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국내 전기차(BEV·순수전기차) 시장 규모가 30만 대에 육박했다. 국토교통부 통계누리에 따르면 올 상반기 누적 전기차 등록 대수는 29만8633대로 집계됐다. 전기차 시장이 태동한 2012년 860대를 기록했던 보급 대수는 2018년 5만 대를 돌파했고, 2020년 13만4952대로 10만 대를 넘어섰다. 지난해엔 23만1443대를 기록하며 누적 20만 대를 돌파했다. 국내 전기차 시장은 올 상반기에만 지난해 누적 대수를 넘어서며 급격한 증가세를 기록 중이다.
BYD는 최근 일본에서 주요 승용 제품을 전시하고 2023년 일본 진출 계획을 밝혔다.
BYD가 일본에 출시할 제품은 중형 SUV 아토3와 소형 해치백 돌핀, 준중형 세단 ‘실 ’이다. <사진 연합뉴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누적 등록 상위 모델은 현대차의 ‘아이오닉5(3만6740대)’와 ‘포터2(3만3934대)’ ‘코나 일렉트릭(3만2341대)’, 테슬라의 ‘모델3(2만6143대)’, 기아의 ‘봉고3(2만3404대)’가 차지했다. 테슬라를 제외하면 현대차와 기아가 국내 전기차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산 완성차 브랜드의 한 임원은 “최근 국산, 수입 가릴 것 없이 전기차 신차가 연이어 출시되며 분위기를 띄웠고, 충전소 등 인프라 구축과 정부의 보조금 지원이 성장을 견인했다”며 “아직은 국산 브랜드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유럽 차들의 공세, 중국산 전기차의 국내 진출이 이어지면 경쟁구도가 복잡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국내 전기차 시장은 하이엔드급은 유럽 브랜드가, 중간급은 국산 브랜드가 선점했다. 업계에선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 브랜드의 국내 진출이 이어지면 엔트리급부터 중간급까지 범위를 넓힐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와 전기차 전문 브랜드가 한국 시장을 주목하는 이유는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앞서 나열한 눈에 띄는 성장세 때문이다. 판매량 기준으로 국내 전기차 시장은 세계 1~2위 수준이다. 지난해 전기차 신규 등록 대수가 10만 대 이상인 국가는 한국과 노르웨이뿐이었다. 둘째, 안정적인 충전 인프라 구축이 강점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기기 1대당 차량 2.6대(상용차 제외)로 집계됐다. 글로벌 평균치는 9.5대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신규 브랜드도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장 상황이 꼽힌다. 현대차와 기아, 테슬라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강자가 없다는 것이다.
벤츠, BMW, 아우디 등 독일 3사의 국내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1%가 되지 않는다. 지난해 한국법인을 설립하고 올해 폴스타2를 출시한 스웨덴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의 성공은 이러한 시장상황을 방증하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 7월까지 폴스타의 누적 판매량은 1347대에 이른다. 현재 판매 추세를 감안하면 폴스타의 올 판매목표(3000~3500대)를 충분히 달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시화되고 있는 중국 전기차의 국내 진출
국내 자동차 업계의 관심은 역시 중국 브랜드의 한국 진출이다. 특히 중국의 전기차 전문 기업 비야디(BYD)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BYD는 올 6월 한 달간 글로벌 시장에서 13만4771대를 판매하며 월 판매 신기록을 세웠다. 올 상반기 판매량은 64만1350대나 된다. 테슬라의 올 상반기 판매량은 56만4743대. 수치상으로 테슬라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BYD의 가장 든든한 뒷배는 중국 내수 시장이다. 전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자 전기차 시장이다. 지난해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 7980만 대 중 32.9%(2624만 대)가 중국에서 팔렸다. 중국 정부가 전기차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것도 BYD 고속성장의 방점 중 하나다. 중국의 전기차 비중은 10.4%로 친환경차로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고 있는 유럽(8.3%)보다 높다. 한국은 5.9%에 불과하다.
‘Build Your Dreams’의 이니셜을 조합한 BYD는 1995년 배터리 제조사로 전기차 업계에 진출했다. 2003년 중국 국영 자동차 업체를 인수하며 직접 전기차 시장에 발을 들였고 2008년 하이브리드차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당시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지분 10%를 사들이며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업계에선 BYD가 배터리를 생산하는 전기차 기업이란 점을 강점으로 꼽는다. 워런 버핏이 투자한 이유이기도 하다. 강남 지역의 한 수입차 딜러는 “전기차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알다시피 배터리”라며 “차 값의 30~40%를 차지하는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면 당연히 가격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어 판매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21 상하이 국제 모터쇼의 현대자동차·기아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전시 차량과 전시물을 구경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BYD는 지난 7월 서울역 인근에 사무실을 내고 한국 진출 채비를 갖추고 있다. 그동안 국내 시장에선 전기버스와 지게차 등 상용차만 판매해왔는데, 최근 국토교통부의 승용차 인증 업무와 승용차 AS, 홍보 담당 인력을 채용하고 업무를 준비 중이다. 정확한 진출 시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선 내년을 한국 상륙 시점으로 보고 있다. BYD가 국내에 ‘실(Seal)’ 등 자사 전기차 6종에 대한 상표권을 출원한 것도 이러한 예상을 뒷받침하고 있다. BYD는 최근 국내에 실, 돌핀(Dolphin), 아토(Atto), 카르페(Carpe), 파리(Fari), 헤일로(Halo) 등에 대한 상표를 출원했다. 국내 진출을 앞두고 상표권 분쟁을 피하기 위한 수순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BYD는 지난 7월 21일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회사 BYD오토재팬 설립과 함께 전기 승용차 3종을 일본 시장에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내년 1월 소형 전기SUV ‘아토3(ATTO 3)’를 시작으로 하반기 콤팩트EV ‘돌핀’과 신형 전기세단 ‘실’ 등을 투입할 계획이다. 가장 최근 출시한 세단 실은 BYD가 테슬라의 모델3를 겨냥해 내놓은 신차다. 배터리셀을 하나의 배터리팩으로 만들지 않고 차체 곳곳에 채워 넣은 ‘셀 투 보디(CTB·Cell to Body)’ 기술을 처음 적용한 전기차다. 최고출력이 530마력, 제로백은 3.8초에 불과하다. 1회 충전 시 최대 주행거리가 무려 550~700㎞에 이른다. 그럼에도 중국 내 가격은 22만~29만위안(약 4300만~5600만원)에 불과하다. 실은 국내 시장에 첫 진출하는 BYD 차량이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BYD 전기차 ‘실(SEAL)’
그럼 과연 중국 전기차의 기술력(품질)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앞서 나열한 시장 점유율 등 외형상으로 중국의 전기차는 이미 전 세계 톱클래스 수준이다. 지난해 수출물량도 50만 대나 된다. 이 중 23만여 대는 전기차 시장을 이끌고 있는 유럽으로 선적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아직은 내실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유럽으로 수출된 중국산 전기차가 대부분 테슬라나 폴스타 등 중국 내 공장에서 생산된 브랜드란 것이다. 전 세계 시장에 각인된 인기모델이 없는 것도 한계점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국내 수입차 딜러사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의 ‘아이오닉5’, 기아의 ‘EV6’처럼 대표 전기차가 없다는 게 중국 브랜드의 숙제”라며 “중국 내수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모델이 세계 시장에선 맥을 못 추는 건 품질과 신뢰도, 인지도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산 대비 절반 가격이면 글쎄…
그렇다면 중국 전기차의 국내 진출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은 어떨까. 시장 조사 업체 컨슈머인사이트가 발표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향후 2년 이내 차량을 구입하려는 응답자의 2102명 중 1286명(61.2%)이 국산차 대비 50% 이상 저렴하다면 중국산 전기차 구입을 고려할 것이라고 답했다. 구입 여부를 고려한 국산차 대비 가격 비율은 ‘50~60% 수준’이 30.4%(약 639명), ‘70~80% 수준’이 24.3%(약 510명), ‘90~100% 수준’이 6.5%(약 136명)로 집계됐다. 나머지 38.8%(약 815명)의 응답자는 ‘아무리 저렴해도 구매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컨슈머인사이트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거부 반응이 상당히 높지만 그것은 현재 상황일 뿐”이라며 “가격뿐 아니라 상품, 브랜드에서도 다양한 전략적 옵션을 갖고 있는 중국산 전기차가 전기버스 등 중국산이 약진한 상용 전기차 시장의 경우를 재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Interview|김필수 한국전기차협회 회장
韓 전기버스 시장 과반이 중국산… 품질 강화·정부 다각도 지원 시급
중국 전기차 브랜드의 국내 시장 진출과 관련해 김필수 한국전기차협회 회장(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미 버스는 과반이고 상용차는 1위를 차지한 모델도 있다”며 “국산차 브랜드들이 품질 격차를 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기차 보조금 등 정부의 지원 정책과 방향도 다각도로 논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산 전기버스.
◆최근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BYD를 비롯해 다양한 전기차 수입이 예고되고 있어요. 내년부터 본격화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국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파급력이 굉장할 겁니다.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국가브랜드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서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지만 중국산 브랜드의 수준은 빠르게 높아졌어요. 국산 전기차에 비해 40~50%가량 저렴한 가격도 전혀 무시할 수 없는 무기입니다.
◆가성비가 높다?
◇가성비죠. 일단 싸고 품질도 상당히 진보했어요. ‘처음엔 중국산을 어떻게…’라고 말끝을 흐리다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할 거예요. 이미 국내 전기버스 시장은 중국산이 과반을 넘겼습니다. 수백 대 이상의 중국산 전기차가 운행되고 있어요.
◆중국의 전기차가 한국 시장을 넘보는 가장 큰 이유라면.
◇우선 중국과 한국은 거리가 가깝습니다. 여기에 문화수준과 제품경쟁력이 높아요. 소비자가 요구하는 수준도 높을 수밖에 없어요. 세계 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테스트베드로 이만 한 곳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성공하면 유럽 등 전 세계 어딜 가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는 것이죠. 일종의 기준점이 될 수 있습니다.
◆중국 전기차의 기술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중국은 우리보다 먼저 전기차 개발을 시작했어요. 수준이 상당히 높죠. 또 내수 시장이 워낙 넓다보니 전기차를 생산하는 제조사도 많습니다. 여기에 가격경쟁력까지 확실하니 결코 얕볼 상대가 아닙니다.
<사진 매경DB>
◆국산 완성차 기업 입장에선 어떤 대응이 효과적일까요.
◇일단 품질 면에서 확실한 차별화 전략을 가져가야 합니다. 가격은 중국산을 따라갈 수 없지만 품질 면에서 앞선다는 걸 강조해야죠. 미국이나 중국은 전기차 보조금 관련, 노골적으로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어요. 우리도 나름의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국산과 수입차의 전기차보조금에 차등을 둬야 한다?
◇아니죠. 이미 생산된 전기차의 보조금에 차등을 두는 건 FTA 등에 위배되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의 R&D 단계에 정부가 미리 자금을 투입해 품질 개선에 일조하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니 전기버스의 경우 중국산의 점유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중국산 전기버스가 우리의 보조금 혜택을 온전히 누리고 있는 셈이죠. 전기차보조금은 국민의 세금이에요. 이럴 바엔 비용이 더 들더라도 수소버스로 교체하는 게 맞습니다. 수소버스는 아직 중국이 따라오기 힘들거든요. 전기차 시장과 보조금 등의 문제엔 정답이 없습니다.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우리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