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지난해 0.78명을 기록하면서 세계 최저 수준까지 떨어진 가운데, 그 빈자리를 채우기라도 하듯 반려동물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반려견(545만 마리)과 반려묘(254만 마리) 수는 전년 대비 각각 5.2%, 12.7% 증가했다. 전체 가구 중 반려동물 양육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25.4%(약 602만 가구)로 나타났다. 국민 4명 중 1명은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뜻이다.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자식처럼 키우는 사람들이 늘면서 반려동물 용품이나 펫푸드 등을 선택하는 소비자 눈높이도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영향으로 국내 펫 시장은 각종 프리미엄 제품과 맞춤형 서비스로 고급화하고 있다. 오는 2027년에는 국내 펫푸드 시장 전체 규모가 6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글로벌 마켓 인사이트는 전 세계 반려동물 연관 산업이 2022년 2610억달러에서 2027년에는 3500억달러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경기 하남의 프리미엄 수제 펫푸드(반려동물 먹이) 무인 매장 ‘황금똥댕냥이’. 가게 안에 들어서자 다양한 펫푸드가 진열된 커다란 자판기가 눈에 들어 왔다. 진열대에는 소갈비, 오리 안심, 육포, 동결건조 연어 등 사람이 먹는 식품과 유사한 펫푸드 제품들이 소포장돼 있었다. 1회분 기준 소갈비는 7000원, 우족 슬라이스는 8000원에 판매 중이었다.
각 제품 옆에는 ‘면역력 강화’ ‘다이어트’ ‘관절 건강’ 등 반려동물의 건강에 유익한 점을 강조한 안내 문구가 붙어 있었다. 반려견의 치아 건강과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뼈 있는 닭발’과 짜 먹이는 기호식품 ‘짜먹개’ 등은 품절 상태였다. 냉장 진열대의 와인·맥주·소주 포장재를 활용한 ‘개베르네쇼비뇽’(홍삼), ‘골드페일’(블루베리 주스), ‘골드처럼’(비타민) 등도 눈길을 끌었다.
국내 펫푸드 시장은 지난해 기준 1조5000억원 규모로 성장하면서 다양한 펫푸드가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사람이 먹는 식재료를 활용해 만든 프리미엄 펫푸드가 보편화하는 추세다. 영양성분과 맛, 기호까지 고려해 펫푸드를 이유식처럼 까다롭게 고르는 소비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육분(고기 찌꺼기를 갈아 만든 사료 원료), 박 등 식품을 가공하고 남은 찌꺼기를 원료로 만든 일반 사료처럼 딱딱하고 건조한 식감의 건식 펫푸드보다는 채소, 생고기 등 식재료의 식감과 풍미를 살린 습식 펫푸드가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습식 펫푸드에는 고령의 반려동물도 쉽게 먹고 소화시킬 수 있는 연화식 사료도 포함된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펫푸드 시장의 약 10%를 차지하는 습식 펫푸드 시장은 매년 10%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펫사료협회 관계자는 “사람과 똑같은 수준의 먹거리를 반려동물에게도 먹이는 의인화 현상이 국내 펫푸드 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례로 반려동물용 수제간식 브랜드 오간식의 ‘독 파티 소풍 패키지’는 미니치킨과 김밥, 새우튀김, 미니치즈케이크 등 사람이 먹는 음식과 유사한 형태의 반려견 음식들로 구성된 반려견용 간편 소풍 음식 세트다. 특히 알록달록 먹음직스럽고 재미있는 비주얼로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반려견이 선호하는 황태, 계란, 닭고기 등 100% 천연 식재료로 만들었다는 점도 인기 요소다.
이처럼 일반 사료 대신 집에서 정성 들여 만든 것과 같은 품질의 수제 펫푸드를 선호하는 현상은 국내 이유식 시장에서 나타나는 수제 이유식 선호 현상과 유사하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일반 사료보다 사람이 직접 더 정성을 들여 만드는 고품질의 펫푸드를 먹이기 위해 더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수제 펫푸드를 찾는 것이다.
반려동물용 케이크, 주스 같은 기호식품도 다양화하고 있다. 일례로 경기 성남 분당구의 수제도넛 카페 ‘도넛 드로잉’에서는 반려견용 도넛 등 간식을 별도로 판매한다. 수제간식 브랜드 ‘그날, 간식’이 판매하는 ‘독 추카포카 생일 패키지’는 반려견 전용 생일 케이크와 바나나 쿠키, 오리 떡갈비 등을 구성해 이색적인 재미까지 더했다.
무인 펫푸드 매장도 인기를 얻고 있다. 국내 펫푸드 시장의 경우 이커머스(전자상거래)를 통한 온라인 구매가 전체 소비자의 65%에 달할 정도로 비대면 구매가 활성화돼 있는 데다 프리미엄 수제 펫푸드는 일반적으로 가까운 국내 식품회사들도 프리미엄 펫푸드 제품군을 확대하고 나섰다. 2017년 ‘100% 휴먼 그레이드(인간 등급) 사료, 0% 합성보존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출범한 하림펫푸드는 ‘더 리얼’ ‘가장 맛있는 시간 30일’ ‘밥이 보약’ 등 프리미엄 브랜드를 잇달아 출시하면서 2021년 흑자 전환했고 지난해 약 3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특히 더 리얼은 육분이 아닌 생고기만을 사용해 만든 펫푸드 브랜드로 미국, 유럽 등 해외 브랜드들이 장악하고 있는 국내 펫푸드 시장에서 반려견 사료 브랜드 7위, 반려묘 사료 브랜드 6위를 기록했다. 뼈를 제거한 생고기 85%와 블루베리, 케일, 당근, 브로콜리 등 생과채류를 사용해 만든 더 리얼의 하위 브랜드 ‘더 리얼 로우’는 출시 초기부터 높은 품질로 큰 화제를 모았다.
동원F&B 역시 2014년 펫푸드 전용 브랜드 ‘뉴트리플랜’을 출시하고 2017년 반료묘용 건식 사료를 시작으로 100% 휴먼그레이드 사료 제품을 차례로 선보여 왔다. 동원F&B는 2025년까지 펫푸드 부문 연 매출액 1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기능성 식품, 영양제 등 특수용도 식품의 수요도 크게 높아졌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풀무원건강생활의 프리미엄 펫푸드 브랜드 ‘아미오’는 다양한 반려동물용 케어 푸드를 판매하고 있다. 피부와 모질에 도움을 주는 유기농 아마씨의 식물성 오메가3와 가수분해 콜라겐을 함유한 건강식 ‘아미오 스킨앤뷰티 연어’가 대표적이다.
그 밖에도 관절 건강에 도움을 주는 글루코사민을 첨가한 ‘건강담은 식단 관절케어’, 장 건강에 좋은 프로바이오틱스를 함유한 ‘건강담은 식단 장케어’, 체중 관리에 도움을 주는 공액리놀레산을 넣은 ‘건강담은 식단 체중케어’ 등이 있다. 아미오는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매년 3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광동제약은 반려동물을 위한 프리미엄 영양제 브랜드 ‘견옥고’를 새롭게 선보였고, 정관장은 홍삼을 함유한 프리미엄 펫푸드 브랜드 ‘지니펫’을 내놨다.
다만 까다로워진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일각에서 제품의 건강 영향상 기능을 부풀려 과대 홍보하는 업체가 늘면서 시장은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펫푸드의 품질과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반면 아직까지 반려동물용 펫푸드에 적합한 관리 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탓이다. 소비자가 알아보기 힘든 원료 명칭 표시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월 ‘40개 규제개선 과제’ 중 하나로 올해 4분기 중 원료 중심의 분류 체계에서 소비 중심의 용도별 목적에 따른 분류 체계를 마련하는 등 펫푸드 표시·광고 규정을 보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반려동물 시장은 펫푸드 외에도 다방면에서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패션뷰티 제품이다.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구찌 매장에는 반려동물을 위한 코너가 마련됐다. 구찌는 6월 반려동물을 위한 60개 이상의 다양한 상품으로 구성된 ‘펫 컬렉션’을 출시했는데, 펫 컬렉션 의류는 30만원대부터 비싼 것은 130만원에 달할 정도로 가격대가 높다.
구찌 펫 하네스는 정가가 73만원에 달한다. 모델 미란다 커가 휴대해 화제가 된 루이비통 도그 캐리어는 436만원이라는 비싼 가격에도 재고가 소진될 만큼 펫팸(반려동물 양육 가족)족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에르메스는 다양한 반려동물 액세서리 제품군을 갖추고 있다. 방수 기능이 있는 패브릭 소재 도그 캐리어를 비롯해 에르메스 특유의 문양이 적용된 반려견 목줄과 목걸이는 각각 100만원대와 80만원대에 판매된다.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반려동물용 고급 의류와 잡화를 판매하는 편집숍 ‘루이독’에서는 아일랜드 리넨 원단으로 만든 반려견용 가방을 38만원, 캐시미어 소재로 만든 의류를 12만원에 판매한다.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 압구점 본점에 입점한 매장은 월 매출이 1억~1억5000만원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다른 현대백화점 입점 매장 매출도 월 매출이 수천만원 수준”이라고 전했다.
반려견과 유모차의 합성어인 ‘개모차’ 세계에서 프리미엄 유모차 브랜드 ‘에어버기’는 벤츠로 통한다. 최고급 유모차 못지않은 내구성과 주행 감각, 편안함을 제공한다. 실제 사용된 프레임은 유모차의 프레임과 동일하다. 유아용 시트 대신 반려견용 바스켓인 돔을 장착한 형태다.
뷰티업계도 프리미엄 펫 전용 상품을 내놓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비건 인증 펫 케어 브랜드 ‘푸푸몬스터’를 출시했다. 반려동물 샴푸, 데오스프레이(탈취제) 등이 대표 제품이다. 푸푸몬스터는 동물복지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반려인들을 고려해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동물원료도 사용하지 않는다. 애경산업과 LG생활건강 역시 지난 2016년 펫 케어 브랜드 ‘휘슬’과 ‘시리우스’를 각각 출시한 바 있다.
반려 인구를 겨냥해 사람과 반려동물이 함께 쓰는 ‘펫테리어(펫+인테리어)’ 가구나 편의성을 높여 주는 전자제품도 속속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반려견이 걸어 올라갈 수 있는 소형 계단(펫스텝)이 딸린 소파나 캣타워와 책장을 일체형으로 만든 가구는 대표적인 펫테리어 제품으로 꼽힌다. 반려동물을 위한 안전기준 역할을 할 수 있는 반려동물제품인증인 ‘PS(Pet Product Safety) 인증’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업계에서는 ‘안티슬립(미끄럼 방지)’ 기능을 적용한 기능성 시트 바닥재도 눈길을 끈다. LX하우시스의 ‘LX Z:IN 지아사랑애’, 알집의 ‘퍼핑 PVC 펫매트’ 등이다. 미끄럼 방지 성능은 일반 마루 대비 1.2~1.3배 높아 반려동물들이 보다 편안하게 보행이 가능하고, 다리가 벌어지거나 밀리지 않아 고관절을 보호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비스포크 큐브에어 펫케어’는 ‘펫 맞춤 청정’ 기능을 통해 반려동물 털·냄새를 제거해주고, 로봇청소기 ‘비스포크 제트 봇 에이아이(AI)’는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반려동물 모니터링 돌봄 기능을 제공한다. 롯데하이마트는 지난해 6월부터 자체브랜드(PB) ‘하이메이드’를 통해 반려견의 발을 세척하고 마사지해주는 ‘펫 풋클리너&마사지기’와 시간과 분량을 설정해 두면 이에 맞춰 자동으로 사료를 공급하는 ‘자동급식기’ 등 펫 가전을 잇달아 내놨다.
우주라컴퍼니는 국내 최초로 반려묘용 스마트 워치 ‘캣모스’를 출시했다. 반려묘의 목에 채우면 스마트폰으로 수면·휴식시간, 이동거리 등 활동량을 원격으로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다. 반려동물 장례 전문업체 ‘21그램’은 개, 고양이, 새, 물고기 등 다양한 반려동물의 맞춤형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장례식뿐 아니라 반려동물의 죽음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상조 서비스 ‘펫 멤버십 서비스’도 운영한다.
송경은 매일경제 컨슈머마켓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