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한 디지털 자산 플랫폼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의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 토큰)를 제작해 하루 만에 약 2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해당 플랫폼은 기존에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등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을 NFT로 민팅(생성)한 적 있다.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인 두나무와 방탄소년단(BTS)의 기획사인 하이브는 지난해 1월 ‘레벨스’라는 합작법인을 만들었다. 레벨스는 자체 플랫폼인 ‘모먼티카’를 통해 K-POP 팬들을 위한 ‘디지털 카드(테이크)’를 NFT 형태로 공급한다. 자신의 최애 아티스트의 영상이나 음성이 담긴 테이크도 있다. 약 100개 국가에서 회원을 끌어모으며 프로미스나인·르세라핌 등 유명 아이돌의 디지털 카드는 완판을 이어가고 있다.
고가의 예술품에만 한정되던 디지털 아트테크 열풍을 넘어 게임, 엔터테인먼트 등 대중문화 시장으로 영역을 넓혀가던 NFT 시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가상자산 데이터 분석 업체 듄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세계 최대 NFT 거래소인 오픈씨(Opensea)의 NFT 거래규모는 사상 최대치였던 지난해 1월 48억5000만달러(약 6조3000억원)에서 올 9월 7660만달러(약 1000억원)로 약 98% 급감했다. 거래규모뿐만 아니라 거래량도 줄었다. NFT 거래량은 올 9월 31만3189건으로 올 1월(176만8392건)보다 약 83% 감소했다. 그만큼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실제로 NFT 자산을 매매한 활성화 지갑은 지난해 1분기 186만4820개에서 올 3분기 22만7588개로 줄어들었다.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자산에 고유한 인식값을 부여해 소유주를 증명하는 토큰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NFT는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활용해 만들어진다. 쉽게 말해 NFT를 구매한다는 건 이더리움 등으로 이미지, 영상, 음악 등이 저장된 토큰을 산다는 뜻이다.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이미 알려진 코인들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블록체인 네트워크로 운영되지만 토큰은 그렇지 않다. 토큰은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따로 없어 기존에 운영되고 있는 블록체인 네크워크에 기반해 만들어진다.
NFT 거래가 급감한 외생적인 이유엔 가상화폐 시장이 얼어붙었던 데 있다. 가상화폐 시장의 시세·거래 규모 등은 NFT 시장을 보여주는 선행지표이기도 하다. 태생적으로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하기 때문에 가상화폐 시장과 공동 운명체일 수밖에 없다.
김민수 NFT뱅크 대표는 “지난해 테라 사건 이후로 가상화폐 시장이 전반적으로 어려워졌다”며 “비트코인 가격이 블록체인 기술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대변하기 때문에 다른 코인들의 가격 변동성도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도 “NFT 시장이 어려운 원인은 가상화폐 시장과 엮여 있다는 점 때문”이라며 “가상화폐 가격이 하락해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관심이 떨어지니 NFT에 대한 관심도 떨어다”고 답했다.
NFT 거래규모도 하락했다. 지난해 4월 오픈씨의 NFT 거래 규모는 34억8000만달러에서 올 1월 4억5000만달러까지 줄어들었다.
최근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NFT 거래규모도 증가했다.
듄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올 10월 오픈씨 거래규모는 9월과 비교해서 2배 이상 오른 1억7300만달러까지 반등했다.
NFT 거래가 급감한 내생적인 이유도 있다. NFT 시장이 커졌지만 토큰에 담기는 콘텐츠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다는 것이다.
박수용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NFT와 같은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다”면서도 “초기에 토큰 가치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NFT를 남발한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NFT 시장에 거래되는 콘텐츠는 PFP(Profile Picture)라고 불리는 ‘프로필 사진’이다. 2017년 이후 NFT 시장이 확대되면서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현재까지도 NFT 거래 중 가장 활발한 분야가 PFP 프로젝트이다.
가장 유명한 PFP 프로젝트는 2017년 6월 라바랩스가 발행한 ‘크립토펑크(Cryptopunks)’를 들 수 있다. 총 1만개의 크립토펑크 NFT가 발행됐는데 남성(6039개), 여성(3840개), 좀비(88개), 원숭이(24개), 외계인(9개) 등 5가지 유형이 있다. 크립토펑크마다 모양새나 생김새가 약간씩 다른 게 특징이다. 지난해 2월엔 두건을 쓴 외계인을 묘사한 토큰 #5822가 크립토펑크 사상 최고가인 8000이더리움(당시 약 300억원)에 거래된 바 있다.
MZ세대에게 유명했던 PFP 프로젝트로 유가랩스의 ‘지루한 원숭이 요트 클럽(BAYC·Bored Apes Yacht Club)’이 있다.지루한 원숭이 PFP는 다양한 생김새와 옷차림의 원숭이 캐릭터들을 앞세워, 저스틴 비버·마돈나 등 유명 연예인들이 보유해 화제였다.
김 대표는 “어떤 혁신도 없이 형태만 다른 PFP를 찍어내는 게 문제였다”며 “받쳐줄 수 있는 수요가 같이 올라와줘야 하는데, 개인 입장에선 여러 개의 PFP를 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홍 교수도 “NFT는 단지 소유권을 증명하는 기술이고 디지털 콘텐츠를 보조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라며 “토큰으로 거래하는 디지털 콘텐츠의 가치와 효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처음 NFT가 만들어졌을 때처럼 디지털 창작물 자체에 대한 가치 평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세계 최초의 NFT는 디지털 예술작품의 희소성을 지키려는 노력에서 비롯됐다.
지난 2014년 디지털 예술가이자 미디어 예술가인 케빈 맥코이(Kevin Mccoy)는 ‘자본화된 이미지(monetized graphic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세계 최초 NFT인 ‘퀀텀(Quantum)’을 만들었다. 뉴욕대학교의 교수이기도 한 맥코이가 창작자들이 수익원을 확보하면서 희소성도 유지할 수 있도록 고민 끝에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본 것이다. 당시 동료 개발자인 애닐 대시(Anil Dash)가 작품 정보, 링크 등을 담은 메타데이터를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기록하는 프로토콜을 짰다. 퀀텀은 그 상징성 덕분에 지난 2021년에 140만달러(약 18억원)에 팔리기도 했다.
향후 NFT 시장에 대한 전망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엇갈렸다. 현재 게임·엔터테인먼트 등 대중문화 팬덤을 위한 상품뿐만 아니라 신용카드 멤버십으로 NFT 활용이 늘어나고 있다.
홍 교수는 “NFT를 써야 할 이유를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향후 전망도 좋지 않다고 본다”며 “가상화폐에서 파생된 시장이라는 인식을 고치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만 디지털 예술산업은 소유권 증명·진위 여부 판단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NFT가 유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NFT를 활용한 게임 대작들이 제작 중”이라며 “PFP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 NFT가 출시돼 성공 케이스들이 나온다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답했다.
박 교수는 “카드·유통업계 등 NFT를 활용한 멤버십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고객에게 줄 수 있는 지속적인 가치에 대해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세호 기자