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국내 시장에서는 힘을 못 쓰던 글로벌 최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 스포티파이가 올해 10월 국내에서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를 선보이며 한국 시장에서 진격을 시작했다.
국내 음악 스트리밍 시장은 사용자 수를 기준으로 유튜브 뮤직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멜론, 지니뮤직, 플로(FLO)와 같은 토종 플랫폼이 뒤쫓고 있는 구조다. 그동안 월 이용자가 100만 명을 밑돌며 성과가 저조하던 스포티파이의 이용자 수가 한 달 만에 56%가 늘면서, 멜론과 같은 토종 플랫폼 입장에서는 경쟁이 더욱 심화되는 분위기다.
아이지에이웍스의 데이터 분석 솔루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10월 스포티파이의 월간활성사용자수(MAU)는 127만9189명으로, 직전 달인 9월 81만 9703명에서 약 46만 명 증가했다. 한 달 새 국내 이용자가 56%나 늘어난 것이다.
스포티파이는 2021년 한국 진출 이후 MAU가 60~70만 명대에 계속 머물며 고전해왔다. 다만 지난 10월 10일, 광고를 듣는 대신 요금제 없이 스트리밍할 수 있는 ‘스포티파이 프리’ 서비스를 한국에 선보이면서 이용자가 뛴 것이다.
10월 10일부터 31일까지 스포티파이 앱을 새롭게 설치한 사용자 수는 46만549명을 기록했으며, 이 중 10대 이하가 50.6%, 20대가 23%를 차지했다. 10·20세대가 무료 요금제에 가장 크게 반응한 것이다.
스포티파이 프리는 해외 시장에서는 이미 있던 서비스지만, 한국에 적용된 것은 스포티파이의 한국 진출 이후 처음이다. 사용자는 스포티파이의 플레이리스트 등을 무료로 들을 수 있으며, 일정 수의 곡을 들을 때마다 곡 사이에 라디오처럼 광고가 등장한다. 무료 서비스이다 보니 개별 곡을 검색해 듣는 것은 어렵다는 제약이 있다.
국내 음악 스트리밍 앱 사용자 순위는 10월 기준 유튜브 뮤직이 754만9327명으로 1등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멜론(706만6811명), 지니뮤직(291만7375명), 플로(217만7833명), 스포티파이(127만9189명)가 뒤를 잇고 있다. 집계에 빠진 애플뮤직의 경우 아이폰 기본 탑재 앱인 ‘뮤직’을 이용하기에, 앱스토어 설치 데이터 등을 분석하는 데이터 솔루션을 통한 이용자 수 추정이 제한적이다.
이용자 수가 40만명 이상 증가한 스포티파이는 네이버 바이브(60만7368명)와 벅스(36만3497명)와는 격차를 벌리면서, 앞서 있는 플로와 지니뮤직을 추격하게 됐다.
1년 전만 해도 시장 1등은 멜론이었다. 2023년 10월 이용자 지표를 보면 당시에는 753만2243명의 MAU를 기록한 멜론이 선두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유튜브 뮤직이 696만3479명으로 2위였다.
지니뮤직(333만7354명), 플로(233만5662명), 네이버 바이브(87만4858명), 벅스(37만9135명)도 올해보다 지난해 10월 이용자 수가 많았다.
이들 플랫폼은 1년 새 적게는 만 명대에서 많게는 40만 명대의 이용자가 감소했고, 이탈 사용자는 대부분 유튜브 뮤직으로 향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이 기간 유튜브 뮤직, 스포티파이 등을 더한 외국 음원 앱의 사용자 수 점유율은 36.8%에서 42.3%로 늘었다.
올해부터 사용자 수 1등을 차지한 유튜브 뮤직에 이어, 무료 서비스를 장착한 스포티파이는 이용자 수가 정체된 토종 앱에 추가로 위협이 될 전망이다.
스포티파이가 10월의 상승세를 계속 이어갈 경우, 토종 플랫폼에서 스포티파이로의 사용자 이탈 또한 발생할 여지가 있다.
스트리밍 플랫폼 업계에서는 아직 스포티파이가 무료 서비스를 출시한 초기인 만큼 스포티파이 성과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무료 서비스다 보니 관심이 크게 높아진 것 같다”라면서도 “광고가 노출되는 등 무료 서비스의 제약이 있다 보니 장기적인 상승 곡선으로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튜브 프리미엄을 구독하면 번들링 방식으로 함께 제공되는 유튜브 뮤직 사용자도 많아,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소비자층이 스포티파이로 이동할지 여부 또한 변수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가격에 민감한 고객들은 유튜브 프리미엄을 통해 유튜브 뮤직을 사실상 무료로 이용하고 있기에 생각만큼 효과가 큰 것 같지 않다”라고 분석했다.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이나 기능 개편만으로는 현재 유튜브 뮤직이 구축한 이용자 생태계를 깨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구독경제 전문가인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교수)은 “스포티파이는 전 세계 1위이지만 아직 한국에서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측면이 있다”라면서 “한국에서 유튜브 프리미엄은 돈을 내고 광고를 보지 않는다는 문화가 있는데, 광고를 다시 시청하는 문화로 돌아가는 게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국내 시장은 가히 유튜브 천하다. 앱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가 분석한 국내 사용자의 앱 사용 시간에 따르면 지난 9월 월간 유튜브 사용 시간은 18억109만5000시간으로 한국인이 가장 오래 사용하는 앱으로 꼽혔다.
유튜브는 월 1만49000원의 가격에 유튜브 광고 제거·영상 오프라인 저장 등의 기능에 음악 앱 유튜브 뮤직을 함께 파는 전략으로 스트리밍 시장 또한 점령했다. 지난해 12월 국내 가격 인상 전에는 월 1만490원이었다.
동영상 플랫폼 시장에서 유튜브는 이미 독점적인 사업자이기에, 유튜브 프리미엄을 통해 유튜브 뮤직까지 제공하는 서비스는 소비자를 빠르게 확보했다.
멜론, 지니뮤직, 플로 등 주요 국내 앱들의 무제한 스트리밍 요금제가 월 1만900원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유튜브 기능과 유튜브 뮤직을 함께 이용하는 유튜브 프리미엄 요금제는 가격 인상에도 여전히 소비자들의 수요를 끌어내는 모양새다.
유튜브 뮤직은 유튜브 플랫폼이 보유한 아티스트들의 라이브 영상 음원 등을 들을 수 있다는 점도 차별점으로 가져간다. 개인 크리에이터들이 유튜브에 올리는 커버곡도 장점이다.
한편 유튜브가 시장의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 유튜브 뮤직을 유튜브 프리미엄 요금제에 끼워팔기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유튜브가 가진 시장지배력을 활용해 스트리밍 시장까지 점령하며 경쟁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2월 구글을 끼워팔기 혐의로 현장 조사한 후 조사를 거쳐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연말 또는 내년에 제재 여부에 대한 결론이 나올 예정이다.
공정위는 구글이 유튜브 프리미엄을 판매하면서 유튜브 뮤직을 끼워파는 방식으로 시장 지배력을 부당하게 전이했고, 이로 인해 소비자들이 유튜브 뮤직 구매를 강제당하는 등 선택권을 제한받고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유튜브 동영상과 뮤직을 결합한 ‘유튜브 프리미엄’ 요금제와 유튜브 뮤직 단독 요금제인 ‘뮤직 프리미엄’(월 1만1990원)만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데, 유튜브 동영상 단독 상품 또한 판매되도록 해서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공정위는 보고 있다.
다만 공정위의 제재가 이루어지더라도 실제로 구글이 더 저렴한 요금제를 내놓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구글은 실제로 유튜브 뮤직을 제외한 간소한 요금제인 ‘유튜브 프리미엄 라이트’를 벨기에, 덴마크, 스웨덴 등 일부 국가에서 제공한 바 있으나, 현재는 제공하지 않고 있다.
소비자 사이에서는 오히려 제재로 인해 유튜브 프리미엄과 유튜브 뮤직 구독이 별개로 나누어지면, 구글이 오히려 이중으로 요금을 지불하게 만들면서 소비자 후생에 역행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편 토종 플랫폼들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개인화 플레이리스트 제작 등 사용자 취향에 맞는 노래를 제안하는 큐레이션 영역을 강화하고 있다.
멜론은 이용자의 감상 이력을 분석해 이용자가 한 곡을 선택하면 자동으로 다음 곡이 이어지는 서비스 ‘믹스업’을 지난해 9월부터 시작했다.
지니뮤직 또한 올해 7월 앱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며 이용자가 감상했던 곡을 기반으로 새로운 곡을 제안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첫 곡으로 선택하면 그에 맞는 재생목록을 추천해주는 ‘빠른 선곡’ 서비스를 도입했다.
플로는 “휴일에 출근해서 우울할 때 위로해줄 수 있는 노래 들려줘”와 같이 자연어로 검색하면 이에 맞는 플레이 리스트를 생성해주는 기술을 앱에 적용했다. 요약하면 모두 이용자 취향에 기반한 큐레이션 서비스 강화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각 앱들은 이용자들을 위한 차별화 기능도 내세우고 있다. 멜론은 올해부터 각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앨범을 발매할 때, 앱 내 채널을 통해 발매 직후 신곡을 아티스트와 팬들이 함께 들으며 채팅으로 대화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플로의 경우 일반 이용자들이 원곡을 따라 부르는 ‘커버곡’을 업로드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커버곡 서비스’를 지난해부터 선보이면서 기능 차별화와 새로운 사용자 유입에 힘쓰고 있다.
다만 기능 개편 등을 통한 앱 경쟁력 강화만으로는 현 상황을 타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호겸 센터장은 “스트리밍 앱 혼자서 유튜브를 이기기는 이제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키워드는 열린 컬래버레이션을 통한 번들링”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물론 지니뮤직과 플로는 이미 각각 KT, SK텔레콤의 통신 요금제와의 결합하는 방식을 통해 꾸준히 일정 수의 사용자를 확보해 왔다. 일정 금액 이상의 고가 요금제를 사용할 경우 부가 서비스 중 하나로 해당 스트리밍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하는 식이다.
이러한 번들링을 통해 지니뮤직과 플로는 또다른 토종 플랫폼인 네이버 바이브, 벅스보다 많은 이용자를 유지해 왔지만, 추가 확장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전호겸 센터장은 “소비자를 유인할 수 있는 이종 서비스와의 번들링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아마존과 쿠팡이 서로 상관이 없어 보이는 쇼핑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구독을 엮어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한편 스포티파이의 반등이 일시적인 해프닝으로 끝날지, 꾸준히 성장하며 기존 플랫폼들의 경쟁을 가속화할지에 이목이 쏠린다. 한 업계 관계자는 “프로모션 효과는 초기 1~3개월에 집중되어서, 아직은 지켜봐야 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정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