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Post’를 ‘after’의 의미로 해석하여 모더니즘 이후에 나타난 다양한 경향들을 지칭하는 시각과, ‘anti’의 의미로 해석하여 모더니즘에 대한 저항적인 경향들을 지칭하는 시각으로 구분된다. 모더니즘의 한계를 ‘초월’하기 위한 모든 경향들을 말하는 시각도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어 그 자체에서 보듯 모더니즘을 전제로 하고 있다.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으로 본격화된 모더니즘은 전근대사회의 권력이었던 교회, 왕, 귀족 중심의 권위와 봉건성을 비판하고, 이를 개혁하기 위해 인간의 이성, 과학을 중시하면서 근대화를 지향했다. 모더니즘 건축 또한 권력과 권위주의의 상징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전통적인 건축과의 단절을 꾀하고, 이성과 합리성에 근거하여 새로운 근대 건축을 지향했다.
▶모더니즘 건축의 한계극복을 위한 대안
모더니즘 건축은 형태적인 측면에서 장식이 배제된 직선, 수직·수평의 직교체계, 사각형으로 대변되는 단순하고 심플한 형태가 주를 이뤘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생산기술의 발달에 따라 구조 성능이 향상된 철과 유리 등 새로운 건축재료가 등장했다. 이를 통해 구조, 공법, 디자인 등 건축의 전반적인 분야에서 기존 건축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건축의 확장이 가능하게 됐다. 공장 생산을 통한 건축자재의 대량생산은 저렴한 공사비로 단기간에 대규모, 대단지, 고층의 건축을 가능하게 했다.
산업화는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과밀을 유발했고 주택부족 문제와 주거환경의 질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모더니즘 건축가들은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대규모 주택단지와 산업도시의 미래를 제시했다.
하지만 기능중심주의의 이상적인 건축을 추구한 모더니즘 건축은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소수 엘리트 건축가들만의 취향에 머무는 한계를 노출했다. 감성적 장식요소들의 철저한 배제 원칙과, 이를 통한 직선과 박스로 대변되는 단순한 형태 추구는 건축가들의 다양한 표현 의지를 차단함으로써 건축물과 도시는 전통적 도시환경을 무시하고 획일화되고, 상상력의 상실을 초래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처럼 모더니즘 건축이 많은 문제와 한계를 노출하자, 건축가들은 새로운 건축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은 건축의 다양한 가능성을 찾아내어 이를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형태를 구성하고자 했다. 또한 모더니즘 건축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던 지역적·역사적 장식들을 건축 디자인에 다시 적용하고, 건축의 상징성·장식성·대중성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판스워스주택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자 필립 존슨
필립 존슨(Philip Johnson, 미국, 1906~2005)은 모더니즘 건축의 전성기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시작의 중심에서 상징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함으로써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최초로 수상한 20세기 대표 건축가다. 그는 대표적인 모더니즘 건축가인 미스 반데어로에와의 만남 이후 30세가 넘어서 하버드 건축대학원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건축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모더니즘 건축의 대표 건축물로 불리는 뉴욕의 시그램 빌딩을 미스 반데어로에와 함께 설계했다. 그러나 모더니즘 건축의 한계에 봉착한 이후, 1980년대엔 마이클 그레이브스 등과 함께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에 참여했고, 1984년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념비적 건축물로 불리는 뉴욕의 AT&T 사옥 설계를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변신했다.
AT&T 빌딩은 최상부에 삼각형 형태의 고전적 파사드와 저층부의 아치형 입구, 로비에 거대한 고대 기둥 양식이 적극적으로 적용되었다. 또한 모더니즘 건축이 철저하게 배제하고자 했던 과거의 전통양식, 기능과 상관없는 순수한 의장적인 측면에서의 장식이 건축 디자인에 적용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자로 평가 받는다.
1990년대 초 MOMA에서 해체주의 건축가 5인(프랭크게리, 피터 아이젠만, 자하하디드, 다니엘리베스킨드, 렘쿨하스)을 초대하여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새로운 한 축으로 해석할 수 있는 해체주의 건축을 세상에 널리 알림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이후 현대건축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역사성과 장식성의 회복
유니테 다비타시옹, 댄싱 빌딩
▶마이클 그레이브스
1982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완공된 포틀랜드 공공사업국 건물(Portland Public Service Building)은 마이클그레이브스를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으로 불리게 만든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건축물로 평가 받는다. 마이클 그레이브스는 이 건물에 다양한 색채와 질감, 장식 등 사용자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일체의 장식을 배제한 모더니즘 건축의 단순화를 벗어나고자 하였다. 건물은 기본적으로는 사각형의 형태지만 4면은 획일적으로 통일되지 않고 다양한 색과 장식을 적용하여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건물은 수직적으로 기단·몸통·주두로 구성하여 고전적인 3분할의 형태를 취하고, 마치 신전을 연상시키는 수직 기둥을 전면에 과감하게 적용하는 등 과거 고전주의적인 요소와 다양한 장식적 요소를 혼합하여 차용하였다. 이 건물은 고전적 모티브가 대규모의 도시 건물에 사용된 대표적 포스트모더니즘 건축물로 평가 받는다.
▶지역적 정서와 감성의 강조 마리오 보타
강남 교보타워와 삼성미술관 리움을 설계한 마리오 보타(Mario Botta)는 스위스의 대표적 건축가이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에서 역사성과 함께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다른 한 축인 지역성·장소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건축물이 위치하는 그 지역에서 많이 나오는 돌이나 흙 같은 자연소재의 벽돌과 테라코타 등을 주재료로 활용하여 그 지역의 전통적인 것을 현대적 건축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다. 마리오 보타가 설계하여 2004년 준공한 한남동에 위치한 삼성미술관 리움의 미술관 1은 도자기와 성곽을 형상화하고 그 외벽 전체를 테라코타 벽돌을 사용하여 한국의 지역적 정서과 감성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자 하였다.
구겐하임 미술관
▶건축의 모든 전제를 해체하다 프랭크 게리
해체주의를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한 부류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모더니즘 건축이 절대적으로 추구했던 건축의 기능을 비롯한 건축자체의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개념, 모든 전제를 거부하고 해체함으로써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과 개방성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후기의 한 부류로 보기도 한다.
해체주의 대표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을 보면 모더니즘 건축이 추구했던 엄격한 수직·수평의 입방체 틀을 완전히 해체하여 모더니즘 건축에서는 볼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건축형태와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해체주의 건축은 단순히 건축의 형태만 해체한 것이 아니고, 건축의 가장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기존의 기본 전제들과 개념들을 해체함으로써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과 패러다임을 제공했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한계와 기여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은 모더니즘 건축의 문제와 한계에 대한 비판을 전제로 순식간에 대중의 큰 지지를 얻으며 1980년대 건축계를 강타했으나, 이후 그 지속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마치 지나가는 유행처럼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역사와 지역성, 기술과 예술성 등 다양한 요소들을 활용한 실험정신으로 모더니즘 건축에 갇혀있던 건축의 다양한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건축을 더욱 풍요롭게 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점차 건축의 본질과 내용에 대한 고뇌는 결여된 채 건축물의 형태와 외관에만 치중하는 미학적 쾌락주의와 급진적 절충주의로 변질됐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이 표방한 역사성 회복은 개별 지역의 독특한 역사적 맥락과 대중의 정서를 무시한 채 유럽 고전건축의 장식적인 요소들을 무분별하게 차용함으로써 오히려 지역적 역사성을 왜곡하였다. 결과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은 모더니즘 건축의 문제와 한계에 대한 다양한 시도로써의 가치는 있었으나, 궁극적으로 모더니즘이 고민하고 추구했던 건축의 본질,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건축적 해결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모더니즘 건축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건축으로 확고한 자리를 잡지 못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은 건축계에서 빠르게 그 힘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현재의 건축은 이러한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해결하기 위한 건축적인 시도와 실패를 경험했기에 점점 더 발전하였고, 결국 지금의 위치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