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말 식물성 대체식품 전문 브랜드 ‘베러미트’를 운영하는 신세계푸드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 SSG푸드마켓 지하 1층에 대체식품을 활용한 캐주얼 레스토랑 ‘더 베러 베키아에누보’를 오픈했다. 파스타, 파니니, 샐러드 등에 육류 대신 베러미트 대체육을 접목해 재해석한 메뉴와 100% 식물성 재료로만 만든 메뉴까지 약 20여 종의 웨스턴 스타일 메뉴를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앞서 신세계푸드는 지난해 7~12월 서울 압구정로데오에 국내 최초의 식물성 정육 델리인 ‘더 베러(The Better)’ 팝업스토어(임시운영매장)를 열고 대체육 햄, 미트볼, 다짐육 등 원물과 대체육 샌드위치 등 식물성 대체식품 50여 종을 선보였다. 현재 마트, 온라인, 레스토랑 등에서 식물성 런천 캔햄을 비롯해 샌드위치용 슬라이스 햄(콜드컷)과 미트볼 등 다양한 대체육 제품을 판매 중이다.
신세계푸드는 식물성 런천 캔햄을 출시하면서 자사의 기존 캔햄 제품을 단종시켜 화제를 모았다. 신세계푸드 관계자는 “베러미트 식물성 런천 캔햄은 대두단백, 식이섬유 등 100% 식물성 재료로 만들어져 동물성 지방, 콜레스테롤이 없고 가공육 제조과정에서 고기 특유의 붉은색을 내기 위한 발색제와 유통기간을 늘리기 위해 보존제로 쓰이는 아질산나트륨 등에 대한 걱정 없이 즐길 수 있는 대체육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전국 이마트 내 E베이커리, 블랑제리 등 베이커리 매장에서 판매해온 ‘베러미트 토스트’는 출시 3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8만 개를 돌파하기도 했다. 올해 2월에는 버거에 들어가는 육류 패티 대신 식물성 패티를 넣은 ‘베러미트 버거’를 출시했고 오는 4월에는 버거 프랜차이즈 노브랜드버거에서 버거 번, 치즈, 패티에 이르는 모든 식재료를 100% 식물성으로 대체한 버거 메뉴를 출시할 계획이다.
대체육은 축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량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기후변화 위기 속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축산업 부문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양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5%에 달한다. 동물복지를 넘어 기후변화 등 환경과 건강을 생각해 채식을 선호하는 ‘플렉시테리언(플렉서블+베지테리언)’이 늘면서 대체육을 비롯한 대체식품 시장은 날로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대체육을 포함한 전 세계 식물성 식품 시장이 2020년 294억달러에서 2030년 1620억달러(약 214조원)까지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같은 기간 대체육 시장도 40억달러(약 5조3000억원)에서 740억달러(약 98조5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 분석 기업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대체육 시장 규모는 60억3600만달러로 예상된다. 나아가 2040년에는 대체육, 배양육(동물세포를 배양해 만든 고기)과 같은 인공고기가 전 세계 육류(고기+인공고기)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해 그 규모가 기존 육류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IT (정보기술) 박람회인 ‘세계전자제품박람회(CES)’가 지난해 푸드테크를 5대 트렌드 중 하나로 꼽으면서 대체식품이 세간의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가축을 기르거나 생선을 어획하지 않아도 되고, 환경 영향이 적은 식물성 식재료 등을 이용해 만드는 대체육과 대체계란, 대체생선, 대체우유 등 다양한 대체식품이 속속 시장에 나오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이제 대체식품은 카페, 레스토랑, 구내식당, 편의점, 마트, 백화점 등 일상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일례로 서울시청 구내식당에는 한 달에 한 번 ‘고기 없는 날’이 찾아온다. 지난해 4월부터 고기 대신 대체육(육류의 풍미와 식감 등을 모사한 식물성 단백질)을 활용한 메뉴를 제공해오고 있다.
커피전문점 투썸플레이스는 대체육을 사용해 만든 샌드위치를 잇달아 선보였다. 지난해 2월 출시한 ‘콤비네이션 샌드위치’ ‘트러플 머쉬룸 치즈 파니니’ 등이다. 콤비네이션 샌드위치는 바비큐 소스, 올리브, 청피망, 옥수수와 함께 식물성 단백질(대체육) 토핑이 들어가 있다. 매장에서 만난 서울 중구의 30대 직장인 A씨는 “대체육이 들어 있는지 모르고 먹었는데 특별히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타벅스가 신세계푸드와 함께 2021년 출시한 ‘플랜트 햄&루꼴라 샌드위치’ ‘플랜트 함박&파스타 밀 박스’ ‘헤이즐넛 브라우니’ ‘밤콩달콩 두유 브레드’ 등 4종도 지난해까지 매장에서 누적 판매량 80만 개를 기록했다. 현재 스타벅스에서는 우유가 들어간 제조음료를 주문할 때 퍼스널 옵션으로 대체우유인 오트유를 선택할 수 있다. 매일유업이 운영하는 커피전문점 폴바셋 역시 자사의 오트유 ‘어메이징 오트’를 활용한 카페라떼, 카푸치노 등의 고객 선택 메뉴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푸드테크 기업 저스트가 녹두 등 식물성 재료를 기반으로 개발한 대체계란 ‘저스트 에그’의 독점 생산·판매권을 가진 SPC삼립은 지난해 4월 국내 시장에 저스트 에그를 출시했다. 현재 SPC그룹의 베이커리 파리바게뜨, 파리크라상과 샐러드 카페 피그인더가든 등 일반 매장에서도 대체계란 샌드위치·샐러드 등을 판매하고 있다. 대체계란은 무리하게 닭을 키우고 산란시킬 필요 없어 동물복지나 환경에도 좋지만, 일반 계란과 비교해 콜레스테롤이 없고 포화지방이 낮아 건강한 음식을 찾는 소비자들에게도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신세계푸드 외에도 대체육 등 대체식품 제조기술을 확보한 다양한 국내 식품회사들이 전문 브랜드를 통해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식물성 대체식품 브랜드 ‘플랜테이블(PlanTable)’을 출시한 CJ제일제당은 한식 브랜드 ‘비비고’ 제품에 식물성 대체육을 적용한 만두, 함박스테이크, 떡갈비, 주먹밥 등으로 출시 10개월 만에 누적 판매 300만 개(지난해 11월 말 기준)를 돌파했다. 현재 ‘비비고 플랜테이블 왕교자’ 등 제품은 독일, 영국 등 유럽과 인도, 아프리카까지 30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플랜테이블 제품 구매자 중 여성과 30~40대 비중이 각각 70%에 달했고, 30대 비중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소셜미디어(SNS)에서는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다” “고기 없이도 고기 맛과 식감을 즐길 수 있어 놀랍다” “콜레스테롤, 트랜스지방이 없어 건강에도 좋을 것 같다” 등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풀무원도 지난해 8월 지속가능식품 브랜드 ‘식물성 지구식단’을 출시하고 식물성 대체육으로 만든 ‘라이크(LIKE) 텐더(닭고기 대체육)’ ‘숯불직화불고기’ ‘철판제육볶음밥’ 등을 선보였다. 풀무원은 지난해 5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 지하 1층에 비건 레스토랑 ‘플랜튜드’ 1호점을 열었고, 이어 올해 3월에는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에 플랜튜드 2호점을 오픈한다. 식물성 대체육이 들어간 ‘플랜트 소이불고기 덮밥’을 비롯한 다양한 식물성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풀무원에 따르면 플랜튜드 1호점은 오픈 약 7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기준 누적 방문객이 5만 명을 넘어섰다.
식물성 전문 브랜드 ‘베지가든(Veggie garden)’을 출시한 농심도 실제 고기와 유사한 맛과 식감은 물론 풍부한 육즙까지 구현한 대체육 제조기술을 바탕으로 대체육으로 만든 떡갈비, 함박스테이크, 탕수육, 만두, 불고기 볶음밥 등 다양한 간편식 제품을 내놨다. 2018년부터 미국 비욘드미트 대체육 제품을 국내에 수입·공급해온 동원F&B는 식물성 대체식품 열풍에 힘입어 자체 개발한 대체참치 제품의 정식 출시를 준비 중이다.
대체생선은 국내에서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보편화하고 있다. 생선 등 해산물 섭취 시 우려하는 중금속, 미세플라스틱 등 유해물질에 대한 걱정이 없어 건강식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세계 2위 식품 기업인 미국의 육류 기업 타이슨푸드는 2019년 식물성 새우 제조업체 뉴웨이브푸드에 투자했고, 스위스 식품 기업 네슬레는 2020년 식물성 참치 ‘부나(Vuna)’를 출시했다. 스페인의 스타트업 미믹씨푸드는 토마토와 해조류 추출물 등을 이용해 대체참치회 ‘튜나토(Tunato)’를 만들었다. 또 프랑스 식품 기업 오돈텔라는 해조류와 완두콩 단백질을 원료로 오메가3가 풍부한 훈제 연어 ‘솔몬(Solmon)’을 선보이기도 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투자도 활발하다. SK는 미국 푸드테크 스타트업 ‘퍼펙트데이’에만 11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퍼펙트데이는 우유에서 추출해 얻은 발효 유단백질로 대체우유, 아이스크림 등을 생산하는 유니콘 기업이다. SK는 퍼펙트데이, 매일유업과 함께 합작사를 설립해 지속가능한 인공우유 제품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대체식품 메뉴를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롯데는 롯데정밀화학을 통해 육류의 식감과 향을 내는 첨가제인 ‘메틸셀룰로오스’ 개발 등에 약 2000억원을 투자한 바 있다. 식물성 단백질은 점성이 부족해 고기와 비슷한 식감을 내기 위해서는 메틸셀룰로오스가 많이 사용된다. 2021년에는 프랑스 스타트업 ‘인섹트(Ynsect)’와 상호협력의향서(LOI)를 맺고 곤충 단백질 활용 제품 개발에도 나섰다. 식용 곤충은 단백질·무기질 등 영양분이 풍부할 뿐 아니라 소나 돼지 같은 가축보다 사육 과정에서 온실가스 등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적어 지속 가능한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다. 한화그룹도 한화솔루션을 통해 2021년 돼지고기 배양육을 개발하는 미국 스타트업 ‘뉴에이지미츠’에 투자한 데 이어 지난해 대체육 스타트업 ‘핀레스푸드’에 수백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배양육 등 신기술을 적용해 만든 원료도 식품 원료로 인정하는 내용의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연내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 머지않아 식물성 대체육을 넘어 배양육 제품들도 시장에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돼지·닭 등 동물의 세포를 배양해 만든 고기인 배양육은 소량의 동물세포만 채취하면 되기 때문에 동물을 도살할 필요가 없고 축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량의 탄소를 감축할 수 있다.
세계 최초로 배양육 제품에 판매 승인을 한 국가는 싱가포르다. 2020년 12월 싱가포르 정부 당국은 미국의 배양육 스타트업 잇저스트의 배양 닭고기 판매를 허용했다. 잇저스트는 배양육 브랜드 굿미트를 통해 싱가포르 현지 생산업체와 손잡고 세포배양 닭고기로 만든 치킨너깃 등을 시장에 선보였다.
미국은 201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세포배양 식품의 제조·판매 허가를 위한 시스템을 법제화했지만 시장에 나온 배양육 제품은 아직 없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대안식품 스타트업 업사이드푸드의 세포배양 닭고기가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FDA의 시판 전 안전성 검사를 통과했다. FDA는 세포의 채취·저장·이동·배양과 식품원료 생산에 이르는 전 단계에서 안전성을 검증하고 있다. 안전성 검사는 판매 승인 전 단계에 해당한다.
세포배양 닭고기는 단백질 함량이 일반 닭고기보다 높고 건강에 좋은 다양한 종류의 아미노산과 단일 불포화 지방, 풍부한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생과 신선도에 영향을 주는 미생물 함량도 일반 닭고기보다 매우 낮다. 잇저스트 측은 “배양육은 영양성분도 맞춤형으로 제조 가능하다는 게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배양육의 경우 국내에서는 CJ제일제당, 대상, 풀무원 등이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2020년부터 배양육 연구에 뛰어든 CJ제일제당은 지난해 2월 국내 최대 규모의 세포 배양배지 생산기업인 케이셀 바이오사이언스와 손잡고 배양육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스라엘 알레프팜, 싱가포르 시오크미트 등 배양육 관련 기술을 보유한 해외 스타트업에도 투자한 바 있다.
대상도 지난 2021년 무혈청 배지 제조기술을 보유한 엑셀세라퓨틱스 등과 함께 배양육 개발에 돌입했다. 배양육 배지의 제조 원가를 낮추고 안정성을 확보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같은 해 8월에는 국내 최초로 배양돈육 시제품을 개발한 스페이스에프와 배양육·세포 배양용 배지사업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하고 2025년까지 배양육 양산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풀무원은 생선 세포를 활용한 배양육을 개발 중이다. 다만 고물가 시대 낮은 가격 경쟁력은 대체식품 성장의 걸림돌로 꼽힌다. 당장은 개발, 투자 비용 탓에 고가로 책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체식품 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가축보다 콩에서 얻고 실험실에서 3D 프린팅 제조가 가능해지는 등 대체식품의 생산 비용이 지금보다 크게 절감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향후에는 일반 육류나 생선 같은 기존 식품보다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경은 매일경제 컨슈머마켓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