 커진 만큼 모든 상품이 함께 성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2026년 1월 16일 기준 순자산 상위 10개 ETF에는 79조893억원이 몰렸다. 전체 ETF 순자산의 24.5%다. 반면 당시 상장된 1062개 ETF 가운데 순자산 100억원 미만 상품은 147개였고, 50억원에도 미치지 못한 상품은 35개였다.
ETF의 경쟁력은 수익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규모가 커야 유동성 공급자가 안정적으로 호가를 제시 할 수 있고, 거래가 활발해야 투자자가 좁은 스프레드로 사고팔 수 있다. 같은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이라면 투자자는 보수뿐 아니라 거래대금, 호가 잔량, 괴리율, 브랜드와 판매망을 함께 본다. 먼저 규모를 확보한 ETF가 더 좋은 유동성을 얻고, 좋은 유동성이 다시 자금을 끌어들이는 자기강화 구조가 만들어진다. 뒤늦게 나온 상품은 수익률이 나쁘지 않아도 존재를 알릴 기회를 얻기 어렵다.
운용사 입장에서도 소형 ETF는 단순히 수수료가 적게 들어오는 상품이 아니다. 지수 사용료, 수탁·사무관리 비용, 회계와 공시, 유동성 공급자 계약, 마케팅과 운용인력이 필요하다. 순자산 50억원짜리 ETF가 연 0.3%의 운용보수를 받는다고 단순 계산하면 연간 보수 수입은 1500만원에 불과하다. 실제 수입과 비용 구조는 계약마다 다르지만, 일정 규모에 도달하지 못한 상품을 장기간 유지하기 어려운 이유는 충분히 설명된다.
미국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2025년 미국에서 약 1000개의 액티브 ETF가 새로 출시됐지만 146개가 청산됐다. 한 해 액티브 ETF 청산 건수로는 사상 최대였다.
ETF가 사라지는 이유가 반드시 운용 실패나 기초자산의 부실 때문인 것은 아니다. 수요가 부족한 상품을 유지하는 비용이 장래 수수료 수입보다 크다고 판단되면 운용사는 펀드를 임의 해지할 수 있다. ‘HANARO K-메디테크’는 설정 후 1년이 지난 뒤 원본액이 1개월간 50억원을 밑돌았다는 이유로 2025년 3월 26일 상장폐지됐다. ‘KIWOOM 글로벌퓨처모빌리티’를 포함한 키움투자자산운용 ETF 4종도 신탁원본액 감소를 이유로 2026년 3월 26일 상장폐지됐다. HANARO 글로벌워터MSCI 역시 같은 50억원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2026년 7월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운용사로서는 합리적인 상품 구조조정이다. 수요가 없는 상품을 계속 유지하면 관리 비용뿐 아니라 조직의 관심과 유동성 공급 역량도 분산된다. 비슷한 테마 ETF가 여러 개라면 자금을 대표 상품으로 모으는 편이 괴리율과 거래 편의성을 개선하는데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투자자에게 ETF는 운용사의 상품 포트폴리오 한 줄이 아니다. 장기 자산배분 계획이나 연금계좌의 구성 요소일 수 있다. 한 상품이 사라지면 투자자는 비슷한 기초지수를 찾고 가격과 보수, 환헤지 여부를 다시 비교해야 한다. 매도 또는 상환 시점에 과세가 발생할 수도 있고, 대체 상품을 사기 전까지 시장에서 이탈하는 공백도 생긴다. 운용사의 비용 절감이 투자자의 재탐색 비용으로 이전되는 것이다.
따라서 ETF 구조조정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지만, 상장 당시의 수요 검증은 더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유행하는 테마에 상품을 먼저 올린 뒤 초기 자금을 공급하고, 실수요가 붙지 않으면 몇 년 뒤 정리하는 방식이 반복된다면 시장은 운용사의 실험 비용을 투자자에게 나누는 구조가 된다. 특히 이름만 다를 뿐 편입 종목과 비중이 유사한 ‘쌍둥이 ETF’는 투자자의 선택권을 넓히기보다 정보 탐색 비용만 높일 수 있다.
ETF 상장폐지는 대체로 공지, 유동성 약화, 거래 정지, 자산 정리, 신탁 해지, 상환금 지급 순서로 진행된다.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상장폐지 일이 아니라 매매거래 정지일이다. 거래 정지일부터는 장내 매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HANARO 글로벌워터MSCI의 경우 상장폐지일은 7월 16일이었지만 거래는 하루 전인 15일부터 정지됐다.
공지가 나온 뒤에는 유동성 공급자의 호가 제출 의무가 완화될 수 있다. HANARO 글로벌워터MSCI는 6월 16일부터 7월 14일까지 LP의 양방향 호가 제출 의무가 면제됐다. 운용사는 이 기간 LP가 장중순 자산가치에서 기초자산 헤지에 필요한 최소 비용을 뺀 수준의 매수호가 만 제시할 수 있다고 공지했다. 투자자가 장내 매도를 택하면 상환일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지만, 스프레드가 넓어져 불리한 가격에 팔 가능성이 있다.
상장폐지일까지 보유하면 펀드 자산을 처분해 계산한 순자산가치에 따라 현금을 받는다. 이 때문에 ‘상장폐지=원금 전액 소멸’은 잘못된 설명이다. 다만 ‘상장폐지로 손실이 없다’는 표현도 정확하지 않다. ETF가 이미 매입가보다 하락했다면 그 투자손실은 그대로 반영된다. 해외 자산 ETF라면 청산일까지 기초자산 가격과 환율이 움직일 수 있다. 파생상품이나 합성 구조는 계약 청산 비용이 발생할 수 있고 운용보수와 거래비용도 차감된다. 세금은 국내주식형인지 해외자산형인지, 일반계좌인지 연금계좌인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투자자가 확인할 숫자는 수익률 하나가 아니다. 첫째 순자산총액이 너무 작지 않은지 본다. 둘째 최근 거래대금뿐 아니라 매수·매도 호가 차이를 확인한다. 셋째 시장가격과 장중순자산가치의 괴리율을 살핀다. 넷째 LP가 몇 곳인지, 호가 잔량이 충분한지 본다. 다섯째 운용사 홈페이지와 한국거래소 KIND의 관리종목·상장폐지 공시를 확인한다. 여섯째 같은 지수와 환헤지 조건을 가진 대체 상품이 있는지 미리 찾아둔다.
ETF 시장의 양극화가 한쪽에서는 저수요 상품의 청산으로 나타난다면, 다른 쪽에서는 특정 상품으로의 과도한 자금 집중으로 나타난다. 2026년 5월 27일 국내에 처음 상장된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ETN 16종의 시가총액은 출범 당시 4조4000억원이었다. 7월 15일에는 11조9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출시 당일 거래대금은 10조4000억원이었고, 7월 15일에는 13조원에 달했다.
상품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한 종목의 하루 수익률을 두 배로 추종한다. 주가가 하루 5% 오르면 약 10% 수익을 목표로 하고, 5% 내리면 약 10% 손실을 낼 수 있다. 그러나 ‘두 배’는 하루 단위 목표다. 여러 날 보유하면 매일 수익률을 다시 두 배로 계산하는 복리 효과 때문에 기초주식 누적수익률의 정확히 두 배가 되지 않는다. 주가가 오르내리는 변동성 장세에서는 기초주식이 출발점으로 돌아와도 레버리지 상품에는 손실이 남을 수 있다.
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도 작지 않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5년 말 34%에서 2026년 7월 15일 52%까지 높아졌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 주가의 연율화 변동성은 96%, SK하이닉스는 113%로 집계됐다. 또한 소수 대형주에 지수와 레버리지 상품, 파생상품 헤지 수요가 동시에 집중되면서 상승할 때 매수 수요를, 하락할 때 매도 압력을 증폭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결국 금융당국은 출시 한 달 반 만인 7월 16일 보완책을 발표했다. 시장 안정 때까지 단일 종목 인버스와 커버드콜을 포함한 신규 상장을 잠정 중단하고 광고와 이벤트 마케팅을 금지했다. 국내 ETF의 LP 괴리율 관리 기준은 3%에서 2%로 강화한다. 사전교육은 총 2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리고 평가도 강화한다. 기본 예탁금은 대용증권을 포함한 1000만원에서 현금 3000만원으로 높아진다. 매매 단위도 1좌에서 20좌로 확대할 예정이다.
보완책은 과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제도 설계의 시간표에는 의문이 남는다. 정부는 해외 상품으로 빠져나가던 투자 수요를 국내 규율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이유로 단일 종목 레버리지를 허용했다. 그러나 실제 수요와 시장 충격이 예상보다 커지자 불과 한 달 반 만에 신규 상장을 막고 진입장벽을 세 배로 높였다. 상품 승인 전에 상승장과 급락장, 특정 종목 집중, LP의 헤지 수요를 충분히 스트레스 테스트했는지 되짚어볼 대목이다.
반대로 규제를 지나치게 높이면 투자자는 다시 홍콩이나 미국 등 해외 상품으로 이동할 수 있다. 해외 상품은 거래시간과 환율, 세금, 공시 접근성 측면에서 국내 투자자가 감당해야 할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 국내 시장을 막는 것만으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ETF 시장의 다음 경쟁은 상품 숫자가 아니라 생존 가능성과 설명 책임에서 갈릴 것이다. 운용사는 유행의 속도보다 실제 수요를 검증해야 한다. 거래소는 작은 ETF가 조용히 사라지기 전 투자자에게 더 잘 보이는 경고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투자자는 수익률 그래프와 상품명만 보지 말고 순자산과 거래대금, 호가, 괴리율, 상관계수와 공시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