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간 발군의 성과를 내며 몸집을 불려가던 독립계운용사들이 세대교체와 엑시트 등의 이유로 새 주인을 찾고 있다. 국내 최대 부동산 전문 투자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은 현재 새 주인을 찾고 있는 한편 이를 노리는 국내외 대형 금융사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국내외 금융사들이 부동산 자산운용사들을 갖게 된다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판도가 뒤바뀔 것이라고 업계는 전망한다. 부동산 경기 부진 여파로 실적 악화의 늪에 빠진 중소형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사들도 M&A(인수합병) 시장에 매물로 쏟아지고 있는데, 이를 노리는 시장의 모습도 포착된다.
이지스자산운용은 국토교통부 차관을 역임한 고(故) 김대영 창업주가 2010년 설립한 부동산 전문 투자운용사다. 국내외 오피스, 물류센터, 데이터센터 등 우량 물건에 투자하며 성공을 거뒀고, 국내 1위이자 아시아 3위권 운용사로 자리 잡았다. 2024 말 기준 총 자산규모(AUM)는 66조 8000억원이다. 2018년 창업주가 작고한 뒤 부인인 손화자씨를 포함한 유족들이 지분을 상속받았지만, 최대주주 자리만 유지했을 뿐 이지스자산운용 경영에 크게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2024년 손 여사 등의 유족들은 지분 매각을 결정하고 자문사 선정 절차를 본격화했다. 당시 최대주주가 보유한 이지스자산운용의 지분율은 12.5%였다. 이지스자산운용의 주요 주주로는 조갑주 전 신사업추진단장의 가족회사로 알려진 지에프인베스트먼트, 대신증권, 우미글로벌 금성백조주택, 현대차증권, 한국토지신탁, 태영건설 등이다. 최대주주와 매각 주관사인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은 주요 주주들과 접촉해 매각 동참을 권유했고, 그 결과 60% 이상의 지분이 모이게 됐다.
경영권까지 가져갈 수 있을 만큼의 지분이 모이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노리는 곳들이 상당히 많았다. 특히 국내외 금융사들 위주로 인수 검토가 이뤄졌다. 이들은 이지스자산운용을 인수하면 사업 간 시너지가 날 것으로 기대했고, 국내 1위 부동산 투자사라는 프리미엄도 향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 판단했다. 국내에선 대신파이낸셜그룹, 다우키움그룹, MBK파트너스 등이 이지스자산운용 인수를 고려했다. 대신파이낸셜그룹은 계열사인 대신 자산신탁을 중심으로 리츠(REITs)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지스자산운용까지 확보해 부동산 투자에 보폭을 넓힐 계획이었다. 부동산 투자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국내 생명보험사인 한화생명, 흥국생명 등도 적극적으로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한화그룹 오너 3세 중 둘째인 김동원 사장이 이끄는 한화생명은 인수 자문사를 발빠르게 선정하며 공겨적인 행보를 보였고, 태광그룹 산하의 보험사인 흥국생명도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아시아 3위권 부동산 투자사라는 걸 감안해 싱가포르, 중국 등 해외 투자사들도 유력 원매자로 나섰다.
2025년 11월 본입찰을 진행한 결과 한화생명, 흥국생명 등 국내 기업 2곳과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 캐피탈랜드 등 다수의 외국계 투자사가 참여했다. 이들이 제시한 이지스자산운용의 기업가치는 1조원 안팎이었다. 매각 측은 인수 제안가, 자금 조달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중국계 사모펀드 운용사인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를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정확한 인수 주체는 힐하우스 측 기업인 삼티 AMC로 일본에서 주거 및 호텔 개발 사업을 영위하는 삼티홀딩스의 부동산 자산운용 담당 기업이다. 힐하우스는 부동산 전문 자회사 라바파트너스를 통해 삼티홀딩스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삼티AMC가 힐하우스의 증손회사 격인 셈이다. 삼티AMC가 제시한 인수가액은 1조 1000억원으로 알려졌다.
다만 삼티AMC가 이지스자산운용의 새 주인으로 지목되자 여러 논란이 불거졌다. 지분 매각 추진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위탁자산 관련 내용이 국내외 잠재 인수후보자들에게 유출됐다는 의혹이 나왔고, 국민연금이 이지스자산운용에 맡긴 자산을 다른 곳으로 이관하는 걸 고려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에 대해 이지스자산운용은 “국민연금으로부터 자사에 위탁한 자산을 회수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전달받았다”며 “펀드 만기가 도래한 일부 투자자산에 대해 통상적인 매각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이 오해를 낳은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유력 원매자 중 한 곳인 흥국생명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이 공정하지 않았다며 반발에 나섰다. 차순위 우선협상대상자인 흥국생명은 이지스자산운용 주주 대표와 공동 매각 주관사 측을 공정 입찰 방해·사기적 부정거래(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매각 측이 프로그레시브 딜 방식으로 입찰 가격을 최대한 높이기로 했으면서도 표면적으로 그렇게 진행하지 않은 것처럼 가장했다고 주장했다. 즉, 본입찰 당시 흥국생명은 1조 500억원의 최고가로 인수가액을 제시했는데, 9000억원 중반대의 인수가액을 제시했던 힐하우스가 이후 1조 1000억원으로 입찰가를 높게 수정 제시한 것이 문제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힐하우스 측은 “모든 절차에서 매각 주관사의 기준과 규정을 철저히 준수해왔다”고 반박했다.
경찰은 지난해 말 고소인 조사를 시작으로 흥국생명이 제출한 고소장 내용과 매각 절차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러한 외부 변수에도 이지스자산운용의 매각 작업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의 최대주주 등을 포함한 매각 측과 삼티AMC 등은 주식양수도계약(SPA) 체결을 목표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향후 국토교통부의 대주주 심사 기준 충족을 위한 작업과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과정도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지스자산운용의 매각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또다른 국내 대형 부동산 투자사의 지분 구조도 변화를 겪고있다. 국내 2위 부동산 투자사인 마스턴투자운용의 최대주주 김대형 고문은 보유한 지분 37.17%의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2024년 말 잠재적 원매자들을 접촉하며 사전 수요조사(태핑)에 나섰다가 매각 계획을 보류했는데, 이지스자산운용 매각이 흥행하는 걸 보고 다시 매각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마스턴투자운용의 2대 주주 지분 매각 협상은 결렬됐다. 국내 사모펀드인 에이치프라이빗에쿼티(PE)가 배타적 협상권을 바탕으로 신주와 구주에 각각 500억원, 200억원을 투자해 지분 25%를 확보하고자 했으나 거래 과정에서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못했다.
에이치PE의 앵커 투자자(LP)인 과학기술인공제회가 부동산 및 대체 투자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부동산 투자사 인수를 검토하며 마스턴투자운용 2대 주주 지분에도 관심을 보였으나 투자 계획을 최종 철회했다.
하지만 마스턴투자운용의 지분 매각 작업은 물밑에서 계속되고 있다. 매각 대상으로 거론되는 지분은 김 고문이 직접 보유한 것을 포함한 우호 지분 40~50%로 파악된다.
유력 원매자로 거론되는 곳은 다우키움그룹이다. 다우키움그룹은 오래전부터 부동산 투자사 인수를 검토해왔다. 국내 패션회사인 LF가 2018년 부동산 신탁업체인 코람코자산신탁을 인수했던 당시 김익래 전 다우키움그룹 회장이 이끄는 다우키움그룹도 코람코 인수에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우키움그룹 산하엔 종합 운용사인 키움투자자산운용이 있는데, 마스턴투자운용을 편입할 경우 전체적인 대체투자 역량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싱가포르계 운용사인 CCGI도 마스턴투자운용의 지분 일부에 투자 의지를 계속해서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마스턴투자운용은 2009년 코람코자산신탁 창립 멤버이자 부사장을 지냈던 김 고문이 주요 주주들과 리츠 AMC(자산관리회사)를 설립하며 시작한 곳이다. 이후 리츠 자산 관리 회사였던 마스턴에셋매니지먼트를 인수했고, 몸집을 불려나갔다. 리츠 시장에서 강점을 가진 코람코자산신탁 출신들이 대거 합류한 만큼 출범 초기엔 리츠를 중심으로 사업을 이어나갔다. 충남 천안시에 소재한 물류센터를 260억원 규모에 매입한 ‘행복마스턴제1호 리츠’를 시작으로 오피스, 호텔 등 다양한 자산들을 운용해왔다. 그 결과 2024년 말 누적자산이 36조 6499억원으로 증가했다.
이지스자산운용과 마스턴투자운용의 주인이 바뀌게 되면 국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도 새 시대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이·마·코’로 불리는 국내 3대 부동산 투자사들이 모두 창업주가 아닌 최대주주가 경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중소형 부동산 투자사들도 국내 M&A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다.
부동산 투자사인 엠플러스자산운용은 3차 매각 입찰을 진행한 끝에 에이펙스자산운용을 새 주인으로 결정했다.
엠플러스자산운용은 2008년 설립된 군인공제회 산하 부동산·대체투자 전문 투자사다.
2024년 말 기준 엠플러스자산운용의 AUM은 1조 3000억원대로 부동산 임대, 개발, 해외 대체투자 및 기업금융을 주 사업으로 영위하고 있다. 에이펙스자산운용이 본 엠플러스자산운용의 전체 기업가치는 300억원 수준이었고, 인수 대상 지분율(50%)을 고려한 인수가액은 약 200억원으로 알려진다.
지난해 11월 군인공제회와 에이펙스자산운용은 경영권 지분을 매매하는 내용의 SPA를 체결한 상태다. 거래 이후 군인공제회는 일정 기간 주요 주주로 남아 에이펙스자산운용과 협력 관계를 이어나갈 전망이다. 에이펙스자산운용은 KB증권 부동산본주 출신들이 설립한 부동산 특화 운용사로 부동산 IB(투자은행) 업계에서 풍부한 경력을 가진 정상익 회장이 이끌고 있다.
무궁화신탁이 보유한 케이리츠투자운용과 현대자산운용 등도 매각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케이리츠투자운용은 지난해 초 임직원의 미공개 정보 사익추구 이용 건으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영업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한 차례 매각 절차가 무산됐는데, 인수 의향이 있는 원매자들과 제한적으로 접촉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대체투자·주식·채권 운용 사업을 폭넓게 진행하고 있는 현대자산운용도 현재 매각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국내 중견 건설사인 제일 건설이 무궁화신탁의 자회사인 현대자산운용 인수를 추진하고 있으며, 인수 기업가치는 약 800억원으로 거론된다.
최근까지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경기가 좋지 않아 실적이 악화되고 기투자 물건들에 대한 손실이 발생하자 중소형 부동산 자산운용사 매물들이 M&A 시장에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흐름에 국내 회계법인 및 컨설팅펌들도 대비를 하고 있는데, 그 중 삼일PwC는 금융사 전문 M&A 팀을 따로 꾸려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민준선 삼일PwC 딜부문 대표는 “건설·부동산 경기 침체로 상황이 안 좋았던 금융사들의 구조조정이 일어날 것”이라며 “금융사 M&A 섹터를 별도로 만들어 이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홍순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5호 (2026년 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