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 인기를 모은 웹툰·웹소설이 오프라인으로 수익모델(BM)과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웹툰·웹소설 등 콘텐츠 지식재산권(IP)이 마치 K팝 아이돌처럼 하나의 팬덤으로 진화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특히 인기 IP의 경우 팝업스토어에서 MD상품(굿즈)을 사기 위해 모인 팬들로 새벽 오픈런까지 벌어지는 등 사업성과 흥행성이 입증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웹툰 업계에서는 인기 작품의 팝업스토어를 잇달아 열면서 본격적인 IP 수익화에 시동을 걸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6월 29일부터 7월 12일까지 스타필드 코엑스몰에서 자사 인기 웹툰 <냐한남자>와 <마루는 강쥐>의 세계관을 담은 팝업스토어를 운영했다. 네이버에서 5년만에 처음으로 진행한 웹툰 팝업스토어다. 앞서 네이버웹툰은 2018년 1월 <유미의 세포들> 팝업스토어를 진행한 바 있다.
<냐한남자>와 <마루는 강쥐>는 네이버웹툰의 대표 IP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특히 IP 비즈니스에서 강점을 보이는 작품들로 분류된다. 봉제 인형 등 <냐한남자> 캐릭터를 활용한 상품은 누적 40만 개 이상이 판매됐고 쿠션과 인형 모양 자석을 판매하는 <마루는 강쥐> 크라우드 펀딩에는 3주 만에 약 1억7000만원이 모였다.
이번 팝업스토어는 두 작품 속 캐릭터가 사는 동네에 팬들이 놀러가는 콘셉트로 꾸며졌다. 대형 인형, 가방, 키링 등 작품 IP를 활용한 상품 약 260종을 판매했다. 이 중 200종은 이번 팝업스토어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상품이었다. 웹툰 업계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팝업스토어는 역대 웹툰 팝업 중 최고 수준의 매출과 흥행(방문자 수)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네이버웹툰은 이번 팝업을 시작으로 하반기에 2건 이상의 웹툰 팝업스토어를 진행할 예정으로 파악된다. 웹툰 팬덤의 뜨거운 화력이 입증되면서 매출 보증수표로 떠오른 웹툰 IP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실제 업계에서는 인기 웹소설·웹툰 IP의 오프라인 진출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5월 웹소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데못죽)>의 ‘팝업 대박’은 이 같은 흐름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폈다는 평가를 받는다. <데못죽>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독점 공급 웹소설로 시작해 웹툰으로 제작된 IP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하는 7명의 남자 아이돌 가수를 다룬 이야기다. 특히 활자돌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만큼 젠지(Gen-Z) 세대 여성 사이에서 열풍을 일으킨 작품이다. 웹소설 누적 조회수만 4억2000만 회에 달한다. 노블코믹스로 탄생한 웹툰도 론칭 1시간 만에 역대 최고 매출을 달성하기도 했다. 웹툰이 실물 아이돌을 넘어 가상 아이돌 팬덤까지 만들어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인기는 오프라인 팝업스토어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6월 11~24일 더현대 서울 지하에서 열린 <데못죽> 팝업에는 총 1만5000명이 방문했다. 특히 오픈 첫날에는 2000여 명에 이르는 팬이 새벽부터 오픈런 줄을 길게 서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앞서 일본의 메가 IP인 <슬램덩크> 팝업스토어 오픈런을 위해 800여 명이 줄을 섰는데 이보다 2배 이상 많은 사람들이 몰린 것이다. 특히 <데못죽> 팝업의 판매 성과에는 관계자들도 놀랐다는 후문이다. 해당 팝업에서는 향수와 인형, 포스터 등 굿즈 43종이 오프라인 단독으로 출시됐다. 충성도 높은 팬덤은 상당한 구매력을 보이면서 예상보다 훨씬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데못죽> 팝업의 누적 참가자는 1만5000명으로 파악된다. 이 중 구매전환율은 약 5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인당 평균 구매금액은 50만원에 달했다. 상품 가격이 개당 1만~4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한 사람이 최소 10개 이상의 굿즈를 ‘쓸어간’ 셈이다.
최근 MZ 세대가 주축인 웹툰·웹소설 독자들이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는 현상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전 세계 각지 팬들이(글로벌), 팬아트와 팬애니메이션 등(2차 콘텐츠)으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MZ가 주축인 웹툰 팬들은 매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특징을 보인다. 일례로 카카오엔터의 IP <나 혼자만 레벨업>의 경우 약 21만 명의 전 세계 팬들이 글로벌 온라인 청원 사이트(Change.org)에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달라고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웹소설이 웹툰화하거나, 웹툰이 웹소설로 만들어지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팬덤을 모으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화산귀환> IP는 웹툰을 만나면서 더욱 폭발적인 시너지를 보였다.
<화산귀환>은 전설의 무인이 어린아이로 환생해 망해가는 자신의 문파를 부활시키는 무협물이다. 탄탄한 스토리와 화려한 액션 묘사, 유쾌한 유머 코드로 2019년 연재 초부터 인기를 끌며 웹소설 업계 최초 연매출 200억원, 누적매출 40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부터 동명의 웹툰이 네이버웹툰 플랫폼을 통해 연재되자 원작 자체의 경쟁력과 함께 웹툰이 시너지를 내면서 웹소설 누적 조회수는 2021년 9월 1억3000만 뷰에서 2022년 12월 기준 4억7000만 뷰로 1년여 만에 3억4000만 뷰 늘었다.
원작과 웹툰이 모두 흥행하며 두터운 팬덤이 형성되자 IP확장 케이스마다 흥행 신기록을 세우는 모양새다. <화산귀환> 종이책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은 오픈 전부터 사전 알림 신청자만 1만5000명이 몰렸다. 웹소설 117화까지의 내용이 수록된 이 펀딩은 12억원을 모으며 최종 달성률 3000%를 돌파했다. 또 텀블벅 출판 분야 크라우드펀딩 역대 최고 기록 타이틀을 얻었다.
<화산귀환> 오디오드라마 시즌2 크라우드 펀딩에는 10분만에 1억원이 모였다. 목표치인 8000만원을 가볍게 넘은 것이다. <화산귀환> 향수까지 화제를 모았다. <화산귀환> 모티브의 향수는 네이버웹툰의 온라인 브랜드 스토어인 ‘웹툰프렌즈’에서 판매량 1만 개를 돌파했다. 웹툰프렌즈 단일 품목 중 최다 판매량이다.
최근 콘텐츠 업계에서 ‘미디어 믹스’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팬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미디어 믹스란 핵심 IP를 소설, 영화, 만화, 게임, 캐릭터 제품 등 여러 미디어로 출시하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게임을 드라마·애니메이션으로 만들거나, 인기 웹툰을 게임으로 제작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콘텐츠 제작자들은 웹툰, 웹소설, 영화, 드라마, 게임까지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슈퍼IP’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실제로 인기가 높은 웹툰 원작 IP는 비즈니스 확대 가능성이 매우 크다. 특히 최근에는 팬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굿즈가 인기를 끌고 있다. 가령 무협 웹툰 <화산귀환>에 나오는 도복 디자인을 활용해 제작한 잠옷은 네이버웹툰이 운영하는 웹툰프렌즈 브랜드 스토어에서 판매 시작 3일 만에 3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최근 10년간 연재를 마치고 완결된 인기 웹툰 <연애혁명>의 경우 웹툰 속 캐릭터가 등장하는 졸업앨범 크라우드펀딩에 약 3억원이 모였다. IP 비즈니스를 확대해 원작 IP의 가치를 극대화한 대표적인 사례다.
네이버웹툰은 영상화, 출판, 음원, 크라우드 펀딩, 게임, 이모티콘, MD 상품 등 다방면으로 IP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는 원작 IP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비즈니스를 통해 발생하는 매출도 커질 것”이라며 2025년까지 월평균 500만원의 IP 비즈니스 매출을 발생시키는 작품을 연 500개 이상 확대시킨다는 목표를 공개하기도 했다.
웹툰·웹소설 IP를 활용한 영화, TV 시리즈 제작도 활발해지고 있다. 카카오웹툰은 2006년 웹툰·웹소설 IP 영상화를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70여 개 IP를 영상 콘텐츠로 제작했다.
네이버는 전 세계 웹소설(왓패드)·웹툰(네이버웹툰)에서 1위에 올라 있는 플랫폼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회사다. 왓패드와 네이버웹툰 사용자가 만든 콘텐츠만 누적 10억 개 이상에 달한다. 이를 활용해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무궁무진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네이버의 자신감이다. 그 중심에는 왓패드웹툰스튜디오(WWS)가 있다. 왓패드 인수 직후 왓패드 스튜디오와 웹툰 스튜디오를 통합해 WWS를 만들었다. 북미를 중심으로 남미, 유럽, 동남아시아 등에서 네이버웹툰과 왓패드의 IP를 영상화하는 임무를 맡고있다. WWS는 지난해 7월 에미상을 수상한 할리우드 유명 프로듀서인 데이비드 매든을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부문 총괄로 영입하는 등 조직 역량을 강화했다. WWS는 100여 개 이상의 영상 제작 파이프라인을 준비 중이다. 네이버는 약 1000억원 규모의 글로벌 IP 비즈니스 기금을 조성해 WWS를 지원하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세계 최대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와 시너지 창출에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올해부터 현지에서도 원소스 멀티유즈를 본격화한다는 구상이다.
웹툰 IP를 활용한 영상화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WWS는 지난해 8월 애니메이션사업부를 신설하고 웹툰 IP <로어 올림푸스>를 활용한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IP를 활용한 커머스 시장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고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강력한 IP 하나만으로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출판, 캐릭터 상품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수익 창출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또 비용 지불 없이도 브랜드 광고 효과까지 얻을 수 있어 ‘IP커머스’에 콘텐츠 회사들이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이커머스 규모는 210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시장이 포화되고 사업자가 많아지면서 성장률이 10%대까지 떨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팬덤’과 관련한 콘텐츠커머스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별도의 마케팅 이커머스가 팬덤 기반, 그리고 ‘팬덤+맞춤형 광고’ 등 콘텐츠커머스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K팝, K드라마, 웹툰과 연계한 커머스다. 예컨대 유명 영화 및 드라마, K팝 스타를 지렛대 삼아 2차 상품(신발, 가방 등)을 판매하는 형태가 될 수 있다. 특히 한국뿐 아니라 충성도 높은 글로벌 팬들이 잠재 고객이기 때문에 높은 사업 성장세를 점치는 시각도 있다.
그야말로 IP 빅뱅 시대다. 플랫폼, 콘텐츠 제작사, 게임사 등이 핵심 IP 확보와 수익모델 발굴을 위해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경계를 허물고 있다. 결국 강력한 IP 밸류체인을 만드는 회사가 ‘시간점유’와 ‘수익모델’ 경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매일경제 디지털테크부 황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