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는 시각을 알려주거나 시간을 재는 기계다. 인류 문명의 중요한 이기(利器)이자 보물이다. 우리말로는 흔히 시계라 부르지만 사실 작동원리나 위치에 따라 해시계(Sun Dial), 물시계(Water Clock, Clepsydra), 벽시계(Clock), 모래시계(Hourglass), 회중시계(Pocket Watch), 손목시계(Wrist Watch)까지 나름의 이름이 갖가지다. 여기에 2000년대를 살고 있는 인류가 또 하나의 이름을 추가했다. 스마트워치가 그 주인공이다.
▶전년 대비 가입자 270% 증가
고급시계 대신 스마트워치
이른바 똑똑한 시계, 스마트워치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지난 5월 시장조사기관 IDC는 보고서를 통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전 세계 스마트워치 시장이 연평균 31%씩 성장할 거라고 예측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올해 운영체제별 스마트워치 시장의 점유율은 워치OS가 1400만 대, 안드로이드 웨어가 610만 대, RTOS 140만 대, 타이젠 320만 대, 안드로이드 100만 대, 리눅스 60만 대, 페블OS 20만 대 등 총 2830만 대에 이르렀다. IDC는 올해 스마트워치와 피트니스 밴드 등 전체 웨어러블 시장이 1억대 규모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 보고서가 현실화된다면 스마트워치는 전체 웨어러블 시장의 약 30%를 차지하는 무시할 수 없는 제품군이 되는 것이다.
국내 시장의 분위기는 이보다 훨씬 뜨겁다. 올 3분기까지 스마트워치 판매 증가율을 살펴보면 지난해 8월까지 27만3560명, 올 8월까지 72만9590명으로 전년 대비 가입자가 약 270%(통신향 웨어러블 단말기, 미래부 가입자 통계 기준)나 늘었다. 업계에선 30~40대의 구입 비중이 약 50%, 그중 남성이 70% 이상일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스마트워치 라인업을 출시한 삼성전자의 기어 S시리즈가 누적 기준으로 판매량이 가장 높고, 루나 워치가 출시되며 스마트워치 시장의 확대를 이끌었다”며 “기어S3와 애플워치2가 충돌하는 올 11월이 스마트워치 시장의 정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시 불붙은 스마트워치 대전
사실 국내시장의 관심은 지난 10월 21일 이통 3사를 통해 출시된 ‘애플워치2’와 11월에 출시가 예고된 ‘갤럭시 기어S3(이하 기어S3)’의 대결에 이미 집중돼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올 2·4분기 기준 전 세계 스마트워치 시장점유율은 애플이 47%, 삼성전자는 16%였다. 수치만 놓고 보면 이미 승패가 결정된 싸움이지만 지난해 점유율과 비교하면 애플(72%)은 곤두박질쳤고 삼성(7%)은 껑충 올라섰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삼성전자는 SK텔레콤에서만 기어S2를 판매했지만, 올해는 이통 3사가 모두 판매에 나선다”며 “여기에 갤럭시 노트7의 단종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스마트워치 대전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라고 전했다.
올 2분기 전 세계에서 160만 대가 팔려나간 애플워치는 다양한 콘텐츠로 1위 수성을 노리고 있다. 지난 9월 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빌 그레이엄 시빅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신제품 공개행사에 ‘포켓몬 고’의 개발사 나이앤틱의 존 행키 CEO가 등장한 것도 이러한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현장에서 “애플워치용 포켓몬 고 앱을 내 놓겠다”며 “그동안 포켓몬을 잡기 위해 휴대폰만 바라보는 보행자들의 안전문제가 논란이 됐지만 애플워치용 앱을 쓰면 유저들이 주변 환경을 돌아보며 게임을 즐길 수 있다”고 밝혀 마니아들의 함성을 이끌어냈다.
애플워치2는 손목에 착용하고 수영이 가능한 50m 방수 기능과 아이폰이 없어도 운동하며 사용할 수 있는 내장 GPS 등 피크니스와 건강 기능을 갖추고 있다.
터치의 강약을 인식할 수 있는 ‘포스터치’, 최고 50%나 속도가 빨라진 듀얼 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했고, 새로운 그래픽처리장치(GPU)로 그래픽 성능이 2배 향상됐다. 디스플레이도 2배 더 밝아졌다. 제프 윌리엄스 애플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피트니스와 건강 기능이 강력해졌다”며 “새로워진 듀얼 코어 프로세서와 50m 방수 기능, 내장 GPS까지 애플워치2는 보다 건강한 삶을 위한 기능으로 가득 차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피트니스와 건강 기능이 눈에 띄게 확장됐다. 수영을 즐기는 이들을 위해 수영장과 바다 수영 등 두 개의 운동 옵션을 추가했고, 레인 왕복 횟수와 평균 속도를 추적해 정확한 칼로리 소비량을 측정한다. 야외 운동에 나서면 아이폰이 없어도 정확한 거리와 보폭, 속도를 기록한다. 운동이 끝나면 아이폰의 활동 앱을 통해 속도 변화가 기록된 운동 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Hermes)와 협업한 ‘애플워치 에르메스’는 에르메스 모델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에 수공예 가죽밴드가 더해졌다. 애플의 최고 디자인 책임자 조나단 아이브는 에르메스와의 협업에 대해 “우리는 늘 디자인을 진화시키고 개선시키기 위해 전념한다는 공통점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38㎜와 42㎜, 두 가지 케이스 사이즈로 출시된 애플워치2는 골드, 로즈 골드, 실버, 스페이스 그레이 알루미늄 또는 실버, 스페이스 블랙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중 선택할 수 있고, 다양한 밴드가 제공된다. 애플워치2의 가격은 45만9000원부터 시작하며, 애플워치 에르메스이 가격은 149만9000원부터 시작한다.
▶전통시계의 디자인과 웨어러블의 결합, 삼성전자 기어S3
올 8월 말 독일 IFA2016에서 공개된 삼성전자의 ‘기어S3’는 11월 초 국내 출시가 예상된다. IFA2016 현장에서 전문가들로부터 “이전 모델보다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얻는 기어S3는 전통적인 시계 디자인을 최대한 살렸고, 그동안 스마트워치의 최대 단점으로 꼽혔던 배터리 수명을 최장 4일로 연장해 주목받았다. 야외 활동과 활동적인 라이프 스타일에 적합한 ‘프론티어’와 럭셔리한 시계 타입의 ‘클래식’ 등 두 가지 모델로 출시되며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를 적용했다.
사용성 면에선 GPS, 내장 스피커, 고도·기압, 속도계 등 스마트폰 없이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이 대거 탑재됐다. 특히 프론티어 모델은 스마트폰 없이 통화가 가능한 LTE 버전을 별도로 선보일 예정이다. 이영희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부사장은 “삼성전자는 기어S3에 오랜 세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왔던 진정한 시계다움을 담으려고 노력했다”며 “첨단 기능의 스마트워치이면서도 시계 본연의 디자인과 감성을 담은 만큼 많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어S3는 코닝의 최신 웨어러블 전용 글래스 ‘Gorilla GlassⓇ SR+’를 최초로 탑재해 스크래치에 강하고 선명한 디스플레이를 완성했다. 여기에 ‘올웨이즈 온 디스플레이’를 적용해 언제든지 1600만 개의 컬러를 지원하는 슈퍼 아몰레드 디스플레이로 시계 화면을 볼 수 있다. 명품 시계처럼 원형 휠의 눈금을 레이저로 정교하게 새긴 기어S3 클래식은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버튼을 사용했고 가죽의 질감을 살린 시계 줄을 적용했다.
기능적인 부분을 좀 더 살펴보면 원형 디스플레이에 직접 문자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메시지를 텍스트로 변환할 수 있다. ‘리마인더’ 기능을 활용해 꼭 해야 할 일들을 직접 등록하면 원하는 시간에 알림 신호을 받을 수 있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땐 스마트폰 없이도 버튼 부분을 세 번 눌러 SOS를 보내거나 현재 위치를 추적해 미리 등록된 가족, 친구 등에게 상황을 전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손쉽게 모바일 결제를 실행할 수 있는 ‘삼성페이’가 탑재됐다. NFC(근거리 무선통신) 방식만 적용했던 기어S2에 비해 MST(마그네틱 보안 전송) 방식도 함께 지원해 범용성이 향상됐다. BMW와 협업해 탑재한 전용 앱으로 외부에서 자동차의 연료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온도 조절 등 원격 작동도 가능하다. 프론티어의 LTE 버전은 스마트폰과 연결하지 않아도 내장 스피커나 블루투스 이어셋을 연결해 통화하거나 스트리밍 음악, 음성 메시지 등을 들을 수 있다.
애플워치2
에르메스
▶전통 시계 업체도 스마트워치로
스마트워치가 시계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자 메이드 인 스위스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시계 산업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명품 브랜드의 가장 큰 소비군이었던 중국 소비자들이 정부의 부패 단속 강화로 돌아선 후 유럽지역의 테러 확산에 저렴한 스마트워치까지 등장하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스위스 시계 산업이 중저가 제품군 중심으로 위축될 수 있다”며 스마트워치의 등장을 이유 중 하나로 내세우기도 했다.
실제로 ‘메이드 인 스위스’가 새겨진 스위스산 시계는 올 7월까지 11억2400만 스위스프랑(스위스시계제조협회 집계)이 수출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1%나 줄어든 수치다. 업계에선 이러한 하향곡선의 원인으로 중국으로 대변되는 큰손의 부재와 스마트폰 수요 증가에 따른 신규 고객 확보 실패를 꼽고 있다.
FT는 “스위스 저가 시계 제품군이 더 이상 스마트워치의 위협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자동차 제조사 폭스바겐이 배출가스 조작으로 무너진 것처럼 스와치도 쓴맛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 지난 7월 명품 시계 브랜드 ‘태그호이어’가 국내시장에 스마트워치를 출시했다. 1GB D램과 4GB 저장장치, 410㎃h 배터리를 탑재하고 가격이 198만~225만원일 만큼 고가였지만 브랜드의 대표 모델인 ‘까레라’를 닮은 디자인에 사전예약 10시간 만에 100대가 소진됐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의 가치와 기술력, 트렌드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IT브랜드의 스마트워치와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그런가 하면 패션업계의 움직임은 좀 더 발 빠르다. 비싸지 않은 가격대를 무기로 웨어러블 기기에 액세서리 개념을 더해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파슬그룹’은 안드로이드 웨어를 탑재한 ‘파슬Q 시리즈’를 40만원대에 선보였다. 화면이 항상 켜져 있는 올웨이즈온 디스플레이를 장착했고 최대 24시간 지속 가능한 배터리를 탑재했다. 크리스털 액세서리 전문업체 ‘스와로브스키’는 웨어러블 디바이스 기업 ‘미스핏’과 협업해 ‘샤인’을 출시했다. 손목에 차고 다니면 자동으로 운동량을 기록하는 피트니스 트래커지만 눈으로 보기엔 화려한 팔찌다. 블랙, 블루 등 다양한 밴드에 스와로브스키 보석이 박혀 있어 액세서리나 웨어러블 기기 역할을 모두 만족시키고 있다. 세트로는 27만원이지만 팔찌만 별도로 구매할 수 있어 취향에 따라 바꿔 낄 수도 있다.
‘마이클코어스’는 ‘마이클코어스액세스’라는 브랜드로 스마트워치와 피트니스 트래커를 동시에 내놨다. 기존 패션시계를 연상케 하는 스마트워치는 49만원, 액티비티 트래커 14만원 대다.
2014년 웨어러블 디바이스 업체 ‘핏빗’과 제휴해 첫 번째 웨어러블 제품을 내놓은 ‘토리버치’는 11월, 국내에서 스테인리스 스틸과 가죽 소재를 결합한 스마트워치 컬렉션을 출시할 예정이다. 라이트오크, 바크 등 두 가지 색상으로 출시되며 최근 유행하는 더블 랩 팔찌형 디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