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미국 온라인 거래 사이트 이베이에서는 한 포켓몬 카드가 화제가 됐다. 달랑 카드 한 장이 무려 48만달러, 약 6억3000만원에 경매 물품으로 올라왔기 때문. 1998년 출시된 피카추 일러스트레이터 카드로 당시 일러스트레이터 대회에 우승한 우승자 41명이 받은 카드다. 현재 24장밖에 없다는 희소성이 해당 카드의 가치를 높였다.
트레이딩 카드의 일종인 게임 카드의 세계를 모르는 이들에겐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이러한 트레이딩 카드의 세계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최근엔 신종 재테크 수단이자 절세를 위한 재산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각광받고 있는 트레이딩 카드의 세계가 주목받고 있다.
트레이딩 카드는 수집을 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일종의 수집품으로 시작했다. 다양한 디자인이나 행사를 기념하는 우표와 마찬가지로 트레이딩 카드는 어떤 사건을 기념하거나 스포츠 선수의 사진을 넣은 카드 형태로 출시됐다. 담뱃값보다 약간 작은 사이즈로 판매되기 시작해 취미용품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지만 향후 교환성이 생기고 희소성 개념이 더해지며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대체로 스포츠 또는 트레이딩 카드 게임이라 불리는 유희왕·포켓몬 같은 캐릭터 게임 관련 산업이 급성장했다.
트레이딩 카드의 유래는 18세기로 거슬러 간다. 당시 귀족들이 지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집주인이 없을 경우 자신의 방문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이름이 적힌 카드를 남기고 떠났다. 이러한 방문용 카드는 담배 카드로 발전했다. 담배 출시 초기, 담배들이 파손되지 않도록 카드를 안에 첨부해 보호장치로 이용한 것이다. 이러한 카드에다 간단한 상식 퀴즈나 재미있는 질문들을 집어넣어 유희용으로 활용했다.
당시 풍선껌 역시 이러한 제품 보호를 위해 포장지를 동봉하면서 이를 카드 형태로 제작해 끼워 넣었다. 이러한 동봉 카드는 추후 연예인 또는 스포츠 선수의 사진을 새겨 넣는 형태로 발전하며 현재의 트레이딩 카드의 원형을 이뤘다.
현재의 트레이딩 카드의 원형은 1909년 제작된 T206 호너스 와그너 카드로 추정된다. 유명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선수였던 호너스 와그너의 얼굴이 그려진 해당 카드는 2007년 30만달러, 약 3억원이 넘는 돈에 팔리며 한동안 세계에서 가장 비싼 트레이딩 카드라 불렸다. 해당 카드 역시 1909년 담배 회사 아메리칸 타바코 컴퍼니에서 자사 담배 사은품으로 야구 카드를 끼워 넣었는데 이것이 바로 T206 시리즈였다. 하지만 비흡연자이자 혐연론자였던 와그너가 담배 사은품에 자신의 얼굴이 나간 사실에 항의하면서 해당 호너스 와그너 카드는 딱 200개만 나오고 발매가 중단된 것이다.
이처럼 인물의 사진이 들어간 카드에 희소성이란 특성이 부여되면서 해당 카드는 현재 트레이딩 카드 산업을 일군 원형으로 불리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해당 카드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 카드는 2021년 660만달러, 무려 91억원에 팔리며 최고기록을 썼다. 이어 1년 뒤인 2022년에는 725만달러를 기록하며 또다시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그리고 그 기록은 또 다른 MLB 전설 미키 맨틀에 의해 또다시 깨졌다. 지난해 9월 미키 맨틀의 신인 카드는 스포츠 카드 수집품 사상 최고액인 1260만달러에 낙찰되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약 173억원으로 스포츠 카드뿐 아니라 스포츠 관련 경매품 중에서도 역대 최고가 기록을 기록했다. 이처럼 트레이딩 카드 시장은 나날이 커져가고 관심도는 높아지고 있다.
담배와 더불어 트레이딩 카드 시장을 키운 장본인은 다름 아닌 풍선껌이다. 가격이 낮고 자주 구매하는 품목에 카드가 자리하며 본격적인 산업화가 이뤄졌다. 특히 어른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담배와 달리 풍선껌은 아이나 여성들도 즐겨 사게 되면서 트레이딩 카드 시장의 큰 확산을 유도했다.
이러한 트레이딩 카드 대중화의 중심에는 풍선껌 회사 탑스가 있다. 1951년부터 풍선껌을 팔던 탑스는 <스타워즈> 시리즈 등 유명 콘텐츠의 카드를 만들며 풍선껌 업계에서도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카드 끼워 팔기에 재미를 본 탑스는 아예 1981년부터 풍선껌 판매를 중단하고 본격적으로 카드만 팔기 시작했다.
특히 풍선껌의 기름기가 카드를 손상시키며 풍선껌과 분리를 고민했고 카드를 사기 위해 껌을 사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주객이 전도된 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마치 요즘 포켓몬 스티커를 얻기 위해 포켓몬빵을 사는 것과 비슷한 일이 이미 50년 전에도 유행한 셈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트레이딩 카드의 전성기가 찾아왔다. 탑스를 필두로 여러 카드 업체가 난립하며 본격적인 시장 키우기가 이뤄진 것이다.
마켓디사이퍼에 따르면 스포츠 카드의 유통 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 129억달러 규모로 추정된다. 한화로 약 16조원에 달한다. 그런데 이 시장 규모는 2032년이면 493억달러, 약 62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재 트레이딩 카드는 미국과 일본이 양분한다. 특히 미국은 크나큰 소비 시장 규모와 잘 발달한 프로스포츠 문화 등으로 트레이딩 카드 문화의 정점에 서있는 나라다. 제작사 역시 탑스를 비롯해 파니니, 퓨테라, 어퍼덱, 리프, 파나틱스 등 많은 기업들이 경쟁하고 있다.
트레이딩 카드의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상태, 제작 연도, 희소성이 꼽힌다. 우선 상태가 좋아야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최근 애플의 아이폰 첫 판매제품은 박스가 뜯기지도 않은 채 시장에 나와 그 가치만 6000만원이 넘게 책정됐다. 당시 판매가가 73만원이었던 제품이란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것이다. 이 제품은 다량 생산이 이뤄졌지만 보관 관리의 상태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그 가치가 올라가는 것도 당연하지만 무척 중요한 원칙이다. 고급 위스키나 와인의 빈티지가 오래될수록 그 가격이 올라가고 맛이 깊어지는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또한 루키 카드라 불리는 스포츠 카드의 경우 신인 선수들을 대상으로 출시된 카드가 시간이 흘러 슈퍼스타가 됐을 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점 역시 결국 오랫동안 누가 이 신인을 발굴하고 그 카드를 지켜왔는지가 그 카드의 가치를 높여준다는 것을 뜻한다.
마지막 요소는 희소성이다. 상태가 좋고 오래된 것이라도 남아있는 수가 많다면 무의미하다. 수백 장보단 한 장이 훨씬 가치가 높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최고가 카드들은 이러한 3박자가 고루 잘 맞아 떨어진 것이다.
현재 미국 프로농구 NBA를 대표하는 르브론 제임스의 신인 카드 역시 2021년 4월 농구 카드 사상 최고가인 520만달러에 거래됐다. 당연히 보관 상태는 좋았고 신인 카드인 만큼 르브론 제임스 카드 중 가장 오래된 카드다. 또한 신인 카드 특성상 99장만 만들어져 그 희소성이 매우 높다.
이처럼 트레이딩 카드 한 장의 가치가 수억원을 호가하자 미국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트레이딩 카드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수는 취미 삼아 수집생활을 겸해 이런 카드를 모으기도 하지만 몇몇은 아예 전문적으로 카드를 사고팔고 관리에도 많은 돈을 투자한다. 부자들의 대표적 상속 수단이 바로 미술품이다. 일종의 절세이자 불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뒤넘기도 하는 고가 미술품 시장의 대체제로 바로 이러한 트레이딩 카드가 주목받고 있는 셈이다.
실제 트레이딩 카드의 경우 보관할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면서 금이나 달러와 같은 현물처럼 취급받기까지 한다. 정말 운이 좋고 실력이 있다면 싸게 구입한 카드가 추후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로또로 발전할 수도 있다.
국내에는 이런 시장이 아직 형성조차 되지 않은 만큼 알음알음 SNS 등을 통해 이러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지만 향후 시장의 성장을 기대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국내 야구 카드의 경우 대원미디어가 2018년부터 생산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리그의 인기만큼 카드까지 인기를 얻고 있지는 못하다. 미국과 같이 프로스포츠의 인기가 높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트레이딩 카드의 진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게임이나 스포츠뿐 아니라 최근엔 연예인들이나 인플루언서들의 트레이딩 카드 시장도 생겨나고 있다. 인기 있는 연예인들의 팬덤이 몰리며 오히려 투자 가치나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연예 기획사들도 콘텐츠 개발에서 이러한 속성을 잘 간파하고 글로벌 시장에 유통 가능한 카드 시장을 새롭게 조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암호화폐와 NFT 기술의 발전으로 이러한 트레이딩 카드의 기술 진보까지 이뤄지는 상황에서 향후 트레이딩 카드가 키워갈 시장 가치는 더욱 무궁무진할 것으로 관측된다.
관련 산업 성장이 점쳐지는 가운데 혜안이 있는 투자자라면 이러한 트레이딩 카드 시장의 성장을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적 특성을 잘 녹여낼 수 있는 새로운 분야의 트레이딩 카드 산업이 형성된다면 분명 투자자들에겐 새로운 위기이자 기회가 펼쳐질 것이다. 트레이딩 카드 시장의 성장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추동훈 매일경제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