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밥’이 인기다. 팬데믹 이후 즐거운 건강 관리를 추구하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열풍에 전성시대를 맞았다는 말이 나올 만큼 맛집 거리의 서너 집 건너 한 집 메뉴에 솥밥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 끼를 먹더라도 제대로 먹자는 인식이 확산되며 미리 해놓은 공깃밥 대신 솥밥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외식 트렌드가 된 솥밥을 집에서 즐기려는 이들도 늘었다.
이른바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과 함께 소개된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상의 #솥밥 게시물도 18만여 개를 훌쩍 넘어섰다. 레시피 또한 천차만별. 밥 위에 올리는 재료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똑같지 않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솥밥이 인기면 과연 ‘솥’이 좋은 걸까 아니면 ‘밥’이 좋은 걸까. 우선 밥부터 살펴보면 CJ제일제당이 출시한 ‘햇반 솥밥’의 인기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 2021년 5월, 솥밥의 원리 그대로 다양한 곡물과 버섯, 채소 등을 담아낸 ‘햇반 솥밥’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27%나 늘었다. 올 2월엔 누적 판매량 3000만 개를 돌파했다.
그럼 솥은 어떨까. 수입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른바 프리미엄 주방 기구로 구분되는 수십만원대 수입 브랜드의 지난해 매출은 모두 100% 이상 증가했다”며 “유명 연예인들의 요리 방송이나 SNS 활동에 등장하는 주물 팬이나 솥 등 인기 품목은 모델에 따라 품절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장인(匠人)이 만든 명품 냄비를 꼽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브랜드 중 하나가 바로 프랑스에서 시작된 ‘르크루제(Le Creuset)’다. 특히 한국 시장에선 솥밥을 포함해 한식 요리부터 양식 요리까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고메밥솥’이 인기다. “갓 지은 밥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입맛을 고려해 기존 냄비에 섬세한 기술을 더했다”는 게 르크루제 측의 설명. ‘고메밥솥 레시피’가 여전히 SNS상에서 회자되는 이유다. 그럼 르크루제는 어떤 브랜드일까. 1925년 프랑스 북부의 프레누아 르그랑에서 출발한 르크루제는 올해 설립 100주년을 맞았다. 브랜드명은 프랑스어로 ‘유일한’을 뜻하는 정관사 ‘LE’와 ‘고온으로 녹인 무쇠를 담는 도가니’란 뜻의 ‘CREUSET’가 결합돼 완성됐다. 생산하는 모든 제품을 직접 수작업으로 만들어 단 하나뿐인 제품을 선보인다는 의미다. ‘FIRST’(최초의) ‘FINEST’(최고의) ‘FAVORITE’(가장 인기 있는)으로 요약되는 브랜드의 가치는 원형 로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녹은 무쇠의 색을 표현한 ‘주황(Flame)’ 색상의 원 모양이 로고의 중심을, 세 가지 가치를 상징하는 세 개의 링이 그 주변을 감싸고 있다.
유럽의 명품을 논할 때 한땀 한땀 수놓는 장인의 손길이 떠오르듯 르크루제의 무쇠 주물 냄비도 30년 이상 숙련된 장인들의 제조 방식과 에나멜 코팅 기술로 완성된다. 1500°C 이상의 용광로에서 녹인 쇳물을 모래 주형에 부어 냄비 모양으로 굳힌 뒤 쇳물이 식은 다음 모래 틀을 부숴 제품을 꺼내는데, 이렇게 완성된 냄비의 표면과 모서리를 수작업으로 매끈하게 정돈한다.
이후 3단계의 에나멜 코팅을 거쳐야 비로소 매끈한 자태와 견고한 내구성을 갖추게 된다. 먼저 녹이 스는 걸 방지하기 위한 프라이머 역할의 코팅 작업을 실시하고 스프레이건을 통해 제품 안팎에 정교하게 색을 입힌다. 르크루제 측은 “눈으로 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30년 이상의 숙련자만 가능한 작업”이라며 “꼼꼼한 수작업 스프레이 코팅 덕분에 에나멜이 쉽게 벗겨지거나 변형되지 않고, 마지막으로 840°C의 오븐에서 제품을 구워 마무리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제작 과정을 거치는 동안 제품 검수도 함께 진행된다. 조금이라도 흠집이 있다면 과감히 용광로로 돌려보내는 게 원칙. 검수 과정만 15단계를 거치는 데 완성품의 30%가 폐기될 만큼 기준이 엄격하다.
르크루제가 품질과 함께 주목받는 또 하나의 요소는 화려한 색상이다. 르크루제가 등장하기 전 식기들은 실용성을 위해 대부분 어두운 회색이나 검정색으로 제작됐다. 르크루제는 설립 초기부터 소비자의 취향과 트렌드를 분석한 색상 조합을 만들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금도 유효하다. 2000여 개의 다양한 컬러 팔레트를 연구하며 매시즌 감각적인 색감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컬러 그라데이션은 르크루제만의 차별점. 에나멜 코팅 과정은 장인이 하나하나 손으로 컬러링 작업을 하는데, 이때 열이 식으면서 밝은 색감에서 진한 색으로 서서히 변하는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 현상이 발생한다. 그렇게 르크루제만의 독자적인 기술로 냄비에 고급스러운 입체감이 더해져 개성 있는 외형이 완성된다.
2006년 한국에 진출한 르크루제코리아는 올해 창립 19주년을 맞았다. 국내에 진출하기 전부터 입소문을 통해 인기를 끌며 홍콩,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선 3번째로 지사가 설립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살펴보면 르크루제코리아의 최근 5년간 매출은 2020년 266억 5667만원, 2021년 341억 1144만원, 2022년 311억 9058만원, 2023년 292억 8145만원, 2024년 305억 3424만원으로 집계됐다. 수입용품 업계의 한 관계자는 “팬데믹 기간에 매출이 큰 폭으로 상승한 후 소폭 감소세를 보이다 지난해 다시 300억원대를 회복했다”며 “동종업계에서 톱을 다투는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르크루제코리아는 지난 4월부터 브랜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활동을 선보이고 있다. 우선 지난 4월 1일, 르크루제의 헤리티지를 담은 ‘히어로 필름(Hero Video)’ 글로벌 캠페인 영상을 공개했다.
소비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소셜 캠페인의 일환으로 르크루제와 함께한 추억을 #100YearsOfLeCreuset 해시태그와 함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는 글로벌 캠페인도 전개할 예정이다. 폴 반 주이담 르크루제 회장은 “르크루제는 키친웨어를 넘어 세대를 잇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며 “100주년을 축하하는 뜻깊은 순간을 넘어 앞으로도 전 세계 소비자에게 혁신과 품질, 요리에 대한 영감을 지속적으로 선사하겠다”고 전했다.
르크루제가 새롭게 선보인 ‘플람 도레(Flamme Dorée) 컬렉션’은 브랜드의 시그니처 색상인 주황(Flame)에 빛을 반사하는 미네랄과 3중 에나멜 코팅 레이어, 금빛 마감 처리로 빛나는 색감을 구현한 한정판 제품이다. 르크루제를 상징하는 도가니 모양의 손잡이가 새롭게 디자인됐다. 무쇠 제품인 시그니처 원형냄비(18㎝·20㎝), 고메밥솥(2.0ℓ·2.8ℓ), 뷔페 캐서롤(30㎝) 등 총 5종으로 구성됐다.
[안재형 기자 · 사진 르크루제코리아]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6호 (2025년 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