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도하를 2015년 방문했다가 낭패를 본 기억이 있다. 저녁을 먹으러 식당을 예약하고 호텔에서 택시를 불러 달라고 했다. 시간에 맞춰 택시가 왔고 택시를 타고 5분 정도 거리의 중국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보니 은은한 저녁 달빛에 선선한 바람도 불었다. 이런 날씨면 산책할 겸 걸어서 호텔을 가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해 택시를 부르지 않고 걷기로 했다. 식당 앞 100미터쯤 걸었을까. 인도가 점점 좁아지더니 갑자기 차가 다니는 도로 갓길로 합쳐졌다.
그때부터 난감해졌다. 차도 갓길을 겨우 걸어가는데 옆으로는 자동차는 씽씽 달리고. 횡단보도도 없어 호텔까지 무단횡단을 두 번 해서 겨우 도착했다. 선선한 저녁 산책을 기대했다가 등골이 오싹 해지는 경험을 하게 됐다. 그리고 설명을 들었다. 카타르에서는 도로를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어 도로가 아예 없는 곳이 많다고. 그것도 모르고 밤에 걸어서 차도로 산책을 했으니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그제야 생각났다.
2022년에는 카타르에서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 같다. 카타르 도하에서 전 세계인의 축구 축제 월드컵이 열린다. 내가 지난날 걸어 다녔던 도하의 호텔 주변 도로들도 말끔히 새 단장을 하고 길도 새로 만들어 전 세계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을 것 같다. 월드컵은 스포츠 인들의 축제이기도 하지만 막대한 경제적 효과가 발생하는 이벤트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뒤에 수많은 사람의 피땀이 녹아있고 행사를 마치면 그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기도 한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도 축구 결과와 함께 각종 경제적인 효과에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월드컵의 경제학을 살펴봤다.
카타르가 이번 월드컵에 지출하는 총 금액은 2200억 달러(3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개최비용이 150억 달러(20조2500억 원), 2018년 러시아 월드컵 개최비용이 142억 달러(19조1700억 원)로 계산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카타르 월드컵은 이들 나라보다 10배가 훨씬 넘는 돈이 투입된 셈이다. 카타르가 2012년 월드컵 개최지로 확정된 이후 연평균 지출한 월드컵 관련 예산은 매년 183억 달러(24.7조원)씩 지출됐다.
2022년 카타르의 국내총생산(GDP)이 1800억 달러(243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매년 이 나라가 만들어낸 부가기치의 10%이상을 월드컵 준비에 쏟아 부은 셈이다. 100억 달러(13조5000억 원)정도는 7개의 경기장을 짓고 다른 경기장을 새롭게 단장하는데 사용됐다. 여기에 교통, 통신, 안전 등 인프라를 대폭 보강했다. 또 공항을 새로 만들고 도시를 넓히고 100여개의 호텔을 새로 짓는 데에도 많은 돈이 들었다. 카타르가 전 세계에 석유를 팔아 소득이 높은 나라인 것은 맞지만 이 정도의 돈을 들여 월드컵을 개최할 만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월드컵을 마치면 경기장과 상당수의 시설은 카타르에게 필요가 없게 된다. 이런 시설을 유지하는데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된다. 월드컵을 마치면 경기장을 해체하거나 다른 나라로 옮길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돈을 버는 측면도 있다. 카타르측은 월드컵 기간 중 130만 명의 관광객이 카타르를 찾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이 카타르에 와서 먹고 자고 소비하는 돈은 11억5000만 달러(1조50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월드컵을 위해 쏟아 부은 돈(2200억 달러)의 200분의1 수준이다. 월드컵 개최로 인한 무형의 이익도 있다. 카타르 월드컵을 전 세계 수십억명이 시청을 하면 이로 인해 카타르라는 국가의 홍보 효과가 커진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관광산업 증대, 무역과 투자 활성화 등으로 카타르 경제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이 같은 ‘소프트파워’ 확대로 인한 수익은 천차만별이어서 예측이 어렵다. 러시아 측은 소프트파워 확대로 인한 효과가 300억 달러(40조5000억 원)정도로 추정했다. 카타르도 유사한 수준의 이익이 발생한다고 해도 월드컵 역사상 최대의 적자를 보는 국가라는 오명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카타르는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가혹한 국가다. 2020년 기준 카타르의 인구는 총 288만 명이다. 이중 카타르 국적의 인구는 28만 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소수의 카타르 인이 다수의 외국인 노동자를 강압적으로 통제하면서 유지되는 국가다. 당연히 카타르 국적의 사람들과 외국인간의 차별도 존재한다. 특히 카타르는 외국인 노동자의 추방권한까지 고용주에게 부여하는 ‘카팔라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전제국가 체제에 이 같은 외국인 차별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월드컵으로 인한 ‘소프트파워’개선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카타르는 월드컵 개최로 고군분투 하고 있는 반면 국제축구연맹(FIFA)은 월드컵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번다. 월드컵 축구개최와 관련한 운영은 모두 FIFA가 권한을 행사하고 책임도 진다. 이번 월드컵의 총 상금은 4억4000만 달러(5940억 원)로 역대 월드컵 중 가장 많다. 우승상금도 4200만 달러(567억 원)나 된다. 2019년 개최됐던 여자월드컵의 총 상금이 3000만 달러(405억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총 상금이 16배나 많다.
상금을 포함해 월드컵 행사에 수반되는 제반 비용은 모두 17억 달러(2조3000억 원) 정도다. 반면 중계권료와 티켓, 스폰서십 등을 통해 FIFA가 벌어들이는 돈은 47억 달러(6조3000억 원)에 달한다. 이 수익은 모두 FIFA가 독점한다. 월드컵 개최 한번으로 30억 달러(4조500억 원)의 수익이 발생하는 셈이다. FIFA는 이 금액으로 각국의 축구협회와 축구 발전을 위해 사용한다고 밝히고 있다. 개최국인 카타르는 비용으로 허덕이는 반면 FIFA는 알짜 수익을 챙기는 구조다.
숫자로 살펴본 월드컵의 경제적 효과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카타르는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면서 대회를 연 반면 FIFA는 대회 유치로 매우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구조다. 과거 카타르를 방문했을 때 나라 분위기가 매우 독특했다. 허드렛일은 모두 외국인 노동자들이 하고 있었고 카타르 인들은 호텔 프론트에서 배차 일을 담당하더라도 근사한 옷을 입고 여유 만만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했다. 월드컵을 마치고 막대한 적자가 발생해도 석유를 팔아 메꾸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석유를 사들여야만 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카타르가 월드컵 손실을 메꾸기 위해 석유 값을 올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월드스타들이 총 출동하는 월드컵 축구를 즐기면서도 그 비용이 결코 만만찮음을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