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리스크’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면서 금융당국과 보험사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초고령사회에서도 보험이 지속적으로 국민의 안전판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새로운 품의 연구·개발에 매진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장수할수록 더 많은 보험금을 받는 연금 보험부터 기상 이변이 발생했을 때 보상해주는 기후 보험 등 다가올 사회에 필요한 보장성 보험을 보게 될 것이다. 현재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언급되는 상품을 중심으로 미래의 보험을 살펴보겠다.
보험업계에서 개발 중인 미래 상품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톤틴형 연금보험’이 있다. 먼저 이 상품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자. 톤틴형 연금은 17세기 이탈리아 출신 은행가 로렌조 톤티가 구상한 금융 방식에서 유래했다. 참가자들이 일정 금액을 공동기금으로 내고, 가입자가 사망할 때 마다 남은 가입자에게 더 많은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톤티는 이 방식이 국가 재정 조달의 획기적 방법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프랑스 재무장관에게 제안했으나 초기엔 흥행하지 못했다.
재조명받은 건 19세기에 이르러서다. 미국 보험사들이 이 구조를 도입해 생명보험을 판매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1868년 뉴욕에서 톤틴 생명보험이 도입된 이래 톤틴은 20년 만에 미국 전체 생명보험 시장에서 3분의 2를 차지할 만큼 잘 팔렸다. 그러나 더 많은 보험금을 받기 위해 사기는 물론 살인까지 일삼는 도덕적 해이가 관측되며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급기야 1906년 미국 뉴욕에서는 톤틴 보험을 법으로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톤틴 보험이 다시 부상하는 건 고령화 때문이다. 세계에서 초고령 사회에 제일 먼저 진입한 일본에서는 2016년 봄 니혼생명이 톤틴 연금인 ‘그랑 에이지’를 내놓고 가입자를 끌어모았다. 고객은 50세부터 70세까지 20년간 매달 보험금을 납입하면 된다. 그러면 연금 수령 시기인 70세 부터 사망할 때까지 매년 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톤틴 연금인 만큼 오래 살수록 더 많이 받는다. 뒤집어서 얘기하면 90세 이상 살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구조다. 연금 수령 전에 사망해도 자신이 납입한 보험료보다 적은 해약환급금만을 받게 된다.
한국형 톤틴도 기본적으로 일본 그랑 에이지와 비슷한 구조를 띤다. 다만, 한국인의 정서를 고려할 방침이다. 연금 개시 전 사망했을 때, 기존 보험의 보험금보다는 적지만 납입 보험료보다는 소폭 많은 해약환급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톤틴 연금은 두 가지 측면에서 장점을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하나는 고객 측면이다. 장수하며 발생하는 수입 감소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는 것이다. 한국형 톤틴 연금은 일반 연금 상품과 비교했을 때 연금액을 38% 더 많이 받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다른 하나는 보험사가 누릴 이점이다. 보험사가 종신 연금을 팔면서도 너무 많은 가입자가 장수할 것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보험사는 톤틴형 연금을 설계함으로써 일반 종신 연금보다는 총 지출을 줄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보험사가 이런 상품을 굳이 개발할 필요도 없다. 고객은 장수했을 때 더 받고, 보험사는 전체 보험금 지출을 줄이며, 금융당국은 생명보험사가 종신보험을 지속 출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효과가 선순환할 것으로 전망되는 것이다. 2026년 봄 첫 상품을 출시하는 게 목표다.
보험업계에서 주목하는 또 다른 미래 보험으로는 ‘지수형 날씨보험’이 있다. 이 상품은 기후 리스크가 커짐에 따라 필요성이 점점 증대되고 있다. 일례로 2024년 3분기 백화점 등 유통가는 울상이었는데, 평년보다 지나치게 따뜻해서 가을·겨울 상품 판매가 부진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봄에 때아닌 폭설이 와서 실적에 타격을 받는 기업이나, 빙판길에서 부상 입는 배달 기사도 기후 위기의 피해자다. 이처럼 이상 기후에 따른 손해는 일상화하지만, 기존 보험 체계로는 보상받기가 어려웠다. 날씨와 발생 손해 사이의 상관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보험업계가 지수형 날씨보험 개발에 나선 것. 이 보험은 강수량, 강설량 등 사전에 날씨지수를 정해두고, 정상 수준에서 벗어날 때 보험금을 지급한다. 금융당국은 지수형 보험 상품이 다양해지면 사회 안전망이 한층 튼튼해질 것으로 본다.
이를테면 지자체는 호우·태풍·대설 등 피해를 입었을 때 복구 비용을 보장받는다. 태양광 발전소는 일사량이 예상보다 부족했을 때 매출 감소를 보상받을 것이다. 예년보다 폭염과 폭우가 잦아져 전통시장에 방문하는 고객이 줄어든다면 해당 시장의 소상공인도 영업손실을 보상받을 수 있다. 지수형 날씨보험은 톤틴형 연금에 비해 활성화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객관적이고 신뢰도 높은 데이터를 확보해 보험 상품으로 연결하는 게 만만치 않은 과제이기 때문이다.
가입자 본인이 살아 있을 때, 종신보험 혜택을 당겨 받는 방안도 마련된다. 사망보험금 유동화다. 보험 가입자는 종신보험을 꾸준히 납입하다가 생계 때문에 돈이 필요해질 수 있는데, 이때 보험금을 당겨받게 하는 것이 ‘유동화’다. 이는 오래 전 출시된 종신보험에 가입한 고령층일수록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고금리에 종신보험을 들어뒀으면, 사망보험금을 수령할 때는 몰라도 중간에 보험계약대출을 받을 때는 불리하다. 보험계약대출의 금리는 보험 상품의 기본 이율에 가산 금리를 더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당국과 보험사는 사망보험금을 연금으로 받을 수 있게 하는 연구에 착수했다. 사망보험금이 1억원인 피보험자라면, 3000만원은 사망보험금으로 남겨두고, 나머지 금액을 연금 형태로 매달 받는 형식이다. 연금 개시가 늦어질수록 월 수령액이 많아진다. 다만, 연금은 20년 등 일정 기간 주어지기 때문에 본인의 기대 수명에 대한 예측이 필요하다. 유동화를 위해선 고객이 이용 중인 보험계약대출이 없어야 한다.
보험업계는 사망보험금을 유동화해 시니어가 자기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받게 하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다. 일례로, 요양시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보험사가 고객의 사망보험금을 유동화한 후 직접 요양시설에 지급해 입소 비용의 일부로 충당하는 식이다. 금융당국은 사망보험금 유동화를 2025년 하반기부터 순차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보험업계와 금융당국이 머리를 맞대고 미래형 보험을 고민하는 이유는 업황이 밝지 않다고 여겨서다. 고령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과거 고금리 시기 판매했던 보험 상품이 향후 줄줄이 높은 손해율을 기록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1970년 62.3년에서 2021년 83.6세로 늘었다. 50년 만에 기대 수명이 20년 이상 늘어난 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아울러 젊은 세대는 보험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1인 가구가 늘어남에 따라 유족을 위해 사망보험금을 마련해둘 필요를 느끼는 개인은 줄었다. 가족이 있다고 하더라도 요즘엔 보험보다는 투자를 통해 재산을 불리는 걸 선호한다.
이에 더해 이상 기후 등 기존엔 없었던 위험 요인이 많아지면서 예상치 못한 손해가 커지는 실정이다. 2025년 1분기엔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 모두 본업인 보험에서 손해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보험만으로는 감당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사적 보험의 역할은 미래에도 요구될 것이다. 이에 미래 사회에 필요한 보험 개발은 앞으로도 보험업계의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 측은 “보험산업의 미래 대비를 위해 수시로 실무협의체를 운영하며 추가 과제를 발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창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